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아니라고 자부(?)합니다만, 선거 시기엔 고향의 부친과 다툴 때가 있습니다.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달래고 비웃고 심지어 화까지 내면서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려 노력합니다(물론, 아무리 제가 투덜거려도 부친이 투표 성향을 바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와 부친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적(私的) 관계’ 안에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선거 때마다 특정 세대에 대한 비난이 공적인 영역에서 난무하는 현상은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진보 성향의 ‘셀럽’들이 당시의 20대를 혹독하게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너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같은 막말도 퍼부었습니다. 20대의 투표율이 낮아서 바람직하지 못한 선거 결과가 나왔다고 봤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대’ 같은 거대 인구집단을 겨냥해서 욕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거친 말들이 해당 인구집단의 언저리까지 가닿기는 할까요?

인구집단은 개인들의 단순 합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 개인을 제대로 아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20대 같은 인구집단은, 거의 수백만의 개인들이 각자 수많은 종류의 욕망과 이익 동기를 갖고 해당 세대끼리는 물론 다른 세대와 상호작용하며 얽히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매트릭스입니다. 이런 인구집단에 대해 그 누가 ‘나는 저 집단을 잘 안다’는 식의 만용을 부린단 말입니까. 이런 만용에서 욕설이 비롯됩니다. 자연과학자들이 소립자나 우주공간에 대해 연구하는 것처럼, 겸손하고 합리적인 방법론으로 해당 인구집단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가 최선이지 않을까요? 인구집단은 감정 배설이 아니라 진지한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화를 내면 주변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특정 세대의 투표 성향을 비난하는 것이 누워서 침 뱉기와 뭐가 다를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고 명언은 단연 ‘농부가 밭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였다고 생각합니다.

ⓒAFP PHOTO

지난 제704호의 이 지면에서 “죽음을 무릅쓴 투쟁을 전개 중인 미얀마 시민들에게 연대감을 표시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해서 부끄러운 심정”이라고 쓴 바 있습니다. 〈시사IN〉은 미얀마 민주항쟁에 대해 이웃 국가의 언론매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4월7일부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18일까지 41일 동안 사회적 협동조합 ‘오늘의행동’과 함께 진행하는 ‘#WatchingMyanmar #지켜보고있다’ 캠페인이 그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무거운 질병과 맞서 싸웠던 장일호 기자가 ‘표준 치료’를 마치고 씩씩하게 이 캠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장 기자를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