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제공

‘샤이니스러운’ 음악. 2년 반 만에 발매된 샤이니의 일곱 번째 앨범 〈돈 콜 미(Don’t Call Me)〉를 듣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샤이니스러운 음악이라는 게 뭐더라. 총 9곡의 노래를 담고 있는 앨범은 여느 케이팝 앨범이 그렇듯 한 단어로 뭉뚱그려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다채로웠다. 묵직한 힙합 리듬을 베이스로 짓누르듯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주문 같은 후렴구가 강렬한 타이틀곡 ‘Don’t Call Me’로 시작한 앨범은 활기찬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펑키한 리듬으로 단번에 표정을 바꾸는 두 번째 곡 ‘하트 어택(Heart Attack)’으로 이어진다. 이후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이곳이 ‘수록곡 맛집’임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트랙들의 향연이다. 퓨처 사운드의 시원함에 속도감을 더한 몽환적인 댄스팝 ‘코드(CØDE)’, 레트로 무드 속 예쁜 멜로디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아이 리얼리 원트 유(I Really Want You)’, 쫀득쫀득한 리듬 파트와 가성을 활용해 은근한 코러스가 자아내는 긴장감이 절묘한 ‘키스 키스(Kiss Kiss)’, 상실과 사랑에 대한 깊은 메시지로 남다른 울림을 전하는 마지막 곡 ‘빈칸(Kind)’까지. 〈Don’t Call Me〉는 좋은 노래들로 촘촘히 쌓아 올린,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힘든 견고한 성이다.

잠시 질문을 잊었다. 그래서 샤이니스러운 게 뭐였더라. 막연히 유행가의 운명을 먼저 떠올려본다. 한마디만 흥얼대도 누구나 입을 모아 따라 부르는 노래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앤섬(anthem)이 되어 가문의 영광을 누리지만 동시에 그 시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장르를 불문한 유행가의 운명이 이럴진대, 아이돌 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룹도 노래도 유독 생명력이 짧은 아이돌 팝은 팬덤을 사로잡으면서도 대중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이중고에 내내 시달린다. 그뿐인가. 음악에서 콘셉트까지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영역을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해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금의 유행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은 그대로 해당 장르의 눈부신 성장으로 이어졌다. 철모르는 10대들이나 좋아한다는 아이돌 팝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대중문화 케이팝이 되는 동안 수많은 젊음이 자신의 가장 빛나는 한 시절이 만든 빛과 그림자를 헌신했다. 피땀, 눈물 어린 그 금자탑의 한가운데, 샤이니가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가요계에서 샤이니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사진은 ‘빛나는 다섯’ 때의 샤이니.

무엇도 두렵지 않아 보인다

아이돌 팝을 넘어 가요계에서 샤이니가 위치한 자리는 독특하다 못해 독보적이다. 이들은 ‘샤이니스럽다’ ‘샤이니풍’처럼 그룹 이름이 대명사로 소환되는 몇 안 되는 그룹 가운데 하나다. 샤이니로 갈음되는 이미지 또한 단편적인 것이 아닌 겹겹의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부터 이어진 청량한 세련미는 샤이니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다. 데뷔 초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음악에 어울리는 비주얼 연출에 특별히 공을 들인 점도 유효했다. 이들은 세월의 풍화를 비켜가는, 누구에게나 기분 좋게 다가갈 만한 팝 사운드에 일상적인 스트리트 룩에서 제복, 때로는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개성 넘치는 하이패션을 거침없이 얹어냈다.

무엇을 줘도 샤이니처럼 소화하는 능력은 비단 패션과 콘셉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샤이니 하면 ‘뷰(View)’나 ‘드림걸(Dream Girl)’처럼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청량한 보이 팝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샤이니의 잠재력이 폭발한 건 소위 ‘SMP적 존재감’이 넘치는 곡들이었다. ‘SM Performance’의 약자로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하는 어둡고 파괴적인 분위기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의미하는 SMP는 샤이니라는 이름을 통과하며 ‘루시퍼(Lucifer)’ ‘링딩동(Ring Ding Dong)’ 같은, 장르를 대표하는 전설의 노래들을 남겼다.

화룡점정은 ‘셜록(Sherlock)’과 ‘에브리바디(Everybody)’였다. 우선 2012년에 발표한 ‘셜록’을 보자. 각각 ‘Clue’와 ‘Note’ 두 곡을 섞어 하나로 완성한, 이미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이 노래를 샤이니는 더욱 범상치 않게 소화해냈다. 특히 마이클 잭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무대를 담당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안무가 토니 테스터와 함께 완성해낸 퍼포먼스는 특유의 드라마틱함과 카리스마로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아이돌 군무’가 ‘케이팝 퍼포먼스’로 격상된 그 순간, ‘Everybody’가 등장했다. 노래 한 곡이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EDM 사운드 위로 샤이니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노래하고 춤을 췄다. 잘한다는 생각보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위가 걱정되는 퍼포먼스로 지금껏 없던 새로운 형태의 극단을 겪어낸 이들은 이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보였다. 청춘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의 시각/청각화도(‘View’), 뉴트로를 넘어선 복고도(‘1 of 1’), 갑작스레 전해진 멤버의 비보마저도.

그 모든 시간을 지나 탄생한 〈Don’t Call Me〉는 그래서 더욱 의미 깊다. 고릿적 시간으로 계산해도 강산이 두 번 변할 채비를 시작한 데뷔 14년 차, 빛나는 다섯에서 넷이 된 팀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샤이니하다’. 각자의 색깔을 살린 완성도 높은 솔로 활동을 통해 능력치를 높인 멤버들은 이전보다 커다래진 조각으로 소중한 이의 부재를 느낄 틈 없이 캔버스를 구석구석 메운다. 그 습관처럼 무심한 성실함에 힙합에서 레게까지 늘어선 장르 카탈로그의 페이지가 다음에서 다음으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앨범의 마지막 곡 ‘빈칸(Kind)’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난 알 것 같아 다/ 늘 비워둔 빈칸/ 답을 적을 Time.’ 결코 쉽지 않았던 길의 끝에 이들은 다시 샤이니라는 답을 찾았다. 다시 한 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샤이니스러운’ 게 뭐더라. 〈Don’t Call Me〉를 듣자. 그 안에 담긴 음악이, 색깔이, 시간 그대로가 ‘샤이니스러움’이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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