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아사쿠사 거리 풍경. ⓒ박철현 제공

다른 나라(일본) 땅에서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든 지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데쓰야 공무점’이라는 작은 인테리어 설비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말이 인테리어업이지 거주와 관련된 모든 공사를 한다. 수도·전기·방수·도장·산업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아예 처음부터 짓는 것만 빼고 생활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고 보면 된다. 실적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결산월이 1월이라 3월에 결산서가 나오는데 3기분(2020년 2월~2021년 1월) 재무제표 손익계산서를 보니 매출액이 1억5000만 엔(약 16억원)이다. 1기분(2018년 2월~2019년 1월) 매출이 4600만 엔, 2기분(2019년 2월~2020년 1월) 매출이 9600만 엔이었다. 3기분이 2기분에 비해 1.5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19로 너나없이 힘든 시기였다. 그 와중에 매우 전통적인 사업 분야로 일컬어지는 소규모 공무점(인테리어 설비업체)으로선 상징적인 매출액인 1억 엔을 돌파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그 놀라움과 의문은, 아마 내가 이전까지 공무점 사업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보기엔 낯선 땅에서 외국인이 어떻게 비슷한 규모의 일본 라이벌들을 제치고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거시 데이터도 이들의 의문을 뒷받침한다. 도쿄 상공리서치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일본 전국의 휴업·폐업·해산 기업 수가 4만9698건에 달했다. 2019년에 비해 14.6% 증가한 수치로 21세기 들어 최다 휴폐업 건수를 기록했던 2018년의 4만6724건을 제쳤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도산한 기업 수가 전년도(2019년) 대비 7.2% 감소한 7773건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정부와 지자체의 직접 지원은 물론 금융기관의 저금리 장기융자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도산한 기업은 오히려 줄었는데, 휴폐업 기업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짜 외국인이 설립한 전통적 의미의 ‘노가다’ 기업이 계속 좋은 실적을 내고 있으니 놀랄 만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업체는 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근원에, 역설적이지만 일본 사회의 저변을 흐르는 ‘체념’의 습속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2월 도쿄 아사쿠사의 메인 스트리트인 국제거리(고쿠사이도리)에 접한, 지은 지 50년이 넘은 낡은 4층짜리 건물을 ‘풀 리폼(완전 개조)’하는 공사 건이 들어왔다. 7000만 엔 규모의 공사였다. 건물주는 아사쿠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지역 유지로 물론 일본인이다. 아시다시피 지난해 2월은 ‘코로나 배양소’라는 조롱을 들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건이 터졌던 시기로 일본 정부의 방역대책이 실패로 돌아가 긴급사태가 선언되니 마니 하던 때였다. 원래 이 정도 규모의 공사는 작은 업체엔 떨어지지 않는다. 이전까지 데쓰야 공무점이 맡았던 가장 큰 규모의 단일 공사는 1200만 엔짜리였다. 이보다 대여섯 배 큰 공사가 우리 업체에 맡겨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난해 데쓰야 공무점은 도쿄 아사쿠사 국제거리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을 풀 리폼(완전 개조)했다. ⓒ박철현 제공

어쩔 수 없다, 불가능하다  

1월에 견적서를 내고 한동안 기다렸다. 연락이 없기에 ‘역시 우리에겐 너무 큰 공사’라며 포기하고 있던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공사를 중개한 부동산 관리회사였다. 건물주가 우리한테 공사를 줄 것 같다고 한다. 기쁘다는 감정보다 불가사의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한 번도 거래하지 않은 곳이었고, 연락이 없어서 당연히 떨어졌거나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공사 일정을 늦추거나 안 하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건물주를 만나 사전 회의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회의 현장에는 다른 업자들도 두서넛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이토구의 지역 공무점 몇 개가 동시에 견적을 냈고, 그중 최종 선발된 업체가 데쓰야를 포함해 네 군데였다. 즉 이 회의는 건물주가 동시에 업체 면접을 실시해 최종 발주처를 선정하겠다는 의도로 연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쇼가나이(しょうが無い)’ ‘시카타가나이(仕方が無い)’였다.

이 단어들은 대체로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다’는 자조적 의미를 품고 있다. 한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쇼가나이’의 ‘쇼’는 ‘시요우(仕様)’의 줄임말로 ‘수단’ ‘방법’ ‘매뉴얼’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에 ‘없다’는 뜻의 ‘나이(無い)’가 붙었다. 즉,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쇼가나이는 ‘매뉴얼이 없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뒤에 생략된 말도 관용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불가능’이다.

