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3월11일 추신수 선수(왼쪽)가 부산 사직구장에서 연습경기를 끝낸 SSG 선수단과 악수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NPB) 퍼시픽리그에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라는 팀이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54승 86세이브를 거둔 한국인 잠수함 투수 김병현이 2011년 이 팀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2004년 10월 창단한 라쿠텐은 NPB의 막내 구단이다. IT 기업 라쿠텐은 50년 만에 등장한 신생 구단으로 보수적인 프로야구 무대에 뛰어들었다.

NPB는 3월26일 개막을 앞두고 오픈전(시범경기)을 치르고 있다. 지금 라쿠텐은 지난해 일본 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영원한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제치고 가장 주목받는 구단이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에이스급으로 활약했던 다나카 마사히로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구단에서 판매하는 다나카의 유니폼은 판매 개시 10일 만에 5000장이 팔렸다. 연회비 1800만원이 넘는 10장 한정 다나카 개인 팬클럽 VIP 회원권은 14분 만에 ‘완판’됐다.

한국의 KBO리그에도 라쿠텐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팀이 있다. 신생 구단 SSG 랜더스다. SSG는 팀 이름이 정해지기도 전인 2월23일 추신수와의 계약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추신수는 역대 한국인 야수로서는 최고 선수로 꼽힌다. 한국 야구에서 일세를 풍미한 슈퍼스타 강타자들은 여럿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선 추신수와 비교될 선수는 없다. 2001년 부산고를 졸업한 추신수는 2005년 스물 두 살에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데뷔해 지난해까지 16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동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 가운데 통산 218홈런은 1위, 1671안타는 스즈키 이치로(3089개)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SSG는 신세계그룹이 올해 인천 연고의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창단한 팀이다. 지난 1월26일 양해각서(MOU)가 체결됐고, 2월23일 본계약에 이르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3월5일 서면 구단주총회를 통해 회원 자격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전신인 와이번스는 추신수가 KBO리그로 돌아올 경우 계약권을 갖고 있었다. 2007년 4월 해외 진출 선수 특별지명에서 추신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시 KBO는 1999년 이후 해외 구단에 입단한 선수에 대한 5년 계약금지 제약을 풀었다. 특별지명에 앞서 각 구단은 출신 고교 연고지를 기준으로 한 명씩을 배타적으로 뽑을 수 있었다. 추신수의 연고 구단 롯데 자이언츠는 당장 입단이 가능한 오른손 투수 송승준을 선택했다. 그래서 추신수를 비롯한 선수 5명은 구단들이 순번대로 지명권을 행사하는 특별지명 대상이 됐다.

마지막 순번이던 SK가 추신수를 지명했다. 기량이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앞 순번 구단들은 추신수가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뛸 것으로 보고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 순위 SK에 차례가 돌아왔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20년 12월, SK 구단은 추신수와 접촉해 입단 의사를 타진했다. 마침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7년 계약이 끝나 프리에이전트(FA) 신분이었다. 이 과정에 대해 잘 아는 관계자는 “의례적인 접촉에 가까웠다”라고 말했다. 텍사스와의 7년 계약은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471억원) 규모였다. 연평균 210억원으로 KBO리그 구단 평균 ‘페이롤’의 두 배가 넘는다. 지금 미국 선수 시장에서 매기는 가치는 상당히 떨어졌지만 그래도 국내 구단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계약조건에 앞서 추신수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뜻이 강했다. 추신수는 텍사스 시절 첫 4년은 부진했지만 2018~2019년 연속으로 OPS(출루율+장타율) 0.810 이상을 기록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33경기에만 출장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페넌트레이스 60경기 단축 시즌에, 9월7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텍사스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 9월27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 복귀해 고별 타석에 섰다. 손가락이 덜 회복돼 정상 타격이 어려웠지만 번트 안타를 만들어내는 집념을 보였다. 긴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제대로 된 스윙을 하지 못한 채로 마감하기는 어려웠다. 시즌 뒤 열린 FA 시장에선 복수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오퍼도 있었다.

1월 추신수와 만난 민경삼 SK 구단 대표는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계약에 이를 가능성은 여전히 낮았다. 그런데 신세계의 인수가 발표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신생 구단은 스타 파워가 필요했다. 현실적으로 현역 선수로 뛸 시간이 오래 남지 않은 추신수에게도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할 새로운 동기와 명분이 생겼다. 위의 관계자는 “추신수는 원래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한국에서 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에서 가족회의를 거쳐 SSG 입단을 결정했다”라고 전했다.

