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1일 백악관 인근 맥퍼슨 광장에 모인 어린이들이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FP PHOTO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혹은 ‘우한 코로나’라고 부르려는 태도가 미국 내 아시아계 혐오범죄 증가의 원인이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최근 미국 내 한국인 동료들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면서 한 생각이다. “절대 혼자 바깥을 다니지 않겠다” “길가를 걸으면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등등. 3월16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계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여성을 목표로 한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이후 한국인 동료들이 한 얘기다. 생존을 위해 고립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1년 전 이들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중국 바이러스’라는 단어에 공포감을 느꼈다. 이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를 때마다 한국 일각에서는 중국의 책임을 추궁한다며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계는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왜 미국 내 아시아계는 ‘아시안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을까. 아시아계가 느끼는 차별은 여론조사로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해 6월 퓨리서치센터가 미국인 9654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시아계의 31%가 인종차별적 발언과 농담의 대상이 되었다. 아시아계의 26%는 누군가의 물리적 위협과 공격이 두렵다고 응답했다. 이는 미국 내 모든 인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백인에 비해 3~4배 높은 수준이다. 아시아계만의 ‘피해의식’이나 ‘오해’가 아니다. 미국인 전체 39%가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람들이 아시아계에 대해 더 많은 인종차별적 견해를 표명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차별에 대한 인식이 아닌, 실제 행해진 차별과 혐오는 어떨까. 이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통계자료는 없다. 사람들이 대놓고 차별행위를 하는 일도 드물고,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혐오범죄 통계 집계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 검색량, 여론조사, NGO 자료 등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데이터는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한 지난해 3월 초 이후,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증가하고 있다. 〈그림 1〉은 아시아계를 비하하는 단어 ‘칭크(Chink)’가 미국 내에서 얼마나 자주 검색되는지 보여준다. 지난해 3월 검색량이 급증해 최고치를 찍었다. 4월과 5월에 등락을 보이지만 대체로 높은 수치를 유지한다.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호의는 얼마나 변했을까. 필자가 UCLA의 네이션스케이프(Nationscape) 여론조사 자료를 직접 분석해봤다. 〈그림 2〉를 보면 지난해 1~2월에 11~15%였던 비호의적 태도가 지난해 3월 초 이후 18~20%로 상승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한 때다. 여론조사에서 노골적으로 비호의적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 미국인의 특성상 눈에 띄는 변화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에 대응하려 설립한 민간단체 ‘Stop AAPI Hate(아시아·태평양계 혐오를 멈춰라)’가 수집한 혐오범죄 자료는 더욱 선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지난해 3월19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이 단체에 보고된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는 모두 3795건이다. 언어 차별 표현(68.1%)과 아시아계에 대한 노골적 회피(20.5%)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세 번째로 높은 응답은 신체 위해(11.1%)였다. 신체적 위해를 당했다고 신고한 이들의 42.2%가 중국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다음이 한국계(14.8%)였다. 전체 신고 건수의 68%가 여성이다. 조지아 연쇄 총격 사건의 피해자 전부가 여성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트윗 하나에 혐오범죄 8% 증가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와 차별은 증가했다. 여기에 트럼프가 기름을 퍼부었다. 트럼프의 언행이 결정적 기폭제가 되었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틈만 나면 코로나19를 ‘차이나 바이러스(China Virus)’ 혹은 ‘쿵플루(Kung Flu:쿵푸와 플루 합성어)’라고 칭했다. 코로나19라 쓰인 기자회견문을 손수 ‘차이나 바이러스’라 수정한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지지자를 결집하고,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이 자신의 리더십 탓이 아닌 중국의 책임이라는 의도를 담은 행동이었다.

트럼프로 인한 아시아계의 피해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앨버타 대학의 런징 루와 UC 샌디에이고의 얀잉 솅은 트럼프 언사의 효과를 연구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가 중국과 코로나19를 연계해 트위터에 트윗을 올릴 때마다 4시간 내에 C로 시작하는 단어(Chink)를 사용한 인종차별적 트윗이 미국 전역에서 20% 이상 증가했다. 트윗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의 트윗을 혐오범죄 자료와 연계해 살폈다. 트럼프가 중국과 코로나19를 연계한 트윗을 한 개 더 보낼 때마다, 같은 날 아시아계 혐오범죄 신고 건수는 8% 증가했다.

