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엘시티. 101층 랜드마크 1개 동과 85층 아파트 2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사IN 이명익

또 ‘엘시티(LCT)’다.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수영하다 곧장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초호화 주상복합건물이다. 101층짜리 랜드마크 1개 동과 85층 아파트 2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국내에서 서울 롯데월드타워 다음으로 높다. 사업비로만 2조7000억원 이상 들어갔다. 2015년 분양 당시 3.3㎡(1평)당 평균 분양가가 2750만원이었다. 20억원 정도였던 75평 아파트가 2021년 현재는 35억원선에서 거래된다.

엘시티 건설은 첫 삽을 뜨기 전부터 특혜 논란이 많았다. 2008년 국토교통부는 주택건설 기준 규정을 바꾸었다. 관광시설만 들어갈 수 있던 곳에 50층 이상 주거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했다. 2009년 부산시는 60m 고도 제한을 400m 이상으로 풀었다. 2013년 법무부는 엘시티를 ‘투자 이민제’ 대상으로 선정했다. 외국인이 7억원을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민간 건물에는 처음 적용된 일이었다. 2015년 중국건축이 해지한 시공계약을 포스코건설이 ‘책임준공(시공사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공사를 완료한다는 약정)’까지 약속하며 맡았다. 자금난을 겪던 엘시티는 1조7800억원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도 받았다.

의혹투성이 엘시티가 4·7 보궐선거를 계기로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를 상대로 엘시티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박 후보가 엘시티 두 채를 특혜 분양받은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박 후보는 정당한 계약이라고 반박했다. 2015년 그의 딸은 프리미엄 500만원을 주고 20억1100만원에, 아들은 프리미엄 700만원을 주고 20억2200만원에 엘시티 분양권을 샀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박 후보의 부인이 프리미엄 1억원을 얹어 아들의 엘시티 아파트를 샀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치권의 공방과 별개로 엘시티 의혹이 굴러가는 양상이다. 지난 3월 초 부산경찰청에 ‘엘시티 리스트’ 관련 진정서가 접수됐다. 엘시티 특혜 분양 명단이 있다는 내용이다. 〈시사IN〉이 입수한 A4 용지 6장짜리 엘시티 리스트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법조인·기업인·언론인·교수 등 100명 넘는 이의 이름이 쓰여 있다. ‘성함’란 옆에는 ‘회사/직함’ ‘전화번호’ ‘선택 호실’ ‘동호수’ ‘비고’란이 있다. ‘선택 호실’란에는 구체적인 조건이 적혀 있었다. “65평이나 58평 저층 희망” “B동 75평 3호 라인 25~30층” “75평 80층, 65평 아무 데나” “58평인데 65평이나 75평으로” “58평 A동 우선, B동 오케이, 30층 이하”…. 당사자가 원하는 분양권 조건으로 보이는 내용들이다.

‘엘시티 리스트’ 속 이름과 엘시티 등기부등본상 이름이 같은 경우가 13건이다. ⓒ시사IN 조남진

엘시티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봤다. 해당 엘시티 리스트 속 이름과 엘시티 등기부등본상 이름이 같은 경우가 13건이었다(당사자가 대표인 법인 소유 및 팔아서 현재 소유가 아닌 경우까지 포함).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인터뷰를 거부한 이들을 뺀 모든 이들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정당하게 산 분양권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엘시티에 살고 있는 한 건설사 회장은 “나는 (처음에) 12층 분양권을 샀는데, 이영복 회장이 높은 층으로 바꿔줄 줄 알았다. 그런데 못 바꿔줘서 12층을 팔고 피(프리미엄)를 주고 더 높은 층을 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회장 또한 “당시에 안 팔린다며 이영복 회장이 좀 사달라기에 사줬다”라고 말했다. 엘시티 쪽도 ‘해당 리스트는 미분양을 대비한 영업용 고객 명단’이라며 특혜 의혹을 부인한다.

