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를 맡은 페이 더너웨이(왼쪽)와 워런 비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67년작 할리우드 영화다. 페이 더너웨이와 워런 비티가 주연한 이 영화의 원제는 ‘보니와 클라이드’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멋있는 제목은 일본 사람들이 지었고 우리는 그걸 빌려 쓴 거야. 미국의 대공황 시대, 즉 1930년대 보니와 클라이드라는 막 나가는 남녀 범죄자가 은행을 털고 강도짓을 벌이며 종횡무진하다가 결국 보안관들의 일제사격을 받고 처참하게 죽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야.

보니와 클라이드는 실존 인물이었어. “겨우겨우 먹고살았던 두 범죄자의 삶을 미화하고 그들이 저지른 여러 중범죄들을 벤조 음악에 실어 피카레스크식(주요 등장인물이 도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를 이끄는 구성) 모험극 정도로 묘사했다(마크 C. 칸즈 지음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왜 보니와 클라이드는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도 영화의 소재가 됐고, 사실 왜곡 논쟁을 넘어서 젊은 영화 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보니와 클라이드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보니 파커는 매우 영민한 소녀였어. 어린 나이에 시를 쓰고 공부도 곧잘 한 매력적인 아이였지. 하지만 그의 가족에게도 대공황이 덮친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당이 쫄딱 망한 거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보니에게 버젓한 일거리는 주어지지 않았어. 식당 종업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보니는 열여섯 살에 거의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지만 남편은 강도 혐의로 곧 감옥신세를 지게 돼. 실질적인 결혼 생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지만 보니는 그와 이혼하지 않았어. 보니가 전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감옥에 있을 때 이혼하는 건 좀 더러운 모양새잖아.” 언뜻 보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일화야.

식당 종업원으로 일할 때 가난한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는 문학소녀 보니는 어느 날 이미 상습적인 범죄자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던 클라이드 배로를 만난다. 클라이드 역시 대공황의 희생자였어. 그는 텍사스의 가난한 농민이었던 부모 아래에서 자랐지. 배우지 못하고 기술도 없는 젊은이에게 대공황의 파도는 버겁고 힘겨웠다. 좀도둑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 클라이드는 감옥을 들락날락했고 그 와중에 보니를 만난 거였어. 클라이드의 사진을 보면 꽤 귀여운(?) 인상이다. 그는 뻔질나게 감옥을 출입하면서 독이 잔뜩 오른 “방울뱀으로 변신(동료 재소자의 표현)”하고 있었지만 세상이 온통 꽉 막혀 있던 보니에게는 방울뱀의 딸랑거림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 보니는 감옥에 면회를 가면서 클라이드에게 몰래 권총을 건넸고 클라이드는 그걸로 탈옥을 시도하다가 곱징역을 산다. 클라이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발가락을 두 개나 자르는 자해를 한 끝에 가석방되어 세상에 나왔어.

이미 사람 죽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클라이드를, 보니는 서슴없이 따랐지. 담배를 입에 물고 총을 든 보니의 사진은 유명하지만 그가 “강도 행위에 가담해 총을 쏘며 살인을 했다는 세간의 믿음은 소문에 불과했다(〈씨네21〉 2009년 8월11일)”고 해. 시간이 지난 뒤 흘러나온 증언에 따르면 보니가 맡은 역할은 운반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지(그렇다고 공범으로서 죄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떤 이들은 클라이드를 따른 보니를 두고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고 평하기도 했어. 하이브리스토필리아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성 파트너에 대해 사랑을 느끼는 성적 취향을 말하지(김정미 지음 〈연애의 사생활〉). 쉽게 말하면 ‘나쁜 남자’에게 빠져드는 기이한 심리 상태라고나 할까.

ⓒ위키백과〈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실제 인물인클라이드 배로(왼쪽)와 보니 파커.

동조할 수 없었으나 공감할 수는 있었다

사람을 거침없이 죽이는 클라이드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보니가 그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다름 아닌 ‘공감’ 때문이 아닐까 싶어. 대공황의 칼날 아래에서 어떤 이들은 피눈물 흘리며 숨을 죽였지만 어떤 이들은 방울뱀의 독기를 키워갔다. 그 모습을 속속들이 지켜본 보니는 그들의 타락을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탓으로 돌렸지. “클라이드를 흉악범으로 보지 않고 희생자로 생각했고, 대공황기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던 자신을 그와 동일시(〈연애의 사생활〉)”할 수 있었던 거야.

한때의 문학소녀 보니는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중 클라이드에 대한 마음을 읊은 시 하나. “사람들은 그를 냉혈인간 살인자라 하지요./ 사람들은 그를 인정도 없고 비열한 인간이라 하지만/ 나는 그가 정직하고 올바르며 깨끗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법이 그를 우롱했고/ 그는 체포되면서/ ‘나는 석방될 수 없으니 그들을 지옥에서나 만날 거야.’ 외치면서/ 감옥에 갔습니다.”

이렇게 보면 보니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클라이드의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한 단말마적인 복수에 동참한 셈이야. 짧고 끔찍한 복수의 기간에 그들은 악마와 인간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포드 자동차를 타고 엄청난 운전 실력으로 몇 개 주를 넘나들면서 수십 달러 때문에 누군가의 목숨을 파리처럼 앗아가다가도 “자동차 성능이 매우 좋다”라고 포드에게 칭찬 편지를 보내고, 기껏 납치한 사람에게 차비까지 주며 돌려보내는 기행을 벌이면서 말이야. 대공황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보니와 클라이드의 범죄행각을 혐오하면서도 은근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지. 이처럼 보니와 클라이드는 이중적이고 양면성을 지닌 ‘커플 갱’이었어. 루이지애나주의 한 소도시에서 보니와 클라이드가 그들을 노리며 잠복해 있던 경찰 추격대의 총탄에 맞아 벌집이 되어 죽었을 때, 이 경찰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목소리 뒤로 “겁쟁이에 비열한 놈들”이라는 비난이 일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사망한 지 80년 넘게 흘렀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어왔단다. 이건 그들의 스토리가 남긴 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게 도저히 동조할 수 없으나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고단하게 하는 세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일 거야. 보니와 클라이드가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은 존 스타인벡이 쓴 〈분노의 포도〉의 무대이기도 했어.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 가족이 빚을 갚지 못하자 은행이 보낸 트랙터가 주인공네 땅과 집을 갈아엎어 버린다. 트랙터 기사는 미안해하며 이렇게 얘기하지. “은행은 사람보다 더 강해요. 괴물이라고요. 사람이 은행을 만들었지만 은행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이런 괴물 같은 ‘은행’을 털었을 때 〈분노의 포도〉 속 주인공 식구들은 어떤 심경이었을지 짐작해보기 바란다.

자기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만 드높은 시대는, 그리고 그런 냉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배부른 사람들의 천국과 배고픈 사람들의 지옥으로 갈리게 마련이야. 보니와 클라이드는 일면 악마 같은 사람들이었어. 악마를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악마를 찾고 응징하는 것도 요긴하겠지만 사회에서 지옥의 영역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악마는 지옥에서 판을 치게 마련이니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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