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과 21일, 두 부산시장 후보를 연쇄 인터뷰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다.

두 후보의 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었다. ‘위기’다. 부산은 20세기 제조업 기반이 몰락한 이후 도시의 미래 비전을 찾아 헤맨 ‘만성 위기 도시’다. ‘윤석열발 제3지대 돌풍’은 집권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위기를 맞이했다는 분명한 징후다. 김영춘 후보는 부산의 위기와 민주당의 위기를 진단했고, 박형준 후보는 부산의 위기와 보수의 위기를 진단했다. 부산에 대한 비전은 놀랄 정도로 접점이 많았던 반면, 정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비전은 극적으로 엇갈렸다. 두 후보의 인터뷰를 나란히 싣는다.

ⓒ시사IN 이명익

기호 1번 김영춘 후보는 현재 판세로는 2위 후보다.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격차는 15%포인트 정도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압승을 안겨줬던 부산은 3년 만에 험지로 돌아섰다.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선물을 가져왔지만 지지자들이 돌아오는 기색은 아직 없다.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을까. 3월21일 후보 사무실에서 30분간 만났다.

이번 선거의 시대적 의미는?

부산의 운명을 바꾸는 선거다. 가덕도 신공항을 2029년에 완공하고 2030년 엑스포 유치에도 성공하면, 두 큰 사건을 시발점으로 부산의 운명을 바꿔보자는 거다. 부산이 25년 동안 계속 추락만 거듭해온 곳인데 지금이 반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자동차에 기대를 걸었는데 IMF 외환위기에 직격탄을 맞았고, 영화를 해봤더니 영화제는 잘되는데 영화산업이 부산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25년을 이런저런 시도를 다 해봤는데 성과가 없었다. 부산의 산업구조를 대전환해야 한다. 중후장대 산업이 과거 부산의 기반이었는데, 이제는 IT나 바이오 같은 첨단산업으로 구조를 바꾸는 게 핵심이다. 그걸 위해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한 것이다.

첨단산업은 지식기반 산업이다. 지방 인재는 대학부터 다 서울로 빨려 들어간다. 첨단산업 기업이 지방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교육은 서울 쏠림이 극심한 분야다. 부산 경제의 몰락이 교육의 몰락을 가속했다. 부산대를 나온 인재가 갈 만한 좋은 기업이 부산에 있다면 교육 쏠림도 완화할 수 있다. 교육과 경제는 이렇게 맞물려 있다. 일본을 보면 수도권이 아닌 간사이 지방, 오사카나 교토에 닌텐도나 교세라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 본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부산은 인재 육성과 기업 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져 있다.

현실을 반전시킬 방안은?

독립해야 한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수도권이 안 하는 한두 개 영역을 특화하자는 게 아니다. 수도권을 쫓아가거나 중앙정부가 주는 수혜만 쳐다보는 자세로 접근하면 격차는 영원히 벌어진다. 발전할 수 없는 지방도시에 불과한 상태가 된다.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판의 종속변수는 그만하고, 부울경이 하나의 독립 경제단위로 일본·중국·미국과 직접 교역도 하고 투자 유치도 하는 경제단위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다. 그게 독립이다. 싱가포르 인구가 580만명이다. 부산과 경남 인구만 더해도 그보다 많다.

뭐부터 시작할 생각인가?

부산의 원도심에 북항이 있다. 부산의 경제자유구역을 북항까지 확대하겠다. 인천의 송도 신도시가 모델이다. 외자 유치만 130억 달러를 했다. 10년 전만 해도 송도 신도시는 미분양이 속출하고 불안불안했는데 지금 가보면 상전벽해다. 그게 경제자유구역의 힘이다.

3월21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가 해운대 미포 철길을 찾아 자신의 공약인 ‘40리 경부선숲길’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시사IN 이명익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에 가서 동남권(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을 공식화했다. 같은 흐름인가?

물론이다. 메가시티의 가장 핵심 인프라가 가덕도 신공항이다. 싱가포르는 항만과 창이 국제공항의 연계가 핵심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도 부산·진해 신항과 가덕도 신공항, 이 두 핵심 인프라가 축이다. 내가 재작년에 장관을 퇴임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찾아가서 부울경 메가시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가덕도 신공항과 부울경 광역교통망 구축이 출발선이라고 합의를 봤다.

메가시티가 새로운 비전이라는 사람도 있고, 행정통합 광역경제권은 늘 하던 말이라 새로울 게 없다는 사람도 있다.

