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질병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누구든 손을 씻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은 ‘질병 앞 불평등’도 드러냈다. 부(富)나 지위가 아니라 나이 문제다. 연령별 사망자 수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3월16일 0시 기준,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20대는 1만4478명이다. 60대 확진자 수(1만4982명)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망자 수는 20대 2명(치명률 0.01%), 60대 192명(치명률 1.28%)으로 갈린다. 치명률이 128배 차이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코로나19 치명률이 높다. 70대는 6.43%, 80대 이상은 20.59%다.

코로나19만 노인에게 가혹한 것은 아니다. 노화는 죽음과 가깝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암과 뇌질환, 여러 심혈관계질환 등 대부분의 질병이 노인에게 더 치명적이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다’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부모와 조상이 오래 살았다’ 등으로 스스로 위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역시 노화와 죽음의 ‘지연’을 꾀할 뿐 부정하지는 못한다.

노화와 죽음을 지연하는 데에도 상한이 있다. 한국 등 선진국 국민 대다수는 자신이 80세 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균수명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데 지난 60년간 세계 평균수명은 20년이나 올라갔으나 ‘최대수명’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평균수명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최대수명의 증가가 아니라 유아와 아동 사망률 감소였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과학자들은 여전히 현재 생존자 중 97%가 100세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본다. 115세에 달할 확률은 1억 분의 1 정도다. 더욱이 상당수의 인간은 목숨만 유지하는 상태로 인생 막바지의 수년에서 수십 년을 고통 속에 보낸다. 나이를 먹으면서 질병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것은 일종의 법칙처럼 보인다. 인간은 이를 회피하거나 망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최근 수명에 상한이 없고 노화도 피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텍스트가 하버드 대학 의과대학 유전학 교수 데이비드 A. 싱클레어가 펴낸 〈노화의 종말〉이다. 미국에서는 2019년 〈수명:우리가 늙는 이유, 늙을 필요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노년층이 코로나19로 직접적 타격을 받자 해외 언론들이 이 책을 다시 주목하게 됐다.

ⓒEPA1월4일 그리스의 한 요양원에서 노인이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이 늙지 않도록 만드는 과학적 발견’이다. 싱클레어 교수는 자신이 ‘장수 유전자’를 발견했으며 운동과 식이요법, 심지어 약물로 이를 활성화해서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먼저 유전학과 세포생물학에서 노화를 설명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백 년간 여러 이론이 경합해왔고, 학계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설명도 있다. 사실 노화가 ‘왜’ 발생하는지부터가 과학의 난제였다. 일단 학자들은 노화현상이 태초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놀랍게도 ‘노화는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형질’이며 돌연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다.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더 많이 번성한다는 의미. 하지만 노화는 생물을 취약하게 만들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런 노화가 생물의 절대적 ‘원리’나 운명이 아니라 그럴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일개 ‘특성’에 불과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진화에서 ‘노화 형질’을 가진 생물들이 그렇지 않은 생물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답은 ‘생물은 후손을 위해 늙어 죽는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윗세대가 죽도록 우리 유전자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생물의 노화 촉진만 담당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에서 이 이론은 소수설이다.

