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제공2월27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에서 화이자 1호 접종자인 코로나19 병동 미화원 정미경씨가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지난 2월26일 백신접종에 들어가며 11월 접종률 70% 도달을 목표로 잡았다. 18세 이상 전체 인구인 4355만명이 접종 대상이다.

지난해까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조치는 사실상 ‘피해 다니기’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대규모 검사를 시행해서 확진자를 찾아내며, 찾아낸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를 격리하는 대대적인 방역 조치를 시행했다. 이는 숙주인 사람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맞닥뜨리지 않도록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전략이었다.

백신의 도입으로 반격의 모멘텀이 찾아올 것이다. 백신접종을 통해 면역을 획득하고, 면역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코로나19를 코너에 몰아 넣을 수 있다. 산발적인 감염과 유행은 상당 기간 이어지겠지만 지금처럼 온 사회가 ‘피해 다니기’ 모드인 단계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접종 단계에 진입한 올봄은 분명 희망을 그려볼 만한 계절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예상은 썩 낙관적이지 않다. “올해에 비하면 지난해는 차라리 쉬웠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방역 당국부터 지난해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기존 코로나19 대응 업무에 전 국민 예방접종이라는 거대한 업무가 추가된 것이다. 이미 방역 당국과 일선 보건소, 병원의 의료진들은 코로나19 대응에 전력을 다해왔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번번이 ‘번아웃’에까지 이르렀던 총력 대응체제 위에 추가로 얹어진 예방접종이라는 과업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2021년 우리는 무엇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까?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해왔던 대로 한다면 2021년은 ‘미션 임파서블’이 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1월17일 서울역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 가장 낙관적 케이스인 이스라엘을 봐도

백신은 언제쯤 우리 일상을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먼저 접종에 들어간 나라들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독보적인 속도로 예방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나라다. 3월1일 기준 국민의 55.1%가 한 번이라도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두 번 접종한 사람은 39.7%이다. 백신의 효과도 극적이다. 2월24일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 공동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백신 접종자 그룹에서 나오는 확진자 수는 미접종자 그룹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적었다. 감염예방 효과가 9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종자 그룹에선 코로나19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거나 설사 걸리더라도 중증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예방접종이 3차 유행의 파고를 막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2월20일 예방접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2월27일 3차 봉쇄를 단행했다. 가팔라지는 유행 곡선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그림 1〉 참조). 당초 2주를 예고했던 봉쇄 조치는 네 차례 연장되며 2월21일까지 두 달간 이어졌다. 다행히 1월 중순 8600명대까지 치솟았던 일일 확진자 수는 2월 말 3000~4000명대까지 낮아졌다. 그사이 예방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비율이 40%(2회 기준)까지 높아져 코로나19 유행을 컨트롤하는 데에 기여했겠지만, 강도 높은 록다운을 고려하면 백신 효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재개를 선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확산 조짐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2월28일 이스라엘 보건부는 이스라엘 내의 코로나19 감염 재생산지수가 0.99로 일주일(0.8) 전보다 상승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나라처럼 이스라엘도 고령자를 우선순위로 백신을 접종해왔다. 60대 이상에서 2회 접종을 마친 비율은 80%에 달하지만 16~59세에서는 19%에 그친다. 접종률이 낮은 젊은 층과 접종을 거부하는 정통파 유대교 사이에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일종의 ‘포켓’이 형성되면서 그 내부에서 감염이 계속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많은 일일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현재 속도라면 이스라엘은 조만간 집단면역 수준의 접종률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접종으로 고령자들이 보호되면서 입원이나 사망자 수는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그림 2〉 참조). 변이 바이러스 변수가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일상 회복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쳐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위태로운 희망’은 전 세계적인 추세를 봤을 때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는 사실을 역시 주목해야 한다.

■ 좀체 속도가 안 나는 글로벌 백시네이션 버퍼링

이스라엘 정부는 전 국민 예방접종 데이터를 민간기업인 화이자에 넘기는 조건으로 화이자로부터 원활한 백신 공급을 약속받았다. ‘그린 패스’를 발급한다든지, 특유의 동원 체제를 발휘해 백신접종을 압박하는 조치들도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 다음으로 접종률이 높은 곳은 아랍에미리트(UAE)다. UAE는 중국 제조사인 시노백과 코로나19 백신을 계약했다.

그 외에 접종률 30%를 넘긴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12월10일 예방접종에 들어간 영국이 2월 말에야 접종률 30%를 넘겼다. 영국은 2회 접종을 보류하고 1회 접종으로만 백신 주사를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으로 접종 속도를 높이지는 못하고 있다. 4월 말까지 경제 재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보수당 내부의 주장이 있었지만,  2월22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6월까지 4단계에 걸쳐 봉쇄 조치를 해제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봉쇄로 인해 피해를 본 업체를 지원하는 정책도 6월 말까지 연장됐다.

