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유리 제공

“미얀마의 모든 도시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무장군인들은 심지어 임산부의 머리를 쏴 죽였다. 어린아이와 스님, 의료진도 총으로 쏜다. 너무나 무력하고 절망적이다.” 미얀마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한나유리 씨가 3월15일 〈시사IN〉에 현지 소식을 전했다. 그는 군부에 반대하는 게시물을 올려 체포 대상이 된 후 피신 중이다. 하루 전날 미얀마 군부는 양곤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미얀마 시민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쿠데타가 발생한 2월1일부터 3월16일까지 사망자를 최소 183명으로 집계했다. 한나유리 씨는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들만 기록한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그 이상일 것이다. 군인들이 시신을 은폐한 사례도 많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희생자가 늘고 있다(〈시사IN〉 제704호 ‘미얀마의 시민저항이 전 세계에 미칠 영향’ 기사 참조).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하고 있지만 사태는 악화일로다. 언론사 강제 폐쇄와 민간인 불심검문도 이뤄진다. 또 다른 시위자는 “쿠데타 세력이 인터넷을 차단했다. 다른 시위대와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군인들은 주로 인터넷이 끊긴 밤 시간대에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나유리 씨가 보낸 사진에서 미얀마 시위대는 타이어·안테나·드럼통·도마 등을 방패 삼아 거리로 나서고 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시위자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자 3월15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를 위한 민족동맹(NLD)’ 진영은 군부를 향해 내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내에서 미얀마어 강사로 활동하는 박성민씨(27)는 미얀마의 지인에게 받은 현장 사진과 영상을 SNS에 공유한다. “한국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얀마 친구들이 ‘언제까지 우리가 유엔을 기다리겠나. 알아서 싸워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 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메시지가 수십 개씩 쇄도했다. 안타까움을 담아 온라인 해시태그(#prayformyanmar #savemyanmar)에 동참하고, 군부 규탄 시위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미얀마 시민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피를 멈출 수 있을까. 〈시사IN〉은 미얀마 현지와 국내 미얀마 지원 단체와 두루 소통하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모색해봤다. 코로나19로 통행길이 막혔지만 미얀마의 시민들과 연결될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한나유리 제공미얀마 연예인 한나유리 씨가 보내온 사진. 시민들이 시위 희생자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1. 시민 연대 기금