현재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지지받는 설명은 이렇다. ‘노화하는 게 노화하지 않는 것보다 종족 번성에 더 유리하다.’ 1977년 영국 뉴캐슬 대학 톰 커크우드 교수가 창안한 ‘일회용 체세포 이론(Disposable soma theory)’이다. 국내 학자들은 ‘몸은 소모품 이론’ ‘마모 이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種)의 번성’이란 개념에서 개개인의 수명 연장을 떠올린다. 일회용 체세포 이론이 말하는 진화론은 그렇지 않다. 어떤 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오로지 개체의 ‘수’에 달려 있다. 많은 개체가 오랫동안 살아남으면 그 종은 진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의 각 개체가 오래 살 필요는 없다. 번식을 통해 그 수만 유지되면 각 구성원들이 빨리 교체되어도 무방하다. 반면 한 세대의 개체들이 수백 년을 살아도 어느 순간 그 종이 사라진다면 실패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생물은 갈림길에 선다. 커크우드는 생물이 많이 번식하면서 오래 살 수는 없다고 추론했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물, 양분은 한정된 자원이다. 이 자원들을 체세포(soma)와 생식세포(germ line) 중 어느 쪽에 더 투자할지 선택해야 한다. 체세포에 더 투자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다. 생식세포에 더 투자하면 더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더 많이 번식할 수 있다. 장수와 번식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이 갈림길에서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한 개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효율적 투자란 무엇인가?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기간만큼만 양분을 수명 연장에 투자하는 것이다. 나머지 양분은 생식에 투자한다. 이 기간은 각 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먹이사슬과 연관이 있다. 뉴욕 대학 의과대학 세포생물학과 류형돈 교수는 2018년 펴낸 〈불멸의 꿈〉에서 생쥐를 예시로 들었다. 돌연변이 생쥐들이 나타났다고 가정해보자. 생식능력이 강한 대신 질병에 취약한 돌연변이 A와, 질병에 강한 대신 생식능력은 약한 돌연변이 B다. 그런데 돌연변이 B의 ‘수명이 긴’ 특질은, 실제로는 이 종의 숫자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질병이 아니라도 어차피 생쥐는 천적이 많아서 1~2년 내에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남는 것은 체세포에 투자한 대가로 희생된 약한 생식세포뿐이다. 류 교수는 이 돌연변이 B가 “가용자원을 몸 관리에 많이 쓰다 보니 번식력이 줄어들고, 따라서 종의 숫자가 줄어든다”라고 적었다. 반면 질병에 취약한 돌연변이 A는 생식에 투자한 결과 번식력이 강해, 각 개체의 수명은 짧지만 수는 꾸준히 유지된다. 진화론적 시각에선 A가 B보다 더 효율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그래서 땅 위에 사는 작은 초식동물은 수명이 짧고 번식력이 강하게 진화되었다. 생쥐의 수명은 2년 정도다. 반면 날개가 있어서 생존능력이 좋은 박쥐는 20년가량 산다. 천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벌거숭이 두더지쥐(naked mole-rat)는 생쥐와 몸집이나 활동량은 거의 비슷한데, 30년 이상 산다. 일반적으로 작은 동물은 수명이 짧고 번식력이 강하다. 큰 동물은 수명이 긴 대신 번식력이 약하다.

ⓒ서울시설공단벌거숭이 두더지쥐는 30년 이상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결과는 ‘오래 살고 싶다면 번식을 덜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따른 종의 변화는 각자가 후천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천적이 없는 인간은 앞으로 생식능력이 줄고 최대 수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연적으로 일어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노화 연구자들은 자연선택을 기다리는 대신 생물에게 내재된 방어 메커니즘을 이용해 노화를 늦추고 ‘치료’하려고 한다. ‘장수 유전자(longevity gene)’의 활동을 증진하는 방식이다.

인체에는 한정된 에너지를 가장 필요한 영역에 돌리는 체계가 있다. 싱클레어 교수는 ‘생존 회로(survival circuit)’라고 부른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 곰팡이에도 동일한 형태로 새겨져 있다. 이 회로의 기본 역할은 ‘환경에 따른 번식 여부 결정’이다. 자신과 자손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때에만 번식이 이뤄지게 만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존 회로는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유전자 A는 환경이 안 좋을 때 번식을 멈추도록 한다. 유전자 B는 환경이 좋을 때 유전자 A의 번식 제한 기능을 끈다. 생존 회로의 주요 역할은 세포의 DNA 수선이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데, 여러 외부 요인에 따라 손상된다. 생존 회로는 우선 DNA 수선을 최우선으로 삼고, 번식 환경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최초의 생명인 원시세포부터 이 회로를 지니고 있었다.

ⓒAP Photo인간의 염색체 끝에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텔로미어다(위). 연구자들은 텔로미어에 수명에 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본다.

소식, 간헐적 단식, 채식, 운동

시간이 흐름과 함께 생존 회로는 진화해왔다. 싱클레어 교수는 인간 유전체에서 생존 회로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22개 이상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인체에 있는 이 유전자들은 일종의 ‘감시망’ 구실을 한다. 수십억 년 전 원시세포의 회로가 대기의 독성이나 습기, 양분 등을 판별했던 것과 같은 역할이다. 인체의 생존 회로를 구성하는 유전자들은 인간이 무엇을 먹고, 운동을 얼마나 하고, 얼마나 자는지 따위를 지켜본다. 싱클레어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 유전자들을 ‘장수 유전자’ ‘활력 유전자(vitality gene)’ 등으로 부른다. 장수 유전자를 활성화하면 세포손상을 막고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게 최근 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가설이다.

