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지면(‘편집국장의 편지’)을 보통 목요일 오후에 채웁니다. 기사들을 모두 넘기고 커버스토리까지 결정한 다음,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써나갑니다. 제작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커버스토리입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커버스토리로 낼 만한 기사가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이미 정해놓은 상태에서 ‘바꿔버려?’라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번 제708호의 커버스토리를 정하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커버로 펼치고 싶은 기사가 너무 많았거든요. 예! 편집국장인 저로서는 아주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다만 기사의 내용은 그리 행복하지 않습니다.

전혜원 기자는 대기업 노조들의 ‘정년 65세 법제화 요구’를 주제로 커버스토리를 썼습니다. 읽어나가면서 아련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울산 대기업 노동운동이 한때 가졌던 전투적 정서가 새삼 떠올랐거든요. 당시 그분들은 ‘자본-임금노동’ 관계를 전복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실현되었다면 엄청난 재앙이 닥쳤을지도 모릅니다. 꿈이 과격한 만큼 당시 노동운동 역시 전투적이었습니다. 다만 이 황당한 목표는 나름 공공성을 갖고 있었지요. ‘나와 내 업체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무정한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울산 대기업 노동운동에서 전투성은 살아남았지만 공공성은 죽고 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기사에 인용된 박태주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노총이 출범 때부터 표방한 가치’로 “모든 노동자의 ‘일반 이익’ 나아가 공동체 시민들의 이익을 조직해내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복원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것일까요?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제공

지난해 초 이후 ‘코로나19 진단 시스템’의 변천을 다룬 김연희 기자의 글을, 저는 ‘본격 정치 기사’로 읽었습니다. 시장이 언제나 자원(예컨대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적절한 배분에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의 역할이 긴요합니다. 김 기자는 지난해 초를, 정치적 개입이 K방역의 성공적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순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최근 ‘신속진단키트’에 대한 일부 정치인들의 언행에서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정치의 역기능을 발견하고 말지요. 다음 인사에서 김연희 기자를 정치팀으로 발령 낼지 고려해봐야겠습니다.

남문희 기자는 최근 북한-중국 사이에서 이뤄진 낯선 행위(북한의 미사일 발사, 북한과 중국 최고지도자 간 친서 전달, 조선중앙통신의 친서 내용 공개)들에 주목하며 그 뒤의 의도를 읽어냅니다. 그 의도가 동북아시아에 다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 전에 한국과 미국 당국자들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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