실천 없는 말의 성찬만 있었다. 지금은 실천을 할 수 있다. 유럽 경제공동체 모델을 참고해서 부울경 경제공동체 기구를 만들자고 김경수 지사에게 제안했다. 부울경 시도지사 회의, 부울경 실국장 회의를 정기적으로 해나가면서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집행해나가자. 유럽 경제공동체 모델이 이거다. 이 과정을 거쳐서 유럽연합까지 온 것이다. 지난해 연말에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서 이걸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부산이 치고 나가면 경남이나 울산 여론이 경계할 수 있으니, 경남에서 김경수 지사가 먼저 치고 나가기로 의기투합을 했다.

수도권 여론은 가덕도 신공항을 선거용 선심 사업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신공항은 경제 독립, 메가시티라는 비전과 직결돼 있다. 부산 사람들이 외국 여행 쉽게 가려고 만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근시안적이고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걸 바로잡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울경 경제권이 성장하면 수도권도 이득이다. 국가 전체의 성장잠재력이 올라간다. 지금 같은 수도권 일극주의로 계속 가면? 당장 최근의 예로 부동산 폭등 문제, 절대 못 잡는다.

가덕도 신공항을 민주당이 주도했는데 부산 선거 판세에서 적잖이 뒤지는 이유는?

민주당 전임 시장이 저지른 잘못으로 이 선거가 생겼다. 부산은 고령인구가 많아서 보수 성향이 강하다.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정부·여당 심판론이 있을 수 있다. 그 때문에 격차가 난 채로 선거가 출발했지만, 저희가 말씀드리는 부산의 비전, 이 선거가 경제선거라는 논리에 유권자들이 서서히 반응을 하고 계신다. 큰 흐름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민주당이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처음으로 밀리는 선거다. 민주당 위기론, 체감하나?

정치에는 흐름이 있다. 지금 정권 4년 차다. 집권 여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또 최근에 터진 LH발 부동산 문제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3월9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 고개 숙인 이)과 장충모 LH 사장직무대행(맨 오른쪽 고개 숙인 이)이 국회에서 LH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연합뉴스

이슈를 잘 관리하면 되는 문제인가, 통치 기조 자체를 바꿔야 할 문제인가?

대선이 1년 남은 시점에서 무언가 새롭게 바꿔서 시도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국민이 요구하는 문제를 전면 몰입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동산 투기 문제가 터지면 투기를 발본색원하는 노력으로 국민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고 본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대통령이 즉시 수용하지 않고 유보 후 수용한 것에 나는 의견이 다르다. 즉시 수리하고 후속 대책은 차관을 중심으로 마련하는 게 옳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보면 출범 시점의 지지자 중 절반 이상이 돌아섰다. 돌아선 이유가 뭐라고 보나?

핵심은 역시 부동산이라고 본다. 부동산 문제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갖거나 아니면 꿈을 포기해야 했으니 분노가 커진 것이다. 야당 후보인 박형준 후보가 엘시티에 살면서 부산시장을 하겠다는 것에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이어져 있다고 본다.

김영춘의 캠페인을 “가덕도 신공항 가져왔으니까 나를 찍어달라”라는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 이러면 유권자들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기 쉬운데?

가덕도는 출발일 뿐이다. 조기 착공, 완공, 2030년 엑스포 유치까지 이어지는 부산 발전 단계를 계속 집행하려면 힘 있는 여당 시장이 필요하다는 큰 그림을 설명해나가겠다.

ⓒ시사IN 이명익

기호 2번 박형준 후보는 이번 선거를 넘어 ‘보수의 재구성’에 관심이 많다. 보수의 뿌리가 될 정치철학을 탐색해왔고 책도 냈다. 당장 부산 선거의 판세는 좋지만, 여전히 보수는 2016년 촛불집회 이후의 긴 위기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 후보는 눈앞의 선거보다도 보수의 미래 비전을 더 많이 말하고 싶어 했다. 3월20일 후보 사무실에서 45분간 만났다.

 

부산은 인구 400만을 바라보던 도시에서 인구 340만 고령화도시로 위축됐다. 도시 비전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근본적인 답답함이 있다.

답답함이 왜 나오느냐, 결국 수도권 블랙홀 때문이다. 돈과 사람이 수도권으로 몰리면 민간 혁신 역량이 높아진다. 그러면 또 돈과 사람이 더 몰린다. 수도권은 이 선순환이 만들어져 있다. 옛날 부산 고등학생들은 소위 ‘스카이’ 갈 거 아니면 부산대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인서울’ 대학 다 채우고 나서야 부산대를 간다.