영국 뒤를 잇는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해 12월20일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시작한 이후 3월2일까지 15.6%가 1회 접종을 받았다. 2회 접종을 마친 인구는 7.9%이다. 겨울철 대유행 피크를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내 코로나19 피해도 여전히 막대한 수준이다(유색인종이 백신 불신하는 까닭 참조). 지난해 12월27일과 28일 일제히 예방접종에 들어간 유럽연합 국가들의 진행 속도는 훨씬 더디다. 두 달간 백신을 맞은 접종자가 1회 접종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 남짓에 불과하다(3월2일 기준).

ⓒ연합뉴스2월18일 목포실내체육관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가 설치됐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감염병을 연구하는 인구통계학자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 백신 수급과 접종 상황을 팔로하고 있다. 그는 접종 속도 자체도 느리지만, 각국에서 백시네이션을 지연시키는 결정적 요인은 백신의 생산 및 공급 부족이라고 말했다. “백신접종을 먼저 시작한 나라들 중에 자국에 생산설비를 보유한 영국·미국이나, 특수한 케이스인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사실 상징적인 물량밖에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화이자나 모더나의 mRNA 백신은 워낙에 초기 생산 물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아스트라제네카는 그나마 생산이 원활할 줄 알았는데 예상만큼 공급을 못하고 있다. 2월에 원래 계약했던 물량의 30%밖에 못 주겠다고 해서 EU 국가들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결국 계속 조율해 900만 도스를 더 받게 되었지만 원래 공급하려던 물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 한국은 언제쯤 집단면역 가능할까

해외 상황에 비춰보면 한국 역시 조기에 충분한 양의 백신을 들여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분기에 확보된 백신을 살펴보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75만명분)이 2월24일 공급됐고, 코백스 퍼실리티에서 확보한 화이자 백신 물량 가운데 5만8000명분이 2월26일 국내에 들어왔다. 방역 당국이 발표한 코로나19 백신 공급 일정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계약한 모든 제약사의 백신이 2분기부터 도입된다고 나온다(〈그림 3〉 참조). 그러나 전문가들은 2분기에 들여오는 물량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모더나나 화이자 사의 증산 계획, 세계의 백신 공장인 인도가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가는 시기 등을 고려하면 코로나19 백신 수급에 숨통이 트이는 건 7월 이후부터라는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이 마련한 코로나19 예방접종 계획도 이런 전망에 근거해 마련되었다. 백신 수급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1·2분기에는 65세 이상 고령층과 의료진 등 코로나19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1030만명에게 접종하고, 3분기부터 나머지 3325만명에게 접종한다는 계획이다. 만성질환자를 포함해 64세 이하 성인은 모두 3분기 이후 접종에 해당해, 사실상 일반 예방접종은 7월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셈해보면 상반기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상자는 전체 대상자의 24%가량이다. 앞서 살펴본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조한다면 백신접종이 접종자 개개인 보호를 넘어서 코로나19 유행을 통제하고 사회적 파급력을 가지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하반기 이후에도 상당 기간 예방접종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접종을 완료하면 접종률이 집단면역 수준에 도달하기 전이라도 방역과 의료에 부과되는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65세 이상 고령층은 코로나19 감염 시 중증으로 발전되는 비율이 높고,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은 확진자 한 명이 나오면 집단감염으로 전개되기 쉬운 구조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3차 대유행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곳도 수도권 지역의 요양시설이었다. 이들이 백신으로 보호받게 된다면 전체 확진자 수는 늘어도, 중환자실 입원 환자는 그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의료체계 역시 하중을 덜 수 있다. 방역에도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 병상이 포화 상태라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높여 확진자 발생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지만, 병상에 여유가 있다면 확보된 의료 역량에 맞춰 어느 정도 수준의 확진자 발생은 수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 장밋빛 희망 전에 점검할 것. 어라, 시험과목이 늘어났네?

2021년 어느 시점엔 일종의 골든 크로스가 발생할 것이다. 백시네이션으로 코로나19 유행을 컨트롤할 만한 수준에 도달해서 방역 강도를 낮춰도 되는 순간 말이다. 그 시점은 최대한 낙관하더라도 고위험군과 의료진 접종을 마치는 올해 상반기 이후이다. 최소 그때까진 방역 업무와 예방접종이라는 두 가지 짐을 방역 현장에서 동시에 안고 가야 한다.

