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수지하도상가 상인들이 5월7일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했다(위). 이들은 서울시가 지하도 상권을 대기업에 넘기려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의 출구는 8개다. 1번 출구는 고층 오피스타운, 2번 출구는 외국어 시험·로스쿨 입시·대학 편입을 위한 대형 학원가, 3번·4번 출구는 새로 자리 잡은 ‘삼성타운’, 5번 출구는 14층 복합쇼핑몰, 6번 출구는 거대한 유흥가, 7번 출구는 유명 브랜드 안테나숍이 늘어선 거리, 8번 출구는 먹을거리 골목으로 이어진다. 성남·고양·용인·수원·안산·평택 등 경기도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물론이고, 청주·천안 등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에 자리한 대학 셔틀버스도 이곳 강남역 인근에 정거장을 두고 있다.

강남역 지하도는 언제나 지나다니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다른 사람과 닿지 않고 빠져나가기 어렵다. 그 지하도에 작은 점포 212개가 늘어서 있다. 장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황금어장’이다. 이곳에서 8년째 옷을 판다는 한 상인은 “강남역 지하상가는 권리금만 평당 1억~2억원이다. 출입구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퇴직금에다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합해 겨우 가게를 얻었다”라고 귀띔했다.

5월7일 강남역 지하도 상인들을 만난 곳은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이었다. 강남역뿐 아니라 서울 전역의 지하상가 상인들이 모였다. 빨간색 조끼를 입고 이렇게 모인 것이 30회를 넘었다.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사무국장 김봉관씨는 “서울시가 지하도상가 운영권을 대기업에 넘기려 한다. 상인들의 전 재산과 생존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호소하기 위해 모였다”라고 말했다.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은 지난 4월30일 ‘강남역 지하도상가’ 개·보수 조건부 사업시행자를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공모지침서에 따르면 사업 목적은 “개·보수 비용을 민간 사업시행자가 부담하고, 지하도상가 개·보수 후 준공과 동시에 서울시에 기부하고, 유상으로 지하도 상가를 운영할 자를 공개 모집함에 있다”라고 쓰여 있다. 상가 리모델링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상가 운영권을 행사할 민간업체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강남역 지하상가(위) 상인들은 어떤 조건도 감내할 수 있으나 민간 위탁운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상인들 “임차료 올려주고 수리비도 내겠다”

서울 지하도상가의 역사는 40년이 넘는다. 건설 당시에도 민간업체에 시공을 맡기고 20년간 운영권을 줬다. 시설과 운영권을 전부 서울시에 넘겨주는 조건이었다. 기부받은 이후 지금까지 서울의 모든 지하도 상가는 서울시와 상인이 1대1 계약을 맺었다. 임대인은 서울시, 임차인은 개별 상인이다. 강남역 지하도상가 운영권 전부가 예정대로 민간업자에게 맡겨지면 서울시와 상인 사이에 새 임차인이 생긴다. 서울시는 그대로 임대인이지만 상인은 전차인이 되어 민간업자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측은 “계속 상가에서 장사하기 원하는 상인에게 점포 사용권을 주는 것을 운영을 맡게 될 민간업자의 조건으로 넣었다. 상인회가 직접 입찰을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민간업자에게 지하도 상가 관리를 위탁하는 것이 기존 상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이사장 정인대씨는 “상인회에 입찰 기회를 준다는 것은 서울시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라며 상인회가 민간 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은 가망성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시설관리공단이 추정한 강남역 지하도상가 개·보수에 필요한 비용은 대략 164억원이다. 입찰에 참가하고자 하는 업체는 신청서를 제출하고 우선 전체 공사비용의 5%를 보증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정 이사장은 “상인회가 매달 회비 1만~2만원 받아서 수억원을 쌓아놓을 수 있었겠나? 우리는 복잡한 서류를 준비할 인력조차 없다”라고 한탄했다.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측은 서울시에 임차료를 올려주고 상인들이 돈을 걷어 리모델링도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정 이사장은 “당장 상인회가 입찰에 참여할 여력은 없다. 하지만 각자 자기 점포 수리하고 상가 보수비용을 조금씩 낼 수는 있다. 왜 서울시가 상인이 한다는 것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서울시의 어떤 요구도 수용할 수 있으나 민영화만은 반대한다.