의사가 명확해진 이상 협상 과정은 길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계약조건에 대한 의견은 딱 두 번만 오갔다”라고 밝혔다. 발표된 계약조건은 1년 27억원. 이 가운데 10억원은 구단과 협의 아래 사회공헌활동에 쓰인다.

ⓒ연합뉴스3월5일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 스프링캠프 청백전 직후 선수와 관계자들이 굿바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KBO 구단은 자생력과 거리가 멀다

2월25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추신수는 2주 격리기간을 거쳐 3월11일 SSG 선수단에 합류했다. 이날 롯데와 SSG의 연습경기가 열린 부산 사직구장에는 취재진 120여 명이 몰렸다. 학교폭력 문제로 어수선한 새해 한국 스포츠에서 추신수의 복귀는 팬들의 긍정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신생 구단 SSG의 신고식은 화려했다.

추신수의 연봉 27억원은 올해 프로야구 연봉 1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충격적인 금액’으로 표현할 정도는 아니다. 2위 이대호가 25억원, 3위 양의지와 박병호가 15억원이다. 해외에서 복귀한 추신수는 KBO 규정에 따라 계약금이 없다. 반면 국내 대형 FA 계약에 붙는 계약금은 KBO가 집계하는 연봉에서 제외된다. 2016년 이후 KBO리그에서 총액 80억원 이상 대형 FA 계약은 10건 나왔다. 계약 총액을 햇수로 나누면 이대호는 연평균 37억5000만원, 양의지는 31억2500만원으로 추신수를 능가한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가 있다. 올해 외국인 선수 최고 몸값은 NC 다이노스 투수 드류 루친스키의 160만 달러(약 18억원)다.

‘FA 몸값 거품’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FA 제도 이전에는 독점계약권을 가진 구단이 선수를 ‘착취’해왔다는 건 여러 경제학 논문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프로야구단의 지출구조가 지속 가능한지는 별개 문제다. 2017년 1월 롯데는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이대호와 4년 150억원에 계약을 했다. 이런 대형 지출은 구단 차원에서 결정할 수 없다. 모기업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당시 이대호 계약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구단 관계자는 “모기업에 투자를 요청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효과를 숫자로 나타내기가 매우 어려웠다”라고 회상했다.

일본 경제 전문 매체 〈겐다이 비즈니스〉는 3월15일 라쿠텐 구단이 다나카 영입 이후 한 달도 안 돼 얻은 매출 증가분이 3억 엔이라고 보도했다. 다나카의 추정 연봉 9억 엔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추신수에게 당장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SSG의 전신인 SK 구단의 손익계산서에 따르면 2019년 총매출액은 561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상품 판매는 5억1481만원에 불과했다. 라쿠텐 구단은 한 달 안 되는 기간에 다나카 관련 상품 중 응원용 수건과 ‘최저가’ 유니폼으로만 5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KBO리그 구단들은 2005년을 기점으로 과거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에 묶여 있던 구장 입장료를 현실화하고 구단 매출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좌석 개선 등 프로야구장에서의 서비스 품질도 올라갔다. 하지만 여전히 구단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모기업의 ‘지원금’이다. 구단마다 집계 방식이 다르지만 대체로 지원금은 회계상 특수관계자 매출로 파악할 수 있다. SK 구단의 경우 2019년 특수관계자 매출이 235억원으로 총매출의 41.8%에 달했다.

KBO리그 전체로는 40.4%. 그나마 모기업이 없어 특수관계자 매출이 0원인 히어로즈 구단 덕에 전체 비율이 다소 줄었다. KT 위즈(59.7%)와 KIA 타이거즈(54.6%)는 특수관계자 매출 비율이 50%를 넘었다. 지원금을 특수관계자 매출과 분리해 집계하는 한화 이글스는 두 항목을 더하면 59.7%에 이른다. 두산 베어스가 이 비율 28.0%로 가장 양호했다. 두산은 거의 매년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좋은 성적에 인구와 구매력에서 최대 시장인 서울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여기에 모기업 경영난 때문에 ‘지원’을 바라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 수치로만 보면 KBO리그 구단들은 자생력과는 거리가 멀다. 우호적인 조건으로 매출을 일으켜주거나 직접 예산을 지원해주는 모기업이 없다면 생존하기 어렵다. 물론 모기업의 지원은 구단 처지에서 제약조건이 되기도 한다. 가령 구단 마케팅 직원들은 모기업 경쟁사로부터는 광고 유치를 거의 하지 못한다. 구단의 모기업인 재벌이 손을 뻗치지 않은 분야는 많지 않다.

