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가치는 ________라고 생각한다.’ 강사가 제시한 문장의 빈칸을 채우는 손가락이 분주했다. 존엄, 연대, 공정 등의 대답이 채팅창을 사이에 두고 오갔다. 4월1일 오후 7시30분 ‘읽는 당신×북클럽’ 두 번째 북토크가 줌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렸다. 김정희원 교수(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사진 오른쪽)가 3월 한 달간 소속 책방에서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베리, 2020)을 함께 읽은 북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공정과 능력주의:대안과 변화를 모색하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질의응답을 포함해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이번 강의는 저자인 마이클 샌델의 능력주의 비판에 동의하는 지점과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점검하며 시작됐다. 김정 교수는 샌델이 박탈감이 아닌 ‘굴욕감’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주목했다. 박탈감은 빈부격차와 사회불평등을 암시하지만, 굴욕감은 그에 비해 정치적 의미가 탈색된다는 지적이다.

능력주의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샌델이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것이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샌델은 마음·태도·도덕·존엄성 회복 등을 능력주의 폐해를 극복할 주요 가치로 제시하는데, 김정 교수는 이 같은 답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를테면 팬데믹 시대에 택배 노동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잖아요. 하지만 택배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지는 않았죠.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시민사회가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동체 감각’을 환기시키는 북클럽

김정 교수는 최근 미국 진보학자들이 많이 쓰는 말 중 하나라며 ‘트리클 업 저스티스(Trickle Up Justice)’를 소개했다. 낙수효과(Trickle Down)를 비튼 말로 풀뿌리 정의, 아래로부터의 정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참여, 연대, 직접행동을 가능케 하는 시민사회가 넓고 튼튼해야만 아래로부터의 정의도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창출해야 하는 정부의 속성을 생각할 때 선하고 정의로운 정부란 존재할 수 없어요. 시민사회의 힘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키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정치가 대변하지 않는 빈곤계층,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들을 위해 애쓰는 시민단체에 우리가 가입해야 하죠. 엮여야 합니다. 일종의 상호부조 네트워크라고 생각하세요.”

시민사회의 힘과 기초체력을 기르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김정 교수는 동네서점을 중심으로 이전에는 한 번도 연결된 적 없었던 낯선 이들이 서로 만나 함께 책을 읽는, ‘읽는 당신×북클럽’ 같은 모임을 지속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격려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을 논의하고 도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보배책방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야간비행 씨(닉네임) 역시 북클럽 모임이 공동체가 있다는 자각과 안도를 준다고 했다. “북클럽에서 느끼는 ‘공동체 감각’ 위에서 사회를 바꾸는 연대의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겠습니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만이 아닌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는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서울 정치발전소와 함께 책을 읽고 있는 김우식씨는 “책을 읽는 데 급급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기 어려웠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 북토크는 5월6일 열린다. 북클럽 4월의 책인 〈가난의 문법〉 저자 소준철씨가 강사로 나선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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