미얀마 시민들은 시민불복종운동(CDM: Civil Disobedience Movement)으로 군부에 맞선다. 관공서·병원·은행·철도 등에서 파업으로 군부의 국정 운영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다. 현재 공무원 10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일반 회사원과 공장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미얀마 활동가와 연구자 대다수가 이 운동이 오래 버텨야 군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생활고다. 재한 미얀마인 웨 느웨 흐닌 소 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파업에 두 달째 참여하고 있다. 싸움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생계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군부는 파업 중인 철도 노동자들을 기숙사에서 강제로 쫓아냈다.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는 CDM에 동참하는 공무원들이 계속 파업할 수 있도록 모금 운동을 진행 중이다. NLD 한국지부와 미얀마 이주노동자, 유학생, 국내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정범래 공동대표는 “모금 10여 일 만에 2억5000만원을 모금해 현지에 송금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3월12일 소모뚜 주한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 얀 나잉 툰 NLD 한국지부장 등 한국에 있는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들이 현지 언론을 통해 공개 수배되었다. 시민불복종운동 중인 미얀마 공무원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혐의다. 정범래 대표는 “이렇게 수배령까지 내린 걸 보면 공무원들의 불복종운동이 군부 세력에 실제로 큰 타격을 주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재한 미얀마인들의 페이스북 메시지 창마다 ‘SOS’ 요청이 쌓여 있다. 2004년 한국에 정치적 망명을 온 소모뚜 씨는 지인으로부터 ‘턱에 총알이 관통해 치료비가 필요하다’ ‘장례비를 지원해달라’는 메시지를 여럿 받았다. 2009년 한국에 온 유학생 웨 느웨 흐닌 소 씨도 비슷하다. 방탄 헬멧, 마스크, 고글, 카메라 장비, 타이(태국) 유심카드(미얀마 군부가 국내 인터넷을 끊은 후로 타이 유심카드가 있어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가 특히 필요하다고 한다. 감옥에 구금된 시위자를 위한 법률 지원을 요청하는 메시지도 많다. 미얀마의 한 시위자는 “우리는 코로나19로 1년간 수입도 없고 봉쇄된 채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이 쿠데타가 발생했다. 시민들은 충분한 보호장치나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해외주민운동연대(KOCO)는 3월11일 1차 연대기금으로 모인 1900만여 원을 미얀마 시위대에 전달했다. KOCO는 2012년부터 미얀마·캄보디아·타이 등 아시아 8개국의 시민조직과 연대하는 국내 단체다. 강인남 대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미얀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기금 마련이라고 했다. “이번 민주화운동이 성공하려면 시위가 오래가야 한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무너지면 다시 세우고 숨어 있다가 다시 나오고…. 이 ‘진지전’을 하는 힘은 결국 돈이다.” 이 밖에도 모금 활동이 따비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사람예술학교, 5·18 기념재단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지로 돈을 보내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파업과 시위로 은행 업무가 마비된 데다 군부가 쿠데타 이후 현금인출기 인출 한도를 50만원(원화 기준) 정도로 제한했다. 이주노동자와 유학생 등에게 개별로 요청이 들어와도 송금이 어려운 이유다. 강인남 대표는 “지금 미얀마에 현금과 달러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돈을 보내는 경로들도 탄로 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돈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적립해둘 필요는 있다. 여러 활동가들은 이번 시위가 끝난 후 미얀마에 식량 위기와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사IN 신선영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소속 NLD 한국지부, 재한 미얀마 노동자·유학생은 매주 일요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맨 왼쪽이 얀 나잉 툰 NLD 한국지부장).
ⓒ시사IN 조남진3월12일 미얀마청년연대 회원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승려가 미얀마 민주화 기원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 온라인 연대 활동

부산의 한 카페(홍지컴퍼니)에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합니다’라고 쓴 커피잔 홀더를 제작했다. 이 이미지가 미얀마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 200만 팔로어를 둔 미얀마인 익빤세로 씨가 사진을 공유하면서다. “이 혁명의 와중에서 한국이 너무나 고맙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경험이 있어 우리를 정신적으로 지지해주는 나라다. 미얀마 소식을 지켜보며 세계로 알리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군부 규탄 집회를 열고, 일반 시민들이 미얀마 민중가요를 불러주었다. 마스크에도 ‘Save Myanmar’라고 써서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이 혁명이 끝나면 두 나라의 관계가 달라질 것 같다.” 12만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 1300여 개가 달렸다. 3월12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승려들과 미얀마 유학생, 활동가들의 오체투지 행진이 있었다. 여기에도 미얀마 시민들의 응원과 감사가 쏟아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미얀마 민주화 시위의 또 다른 무대다. ‘거리 시위대’가 싸우는 동안 ‘키보드 파이터’들이 SNS로 도움을 호소한다. 한나유리 씨는 일주일 전 시위에 나가 최루탄에 중상을 입은 후 키보드 파이터로 나서고 있다. “말 한마디라도 해외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걸 보면 큰 힘을 얻는다. 우리가 고립되지 않고 함께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는 한국 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연대 움직임들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미얀마 위기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시민혁명과 닮았다. 한국인들은 불의를 참지 않고 우리와 연대하고 있다(3월10일 대한민국 국회의원-재한 미얀마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 대해).’ ‘한국은 거의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3월16일 대한불교조계종 미얀마 민주화 기원 입장 발표에 대해).’

