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당 음료에 일명 ‘설탕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탄산음료의 과다 섭취는 비만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시사IN 이명익

그래도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해야 할까? 요사이 ‘건강 증진’이 부쩍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물론 부정적 측면에서 말이다. 지난 3월 원고를 준비할 즈음에는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문제로 시끄럽더니, 주류 옥외광고 금지 조치가 입법예고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유·제니 간판 떼라고요?’… 고깃집 사장님들 뿔났다”라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며칠 전에는 가당 음료에 건강증진부담금, 일명 ‘설탕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소란이 일었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부정적 의견이 다수였다. ‘가격 올린다고 소비가 줄어들겠느냐’ ‘그렇게 확보한 건강증진부담금이 국민 건강 보호에 제대로 쓰이겠느냐’ 같은 의심이 컸다. 국민 건강 증진은 핑계일 뿐,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정부의 ‘꼼수’라는 지적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 정부가 나서서 개인의 선택, 개인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느냐는 지적이다. 건강에 해로운 것들은 알아서 조심하면 될 일이고, 나쁜 생활습관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 책임지면 될 일이지, 국가가 나서서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유명한 진술도 있지 않은가. 인구집단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중보건 정책들은 개인의 자유, 선택권 측면에서 종종 논란이 되곤 한다. 마스크 착용처럼 사회적 효용이 분명한 조치까지도 자유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이보다 덜 분명한 조치들에 대해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2012년 미국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었던 전면광고는 이러한 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광고는 건강 증진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정부를 ‘유모국가(nanny state)’에 비유했다. 당시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비만 퇴치를 내세우며 식당과 카페테리아, 스포츠 경기장에서 대용량 사이즈의 가당 음료 판매를 금지하려 했다. 광고는 ‘유모 블룸버그’가 대용량 가당 음료를 금지하고 나면, 다음에는 피자 조각의 너비, 햄버거의 크기, 베이글에 바르는 크림치즈 양까지 규제할 것이라면서, 뉴욕 시민이 원하는 것은 시장이지 유모가 아니라고 조롱했다.

2012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전면광고.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 시장을 유모에 비유했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자유와 선택에 대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일단 선택지가 충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하며 선택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다. 예컨대 술, 담배, 가당 음료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 같지만,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필자는 박사학위 소지자 두 명에게 “술이 유방암에도 안 좋아요?” “식도암이 담배랑 관계있어요?”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몸에 안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지식을 넘어서, 실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소비자들은 충분히 알기 어렵다. 이들 제품 광고의 물량 공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 콘텐츠에 비하면, 건강 정보 메시지는 양적·질적 측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맥주·소주·콜라 광고를 3초만 생각해보자. 브랜드를 대표하는 연예인 얼굴, 배경 장면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신선한 야채와 과일, 건강생활과 관련한 캠페인은 애써 생각해도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없다.

또한 정보가 충분하고 지식수준이 높다 해도, 개인의 건강 관련 행동이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지의 범위와 수준은 사회규범과 문화, 사회경제적 조건에 구속되어 있다.

비만 친구를 가진 사람이 비만일 확률

2007년 발표되어 현재까지 6000회 가까이 인용된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박사의 논문은 이른바 ‘비만의 전파’를 다루고 있다. 이 연구는 1948년 이후 70년 넘게 진행 중인 ‘프레이밍엄 심장 연구’에서 파생되었다. 장기간 반복적으로 조사를 수행해야 하는 지역사회 코호트 연구의 특성 때문에 조사원들은 연구 참여자들의 지인에 관한 연락처 정보를 수집했다. 참여자들은 배우자나 형제자매, 혹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웃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이 정보는 연구 주제와 무관한, 조사 수행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지만 장기간에 걸쳐 연구 참여자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크리스태키스는 이 자료를 활용하여 32년 동안 꾸준히 상승한 비만율과 사회연결망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특정 기간 비만해진 친구를 가진 사람은 뒤이어 그 자신도 비만해질 확률이 57%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를 친구로 지목한 경우, 그 증가 폭은 171%에 달했다. 형제자매들은 한 사람이 비만해지면 나머지 사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40% 높아졌다. 배우자의 경우에도 한쪽이 비만해지면 나머지 한 사람도 뚱뚱해질 가능성이 37% 늘어났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타고, 감염병이 전염되듯 비만도 전파된 것이다. 물리적 환경을 공유하는 배우자보다 친밀한 친구들 사이에 비만 전파가 더욱 뚜렷하다는 사실은 규범이나 생활습관, 사회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건강 또한 그러하다. 좋은 행동도 나쁜 행동도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

