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자료2010년 4월9일 뇌물수수 1차 사건(곽영욱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명숙 전 총리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한명숙 재판 위증 의혹’에 대한 흔한 오해는 ‘그래서 한명숙이 무죄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3월17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이미 법원이 유죄로 최종 판단한 사건을 뒤집으려는 거냐는 말이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죄 여부는 알 수 없다. 해당 의혹을 풀어가는 일이 곧장 한명숙 전 총리의 재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한 전 총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2017년에 만기 출소했다.

현재 ‘한명숙 재판 위증 의혹’ 혹은 ‘모해위증(상대방을 해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함) 교사 의혹’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주연은 검찰이다.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검사가 증인들에게 증언을 연습시켰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검찰이 겉으로는 ‘법질서 수호와 인권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은 이와 거리가 먼 불법 수사를 자행해왔다는 의혹이다.

검사가 원하는 진술을 할 때까지 참고인을 수십 차례 소환하면서도 공식 기록은 남기지 않는 행태,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별건으로 기소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압박했다는 증언, 반대로 수사에 협조하면 검사실에서 외부와 통화하거나 사식이 허용되며 별건 사건의 구형량도 최저로 낮춰줬다는 주장 등 검찰 수사의 어두운 민낯을 들춘다. 〈시사IN〉이 입수한 이 사건 진정서에 제기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거창해 보이는 검찰 특수수사의 조악한 현실을 고발한다. 진정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1년 전 한명숙 재판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사건의 연원은 길고 복잡하지만, 2021년 벌어지는 일의 맥락이 모두 담겨 있다. ‘한명숙 사건’은 이미 그때부터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왔다.

한명숙 재판은 1차(곽영욱 사건)와 2차(한만호 사건)로 나뉜다. 먼저 2009년 1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권오성)는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에게 5만 달러를 받은 혐의였다. 한 전 총리는 전면 부인하며, 검찰의 정치공작이라고 맞섰다. 2010년 6월로 예정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 전 총리가 유력 주자로 꼽히던 때였다.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검찰은 위기를 맞았다. 핵심 증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뇌물을 줬다는 곽영욱 사장(공여자)의 진술이 번복됐다. 보통 뇌물 사건은 ‘직접증거’가 드물다. 은밀히 현금이 전해지는 터라 금융거래 기록이 없다. 주고받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인지하고 있으므로 녹음·녹화 증거가 나오는 경우도 드물다. 그래서 뇌물 공여자의 진술이 중요하다. 일관되고 구체적이면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다.

곽영욱 사장은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직접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법정에서는 총리공관 의자에 뒀다고 말을 바꿨다. 한 전 총리가 돈을 가져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에서 강도 높게 조사받았는데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라고 법정에서 말했다. 곽 사장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결국 1차 사건(곽영욱 사건)에서 한 전 총리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선고가 나오기 하루 전, 이번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기동)가 움직였다. 2차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4월8일 검찰은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한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9억여 원을 줬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한 전 총리는 혐의를 모두 부인했고, 두 달 후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연합뉴스3월17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사건’과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단추 하나로 양복, 바바리, 코트도 만들어”

2010년 9월부터 1심 재판이 시작된 2차 사건(한만호 사건)은 1차 사건(곽영욱 사건)과 초기 양상이 비슷했다. 법정에서 핵심 증거가 무너졌다.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한만호 대표는 법정에서 말을 바꿨다. 2010년 12월20일 법정에서 한만호 대표는 “(검찰에 사건을 제보한) 남 아무개씨가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와 함께 ‘(검찰에) 협조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라고 겁박했다”라며 검찰에서 허위 진술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한만호 대표는 한 전 총리의 비서였던 김 아무개씨에게 3억원을 빌려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한만호 대표가 2010년 4월부터 11월까지 73번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핵심 증인을 조사하면서도, 검찰은 1회의 진술서와 5회의 진술조서만 남겼다. 나머지 67번의 검찰 조사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록조차 없다. 한만호 대표는 법정에서 자신의 검찰 진술에 대해서 “단추 하나 가지고 양복도 만들고 바바리도 만들고 코트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검찰은 한만호 대표의 법정 진술을 공격했다. 복역 중이던 한 대표가 구치소에서 동료 재소자들에게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게 맞다’고 말했다며, 이를 들었다는 김○○씨와 최○○씨를 법정에 세웠다. 김씨는 2011년 2월21일과 3월23일, 최씨는 2011년 3월7일 법정에 출석해 증언했다. 이들이 2021년 현재 진행 중인 ‘한명숙 재판 위증 의혹’ 국면에서 모해위증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다. 모해위증 혐의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2차 사건(한만호 사건)에서도 1심 결과는 무죄였다. 1심 재판부(재판장 김우진 부장판사)는 “유일한 직접증거인 한만호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한만호의 진술 외에도 △한만호가 한명숙 비서 김 아무개에게 2억원을 반환받은 점 △한만호가 발행한 1억원 수표를 한명숙 동생이 전세비로 사용한 점 △한만호가 한명숙 비서 김 아무개에게 3억원을 요구한 점을 꼽으며 한명숙이 9억원을 받은 ‘객관적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9억원 수수를 추단하기에는 부족한 간접사실”이라고 판단했다.

2심(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한 전 총리가 9억원을 받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4차례 공판만 진행하며 추가 증거조사를 하지 않았다. 핵심 증인 한만호 대표를 다시 법정에 부르지 않고 “한만호가 검찰에서 한 진술이 법정에서 한 증언보다 더 믿을 만하다”라고 밝혔다. 형사소송의 대원칙(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만호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8대 5로 2심 선고가 최종 확정됐다. 대신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5명(이인복·이상훈·김용덕·박보영·김소영)은 한만호 대표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비판했다. 70번 넘게 불려갔는데도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6회만 기록에 남은 검찰 진술을 법정 진술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2심 판단의 전제를 흔드는 말이다.

