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크림빵을 만들어야 하는데 슈크림이 떨어졌다. 빵은 얌전히 조리대 위에 한 줄로 놓여 있는데. 어쩌지? 고민하던 제빵사가 빵들을 와르르 쓰레기통 안에 쏟아붓는다. 잠시 뒤 쓰레기통 뚜껑이 들썩이더니 빵 다섯이 튀어나온다. 냄새에 진저리를 치면서, 자신을 버린 제빵사를 성토하면서. 이대로 버려질 순 없다, 다시 빵집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슈크림 없는 걸 금방 들킬 텐데. 어쩌지? 고민하던 빵들은 각자 슈크림을 속에 넣기로 하고 흩어진다. 슈크림을 채운 뒤 우리 다시 만나자! 한때 영동선을 지날 때마다 휴게소에 반드시 들러 미니 슈크림을 먹어야만 했던 나로서는 이들이 남 같지가 않다. 게다가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라니! 즉각 감정이입이 되어 코끝에 쓰레기통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내가 버려진 것 같아 서럽기도 하고, 반드시 슈크림을 채우리라 주먹을 불끈 쥐게도 된다.

슈크림을 찾아 헤매던 빵들은 속을 꼭 슈크림으로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우는데, 그 뒤 온갖 것을 집어넣는 과정이 독특하고 기발하게 펼쳐진다. 다음 녀석은 무엇을 속에 집어넣을까, 내가 빵이라면 내 속을 뭘로 채울까도 즐겁게 궁리하게 된다.

꼭 슈크림으로 채우지 않아도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이라면 슈크림빵들과 붕어빵, 만두, 고양이, 문어 소시지 같은, 생김새도 말투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보는 데 있다. 교육적인 효과라면, 슈크림 속이라는 일률성에 붙잡히지 않고 각자 개성대로 속을 찾아가는,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멋대로’라는 제목이 붙기는 했지만 빵들은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내키는 대로 자기 속을 결정한 게 아니라 충분히 헤매고 시도하고 생각해보고 주변 캐릭터들과의 논의도 거친 뒤에 속을 넣는다. 그 과정에는 망설임과 거부와 상처 입음도 들어 있다. 그러고도 자기 속을 결정 못한 채 빈 빵으로 남는 녀석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찾아보겠노라면서. ‘내 멋대로’는, 실패까지 포함한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 속을 충분히 채워야 이르는 단계라는 것을 이 귀여운 이야기가 준엄하게 알려준다.

먹을 수 있는 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반환경적 설정에 놀라는 독자를 위한 한마디. 속표지 이전 페이지에 나오는 전(前) 이야기를 보면 고민하던 제빵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뜻밖의 말에 놀라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아마도 빵들이 ‘우리를 버려주세요’ 요구하지 않았을까.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고,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고 싶은 건 성장 에너지 넘치는 존재들의 기본 속성일 터이니. 그런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애들 다 가출하는 중에도 빵집으로 되돌아간 착한 빵 하나가 제빵사 입속으로 사라지는 설정에 놀라는 독자를 위해서도 한마디. 의인화된 캐릭터가 먹히는, 그러니까 죽임을 당한다고 여겨지는 장면에 종종 제기되는 문제인데, 먹히려 만들어진 빵이 도달하는 당연한 종착지라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건 상징이고 어떤 건 현실이고, 뭐냐? 소리가 나온다면, 콩자반 들어간 슈크림빵 같은 거라고 설명하면 될까.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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