현지 언론도 탄압받고 있다. 3월9일 미얀마 군부는 독립언론 〈미얀마 나우〉를 포함해 언론사 5곳을 강제 폐쇄했다. 군부 쿠데타를 비판하고 시위 현장을 보도해온 매체였다. 경찰은 〈미얀마 나우〉 편집국을 급습해 일부 기자들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시사IN〉이 미얀마 활동가를 통해 현지 기자들의 상황을 들어보니, 언론사가 폐쇄된 기자들은 SNS로 시위 현장을 보도하고 있었다. 한 프리랜서 기자는 “기자들 모두 낮에 취재하고 밤에는 다른 곳으로 도피 중이다.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군부의 인터넷 차단이 보도를 막는 장벽이다. ‘기술적인 지원’이란 타이 유심카드 등 인터넷 우회접속에 필요한 장비를 뜻한다. 시위 현장을 취재 중인 한 사진기자는 방탄조끼가 필요하다고 했다. “군인들의 체포와 위협으로 기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스케이트 탈 때 쓰는 헬멧을 쓰고 있는데 총격이 자주 발생한다. 목숨을 걸고 보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언론인 37명이 체포되었다고 보고했다.

ⓒ시사IN 이명익해외주민운동연대 강인남 대표는 미얀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은 기금 마련이라고 말했다.

3. 정부 대 정부 차원의 지지

웨 느웨 흐닌 소 씨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3C’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CRPH(연방의회 대표위원회)·CDM(시민불복종운동)·Civilians(시민)이다. CRPH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선출된 NLD 소속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임시정부다. 이를 위해서 시민들의 움직임 외에도 정부 대 정부 차원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정부는 3월12일 미얀마에 군용물자 수출을 중단하고, 미얀마 군부 및 경찰과의 교류를 중단하기로 했다. 또 미얀마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국내의 미얀마인에 대한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얀 나잉 툰 NLD 한국지부장은 “현재 타이 국경으로 피란 가는 행렬이 많다. 한국이 타이 국경에 캠프촌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달라”라고 전했다.

쿠데타 정부에 직접적인 손실을 가하려면 한국 정부가 더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엔 진상조사위원회 2019년 보고서는 미얀마 군부와 계약한 주요 14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이 포스코, 롯데호텔, 태평양물산 등 6개라고 밝힌다. 지난 3월3일, 22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얀마 군부와 합작투자한 국내 기업에 대한 조사와 제재를 정부에 촉구했다. 미얀마 양곤의 시위대 조직가인 민 테인 툰 씨는 3월16일 “군부와 연결된 자금을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조치를 취한다면 미얀마 시민들 처지에서는 엄청난 지지 메시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정세는 현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한나유리 씨를 통해 ‘시위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메일함 한쪽이 가득 찼다. “우리는 음식과 의료 도구, 텐트가 필요하다. 공장 지역의 노동자들은 하루 4달러 정도를 버는데 지금 공장이 문 닫고 몇몇 지역에서는 불이 났다. 사람들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다” “군부가 인터넷을 끊어 전국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소셜미디어만이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의 언론들에게 부탁한다. 군에 의해 젊은 친구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전 세계가 미얀마인들의 참상을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민간인 사망에 대해 반복적으로 알리는 것이 군부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미얀마 시민들이 보낸 SOS 요청이 여전히 이어졌다. 현지 인터넷이 차단돼 연락이 자주 끊겼다. 3월17일 미얀마 군부는 와이파이까지 무기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미얀마의 미래를 '투표'로 응원합니다

〈시사IN〉이 사회적 협동조합 ‘오늘의 행동’과 함께 ‘미얀마의 미래를 투표로 응원합니다’긴급 캠페인을 벌입니다. 4·7 재보선을 계기로 우리가 행사하는 한표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기억하는 한편, 지난해 선거 결과를 존중해달라고 호소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내에 따라 투표 인증샷을 찍고 #WatchingMyanmar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려주세요. 이번 캠페인에는 4·7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은 물론 치르지 않는 지역의 시민들도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의 미래를 투표로 응원합니다’ 캠페인 바로가기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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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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