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2일 통행금지 시간에도 미얀마 양곤 시민들이 군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PHOTO

2021년 2월1일 미얀마에서 또다시 쿠데타가 발생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5년 만이다. 문민정부는 하루아침에 모든 국가권력을 군부 쿠데타 세력에게 그야말로 무력하게 강탈당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며칠 전 미얀마에 있는 지인과 국제전화를 했다. 3월14일부터 농촌 지역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아예 안 되는 상황이다. 공무원인 그는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한 사실을 누군가가 고발해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CDM은 국정 운영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관공서·병원·은행·철도 노동자들이 이어가는 파업 시위다.

2015년, 50년 넘게 미얀마를 철권통치해오던 군부가 선거 패배 후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 정권을 이양했고 드디어 미얀마는 문민정부 시대를 여는 듯했다. 미얀마의 지난 5년은 대외적으로 문민통치였으나 사실은 여전히 군부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2008 헌법’이다. 군복을 벗은 군인 출신 테인 세인 대통령 집권 시절 만든 2008 헌법은 상·하원 전체 의석의 25%를 군부에 자동 할당하도록 했다. 이는 군부가 정치참여를 보장받고 개헌까지 막을 수 있는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여전히 막후에서라도 국가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문민정부와 군부의 이런 불편한 동거를 알고 있는 미얀마 국민은 2020년 총선거에서 상·하원 전체 의석 476석 중 396석을 NLD에 밀어주었고 군부 정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개헌’의 희망도 품었다. 그러던 중 돌연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쿠데타를 주동한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은 ‘2020 총선거는 부정선거였다’는 명목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5년의 불편한 동거 기간 군부는 문민정부의 국정 운영방식에 불만을 쌓아왔다. 이와 함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NLD가 개헌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의도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군부는 5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그들의 DNA 혹은 습관으로 자신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즉 ‘쿠데타’를 일으켰고 두 달 가까이 비무장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살인과 폭력을 일삼고 있다. 3월24일 현재 확인된 사망자가 308명, 체포나 구금이 2812명에 이른다. 우려스러운 것은 3월27일 미얀마 국군의 날 이전에 시민들의 저항운동 조직을 완전히 소탕한다는 계획 아래 계엄령 선포 지역을 더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력적인 유혈 진압이 계속되면서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는 1962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AP Photo

거듭된 실패에서 얻은 교훈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역사는 길고 또 빈번했다. 크게 군인 3명으로 대표되는데 그 시작은 우 네 윈(네 윈)이다. 그는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1988년까지 무려 26년 동안 철권통치를 하면서 미얀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만든 독재자다. 네 윈은 1947년 미얀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이 소수민족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어렵게 합의한 ‘소수민족자치의 연방제’를 내용으로 하는 팡롱협정(Panglong Agreement)을 깨버렸다. 팡롱협정의 파기로 미얀마는 오늘날까지 민족 간 내전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야말로 미얀마 분열의 최초 원인 제공자다. 또한 참다못한 시민들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들고일어난 88 항쟁 때는 확인된 사망자만 3000명에 이를 정도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벌였다. 이 또한 네 윈의 짓이다.

그 뒤를 이어 1988년 쿠데타를 일으킨 탄 쉐 역시 1992년부터 2011까지, 19년 동안 네 윈과 다름없는 포악한 군부독재를 이어갔다. 탄 쉐는 특히 점술가를 곁에 두고 살며 그의 말을 신앙처럼 믿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얀마 군부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탄 쉐는 유독 심했다. 그는 점술가의 말에 따라 수도를 하루아침에 양곤에서 네피도로 옮겨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자신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던 아웅산 수치를 주술로 거세한다면서 피마자 나무와 해바라기를 전국에 심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말도 안 되는 탄 쉐의 명령을 미얀마 국민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얼굴을 한 부처상을 만드는 등 수많은 악행과 한심한 짓을 19년 내내 저질렀지만 그 누구보다 천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한다. 그리고 이번에 민 아웅 흘라잉이 다시 한 번 쿠데타를 일으키며 모든 미얀마 국민들을 군부독재의 악몽으로 몰아넣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반복되는 쿠데타와 군부독재의 긴 역사 속에서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 강도와 시위 양상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거듭된 실패에서 얻은 교훈일지도 모른다. 두 달 가까운 기간 펼쳐진 시민들의 반쿠데타 시위는 진압하는 군부를 놀라게 하고 있다. 군부의 반인륜적 유혈 진압에 맞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거대하면서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저항운동이 전개 중이다. 이번 시민 저항운동은 특히 미얀마 전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세대 간, 계층 간, 민족 간, 종교 간 구별 없는 저항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과거의 저항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양상이다. 이에 따라 모든 미얀마인들이 이번에는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특히 네 가지 양상에 주목한다.