코로나19 예방접종으로 더해지는 업무 하중은 얼마나 될까? 정부의 발언과 태도를 살펴보면 은근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백신 수급이 문제이지, 백신이 들어오기만 하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실제로 한국의 예방접종 인프라와 시스템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경험 역시 두텁다. 매년 9월부터 진행되는 독감백신 예방접종 사업을 통해 매년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평균 1500만명 정도가 독감백신을 맞는다.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방역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 얘기는 조금 다르다. 예방접종만을 떼어놓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응단장을 맡고 있는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2021년에는 방역 더하기 백신을 해야 한다. 지난해에 수학 시험만 봤다면 올해는 영어 시험까지 쳐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24시간이다. 나아진 게 있다면 수학(방역)에 노하우가 쌓였다는 건데, 이 노하우를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 확진자 베이스라인 자체가 지난해보다 더 올라갔다. 3차 유행이 지나고 나서도 일일 확진자가 300명, 400명씩 나온다. 이러다가 다시 유행이 닥치면 훨씬 높은 파도가 칠 수밖에 없다. 수학에 영어 과목이 더해졌는데, 수학 난이도는 기초에서 상급으로 올라간 셈이다.”

국가 예방접종 사업의 손발이 되는 보건소도 예전의 보건소가 아니다. 구성수 경기도 하남시 보건소장은 지난 1년간 보건소 인력들에 주어진 부담을 이렇게 비유했다. “물이 가득 찬 수조에 풍선을 넣고 떠오르지 않게 계속 누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조금 느슨해지면 풍선이 떠오르고 다시 누르면 들어가고 하기를 1년 동안 반복하고 있다. 힘이 닿는 데까지는 누르고 있지만 모두 많이 지친 건 사실이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수도권 지역의 다른 보건소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업무 시간을 추산해보면 한 달에 100시간 초과근무는 다반사다. 150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직원도 서너 명씩 나온다. 150시간 초과면 30일 내내 출근했다는 가정하에 매일같이 정상적인 업무 시간에 더해 5시간을 더 일했다는 소리다.”

ⓒ연합뉴스2월24일 경북 안동의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군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보관창고로 이송되고 있다.

■ 예방접종센터 의료인 구인난이 뻔히 예상됐는데

이처럼 이미 포화 상태인 방역 현장이 예방접종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을까? 정부 대책은 일이 늘어난 곳에 사람을 더 뽑으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부 지침은 지난 1월 중순 방역 일선에 일대 혼란을 불러왔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은 크게 두가지 트랙으로 진행된다. 아스트라제네카 등 냉장 보관이 가능한 백신접종은 이미 독감 등 다른 국가 예방접종 사업에 참여했던 일반 병의원을 이용하지만, 극저온에서 냉동 보관을 해야 하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별도의 예방접종센터를 통해 접종해야 한다. 이 예방접종센터를 전국 시군구마다 하나씩 250개를 설치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250개 접종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체육관처럼 큰 공간을 확보하고, 백신을 접종할 의료진을 구하라는 게 지난 1월 중순 각 지자체에 내려온 공문이었다. 장소도 장소지만 의료진을 구하는 데 비상이 걸렸다. 접종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진의 기본 구성은 예진 의사 4명과 접종 간호사 4명, 백신을 소분하는 간호사 2명이다.

정부에서 정한 기준으로 의료진을 더 확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보다 적게 둘 수는 없다. 따라서 전국 250개 접종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의사 1000명, 간호사 1200명을 채용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의료진을 갑자기 구할 방법이 없다. 사람 구하는 일이 또 방역 일선에 막대한 업무로 돌아왔다.

의료진을 모두 확보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각 지역에 차려놓은 예방접종센터가 언제부터 운영될지 기약이 없다. 영남 지역의 방역 담당 공무원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백신 수급 전망에 따라 접종센터 개소 일정은 여러 차례 뒤바뀌었다. 1월 중순 처음 공문이 내려왔을 때는 3월 운영을 예정했다가, 7월로 연기되었다가, 화이자 백신이 2분기에 일부 들어온다는 소식에 다시 앞당겨지는 식이었다.

한 방역 전문가는 접종센터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접종센터를 공장이라고 치면 여기는 원재료가 언제 올지, 언제부터 가동을 시작할지, 얼마나 생산(접종)을 할지 알 수 없는 사업장이다. 백신접종을 하고, 이상반응을 관찰하는 실무 자체가 어렵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방접종센터 전체를 운영하는 건 굉장히 난이도 높은 사업인 것이다. 예방접종센터는 이해도와 숙련도가 높은 사람들이 조직을 이루어서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작지만 팀워크가 단단한 조직이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건 단기로 필요할 때마다 사람 쓰면서 양적으로는 많지만 숙련도는 낮고 딱딱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거다.”

