ⓒ윤성근 제공

나는 어릴 때부터 사고방식이 부정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조금씩 고쳐나가려 하고 있지만, 이게 본래 내 성격이라 쉽사리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일은 어떤 계기를 통해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또한 그 계기라는 것이 강력할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나를 찾아온 P 씨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 사람은 ‘강적’이다. 누가 봐도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인물이다.

P 씨가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외모에서부터 상당히 무거운 기운을 내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여기 사장인 게 확실하냐며 몇 번이나 물었다. 그리고 책 제목을 말하면 정말로 찾을 수 있느냐며 빈정거렸다.

이쯤 되면 아예 의심증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청년 시절부터 사업체를 경영해오고 있어서 자연스레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에게는 얼마 전부터 교제를 시작한 여자친구가 있다. 평소 상당히 가부장적인 태도로 아들을 대했던 P 씨는, 애인이 있으면 부모에게 소개하고 허락을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라고 했다. 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며칠 후 여자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P 씨는 둘을 앞에 두고 연애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다.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아들 여자친구가 인사를 하더니 대뜸 저에게 에밀 시오랑의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이라는 책을 권하더군요. 대학 시절 은사님이 알려준 책인데 절판되어서 자기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그 책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당당한 태도가 아주 멋있어 보였거든요. 제 아들 녀석이 그런 성격은 좀 배웠으면 좋겠더군요.”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건전한 고집쟁이

에밀 시오랑은 쇼펜하우어의 부활이라고 할 만큼 독설의 대가로 알려진 철학자다. 어떤 독자들은 에밀 시오랑의 책이 현대의 성경이라며 열광적인 찬사를 보낸다. 반면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무의미한 소리만 늘어놓는다며 그의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책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곧장 P 씨에게 연락했고 그는 얼마 후 책을 찾아갔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난 다음 그가 다시 책방에 왔다. 그는 가방 속에서 그날 가져갔던 에밀 시오랑의 책을 꺼내 내 책상 위에 놓았다.

“짧은 책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좋은 내용이더군요. 개인적으로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제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반성도 했고요.”

“그럼, 선생님 생각이 이제는 조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나요?” 나는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여전히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책 때문에 기운을 얻었는걸요. 책을 읽으면서 부정적인 생각도 충분히 생산성 있는 결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봤습니다. 앞으로는 회사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도 너무 고집스럽지 않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고집을 부려도 시대를 역행하는 고집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건전한 고집쟁이가 되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P 씨는 책을 내게 건넸다.

“가지고 계시다가 다른 분에게 판매하세요. 누군가에겐 또 꼭 필요한 책일 테니까요. 팔기 전에 주인장도 한번 읽어보시고.”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네, 그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웃으시니까 좋아 보이네요’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누구든 저 웃음을 보면 좋은 기분이 들 테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싶었다.

기자명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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