‘소수의견’ 대법관들 측에서는 2차 사건(한만호 사건)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건 수사는) 수사기관의 진술증거 취득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절차적 적법성이 지켜지도록 하는 수사의 적법성 보장 원칙에 반한다” “한만호가 허위나 과장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일단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자 이를 기화로 검사가 한만호의 진술이 번복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안이다.” 검찰 수사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소수의견을 쓴 대법관 5명도 한만호 대표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건넸다고 주장하는 9억원 중 3억원에 대해서는 다수의견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한명숙 측의 2억원 반환, 한명숙 전 총리 동생이 한만호 발행 1억원 수표를 사용한 사실 등이 판단의 근거였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징역 2년 복역을 시작했고, 검찰이 추가 기소한 한만호 대표의 위증 혐의도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나왔지만, 형이 확정돼 끝난’ 것처럼 보였던 사건이 2021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검사가 ‘증인들의 증언을 연습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앞에 서술했듯이 2011년 2차 사건(한만호 사건) 당시 검찰은 구치소의 한만호 대표가 동료 재소자들에게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게 맞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증인 두 사람(김○○·최○○)을 법정에 세운 바 있다. 그런데 이 증언들이 ‘사실은 검찰이 시킨 거짓말’이라는 폭로가 지난해 나온 것이다. 폭로자 중 한 명은 당시 증인으로 나왔던 최○○씨다. 다른 한 사람은 증인으로 법정에 나가지는 못했으나 김씨·최씨 등과 함께 ‘증언 연습’을 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씨와 가까웠던 동료 재소자 한은상씨다. 두 사람은 각각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에 진정서를 넣었다.

〈시사IN〉이 입수한 한은상씨의 진정서에는 검찰 수사의 불법성을 고발하는 내용이 곳곳에 나온다. 일부를 그대로 발췌한다. “검찰 수사관은 진술 협조 후 증언을 하고 나면 추가 사건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리 후 유야무야 끝내주겠다고 제의” “진술조서를 검찰 입맛에 맞게 작성한 후 컴퓨터 PC를 통해 진정인(한은상)이 보고 베껴 쓰게 함” “진술조서를 토대로 진정인과 김○○, 최○○ 3인이 영상녹화실에 같이 입실 후 입을 맞추게 하고, 개별적으로 입을 맞추고서, 진술조서를 저절로 암기하게끔 함” “검찰은 진정인과 김○○, 최○○ 3인에게 검찰 전화를 마음대로 외부와 통화하게 제공해주었고 사시미 등 사식도 사주고, 최○○, 김○○의 추가 사건도 실제로 구형량 최저로 조정 처리해준 사실이 있음” “진정인과 최○○, 김○○은 집체교육 형식의 조사를 받음.”

검사도 공범 될까?

검찰은 반박했다. 한은상씨 주장의 신빙성을 공격했다. 자본시장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받은 한은상씨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지난해 5월 입장문을 냈다. 또한 한은상씨가 검찰청에서 조사받는 과정 중 자기 돈으로 산 음식을 주변 사람들과 먹은 적은 있지만, 검찰이 한씨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도 아니고 먹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소자 한은상씨가 검찰청에서 자기 돈으로 음식을 주문했더라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검찰의 추가 해명은 없었다. 한은상씨는 검찰에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이야기를 다른 재판에서도 밝힌 바 있다.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2013년 그가 어떤 재판에 낸 탄원서에는 “BW(신주인수권부사채) 자금 유치를 위해 해외에 머무는 지인과 통화”했는데, 그 장소가 검사실이었다.

파장은 컸다. 지난해 6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이 사건을 대검 감찰부가 아닌 인권부에 보냈다. 대검 인권부는 또다시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넘겼다. 진정인 한은상씨가 반발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우려해서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벌어진 비위 사실을 서울중앙지검에서 제대로 조사할 수 없다고 한은상씨는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과 대검 감찰과가 함께 조사하게 된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임은정 부장검사가 대검 감찰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발령되면서다. 그럼에도 임 검사에게 수사권이 없는 상태였기에 강제수사는 어려웠다. 지난 2월 법무부 인사에서 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되면서 수사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허정수 대검 감찰부 3과장을 이 사건 주임검사로 지정했다. 임 검사는 수사에서 배제됐다고 밝혔다.

그러던 사이 공소시효 문제가 닥쳤다. 진정서를 낸 최○○에 대한 ‘모해위증’ 혐의의 공소시효는 3월7일이었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 대검은 사건을 털었다. 증거가 부족하다며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사실상 무혐의 처분했다. 남은 사람은 김○○. 3월22일 공소시효를 앞두고 박범계 장관은 3월17일 대검 간부들이 기소 여부를 상의해달라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한명숙 재판 위증 의혹’이 중대 기로에 선 셈이다. 검찰이 김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하면, 이를 시킨(교사) 검사들은 공범이 된다. 동시에 검사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멈추면서 검사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가능해진다. 결국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끝은 ‘증언 조작 의혹’을 받는 검사를 향해 있다. 그래서 ‘한명숙 재판 위증 의혹’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본질은 검찰개혁과 맞닿아 있다. 제 식구 감싸기로 비판받아온 검찰이 이번에는 과오를 끊어낼 수 있을까. 3월19일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회의에서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불기소 10명, 기소 2명, 기권 2명이었다. 박 장관은 사실상 이를 수용했다. 대신 과거 검찰 수사 관행 등에 대해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을 지시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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