코로나19 예방접종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접종센터가 다급하게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보건소장들 사이에서는 ‘접종센터야말로 민간에 위탁하기 알맞은 사업’이라는 이야기가 초기부터 나왔다. 현재는 중앙예방접종센터(국립중앙의료원)와 천안, 광주, 양산, 대구에 차려지는 권역·지방 예방접종센터(각각 순천향대병원, 조선대병원, 부산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외의 접종센터는 대부분 보건소와 지자체 방역 관련 부서에서 직영하는 형태이다. 이 경우 공공에서 직접 운영하며 의사, 간호사를 단기 채용하게 된다. 구하기도 어렵고 단시간에 손발을 맞추기도 힘든 임시직을 채용하기보다, 권역 예방접종센터처럼 지역의 상급 종합병원 혹은 일반 종합병원에 위탁을 맡기는 편이 접종센터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훨씬 적합하다는 것이다. 체육관 등 장소는 관에서 물색하고, 병원에서 코로나19로 예약이 줄어든 건강검진센터 등의 인력을 접종센터에 파견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중앙예방접종센터 운영 첫날인 2월27일 백신 접종자가 예방접종 내역 확인서를 들고 있다.

접종센터를 공공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센터를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데 250여 개 센터가 일제히 의료진 구하기에 나서면 A 센터에 있던 의사를 B 센터에서 빼가고, B 센터에 있던 인력을 C 센터에서 데려가는 참극이 인접한 접종센터 간에 일어날 수 있다. 접종센터를 직영했을 때의 리스크가 예상되는데도 접종센터 민간 위탁이라는 옵션이 선택지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산 문제가 지목된다.

■ 백신 살 돈만 계산하고, 백신 맞힐 돈은 계산하지 않은 정부

정부는 지난해 세운 2021년 예산안에 코로나19 예방접종 관리료를 편성하지 않았다. ‘예방접종 관리료’란 접종을 수행하는 의료기관에 접종 인원에 맞춰 지급하는 비용이다. 코로나19 백신 구입비 예산은 증액과 추경, 예비비를 통해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접종비에 해당하는 예방접종 관리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정부는 예방접종 관리료(회당 약 1만9000원) 중 70%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도록 해 정부 예산 밖에 있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3400억원을 급하게 마련했다. ‘무료접종이라면서 민간 접종비 70% 건강보험 부담’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월12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건보공단조차 건보 재정에서 무료접종 비용 일부를 충당한다는 얘기를 언론 보도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예방접종 관리료는 민간 의료기관에만 주도록 되어 있다. 건보 재정에서 부담하는 3400억원은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냉장 백신을 접종하는 위탁 의료기관, 즉 민간 병원과 의원에서 담당하는 2500만명분을 기준으로 책정한 것이다. 즉 공공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접종센터는 정부가 자체 관리하는 것으로 분류돼 예방접종 관리료가 따로 책정되지 않는다.

ⓒ연합뉴스정세균 국무총리가 2월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제는 건보 재정을 썼다는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코앞에 다가온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업의 예산조차 정부가 예상에 넣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1월 중순, 접종센터를 세우라는 공문에 현장이 일대 혼란에 빠진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사전에 없던 계획이 갑자기 하달되었는데 겨우 며칠 만에 접종센터 장소 후보지와 확보한 의료진 수를 보고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정작 3월에 운영하게 되는 접종센터는 전국적으로 22개에 그친다. 예방접종 사업이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나 전체를 조율하는 구상 없이 진행된다면 가뜩이나 과부하가 걸린 방역 현장은 더욱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 2021년, 새로운 공식이 필요해

2020년 K방역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대비’보다는 ‘대응’을 잘했기 때문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1차 유행도, 광복절 이후의  2차 유행도, 겨울과 함께 찾아온 3차 유행도 모두 예상하지 못한 위기였다. 하지만 이른바 ‘한국인의 저력’으로 검사량을 대폭 확대하고, 숨가쁘게 접촉자를 찾아내고, 정신없이 병상을 늘려가면서 확진자 곡선을 누르고 유행의 파도를 누그러뜨렸다. ‘가까스로 이렇게 저렇게’ 해낸 것이다. 신종 감염병 유행의 전개를 예상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어렵기도 했다.

2021년은 다르다. ‘대응’에만 기대기엔 현장의 기운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이렇게 쥐어짜고 있는 상황에서 예방접종을 하고, 혹여나 4차 유행까지 오면 보건소는 그냥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라는 한 방역 요원의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기존 방역 업무에서도, 앞으로 해나갈 예방접종 사업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접종센터가 필요해? 장소와 인력을 구하면 되지’ 식의 일차방정식은 곤란하다.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앞으로 예방접종과 방역이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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