뭐부터 할 생각인가?

선순환이 생기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 교육부터 바꿔서 기업을 유인하겠다. 부산 전체를 산학협력 도시로 만드는 게 내 꿈이다. 지방정부까지 결합해서 ‘지산학 협력’이다. 부산시가 매개 지원 기능을 해주고, 기업이 대학으로 대학이 기업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권 메가시티 추진을 선언했다. ‘수도권 블랙홀’과 ‘선순환의 물꼬 트기’ 고민이 비슷하게 들린다.

그 화두는 내가 먼저 던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 ‘5+2 광역경제권’을 국가 시책으로 확정했다. 그 뒤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이제 그 노선이 복원되는 것이다.

이 비전에는 여야의 공감대가….

(질문을 다 듣기 전에) 많아요. 가덕도 신공항도 그렇고 메가시티도 그렇고, 이 문제에서는 여야가 없다.

수도권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용 선심성 사업이라는 평가가 많다.

수도권 중심주의, 일극주의가 대한민국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전 세계가 물류의 시대고 항공 물류도 점점 중요해지는데 인천공항 하나로 감당하겠다는 발상은 잘못이다. 부산에 물류 허브공항이 있으면, 항만도 세계 6위겠다, 환적항이겠다, 태평양과 유라시아 한가운데겠다, 상하이 가깝지, 북극항로 열리지,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 여기를 동북아 허브도시로 키우면 부산만 잘되는 게 아니라 남부권 전체와 대구·경북까지 파급효과를 본다. 국가 차원의 비전으로 봐야 한다.

보수는 수도권 효율 중심 노선이지 않나?

나는 다르다. 서울에 있으면 지방이 안 보인다. 여전히 집중주의라고 할까 그런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비슷하다.

보수의 노선을 바꿀 수 있다고 보나?

바꿔야죠.

3월21일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부산 연제구 공영차고지를 방문해 정비 노동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보수가 왜 재구성되어야 하나?

한국 보수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70년 역사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했다. 소득수준 50달러 나라가 3만 달러 나라로 바뀌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데도 성공했다. 대한민국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은, 이 70년 역사를 인정하고 자긍심을 갖고 보느냐, 굴욕과 퇴행의 역사로 보느냐, 이 차이다. 보수는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지킬 것인가, 한마디로 헌법정신이다. 우리 헌법정신에는 자유주의·민주주의·공화주의가 담겨 있다. 어떻게 이 셋의 역동적 균형을 만들어 헌법정신을 진화시켜 나갈 것이냐가 새로운 보수의 원칙이다.

보수 위기의 본질은?

지난 70년 역사에 얼룩들이 있다. 그 시대에는 불가피했더라도 시대가 변하면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까지 전부 정당화하는 경향이 과거 보수에 있었다. 보수가 과거를 성찰하지 못했다. 성찰을 해야 과거의 얼룩을 걷어낼 수 있고 그래야 헌법정신을 진화시킬 수 있다. 그걸 제대로 못한 게 현실 보수 위기의 본질이다. 보수가 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과거 권위주의 국가주의 얼룩을 걷어내지 못했다.

2016년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혁명이 아니라 헌법에 따른 통치를 복원하기 위해 싸웠다.

그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의 기초는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직권남용, 권력의 사적남용 등의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들고나온 정당한 저항권에 대해 우리가 문제 삼을 것 없다. 다만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한 왜곡된 정치행위는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어떻게 평가하나?

탄핵에 이르게 된 경과까지 권력의 오류는 없다고 못한다. 그러나 탄핵 과정, 탄핵에 대한 법률적 심판, 그 이후 적폐 청산 수사, 이건 하나하나 따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그 평가는 좀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받아들이는 감정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2020년 총선 개표방송에서 “유권자 지형 자체가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1대 1 구도라면 ‘보수 55, 진보 45’였는데, 2020년 총선 때는 오히려 45대 55로 보수가 뒤처져 출발하는 정치 지형이 만들어졌다. 그게 장기적으로 굳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 정부가 잘했다면 진보 우위 지형이 굳어졌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꽤 달라졌다. 총선 이후로 정부의 실정이 너무 많았다.

지형이 복원되고 있다면, 현 정부 실정과 보수 쇄신 중 어느 요인이 더 클까?