차별에 직면한 소수인종은 어떻게 대응할까. 대표적인 반응은 고립이다. 외부와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하고 자신이 소수인종임을 드러낼 만한 모든 것을 숨기려 한다. 미시간 주립대학 나지타 라제바르디 교수와 코넬 대학 윌 홉스 교수의 연구가 이를 드러낸다. 이들은 트럼프가 무슬림 미국 입국금지를 주장하고 난 뒤 무슬림의 반응을 연구했다. 연구진은 트위터에서 미국 내 아랍계 이름을 가진 트위터 사용자들이 얼마나 활동하는지 추적했다. 59쪽 〈그림 3〉은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주장이 아랍계 이름을 가진 트위터 사용자들의 활동을 줄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2015년 12월2일과 2016년 11월14일 두 차례 무슬림 입국금지를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온라인 활동의 고립이 오프라인의 삶과도 연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이 서베이 샘플링 인터내셔널(Survey Sampling International)에 의뢰해 2017년 2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기간 미국 내 무슬림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고 공공장소에 나가는 일도 줄였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축시켜 그들이 가시화되지 않는 것’은 차별주의자들이 원하는 결과였을지 모른다.

차별은 고립에서 멈추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이나 극단주의에 대한 선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자 네 명은 코로나19 이후 인종차별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모두에게 코로나19의 진실을 밝히다 숨진 의사 리원량에 대한 기사를 보여줬다. 세 그룹 중 한 그룹에게만 리원량에 대한 중국 정부의 행동을 비판하는 미국 기사를 추가로 보여줬다. 다른 그룹에는 이 기사에 더해서 중국인의 위생이나 식습관을 비난하는 인종주의적 댓글을 추가로 보여줬다.

2020년 3월16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언론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는 트럼프. ⓒAP Photo
‘코로나’가 ‘중국’으로 수정된 트럼프의 회견문. ⓒThe Washington Post

혐오는 피해자를 극단으로 내몬다

인종주의적 댓글을 본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 내 정치개혁의 필요성에 덜 공감하고 현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더욱 지지하게 됐다. 놀랍게도 지지가 많이 늘어난 유학생들은 원래 중국 민족주의에 비판적이고 민주주의를 더 지지했다. 반대로 인종주의적 댓글은 보지 않고 미국의 비판 기사만 본 그룹에서는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혐오범죄로 병든 사회는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으로 치닫는다. 컬럼비아 대학의 타마르 미츠는 트위터를 통해 유럽 내 IS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에 대한 지지세를 파악해보았다. 지역 내 혐오범죄가 1%씩 증가할수록 IS를 지지하는 트윗 양은 10~11% 이상 증가했다. 차별은 결국 사회 전체의 불안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한국에서도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중국에 요구했다. 일부는 ‘우한 코로나’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WHO가 공식 채택한 ‘COVID-19’라는 명칭 대신 바이러스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을 강조하는 태도다. 더 나아가 이러한 불만은 중국인 그리고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재한 중국동포에 대한 인종차별적 태도로까지 표출됐다.

한국에서 ‘중국에 정당한 책임을 묻는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을 불러온 원인과도 연결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계’가 절대다수라 ‘우한 코로나’라는 말을 써도 이게 차별인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런 한국계가 미국에 오는 순간, 지금까지 써온 우한 코로나라는 말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어떤 사람은 ‘나는 중국계가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로 살다 보면 이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중국계든, 아니면 그냥 중국계와 닮은 아시아계이든’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미국 내 아시아계 혐오에 부딪히게 된다. 데이터가 보여주듯, 코로나19 이후 그 경향은 더 심각해졌다.

숫자가 보여주는 의미는 간명하다. 혐오는 고립을 낳는다. 소수의 고립이 깊어져 극단주의가 심화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하는 행동이 차별이라고 깨닫게 된다면, 이미 늦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 주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기자명 국승민 (오클라호마 대학 정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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