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3월7일 스위스 베른에서 시민들이 ‘부르카(베일) 금지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극단주의를 멈춰라.” 3월7일 스위스에서 실시된 이른바 ‘부르카 금지 법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취리히 시내 곳곳에 붙은 포스터의 문구다. 부르카는 무슬림(이슬람 교도) 여성이 쓰는 베일 중 가장 보수적인 형태로, 얼굴을 다 가리고 눈 부위가 망사로 돼 있다. 스위스의 한 극우단체가 지지자들 서명을 모아 제출한 이 헌법 개정안은 투표자의 51.2%, 26개 칸톤(주) 중 18곳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스위스는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오스트리아 등에 이어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베일을 공공장소에서 금지하는 국가가 됐다.

제출된 법안 내용부터 살펴보자.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성별을 이유로 얼굴을 가리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성별을 이유로 얼굴을 가리는’이라는 표현은 무슬림을 겨냥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가림 금지 법안’이라는 공식 명칭이 ‘부르카 금지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지지하는 논거는 간단명료하다. 이슬람은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종교이고 부르카나 니캅은 억압의 상징이라는 점, 스위스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러한 억압의 상징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점, 이민자들이 스위스에 오면 스위스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조금 들여다보면 이 주장들의 근거가 허술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이슬람은 여성 차별적인가

이슬람은 여성 차별적인가? 정확한 답을 내려면 질문을 둘로 나눠서 해야 한다. 첫째, 이슬람은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인가? 둘째,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차별당하는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아니다’이다. 국내의 대표적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저서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에서 이슬람 경전인 꾸란(코란)이 다른 종교보다 더 성차별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꾸란은 남녀가 하나의 영혼에서 동시에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또 꾸란에는 최초의 여성이 뱀의 꼬임에 넘어가 아담을 유혹해 죄를 지었다는 내용이 없다. 여성을 원초적 죄인 취급하는 기독교나 유대교 경전 내용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꾸란은 1400년 전에 여성의 상속권도 보장했다.

ⓒAP Photo2001년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두 번째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이슬람이 유달리 성차별적 종교는 아니지만, 이슬람이 널리 퍼진 중동 지역에서는 여성이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다. 이것은 사막의 유목 생활 전통에 기인한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다른 부족과 싸움을 벌이는 삶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희수 교수는 위 책에서 “아랍 국가의 여성들은 아시아 여성 무슬림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아랍 사회에는 유목 전통의 영향으로 가부장제, 부계 중심, 남아 선호, 남성 주도 경제행위라는 전통 문화가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이슬람권이라 해도 지역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2001년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선출됐고, 방글라데시에서는 1991년 첫 여성 총리 칼레다 지아가 당선됐다.

■ 이슬람 베일의 중층적 의미

그렇다면 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베일은 종교인가 전통인가. 베일은 이슬람교 발생 전부터 존재한 중동 지역의 옷차림이다. 사막 지대에서 뜨거운 햇볕과 강한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한 토착 의상이 나중에 이슬람과 결합했다. 꾸란에서 베일 착용을 언급한 24장 31절에는 가슴을 가리라는 내용 외에 구체적 지침은 없다. 부르카, 니캅, 차도르, 히잡 등 다양한 베일은, 이 구절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발생한 지역 풍습이다. 드넓은 이슬람권에서 나라마다 베일 문화가 다른 이유다. 이슬람 국가 57개국 중 여성에게 베일 착용을 강요하고 어길 시 법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정도다.

서구에서는 베일을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고 간단히 규정하지만, 사실 베일을 둘러싼 역사적·사회적 의미는 중층적이다. 터키와 이란의 경우를 비교할 수 있다. 터키에선 오스만 제국(1299~1922) 말기까지 여성이 베일을 착용했으나, 공화국 설립 후 세속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은 1935년 베일을 전면 금지했다.

서구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계몽주의자 남성들이 근대화를 주도했고, 베일을 벗은 신여성은 ‘알라프랑가(‘프랑스 스타일’이라는 뜻)’라고 불렸다. 나중에 베일 착용을 자유화한 뒤에도 공공기관과 고등교육기관에서는 금지됐다. “터키의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터키가 진보된 국가임을 서구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고, ‘진보’는 세속화이자 서구화라는 믿음 아래 강제로 여성에게 베일을 벗도록 했다. 이렇듯 여성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동원된 베일 벗기는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을 위한 개혁이 될 수 없었다(오은경,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이란에서 1925년 시작된 팔레비 왕조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으며 근대화를 추진했다. 여성의 베일 착용이 야만적이라며 금지했다. 그러나 이건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중동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원유 이권을 챙기려는 서구의 노림수였다. 무리한 서구화는 대부분이 무슬림인 국민의 반발을 불렀다. 반외세를 외치는 이란 국민 가운데, 전통의 상징인 베일을 자발적으로 쓰고 저항한 이란 여성들이 있었다. 결국 1979년 성직자 호메이니를 내세워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새 정부의 반서구 기치는 여성들에게 다시 베일 착용을 강요했다.

두 나라의 상황은 무슬림 여성들이 맞서 싸우는 이중의 억압을 보여준다. 하나는 서구 제국주의, 다른 하나는 이슬람 근본주의다. 민족 자주성을 지키면서도 여성 인권을 수호하려는 무슬림 여성들의 노력을 서구는 무시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소설가이자 미국에서 공부한 페미니스트 사하르 칼리파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 미디어에서 아랍 여성은 무능력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이미지로 묘사된다. 베일로 얼굴을 가린 아랍 여성은 공포와 혐오를 유발하는 현상이 됐다. 서구인들은 모든 무슬림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처럼 광신적이고 폐쇄적이라고 믿는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고문).”

