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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의 탐사 전문 정희상 기자가 처참한 기사를 썼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 내전 중이던 베트남으로 파병되었다가 월맹군의 포로가 된 한국 젊은이들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는 월맹 측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북한으로 끌려가 대남방송에 동원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합니다. 다만 그 병사들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다는 자의식을 가졌던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은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가난한 나라였지만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시민이 적의 포로가 되었을 때 국가의 책무는 분명합니다. 어떤 수단으로든 그를 구해내야 합니다. 사망했다면 유해라도 돌려받아야 합니다. 국가와 시민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의리’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국군 포로는 단 1명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포로들을 ‘탈영자’ ‘범법자’ ‘북한에서 방송한 자’라며 모욕했습니다. 대남방송에 동원된 안학수 하사의 가족들을 예비 간첩단쯤으로 간주해 직장에서 추방하고 사찰하며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런 횡포는 안 하사가 탈북을 기도하다 체포되어 북한 당국에 의해 간첩죄로 총살당한 뒤에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배신도 이런 배신은 없습니다. 국가는 가끔 레비아탄(바다 괴물)으로 불리지만, 괴물도 이런 괴물은 없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개인과 국가 간의 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개인에게 안전·자유·생계·공정 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 대가로만, 개인은 국가의 통치를 승인합니다. 계약이 아니라 의리라고 해도 좋습니다. 국가는 월맹에게 사로잡힌 시민들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습니다. 반세기 전이라 다행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이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명예를 회복시켜야, ‘우리 개인’들은 국가가 괴물로 다시 변신하는 꼴을 안 보고 살 수 있을 겁니다.

한반도 전문 남문희 기자는 미국 조 바이든 정권의 대북 접근과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커버스토리로 썼습니다. 파월 한국군 포로들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에 그들의 참혹한 운명을 규정한 동아시아 세력 관계가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지금까지도 자못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사에서 남 기자는 북한이 중국의 대미 견제 수단으로 전락해서 강경한 ‘한국 적대시 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더욱 고립되고 과격해질 테니까요. ‘자주’와 ‘우리민족끼리’를 슬로건으로 삼았던 북한 정권이 중국의 대미 견제에 종속되어 민족을 분열시키는 꼴만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최근 살벌한 발언들을 토해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에게 남문희 기자의 기사를 읽어주고 싶네요.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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