서울시설공단은 지난해 강남역 지하도상가 상인들과 계약 갱신을 거부했다.
민영화 과정에서 상가 권리금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40여 년 전 지하도상가를 분양받을 때 상인들은 1000만~3000만원 상당의 보증금을 냈다. 당시 강남의 아파트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매달 월세와 관리비를 냈다. 대신 상가를 양도하고 양수할 권리는 상인에게 있었다. 이와 같은 임차 조건은 서울시가 시설을 기부받은 이후에도 유효했다. 이들은 상가 사용권을 사고 팔 때 매장 위치와 면적에 따라 5억~20억원 상당의 권리금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는 계약 기간이 끝난 상가 192개에 갱신 거절 안내서를 보냈다. “앞으로 운영을 맡게 될 민간 사업자와 재계약을 하도록 하기 위해 서울시가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라고 시설관리공단 측은 설명했다. 한 상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계약을 만료한다고 했다. 권리금 이야기는 쏙 빼놓았다. 상인 세 명 중 두 명은 권리금 수억원을 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1000만~3000만원 주고 내쫓으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설관리공단 측은 권리금은 서울시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민간업체가 지하도상가 운영권을 가질 경우 상가 임대료가 오를 가능성도 크다. 서울시 측도 주변 시세에 비해 싼 지하도상가 임대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남터미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서울시가 비교하는 주변 상가는 신세계백화점 지하상가다. 5평짜리 지하도상가 월세가 120만원이 넘고 관리비까지 합하면 한 달에 서울시에 내는 돈이 200만원에 가깝다. 얼마나 더 올리겠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재계약을 하지 못한 192개 강남역 지하도상가 점포는 계약 기간이 만료된 시점부터 임차료의 120%를 부과금으로 내고 있다. 그러나 부과금을 내는 것이 대기업에 임차료를 주는 것보다 낫다고 상인들은 주장했다. 대다수 상인들은 지금과 같은 임차 방식, 즉 양도·양수권만 보장되면 임차료와 관리비는 더 올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상인들은 서울시가 상권이 보장된 지역의 지하도상가를 대기업에 넘기려 한다고 의심한다. 대규모 유통회사에서 지하도상가를 노려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존 유통망과 지하도를 연결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2007년 4월에는 상인회가 신세계를 고발하는 사건이 불거졌다. 회현 지하도상가 상권 조사를 나왔다는 신세계 측 아르바이트생들이 서울시시설관리공단 내부 문서를 갖고 있는 것을 상인들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회현지하도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연결된다.

상권 좋은 지역만 민영화 대상?

서울시가 우선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한 구역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상인들은 말했다. 서울시는 시내 전체 지하도상가 34개 구역 중 29개에 대해서는 기존 상인과 3년 재계약을 맺었다. 단, 5개 구역에서는 개·보수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계약 기간이 만료된 점포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강남역 지하도상가가 대표적이다. 강남역 점포 192개는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영업은 하고 있지만 무단 점유를 이유로 공단 측에 명도소송을 당한 상태다.

5개 우선 민영화 대상 구역은 강남역, 고속터미널 1·2·3구역, 영등포역 지하도상가다. 정 이사장은 “5개 구역은 서울 지하도상가 중 매출이 가장 높고 권리금이 비싼 상위 5개 지역이다. 상식적으로 민영화하려면 장사가 잘 안 되거나 시설이 열악한 지역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좋은 상권을 대기업에 주려는 속셈이다”라고 말했다.

상인들의 의구심은 한 지하도상가 재개발 전문업체의 2009년 신년사에 의해 더욱 구체화됐다. 대현실업은 지난 1월2일 회장 명의로 임직원에게 “서울시 소재 지하도상가의 민간위탁 운영방침의 변경은, 서울에 신규 사업장을 개발하고자 우리가 기울인 노력의 결과이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신년사를 보냈다. 신년사에는 2008년 서울시 의회의원과 시설관리공단 및 서울시 간부들이 대현프리몰 대구점과 부산점을 둘러보고 대현실업의 ‘탁월한 관리력을 인정’했다고 쓰여 있다. 대현실업은 부산·대구·안양 등지의 지하도상가 재개발을 도맡았다. 이를 두고 상인들은 “서울시가 대현실업과 입을 맞추고 지하도상가 민영화 계획을 세웠다”라고 주장한다. 대현실업 신규사업팀 측은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5월11일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업체에 한해 서울시가 입찰기회를 준다. 우선 이 사업설명회에는 참석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올해 안으로 진행될 고속터미널과 영등포역 지하상가 개·보수 공사는 각각 통로가 연결되어 있는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측에서  입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인들은 지하도상가 민간위탁 운영방침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방침을 수년째 지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서울시와 상인회 사이에 같은 충돌이 있었다. 결국 5년 재계약으로 미봉한 것이 지금 다시 터진 것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서울시와 상인들 간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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