보수 쇄신 효과도 없지 않다. 보수가 통합을 이뤄냈다. 힘을 모을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여기가 통합이 돼 있으니 이번 서울시장 선거 단일화 논의도 국민의힘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제3지대’ 바람이 거세다. 보수에는 기회인가 위기인가?

그 점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서울시장 선거를 이기면 이후 대선까지 ‘제3지대’가 형성된다 해도 결국 국민의힘과의 연대와 통합으로 갈 것이다. 서울을 놓치면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으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낼 것이고 ‘제3지대’ 압력이 폭발할 것이다.

‘윤석열발 제3지대 돌풍’은 집권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위기를 맞이했다는 징후다. 아래는 3월4일 사의를 표한 윤 석열 전 검찰총장이 청사를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새로운 보수는 공동체와 시민적 덕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시장’이라는 통념과 다른데?

극단적 시장주의는 보수에서도 주류가 아니다. 왜 애덤 스미스가 인간의 도덕감정을 먼저 강조했느냐, 좋은 시장은 좋은 공동체 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덕감정을 가진 사람들, 동양적으로 말하면 양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도덕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으면 시장은 오래가기 힘들다. 그 기반을 갖추는 과정이 좋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다.

코로나19 재난기에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정치가 작동했나?

정부가 진보답지 않게 대응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이명박 정권의 금융위기 때도, 위기가 터지면 고통 분담부터 말했다. 금 모으기, 일자리 나누기. 그게 공동체의 시민됨을 되살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자는 것이다. 위기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다. 그런데 현 정부는 방역에 협조해달라는 말만 했지 고통 분담을 어떻게 하자는 말을 하나도 안 했다. 그걸 안 하니까 가진 사람들은 내 세금 함부로 쓴다고 불만, 없는 사람들은 돈 안 준다고 불만이다. 굉장히 물질주의적으로 천박하게 문제를 푼 것이다.

반면 보수는 재정건전성만 말하고 공동체 담론은 못 만든 것 같다.

그것도 마찬가지다. 둘 다 물질주의에 빠져 있다. 지금 세계적 부호들이 다 돈 먼저 내겠다고 하는 이유가 공동체를 복원하지 않으면 결국 자본주의도 시장경제도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껴서다. 재난기에 공동체를 어떻게 복원할 거냐라는 질문을 진보도 보수도 제대로 못 던졌다는 걸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수라고 제대로 한 건 없지만 아무래도 국가를 책임진 진보가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더 크다.

공동체와 시민적 덕성은 새로운 세대의 진보와 보수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지점으로 보인다.

맞다. 정치가 공동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 기본으로 지녀야 할 도덕감정을 갖고, 그 위에 윤리와 법을 준수하려는 생각을 갖고, 다시 그 위에서 정책들을 합리적으로 토론해나가야 한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한테 그런 토대를 복원하라고 했는데 그걸 하나도 안 보여줬다. 오히려 도덕감정과 양심의 영역까지 무너졌다.

‘엘시티 사는 부산시장 후보’는 공동체 복원이라는 주장과 어긋나지 않나?

제가 송구하고 민망스럽다는 얘기를 했다. 어렵게 사는 분들 입장에서 위화감 있겠다, 송구하고 민망하다. 이것은 내 도덕감정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얘기하는 도덕적 규범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평생 1가구 1주택을 유지해왔다. 불법·비리·특혜도 없었다. 너가 어디 사니까 너는 정치하지 마라, 지금 민주당 쪽에서 그렇게 주장하는데, 그건 폭력이다.

재난기에 보수가 할 일은?

자선·봉사·호혜의 가치를 앞세워야 한다. 고통 분담이다. 이명박 정부를 시장제일주의로 보는 분들이 있지만 실제로 금융위기 대응 정책은 호혜적이었다. 친서민·중도실용도 그렇고 일자리 나누기도 호혜라는 아이디어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위기 때는 재정도 많이 써야 한다. 틀림없다. 다만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재난지원금은 제대로 설계도 못하고, 선거만 앞두면 포퓰리즘으로 재정을 쓰는 건 온당치 않다.

결국 보수의 재구성이 뭔가?

국가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인류가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게 결국 자유의 가치다. 자유를 지킬 수 있으려면 그 기반이 되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방식으로만 살 수 있다. 공통의 가치 기반, 신념 기반이 뿌리내려야 한다. 양심·도덕감정·규범 등이 가족과 교육 속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상당한 장기 프로젝트로 들린다.

그러나 지금 당장 중요해진 문제다.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테면 저출산 문제도 그런 공통의 기반이 부족해서 나타난다. 

기자명 부산·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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