■ 베일 금지 10년 된 프랑스 상황

베일 이슈의 핵심은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다. ‘누가 허락하고 누가 금지하느냐’다. 이건 중동과 유럽 다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베일을 유럽 최초로 금지했다. 2010년에 법이 발효된 이후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쓰면 벌금이 150유로다. 벨기에·오스트리아·덴마크·네덜란드가 뒤를 이었고 이제 스위스가 합세했다. 현재 프랑스 상황은 어떨까.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인 사회학자 아녜스 드페오는 이슬람 베일 연구를 15년 이상 해온 전문가다. 드페오는 최근 스위스 일간지 〈NZZ〉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10년 전 저지른 실수를 지금 스위스가 반복하려 한다”라고 경고했다. 드페오에 따르면 법이 시행되기 전인 2009년 당시 프랑스에서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는 사람들은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의 0.05%에 불과했다. 그런데 법안 때문에 베일은, 프랑스 정부의 ‘무슬림 낙인찍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베일을 쓰지 않았던 무슬림 여성들도 이 금지안을 자신의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베일 금지는 오히려 베일 착용자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드페오는 “이 법안이 통과된다는 건, 스위스의 모든 무슬림에게 그들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Reuter2월26일 스위스 시옹에 붙은 ‘부르카 금지 법안’ 홍보 포스터.

■ 당사자의 견해

10년 전 프랑스에서나 현재 스위스에서나, 당사자인 무슬림 여성들의 의견은 공론장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많은 유럽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슬림 남성의 강요에 의해 베일을 쓰는 것인지, 자발적으로 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스위스 국민이 베일 착용을 투표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알기가 어렵다. 나는 스위스에 사는 팔레스타인 출신 무슬림 여성 와파 쾰벨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와파는 2015년부터 취리히에 살고 있는 엔지니어로, 독일인 남편과 두 딸이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베일 금지 투표에 대한 의견은?

투표 포스터에서 부르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스위스에 살면서 부르카를 쓴 여성을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안건이 아니다. 왜 이런 국민투표를 해서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를 하는 건 아이러니다.

팔레스타인에선 베일을 썼나?

나는 평생 베일을 쓴 적이 없다. 여름이면 반바지를 입는 평범한 무슬림이다. 그렇다고 베일을 쓰는 다른 사람의 선택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베일을 착용한다면 뭐가 문제인가. 이슬람이 베일을 강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예배당 안에서 기도를 할 땐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규칙이 있다.

이슬람은 어떤 종교인가?

친절한 마음으로 남을 돕는 종교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타인을 조건 없이 도우라고 했다. 무슬림 신자인 내게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것보다 이웃과 사회를 돕는 게 더 중요하다. 나는 이슬람교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법안을 제안한 측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한다고 한다.

극단주의는 이슬람뿐 아니라 유대교에도, 가톨릭에도 있다. 스위스의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학교에서 자기들 언어로 교육받는다. 유대인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스트라이멜(유대인 남성이 쓰는 검고 둥근 모자)을 쓴다. 다른 스위스인들과 상호작용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스위스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이 신념을 지키면서 스스로 행복하다면, 거기 동의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슬림이 스위스 사회에 잘 동화하려면.

무슬림이 유럽으로 오는 건 대개 전쟁을 피해서, 또는 자기 나라에 없는 기회를 찾아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극단주의라며 배격하거나 우월감을 갖고 대하면 안 된다. 환영하는 태도로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게 해야 한다. 필요한 건 차별이 아니라 수용과 도움이다.

■ ‘이슬람화’ 반대하는 대리전쟁

스위스의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약 4.5%인데, 와파의 말처럼 이 중 부르카를 쓰는 여성은 사실상 없다. 니캅(눈 부위만 내놓고 얼굴을 다 가림)을 쓰는 여성은 전국에 극소수(30~40명)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드물게 보이는 부르카 착용자는 관광객이다. 그래도 혹시 강요에 의해 부르카나 니캅을 쓰는 여성들이 있다고 치자. 금지안이 이 여성들을 도울 수 있을까? 베일을 못 쓰니 집 밖으로 못 나가 사회에서 더 고립될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현상을 국민투표까지 해서 금지한 건 대체 무슨 연유일까. ‘여성 인권을 위해서’라는 명분 뒤에는 ‘이슬람 포비아’라는 진짜 이유가 있다. 이번 부르카 금지 법안을 제출한 극우단체는 2009년에도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킨 전력이 있다. ‘이슬람 첨탑 금지’ 법안이 그것이다. 첨탑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일부로 신자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 법안이 57.5%의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더 이상 건설되지 않고 있다. 당시 스위스 법무장관 에블린 비드머 슐룸프는 금지안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첨탑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실은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건 ‘대리전쟁’이다.”

올해는 스위스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지 50주년 되는 해다. 국민투표로 수많은 민감한 사안이 결정되는 이 나라에서, 1971년 이전에 여성들은 투표에 참가할 수조차 없었다. 지금도 턱없이 부족한 보육 지원, 성별 임금 격차 때문에 스위스 여성들은 유리천장을 머리에 이고 산다. 정말로 무슬림 여성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부르카 금지 같은 대리전쟁을 벌일 게 아니라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주고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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