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3월4일 서울 마포구 ‘정치발전소’에서 진행된 ‘읽는 당신×북클럽’에서 천관율 기자(왼쪽 두 번째)가 온라인 강연을 하고 있다.

“책은 혼자 읽으면 되지 뭣하러 온라인으로 연결돼 읽는단 말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북클럽에 수백 명이 모였다는 얘길 듣고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다.” 천관율 〈시사IN〉 기자가 농담 삼아 건넨 인사에 화상회의 속 표정들이 환해졌다.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됐네요” “ㅋㅋㅋㅋ” 같은 댓글이 채팅창을 빠르게 채웠다. 〈시사IN〉과 동네책방이 손잡고 만든 ‘읽는 당신×북클럽’ 오프닝 북토크 풍경이다.

3월4일 저녁 7시30분 줌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린 오프닝 북토크에 270여 명이 접속했다. 전국의 동네책방 28곳을 통해 북클럽을 신청한 327명 중 80% 이상이 실시간으로 북토크를 지켜본 셈이다.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노트북 앞에 앉았다는 독자, 방역 기준에 따라 동네책방에 4명이 모여 북토크를 함께 시청 중이라는 독자 등 면면이 다양했다.

〈시사IN〉과 동네책방이 ‘읽는 당신×북클럽’ 준비모임을 시작한 것은 연초였다. 비대면 시대 독자들과 만나는 방법을 새롭게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북클럽 준비 중에도 상황은 줄곧 나빠졌다. 참여 의지를 밝혔다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된 동네책방도 있었다. 무엇보다 책방지기들은 ‘돈 내고 북클럽에 올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다. 동네책방들이 제 살 깎기식으로 벌여온 무료 행사나 정부·지자체 지원 프로그램에 많은 독자들이 길들여져 있어서였다.

동네책방에 공감하는 ‘내돈내산’ 소비

뚜껑을 열고 본즉 기우였다. “왜 북클럽에 참가했느냐”는 설문조사 질문에 독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응답은 “동네책방의 가치에 공감하고, 동네책방을 응원하고 싶어서(31.0%)”였다. “추천도서가 마음에 들어서(20.7%)” “북클럽 모델을 체험해보고 싶어서(18.4%)”가 뒤를 이었다. 평소 동네책방을 잘 알고 드나들었다는 사람은 전체의 11.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거점 구실을 하는 동네책방의 가치에 공감하기에 기꺼이 ‘내돈내산’ 소비를 실천하고 나선 셈이다.

‘팬데믹이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를 주제로 북토크에 나선 천관율 기자는 이 같은 연대의 감각과 실천 노력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재난은 한 사회를 갈림길에 세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는 이른바 ‘위대한 세대’가 출현했다. 전쟁을 겪는 동안 노조가 대규모로 조직되고, 고소득자 세금이 크게 올라가는 등 미국 역사상 가장 평등한 ‘대압착의 시기’가 도래한 결과였다.

한국도 외환위기라는 재난을 겪었다. 재난 초기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2020년 K방역과도 같은 공동체적 열정이 1997년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그 후’는 모두가 기억하는 대로다. ‘연대냐, 각자도생이냐’의 갈림길에서 한국 사회는 후자를 선택했다. 잘못된 선택이 그 후 한 세대를 지배했다.

팬데믹 그 후,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 시간 넘게 펼쳐진 묵직한 강의 앞에 독자 질문도 이어졌다.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박종춘)” “민주당이 과반이 됐는데도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하다. 이유가 무엇일까?(서한빈)”

그 답을 찾는 것은 앞으로 100일간 세 권의 책(〈공정하다는 착각〉 〈가난의 문법〉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함께 읽으며 북클럽을 이어갈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천 기자 말마따나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는 일은 정치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공동의 프로젝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 작은 역사가 시작된 기분이다”라고 박진숙 가문비나무아래 대표는 말했다.

왜 지금 북클럽일까? 재난의 한복판에서 온라인으로 서로 연결되어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읽는 당신×북클럽’ 참가자들이 남긴 후기 일부를 공개한다.

“온라인으로 강연을 듣고, 각 서점을 통해 모임을 동시에 진행하는 북클럽 아이디어가 참 좋다. 열심히 참여해 보겠습니다!”
(장유진, 완벽한 날들)

“(첫 온라인 모임을 마친 뒤) 언택트 시대에 전문지식을 접하는 매우 합리적이고 유용하고 안전한 교류의 시간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마이리틀앤)

“동네책방을 소개하고 책방을 허브로 사람들을 잇는다는 생각과 기획이 참 좋다. 이렇게 해서 동네 커뮤니티, 생각의 공동체, 세대 간의 소통도 가능하겠지. 우리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오가는 길에 들러서 괜히 친한 척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내게 동네는 밤에 와서 잠 자는 곳이었는데 아는 곳이 생겼으니 어깨 으쓱할 일 아닐까?“
(김상현, 좋은 날의 책방)

“그냥 랜덤으로 동네책방을 매칭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꽤 긴 이름의 책방이 매칭되었다. 위치나 확인해볼까 하고 지도 어플을 켰는데, 아주 근방이다. 종종 지나가면서 ‘대체 저기는 뭐 하는 곳이지?’ 하며 지나쳤던 곳이다. 책을 보내주신다기에 굳이 번거롭게 택배로 오갈 필요가 있나 싶어 직접 받으러 갔다. 아, 어찌나 예쁘게 포장해서 가지런하게 준비해놓으셨던지…. (중략) 독서모임을 하면서 매해 첫 몇 달만 하고 흐지부지되었던 책 읽는 습관을 갖고 싶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강연을 들으며 사고가 확장되는 그런 경험을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낙천, 가문비나무아래)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말고 다른 ‘어른’들과도 책모임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유연한’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중략) 그러던 중 〈시사IN〉이 동네책방과 함께하는 북클럽을 ‘발견’했다. 추천도서부터 너무 맘에 들었다. 막연히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다면 이 책들은 동화책이나 소설책에 밀려 ‘읽어볼 책 목록’에만 남게 될 것이다.”
(들꽃아이, 곰씨네 그림책방)

“사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는 북클럽이 활성화되기 어렵기도 하고, 독서모임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제대로 된 홍보나 후원을 기대하기 힘들어 극소수로 운영되다가 와해되기 쉽다. 그런데 〈시사IN〉에서 전국 책방들을 연결하고 온라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줘서 참 고마웠다. (중략) 오프닝 북토크 날 줌(zoom)으로 전국 참여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런 게 코로나19의 순기능인가 싶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전국 단위로 연결되는 모임의 활성화가 5년은 더 뒤에 나타났을지 모른다.”
(김태연, 책방밭개)

“아이들만 키우다가 (온라인 북토크로) 사회문제에 관한 강의를 들으니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은 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니나, 곰씨네 그림책방)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의 연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정치에 많은 관심이 없었던, 혹은 모른 척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
(이윤영, 안녕 고래야)

“오프라인 세상은 잠시 멈췄지만 더 넓은 온라인에서 세상을 넓혀가는 지금이 되길 바란다. 시간이 지난 후에 지금을 되돌아봤을 때, 멈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서로 돌아보고 연대하는 그래서 서로 연결되었음을 느꼈던 시간이었길 바란다.”
(박세나, 좋은 날의 책방)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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