하지만 부산경찰청은 특혜 의혹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3월25일 엘시티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는 번번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과거 엘시티 수사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혹에 비해 과거 검찰 수사가 건드린 부분은 일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번 수사로 그간의 의혹이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복 회장은 현재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이미 엘시티 관련 비리로 2018년 징역 6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엘시티 사업 과정에서 회삿돈 705억원을 빼돌리고 로비 명목으로 유력 정치인들에게 금품 5억원가량을 건넨 혐의가 인정되었다. 2017년 3월 부산지방검찰청(담당 부장검사 임관혁)은 이영복 회장을 비롯해 24명을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으로 기소했다. 당시 함께 재판에 부쳐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징역 3년6개월), 배덕광 전 자유한국당 의원(징역 5년), 정기룡 전 부산시 경제특보(징역 1년6개월)도 유죄가 확정됐다.

당시 검찰의 수사 발표문을 보면 이영복 회장이 로비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부정부패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알 수 있다. “부산시청·해운대구청의 공무원, 부산도시공사 직원, 시·구의회 의원 등 100여 명은 2009년 9월경부터 2016년 2월경 이영복으로부터 합계 약 2억원 상당의 명절 선물을 수수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금액이 크지 않은 점을 감안해 기소하지 아니함” “이영복은 평소 정치인, 공무원 등에게 골프접대, 유흥주점 향응, 상품권 선물, 명절 선물 등 지속적인 금품 제공을 통한 소위 ‘평소 관리형’ 로비를 하였고 그 금액은 확인된 것만 수십억 원에 이름.”

이조차도 몸통은 건드리지 못하고 끝난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엘시티의 투자이민제 지정 배경 △포스코건설의 책임준공 조건 시공 과정 △엘시티가 받은 특혜성 대출 의혹 등을 밝혀내지 못했다. 청와대 수석 한 명, 국회의원 한 명으로 가능한 일이었냐는 의문이 남았다. 또한 검찰은 현 전 수석이 이 회장으로부터 받은 50억원을 돈세탁한 정황은 확인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했다.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입을 다물어 수사를 진척할 수 없었다고 검찰은 해명했다.

왼쪽부터 엘시티 실소유주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 배덕광 전 자유한국당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영복 돈은 안전하다’

이영복 회장과 친분이 있는 부산의 한 기업인은 〈시사IN〉과 통화에서 “이 회장은 남의 말을 절대 안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영복 돈은 안전하다’는 게 업계 정설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과거 1990년대에 벌어진 ‘부산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의혹 사건’에서도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다. 당시 그는 누구에게 돈을 줬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쌓인 ‘명성’이다. 이영복 회장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순득 자매와 월 천만원대의 친목계를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은 이영복-최순실 사이 추가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다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 수사가 벌어지던 2016년 10월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이춘석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출 비리 등 사업자의 비리 밝히기가 1층 정도 가는 수사, 비자금 조성까지 밝히면 2층, 비자금을 추적해서 어디로 갔느냐까지 밝히면 3층, 그 배경에 누가 있어서 비자금의 이익자가 누구한테 가느냐 하는 것이 4층부터 101층까지의 수사다”라고 주장했다. 이 비유에 따르면, 당시 엘시티 수사는 2층에서 주저앉아버린 셈이다.

지금 경찰이 수사 중인 특혜 분양 의혹 또한 2017년에 검찰 수사 당시 이미 불거진 바 있다. 검찰은 이영복 회장의 공소장에 ‘이 회장이 지인 43명에게 특혜 분양을 했다’는 내용의 혐의를 적시했다. 같은 해 부산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해당 43명에 대한 수사를 해달라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3년 만에야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43명 중 2명만 주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영복 회장의 아들과 하청업체 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지난 3월11일 부산지방법원은 둘에게 각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나머지 41명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계속해서 엘시티 의혹을 고발해온 부산의 시민단체들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3월18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부산 참여연대 등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리와 특혜의 온상이었던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고발·감사 청구·행정소송 등의 대응을 펼쳤지만, 엘시티 사업 비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파헤쳐지지 못했다.” 이들은 과거 엘시티 비리를 수사한 검사들을 공수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책임을 먼저 물은 것이다.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엘시티 특혜 명단 논란은 검찰의 엘시티 사업 비리 부실 수사에 따른 결과다.” 공수처가 사건을 맡으면 엘시티 사건은 두 갈래가 된다. 현재 이뤄지는 경찰의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 수사와 공수처의 ‘검찰의 엘시티 봐주기 의혹 수사’다. 보궐선거가 끝나도 엘시티 의혹이 계속 뉴스를 장식할 가능성이 커졌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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