개인 수준의 사회 네트워크뿐 아니라 사회적 ‘규범’도 중요하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에는 강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교수가 적잖이 있었다. 시외버스나 택시 기사가 승객들이 탄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도 흔했다. 요즘이라면 스마트폰 카메라에 찍혀서 눈 깜짝할 사이 포털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유명인이 되고도 남을 상황이다. 현재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청년이 30년 전, 50년 전의 한국 사회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면 그 역시 흡연자가 되어 현재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그대로이지만 그를 둘러싼 규범과 문화, 규제가 다른 종류의 압력을 행사하고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건강생활 습관에서 사회 네트워크, 사회규범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경제적 환경이다. 핀란드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서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고열량 섭취에서 비롯된 심장병 유행이 심각한 보건 문제가 되었다. 핀란드는 심장병 사망률이 특히 높은 나라였다. 날씨가 추우니 고지방 식품을 많이 섭취할 것이고,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쉽게 재배하거나 소비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핀란드 정부는 1960~ 1970년대에 심장병 발생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의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와 혈압을 낮추는 것을 정책 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식생활을 변화시켜야 했다. 버터를 식물성 기름으로, 고지방 유제품·육류를 저지방 유제품·육류로 대체하고 야채와 과일 섭취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떻게 접근했을까? 당연히 보건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했다. 특히 학교 중심의 보건교육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이 가정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서 올바른 보건 지식만 얻게 되면 사람들의 식습관이 저절로 바뀔까? 동네에 식물성 기름, 저지방 우유, 마블링이 적은 쇠고기, 신선한 야채·과일을 파는 곳이 없다면, 혹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다면 최신의 건강 지식이 무슨 소용일까?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비용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핀란드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식물성 오일 생산 품종을 개발하고, 낙농업 보조금 정책을 변경하여 지방함량이 낮은 육류와 육가공품 생산을 촉진했다. 또한 핀란드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베리(berry) 품종들을 발굴하고 농가에 보급해 생산을 늘렸다. 이런 사회적 노력에 힘입어, 1970년에 그야말로 0%였던 식물성 기름 사용률은 2009년 50%로 늘어났고, 1인당 버터 소비량은 1965년 18㎏에서 약 3㎏으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 핀란드인의 심장병 사망률은 80%나 감소했다. ‘건강한 선택’이 ‘쉬운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회적 접근 덕택이다. 실제로 접근성을 개선하거나 제한하는 환경적 조치 없이 보건교육 또는 캠페인만을 통해 개인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보건사업들은 효과가 없거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건강 정보를 접하거나 이해하는 능력, 건강행동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자원과 여건이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건강 유지에서 개인의 의지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강을 해치면 본인만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담배나 술, 가당 음료 제품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못마땅하게 혹은 불필요하게 여긴다.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한 시민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EPA

광고비 1인당 1달러 늘면 청소년 음주 3% 증가

건강에 해로운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이런 인식을 활용한다. 다만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담뱃값·술값을 인상한다고 했을 때, 기업들이 직접 나서서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번에 ‘설탕세’ 부과 논란이 일었을 때, 반대 성명을 발표한 탄산음료 제조사가 하나라도 있었던가? 화학물질관리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이 발의되었을 때 기업들이 보인 적극적 반대 의사 표명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건강 유해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제3의 연구조직이나 전문가를 앞세워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현재의 역학연구에 이런저런 한계가 있으며 규제효과도 불분명하다’고 물타기를 한다. 예컨대 담배가 폐암과 관계없다고 주장하기보다 실내 대기오염이 폐암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주장하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식이다. 또한 담배 광고는 새로운 흡연자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흡연자의 선호 브랜드를 바꾸는 역할을 할 뿐이므로 광고규제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국적 담배 기업이 진출하여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벌인 신흥시장에서 흡연율은 어김없이 상승했다. 특히 청소년과 여성에게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주류 기업들도 광고가 기존 음주자들의 브랜드 선택에 영향을 미칠 뿐이라며 청소년 보호 명목의 광고규제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광고비 지출이 1인당 1달러 늘어날 때마다 청소년 음주가 3% 증가한다. 주류 산업은 알코올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올바른 정보 제공과 보건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알코올 소비 감소에 효과가 없다고 알려진 대표적 정책이다.

또한 건강 유해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자유와 선택’이라는 수사를 사용하여 소비자를 현혹한다. 글 앞머리에서 소개한 블룸버그 유모 광고를 게재하며 소비자의 자유를 옹호한 ‘한 시민단체’는 사실 진짜 시민단체가 아니라 미국 극우 보수주의 운동세력 티파티(Tea Party) 조직인 ‘소비자 자유 센터’였다. 이 단체는 담배 기업뿐 아니라 코카콜라나 웬디스 같은 식음료 업체들과도 관련이 있다. 주류 산업도 비슷하다. 연구조직과 풀뿌리 시민조직을 내세우면서 성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이렇게 건강과 건강행동을 개인의 자유·책임 문제로 다루면 그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게 된다. 물론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기업에 의해 조종되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는 아니지 않나.

그러나 건강 증진의 본래 의미는 단순히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태를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환경적 중재가 필요하다. 건강증진정책은 기업의 공세, 지배적 소비문화, 사회경제적 환경의 조성을 둘러싼 정치 경제의 각축을 다루는 과감한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기자명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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