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월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마포구보건소를 방문해 김윤태 넥슨어린이재활병원장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맞는 장면을 지켜봤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시작되며 팬데믹의 출구로 향하는 여정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제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시사IN〉 제704호 커버스토리 ‘백신×방역, 시험과목 늘었는데 난이도는 더 올라갔다’에서 백신이 곧바로 일상 회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 백신접종이 개개인 보호를 넘어 사회적으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국내 전문가들은 65세 이상 고위험군 접종이 끝나는 상반기 이후에야 그 시점이 찾아오리라고 예상한다. 그때까지는 방역과 예방접종이라는, 거대한 프로그램 두 가지를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

이 기사는 백신 접종자는 점차 늘어가지만, 방역을 완화할 정도로 뚜렷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과도기’에 대한 이야기다. 백신 수급이 늦어지거나, 접종 속도가 더디거나, 백신이 듣지 않는 변이형이 퍼지는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다. 그 사이 4차 유행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지배적이다. 이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셈이다. ‘인풋’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웃풋’은 배로 늘어난 이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지자체의 한 보건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재난 업무처럼 해왔던 일을 ‘일상의 업무’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지난해는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의 출현부터 1년 넘게 길어지는 대응까지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대비하지 못한 채 급한 불을 꺼야 했기에 즉각적으로 손쉽게 끌어 쓸 수 있는 곳에서 방역 자원이 차출되었다. 보건소와 각 지자체의 보건 담당부서, 감염병 관리부서 그리고 공공병원이 그 역할을 도맡았다. 3차 유행 국면에서는 행정명령으로 3차 대형병원의 병상을 끌어모아 위기를 면했다. 숨 가쁜 시간이 흘러가며 보건의료계 공공기관과 일부 3차 의료기관에 코로나19 대응이 쏠리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되었다. 의료자원과 행정자원의 전체적인 분포도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투입해 방역의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 상태 그대로 예방접종 업무와 4차 유행 준비까지 더해졌다.

보건소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

“재난 업무를 일상 업무로 바꿔야 한다”라는 보건소장의 말은 그간 미뤄두었던 그 시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건소를 예로 들자면 보건소에서 꼭 해야 할 일과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나누고,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보건소 전체 업무가 100이라면 현재 역학조사나 접촉자 추적 업무는 20~30 정도다. 선별진료소나 임시선별검사소 운영은 30~50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 20~30을 건강증진 같은 기존 업무에 할애했다. 이렇게 빡빡하게 역할이 짜여 있는데 이제 코로나19 예방접종까지 해야 한다. 기존 업무를 대폭 줄여야만 접종에 쓸 여력이 생긴다.”

ⓒ연합뉴스3월7일 매화가 만개한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 차려진 임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

그는 보건소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로 선별진료소와 임시선별진료소 등 검사 업무를 꼽았다. 보건소 앞마당마다 차려진 흰색 텐트는 K방역의 상징과도 같은데, 이 일을 어떻게 다른 곳으로 보낸다는 걸까? 그는 코로나19 검사를 민간에서 좀 더 많이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은 선별진료소이지만 사실상 하는 일은 검체 채취다. 검체를 채취해서 전문으로 검사하는 기관에 보낸다. 처음 시작할 때는 코로나19가 어떤 감염병인지 정확히 모르니 메르스나 사스에 준해서 레벨 D 방호복을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검체를 채취할 때마다 갈아입었다. 그 이후 위험도가 파악되면서 지침이 많이 바뀌었다. 복장도 꼭 레벨 D가 아니라 4종 보호구(전신가운·마스크·장갑·고글 또는 페이스 실드)를 착용하면 된다. 큰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일반 병의원에서도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내과나 이비인후과에서 인플루엔자 검사를 하듯이 코로나19 검사도 보건의료의 일상적인 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현재 민간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려면 진료비를 내고 증상이 없는 경우에는 검사비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완전 무료인 보건소로 사람들이 몰린다. 치료가 아니라 검사만 하러 온 사람이라면 병원에도 제반 비용을 보장해줘야 민간으로 적절하게 검사량을 돌릴 수 있다. 물론 민간병원에서 이를 담당하려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일반 환자와 동선을 분리해야 하고, 적절한 감염관리 매뉴얼과 설비, 보호 장구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 코로나19 검사료 수가 체계까지 개편해야 하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보건소장은 “보건소에서 하면 예산이 따로 안 드는데 왜 전환을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정도 힘을 남겨둬야 4차 유행도 대비한다. 지금처럼 바닥까지 써버리면 어떻게 준비를 하나. 역학조사나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처럼 보건소가 꼭 해야 하는 일들도 연쇄적으로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업무 재조정이 시급하다고 지목되는 또 다른 영역은 생활치료센터다. 그간 지자체의 보건 관련 부서 공무원과 공공병원이 도맡다가 유행이 급증하면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이 지원하는 식으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예방접종에 4차 유행까지 겹친다면 생활치료센터를 기존 형태로 가동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선별진료소와 마찬가지로 민간이 담당하는 비율을 늘려야 한다. 민간에서도 코로나19 진료로 과부하가 걸린 곳이 아닌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일반 환자가 줄어들면서 타격을 입은 1, 2차 의료기관이 적합한 곳으로 꼽힌다.