‘시카타가나이’의 ‘시카타(仕方)’는 ‘일을 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에 ‘나이(無い)’가 붙었다. 즉, 시카타가나이 역시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최종 회의에 모인 다른 업체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를 댔다. ‘건물이 너무 오래돼 차라리 해체하고 새로 짓는 게 낫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인부들이 모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고 싶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미 자재 공급이 지연되고 있어서 납기를 맞출 수 없다’ 등등. 이런 이유들을 대면서 ‘어쩔 수 없다, 불가능하다’를 습관처럼 덧붙였다. 재미난 건 건물주의 반응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 역시 방법이 없는 건가?”라며 맞장구를 쳤다.

기준이 되는 견적가격은 어차피 비슷비슷하다. 다만 임차인이 5월부터 입주하기로 결정돼 있었다. 그렇다면 4월까지 공사를 끝내야 하는데, 나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 공사가 힘들 것이라는 전제하에 대화를 이어나가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동안 듣고만 있었는데, 마지막에 내 의견을 물어본다. 나는 건물주에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견적을 쓸 때 이미 우리 재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코로나19 등 변수까지 생각한 공사 일정을 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데, 다들 놀랐다. 건물주와 오래 일을 같이 해왔다는 어떤 일본 업체는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건넨 공무점 명함을 앞뒤로 훑어보면서 ‘건설업 등록은 했냐? 이 일을 한 지 얼마나 됐냐? 외국인인 것 같은데 일본어는 되냐?’ 같은, 공사 내용과 아무런 상관없는 공격을 해왔다. ‘등록했고, 일한 지 3년째이지만 지난해 실적은 첫해에 비해 두 배나 늘었고, 일본에 산 지 20년째이고, 한자검정 1급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부동산중개사 자격증도 있어서 일본어 문제는 별로 없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건물주가 “자자, 진정들 하시고… 일단 알겠으니 오늘은 그만 끝냅시다”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건물주가 직접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내일 한 번 더 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보니 첫 회의에서 보지 못한 업체가 와 있었다.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는데 다이토겐타쿠였다. 도쿄 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되어 있는, 연매출 1조5000억 엔(약 16조원)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이다. 데쓰야가 견줄 수 없는 규모다.

건물주는 “공사 기간이 촉박하니까 외벽과 방수공사는 다이토겐타쿠가 하고, 나머지 건물 내부에 관한 모든 것은 설비 포함해서 데쓰야 공무점이 하는 걸로 합시다”라며 “총공사비 7000만 엔 가운데 3000만 엔 규모의 익스테리어는 다이토겐타쿠에, 설비 포함 인테리어 부문의 4000만 엔짜리 공사는 데쓰야 공무점에 맡기겠다”라고 선언했다. 다이토겐타쿠의 책임자는 나에게 악수를 건네며 “일정 조율 잘 해서 완성해봅시다”라며 먼저 악수를 청해왔고 나도 굳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때때로 공사 현장을 찾아온 건물주는 “정말 스피드가 빠르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같이 공사를 진행하던 다이토겐타쿠의 하청업체들도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리폼 공사를 거쳐 완성된 아사쿠사의 다쓰미 빌딩. ⓒ박철현 제공

잃어버린 30년이 미친 영향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정해진 날짜보다 일주일 빨리 납기를 완료했다. 그리고 건물주는 이후 작은 공사부터 큰 공사까지, 집 짓는 것만 빼고 데쓰야에 거의 모든 현장을 맡기고 있다. 지난해 실적이 크게 향상된 것도 이 건물주 덕분이다. 처음 본 외국인에게, 그것도 아사쿠사라는 텃세 강한 지역의 유지가 처음엔 어쩔 수 없는 이유(다른 업체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니까)로 일을 맡겼지만 그것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내자 그다음부터는 믿고 맡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두에 언급한 일본 사회의 ‘체념’이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로 작용한 셈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체념을 더욱더 가속화했다. 환경과 상황 탓을 하며 기존 매뉴얼을 최우선시한다. 비상상황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챌린지(도전)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코로나19까지 닥쳤으니 핑곗거리까지 확실하다.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수백 번도 넘게 들었다. 대체 일본 사회의 이 ‘체념’은 어떻게 생성됐고, 또 정착된 것일까. 다음번에는 ‘일본 사회의 체념’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보고자 한다.

기자명 박철현 (일본 데쓰야 공무점 대표·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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