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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기자의 ‘사법농단 첫 유죄판결’ 관련 기사를 읽다가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극악한 범죄인데도 징역 1년6개월의 가벼운 처벌로 끝난 손정우를 떠올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주요 재판에 개입한 사법부 고위층들은 그동안 연이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김은지 기자에 따르면, 그들의 무죄는 다른 판사의 판결에 개입하지 않았거나 증거 부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증거는 충분했고 공범들과의 커넥션도 입증되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직권남용’으로 기소된 덕분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사법체계는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어떤 행위’가 유죄판결을 받으려면, 법전에 ‘그 행위는 범죄이며 형량은 몇 년’이라고 기술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이 비판자의 행위를 제멋대로 범죄로 몰아 중형을 선고할 수 있으니까요.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형법 제123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재판 개입’이 사법농단자들의 직무상 권리(직권)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제 결론이 나옵니다. ‘피의자들은 당초부터 남의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직권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직권을 갖고 있지 않으니 그것을 남용할 수도 없었다. 무죄!’

사법농단자들이 뭔가 ‘나쁜 짓’을 한 것은 분명한데, 그 행위를 ‘직권남용’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손정우는 미국이라면 종신형을 몇 차례 거듭 선고받을 범죄를 저질렀으나 재판 당시 한국의 형법으로는 중형을 선고할 수 없었습니다. 사법농단과 아동 성착취라는 행위가 모두 결과적으로 죄형법정주의의 혜택을 본 셈입니다. 그러나 아동 성착취는 지난해 n번방 사건의 여파로 중형이 내려지는 범죄로 제도화되었습니다. 반면 미래의 ‘재판 개입’을 방지하는 새로운 제도가 모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재판에 부당한 개입을 해놓고도 무죄를 받았다는 이유로 징계에 항의하는 법관들을 보며 불길함을 느낄 뿐입니다.

천관율 기자의 ‘4·7 보궐선거’ 관련 커버스토리는, 굳이 제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순수 정치’ 기사입니다. 여권과 야권의 정책이나 가치, 도덕성 등을 배제하는 대신 선거 국면이라는 공간 속에서 객관적 상황(여권에 대한 민심 이반, 믿음직하지 않은 야권)과 행위자(여권과 야권)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정치의 물리학적 국면을 진지하게 성찰하려 합니다. 천 기자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의 정치 구도가 재현되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여야는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될까요? 저희는 치밀하게 그 과정과 결과를 지켜볼 것입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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