장수 유전자를 자극하는 방법이 있다는 연구는 꾸준히 나온다. 흥미롭게도 장수 유전자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것은 신체가 안락한 때가 아니다.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이때 스트레스는 정신적 긴장상태가 아니라 특정 유형의 운동, 간헐적 단식, 저단백질 식단, 고온과 저온 노출 따위 신체에 작용하는 외부의 힘을 말한다. 운동이나 섭식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수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체계가 작동되는 것이다. 싱클레어 교수는 스트레스가 작용하면 장수 유전자는 “당뇨병과 심장병, 알츠하이머와 골다공증, 암을 포함한 노화의 주요 질병에 맞서 몸을 지키라고 명령한다”라고 썼다. 노화한 세포가 일으키는 염증을 줄이고, 오래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활동에 치중하게 만든다. ‘치명적이지 않은 스트레스’에 몸이나 세포가 반응해 활성화되는 이 현상을 ‘호르메시스(hormesis)’라고 한다. 싱클레어 교수뿐만 전 세계 다수 연구자들이 장수 유전자에 대한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싱클레어 교수에 따르면, 인체를 방어하는 이 생존 회로가 바로 생물의 노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싱클레어 교수가 주로 연구하고 있는 장수 유전자는 서투인(sirtuin)인데, 포유류에게 서투인은 생식 제어와 DNA 수선 외에도 세포 생존, 대사, 세포 간 소통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서투인이 DNA 수선에 매진할 때는 이런 일을 멈춘다. 수선이 끝나야 다시 세포의 기능을 돕는 ‘평시 업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화학물질, 방사선 따위로 DNA에 심각한 손상이 누적되면 서투인이 DNA를 수선하느라 과로에 빠진다. 원래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된다. 서투인의 지휘가 뒤죽박죽이 되면 젊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의 기능이 꺼진다. 세포가 정체성을 잃고 기능 이상이 발생한다. 싱클레어 교수는 이 과정을 노화로 정의한다.

어떤 ‘스트레스’가 서투인 등 장수 유전자의 기능을 돕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기본적으로 소식(小食)이 있다. 히포크라테스 이래 의사들은 적게 먹어야 장수한다고 권고해왔다. 현대 과학에서도 검증된 사실에 가깝다. 1935년 클라이브 매케이 코넬 대학 교수는 소화가 안 되는 섬유질을 20% 섞어준 생쥐가 일반 생쥐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 80여 년간 다양한 생물에게서 ‘영양실조 없는 열량 제한’이 장수로 이어진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1978년 일본의 연구는 오키나와섬 주민들의 열량 섭취량이 본토 사람들의 8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오키나와는 100세 이상 장수자가 많을 뿐 아니라 건강수명 또한 긴 지역으로 유명했다. 열량 제한이라는 ‘위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장수 유전자에게 생존 회로를 가동하도록 만든다는 학설의 근거다.

ⓒEPA2019년 2월 장수촌으로 이름났던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 노인이 주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간헐적 단식도 한 방법이다. 새로운 식이요법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지만, 과학자들은 그 효과를 100여 년 가까이 연구해왔다. 1946년 시카고 대학에서는 사흘마다 굶긴 쥐들이 규칙적으로 먹은 쥐보다 15~20% 오래 살았다는 연구가 나왔다. 완전한 절식이 아니라 ‘단식 흉내’처럼 보이는 식단도 효과를 낸다. 3개월간 정상적으로 식사하되 매달 닷새 동안만 야채수프, 에너지바 따위로 ‘제한적 식사’를 하니 참가자들의 체중과 체지방, 혈압이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있다. 단식은 여러 장수촌의 풍습이기도 하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는 쪽이 장수를 돕는다는 이야기에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식물성 단백질은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 같은 무게에서 얻을 수 있는 아미노산 양이 적다. 그런데 싱클레어 교수는 “활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희소식”이라고 적는다. 아미노산의 양이 부족해지는 상황이야말로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생존 회로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그는 육식을 줄이는 장수 요법의 목적이 ‘아미노산을 결핍시키는 것’ 자체라고 말한다. 따라서 붉은 고기나 가공육뿐만 아니라 ‘좋은 동물성 단백질’로 여겨지는 닭고기·생선·달걀도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이 노화 방지와 장수에 이롭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그 이유가 단지 혈액 흐름의 개선, 폐와 심장, 근육 등을 강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싱클레어 교수는 운동이 세포 단위의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성인 수천 명의 혈구에 있는 ‘텔로미어’를 조사했더니,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의 텔로미어가 더 길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덮개’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모되고, 거의 다 닳을 즈음엔 세포가 분열을 중단하고 노화하기 시작한다. 2017년 연구에 따르면, 30분씩 주 5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텔로미어를 지녔다. 운동은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다. 이 ‘역경’에 맞서 세포 방어체계를 깨우는 호르메시스를 유발한다. 다만 싱클레어 교수에 따르면, 운동이 장수 유전자에 영향을 줄 만한 스트레스가 되려면 강도가 높아야 한다. “최대 심장박동 수의 70~85%로 뛰어야 한다. 숨을 고르지 않고서는 몇 마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해야 한다.”