첫째, 민족 간 용서와 화해다. 수십 년 동안 미얀마의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던 민족 간 갈등과 반목이 군부 쿠데타라는 공통의 적을 만나면서 용서와 화해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미얀마 내 민족 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군부가 갈등을 부추기고 탄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종청소’라는 무서운 단어까지 만들어낸 로힝야 사태 역시 그렇다. 현 쿠데타의 주동자 민 아웅 흘라잉은 민족감정을 부추겨 로힝야를 무참하게 학살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종교 지도자는 이를 선동했으며 미얀마의 절대다수인 버마족은 이를 묵인, 외면,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친족, 카렌족 등 여러 소수민족 역시 군부독재 아래서 차별과 탄압을 받았고 자위대 성격의 반군을 조직해서 버마족 중심의 군부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민족 간 갈등의 역사적 배경이 어느 하나가 원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유린과 차별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번 저항운동 속에서 겪고 있는 탄압과 폭력은 버마족을 자각하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 결과로 시위대 안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카친족, 카렌족 무장군인들은 평화적 저항운동을 하는 시위대를 보호하고 나섰다. 또한 임시정부 성격의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는 과거 네 윈에 의해 파기된 팡롱협정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다. 그동안의 반목을 끊고 민족자치에 근거한 연방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답이라는 것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다 함께 노력할 것이다.

둘째, Z세대의 반쿠데타 저항운동 참여다. 1995년 이후 출생한 이들을 Z세대라고 칭하는데 이번 거리투쟁에서 가장 앞장서서 싸우고 희생자 또한 많은 세대다. 3월4일 현재 전체 희생자 308명 중 19세에서 25세의 Z세대 희생자가 36%를 넘을 정도다. 폐쇄 국가였던 미얀마는 2010년에 시장을 개방했다. 2015년엔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이 흐름 속에서 그들은 시장경제의 자유와 비록 껍데기뿐일지라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체제 속에서 자랐다. 또한 SNS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보며 성장한 세대다. IT에 익숙한 Z세대는 미얀마의 비참한 현실을 가장 빨리 전 세계에 알렸고 시위 현장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과거와 달리 시위대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펼칠 수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무엇보다 미얀마의 미래를 이끌 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불의에 맞서 온몸을 던지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셋째, 성역 타파다. 그동안 종교 지도자, 유력 정치인 등 미얀마의 사회 지도층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그 성역이 깨지고 있다. 신음하고 절규하는 시민들을 외면·방관·침묵으로 일관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 특히 불교 지도자에 대한 성토와 신랄한 비판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서 ‘빅 스피커’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승려는(난 정치만 하는 승려라 부르고 싶다) 군부와 결탁해 수십 년 동안 우월한 지위를 누려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맹목적 믿음을 줬던 미얀마 국민들이 이제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한 해인 2007년, 물가 폭등에 참다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사프란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젊은 승려였다. 지금 지탄을 받는 승려들은 예나 지금이나 국민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50년 넘게 철권통치로 국민을 억압한 군부를 싫어하지만 그들과 결탁해서 온갖 지위만 누리며 권위주의에 찌든 종교 지도자들도 거부한다. 이런 불교 교단에 대한 개혁 역시 이번 항쟁의 결과로써 이뤄야 할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뿌리 깊은 가부장 문화와 남녀 차별의 벽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은 미얀마 문화 저변에 깔려 있다. 시위대 현지 보도를 통해 이젠 많이 알려진 ‘여성 속옷 바리케이드’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군과 경찰의 마을 진입을 막는 한 방법으로 여성의 속옷들을 마을 진입로에 걸어놓았고 군경이 이걸 치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얀마에서는 여성의 속옷이나 치마 밑으로 남자가 지나가면 남성성을 잃을 수 있다는 미신이 있다. 또한 미얀마 성지 사찰에는 여성 출입금지 구역이 있고 행동거지의 제약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젊은 미얀마 남성들이 머리에 전통 치마를 두르고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SNS 인증을 벌였다. ⓒ웨 느웨 흐닌 소 제공

여대생 희생자를 보며 젊은 남성이 변했다

이번 저항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첫 희생자인 여대생 카인(19)은 반쿠데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도화선이 됐다. ‘Everything will be OK(다 괜찮을 거야)’라고 외치며 거리에서 쓰러져간 여대생 치알 신(19)은 미얀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 이렇듯 바로 곁에서 피투성이가 된 여성 희생자들을 보며 미얀마 젊은 남성들이 변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한 남성이 여성의 치마를 자랑스럽게 머리에 두르고 “남녀 차별적인 가부장 문화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수많은 미얀마 남성들에게 공감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미얀마 여성으로서 너무나 기다렸던 소식이고 이에 공감한 남성들에게 더없는 존경을 표한다.

135개가 넘는 다민족 연합국가인 미얀마에 민족 간 용서와 화해는 연방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필수조건이다. 미래의 미얀마를 책임질 Z세대의 저항은 사회변혁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성역 깨기는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가부장적 문화와 남녀 차별 철폐는 미얀마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 네 가지 문제를 잘 해결해나간다면,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이번 쿠데타가 미래로 가는 미얀마에 분명 전화위복의 계기, 역사적 변곡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얀마의 미래를 '투표'로 응원합니다

〈시사IN〉이 사회적 협동조합 ‘오늘의 행동’과 함께 ‘미얀마의 미래를 투표로 응원합니다’긴급 캠페인을 벌입니다. 4·7 재보선을 계기로 우리가 행사하는 한표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기억하는 한편, 지난해 선거 결과를 존중해달라고 호소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내에 따라 투표 인증샷을 찍고 #WatchingMyanmar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려주세요. 이번 캠페인에는 4·7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은 물론 치르지 않는 지역의 시민들도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의 미래를 투표로 응원합니다’ 캠페인 바로가기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338

 

기자명 웨 느웨 흐닌 소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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