모기업이 없는 히어로즈 구단의 성공 사례도 있다. 히어로즈는 2016년 이후 4년 연속 흑자를 실현했다. 하지만 히어로즈처럼 운영되는 구단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 또는 세 개만 돼도 이익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구단 소유관계로 볼 때 한국 프로야구는 독특하다. 모기업 규모에서는 전 세계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톱을 다툰다. 미국의 메이저리그는 대개 개인투자자들이 구단을 소유한다. 일본 프로야구는 전통적으로 소비재 기업들이 구단을 운영해왔다. 신문(요미우리· 주니치), 철도 및 유통(한신·세이부), 식품 음료(야쿠르트·롯데·니혼햄) 등이다. 비교적 최근에 금융(오릭스)과 IT 기업(소프트뱅크·라쿠텐·DeNA) 등이 후발 주자로 참여했다. 히로시마 카프는 대기업인 마쓰다자동차 소유이지만 사실상 시민구단처럼 운영된다. 인기를 먹고사는 프로스포츠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에 좀 더 적합한 광고판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프로야구 리그인 미국 내셔널리그는 1876년 창설 당시 〈시카고트리뷴〉 신문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신문사 경영진이 프로야구가 신문 부수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3월1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랜더스의 추신수(왼쪽)가 라이온즈의 오승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SSG의 KBO 가치 평가, 현명한 투자일까

과거 한국 실업야구는 지금 KBO리그보다는 일본의 프로야구 모델을 더 닮았다. 아마추어 야구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크라운맥주, 한국화장품, 롯데 등 소비재 기업들이 구단을 창설해 운영했다. 하지만 1982년 첫 시즌을 시작한 프로야구에는 주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참여했다. 프로야구 창설이 제5공화국 청와대의 후원 아래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의 시대에 기업들은 ‘스포츠공화국’ 정책에 호응함으로써 유무형의 이익을 얻기도 했다. 프로 원년에 참여를 거절했던 현대그룹이 뒷날 프로야구 입성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건 야구계에서 유명한 스토리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는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과 닮았다. 압축성장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재벌 산하 프로야구단이라는 시스템의 공헌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리그의 발전에도 투자와 적절한 경쟁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야구가 1980년대 이전까지 동등하거나 때론 밀렸던 타이완 야구에 우위를 점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수익성을 따지지 않았던 대기업들의 투자였다. 반면 타이완 프로야구(CPBL)는 호텔과 브라더미싱 수입총판 사업을 하던 슝디그룹 훙텅성 회장의 주도로 1989년 창설됐다. 슝디와 함께 원년 멤버인 퉁이와 웨이취안, 싼상은 식품 사업을 운영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소비재 기업이라 프로야구에 투자할 여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식 경제성장 모델이 위기에 빠졌듯 지금의 프로야구단 운영 방식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KBO리그 구단의 모기업들은 야구단을 운영할 이유를 점점 찾기 어려워하고 있다. 맥주 사업을 오래전에 접고 발전설비를 제조하는 두산그룹에 베어스 구단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인한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나 기아자동차는 KBO리그보다 더 후원 효과가 좋은 스포츠리그나 팀을 세계 각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나카의 소속 팀 라쿠텐 구단 직원들의 가장 큰 경쟁자는 구단주가 같은 J리그 축구팀 비셀 고베다. 고베는 전 스페인 국가대표 이니에스타 등 월드클래스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팀의 구단주인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은 세계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축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프로야구에 참여하는 대기업들은 ‘사회공헌’을 자주 앞세운다. 구단 운영으로 이익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한 프로야구단 사장은 “프로야구단 자체의 수익 창출보다는 프로야구에 투자해야 할 이유를 기업들에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점에서 소비재 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SSG 구단의 등장이 한국 프로야구의 가치상승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이가 많다. SSG는 와이번스 구단을 인수하며 SK에 1353억원을 지불했다. 신규 구단 창단이 아닌 기존 구단 인수는 2001년 KIA 타이거즈 등장 이후 첫 사례다. 당시 기아자동차가 KBO리그 최다 우승 팀인 명문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데 들인 금액은 180억원. 올해 SSG는 그보다 7.5배 많은 금액을 지불했다. 물가 변동을 반영하더라도 5.4배에 이른다. 1995년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470억원에 인수한 뒤 2020년까지 KBO리그 프로야구단의 ‘매각가’는 한 번도 그 이상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만큼 SSG는 한국 프로야구단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이제 신생 랜더스의 가치를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시작됐다. 첫걸음은 메이저리그 스타 추신수의 영입으로 뗐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전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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