그런데 역경이나 스트레스가 그 정도를 넘어서 재앙과 같은 수준의 충격을 인체에 가한다면? 이때 장수 유전자는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게 된다. 대표 사례는 흡연이다. 싱클레어 교수는 “흡연자가 더 빨리 늙는 듯한 이유가 있다. 정말로 더 빨리 늙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흡연은 ‘DNA 수선 요원’들을 계속 과로하게 해 DNA를 손상시키고 노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공해도 흡연과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사람과 자동차가 우글거리는 도시에서는 숨 쉬는 것만으로 DNA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싱클레어 교수는 적포도주 등에 함유된 레스베라트롤이 장수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레스베라트롤을 둘러싼 논쟁

그렇다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DNA 손상과 이로 인한 빠른 노화를 거스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쯤에서 싱클레어 교수의 주장 가운데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지만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 나온다. 그는 장수 유전자 서투인의 활성을 화학물질의 ‘복용’으로 증진할 수 있다고 본다. “알약 한 알로 운동과 간헐적 단식의 혜택을 모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운동·단식의 효과를 내거나, 흡연·공해의 피해를 상쇄하는 약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후보 중 하나로 주목받은 것은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이다. 포도껍질, 체리, 가지 따위에 함유되어 있다. 레스베라트롤은 특히 적포도주에 많아 이른바 ‘프랑스인의 역설(French paradox: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프랑스인이 심장질환 사망률은 낮은 현상을 일컫는 말)’을 설명하는 열쇠로 꼽히기도 한다.

싱클레어 교수는 레스베라트롤을 먹인 효모가 그렇지 않은 효모보다 더 느리게 성장(노화)했으며, 생쥐에게도 효과를 냈다는 내용의 논문까지 내놓았다. 레스베라트롤과 노화에 대한 그의 논문은 2006년 관련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레스베라트롤은 물질 자체가 강력하지 않고, 사람의 장내에서 잘 녹지 않는다. 이 화학물질이 노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현재 싱클레어 교수는 다른 물질에 더 집중하고 있다. 알코올 발효 증진제로 발견된 NAD가 장수 유전자 서투인의 연료 역할을 한다는 연구가 밑바탕이다. NAD가 부족하면 서투인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뇌, 혈액, 근육 등 몸 전체에서 NAD 농도가 줄어든다. NAD 농도를 높이기 위해 싱클레어 교수가 특히 주목하는 화학물질이 NMN(Nicotinamide Mononucleotide)이다. 생쥐에게 NMN을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화학물질 복용으로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레스베라트롤의 효능을 둘러싼 연구 역시 싱클레어 교수 자신이 주장하는 것만큼 순탄하지는 않다("과학자이자 수완 좋은 사업가" 기사 참조). 반박 논문도 다수 나와 있으며, 그러므로 싱클레어 교수의 주장이 과학적 검증을 통과한 정설로 확립된 것은 아니다.

싱클레어 교수를 비롯한 노화 연구자들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한다. 수명을 늘리려는 싸움을 암이나 심장병 치료 같은 ‘개별 전선’에서 ‘통합 전선’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치료약이나 백신을 통해 각 질병이 정복되더라도 금세 그 자리를 다른 질병이 대신하는 모습을 인류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차라리 ‘사람에게 내재된 방어체계를 가동시킬 메커니즘을 찾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 천문학적 자금이 이들에게 몰려가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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