무증상이나 경증 확진자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지정한 생활치료센터는 고도의 의료적 처치를 요하지 않는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지역의 중소병원과 위탁계약을 맺고 그곳 의료진이 입소자들을 케어하기에 무리가 없다. 4차 유행이 오기 전부터 준비를 해놔야 실제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 네트워크를 가동할 수 있다고 방역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실 이런 방안은 지난해 생활치료센터가 생길 때부터 꾸준히 언급되었던 아이디어다. 병원에 적당한 보상을 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사업이었다. 물론 그만큼 예산이 들어간다. 이것 역시 돈을 써야 한다.

이혁민 신촌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예산을 아끼는 데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을 잘 막으면서 국가적인 이미지도 많이 올라가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경제적 피해도 최소화했다. 만약 4차 대유행이 왔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어렵게 쌓아왔던 것들이 한번에 무너진다.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서 이 시기를 잘 통과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3월 서울 송파구 잠실주경기장에 마련된 차량 이동 선별진료소에서 관계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방역과 백신 사이의 좁은 길

결국 방역과 예방접종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쏠린 방역 업무를 개편하고, 능률을 높일 방안을 강구하며,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정책 패키지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이라는 시계의 초점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옮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에는 이런 고려가 좀처럼 엿보이지 않는다. 예방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유행 억제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양을 늘릴 뿐 질적인 변화는 동반되지 않는다. 3월7일 나온 ‘4차 유행 대비 방안’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등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병상과 생활치료센터를 추가로 확보해서 ‘하루 확진자 2000명’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의료 공급을 확대한다(3월 초 현재는 1000명). 하루 23만 건인 진단검사를 50만 건까지 공격적으로 늘려 확진자를 조기에 찾아낸다.

그럴싸한 대책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문이 남는다. 방역 수칙을 더욱 잘 지켜 시민들이 자제한다면 이미 한계상황에 놓여 있는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될까? 병상과 생활치료센터가 늘어난다면 여기에 필요한 의료진은 어디에서 확보할까? 두 배로 검사를 늘린다면 두 배로 늘어난 검체 채취 업무를 할 사람은 있을까? 이 모든 것을 백신접종이라는 거대하고 중요한 업무가 추가된 상태에서 소화할 수 있을까?

지난 1년간 방역 일선에서는 기존 인력이 ‘번아웃’에 이를 만큼 안간힘을 쓰며 코로나19에 대응하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인력이 충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급하게 임시로 확보한 인력은 머릿수만큼 제구실을 해내기 어렵다. 그만큼 방역체계는 저효율 구조로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온 대책대로라면 이는 올해에도 반복될 일이다.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며 아웃풋을 늘리는 방역 기조가 변함없는 상수라면 말이다.

지난해에는 이른바 인력을 ‘갈아 넣는’ 것이 어느 정도 묵인되었다. 그러나 2021년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감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팬데믹이 앞으로도 꽤 장기간 이어질 레이스라는 것을 안다. 비상 상황이라는 명목하에 일방적으로 쏠린 구조를 그대로 두고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이처럼 과도한 짐을 진 채 방역과 백신 사이에 난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무척 위태로운 일이다. ‘백신이 왔으니 조금만 더 무리하자’라는 태도로는 유행 컨트롤도 예방접종도 모두 위험에 놓이게 된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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