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들어온 모양이다. 거실로 나가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누구요?” “저 폴이잖아요.” “누구? 내 집에서 뭐 하는 거요?” “저 여기 살아요.” “당신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 나야. 아버님 몸이 좀 불편하신가 봐. 빨리 와봐야겠어.” 이상하다. 딸은 이혼했는데. 남편이라니. 곧 현관에서 기척이 들린다. 처음 보는 여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누구요? 앤은 어디 가고?” “여기 있잖아요. 저예요 아빠.” 내 딸이라는데 내 딸이 아니다. 어지럽다. 다리가 풀린다.

평생의 추억이 담긴 집에서 조금은 무료해도 대체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삶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딸 부부 행세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결국 역정을 낸다. 내 집에서 이게 다 뭐 하는 짓거리냐고 호통을 쳤다. 내 사위라고 주장하는, 내 사위가 아닌 남자의 대답. “여긴 당신 집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잖아요. 여긴 저희 집이에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포함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더 파더〉는 그렇게 시작한다. 이제부터 관객은 탐정이자 배심원이다. 하나둘 튀어나오는 단서들로 진실을 추리하고, 팽팽히 맞서는 주장 사이에서 누구 말을 믿을지 결정해야 한다. 러닝타임 97분. 째깍째깍. 타이머는 작동을 시작했고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의심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주인공 앤서니(앤서니 홉킨스)는 치매가 아닐까? 처음엔 손목시계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정도였다가, 급기야 내 딸이 누구인지, 어디가 내 집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닐까?

“당신 이야기잖아요. 모르시겠어요?”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 앤(올리비아 콜먼)의 치밀한 사기극은 아닐까? 노인의 집과 재산을 차지할 작정으로 노인 스스로 치매라고 믿게 만드는 거라면? 진짜 딸일 수도 있을까? 평생 곁에 없는 둘째만 편애하면서 항상 곁을 지킨 첫째를 못 미더워하던 아빠에게 나름의 복수를 하는 거라면?

그렇게 외줄 위 곡예사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한 발 한 발 다가오던 흥미진진 스릴러가 휙, 돌아서는 영화의 어떤 순간, 이야기의 등뒤에 감추고 있던 거울 앞에 관객이 선다. 영화 안에 내가 서서 나를 보고 있다. 이미 늙어버린 내 부모의 현재와 점점 나이 드는 나 자신의 미래가 함께 손잡고 내게 묻고 있다. “당신 이야기잖아요. 모르시겠어요?”

집 한 채에 아등바등 모든 인생을 건다. 그래 봐야 나중에 몸 누일 곳은 병실 한 칸뿐. 마지막 숨은 좁은 침대 위에서 내쉰다. 그게 삶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길 바라는 모두에게 아주 각별한 이야기로 기억될 영화 〈더 파더〉. 모든 장면, 모든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지만 특히 엔딩에서 보여준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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