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질문 하나에도 답변할 말을 고르는 시간이 길었다. ‘연구자가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동자동 사람들〉(빨간소금)을 쓴 인류학자 정택진씨(30·사진)는 스스로를 상찬하고 자의식이 커진다면 ‘동자동’ 주민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고 봤다. 너무 멀면 그들의 삶을 타자화하고 전시할 우려가 있다. 너무 가까우면 그들의 삶을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책에는 저자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다 할 의견이나 대안이 없다. 그는 “연구가 끝나고도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동자동 쪽방촌에서 그저 함께 살았다. 연구 대상인 주민들과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스스로 해석한 서사를 썼다.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인 ‘에스노그래피’다. 그는 자신의 석사논문 〈쪽방촌의 사회적 삶: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를 바탕으로 지난 1월 단행본 〈동자동 사람들〉을 펴냈다.

쪽방촌에 대한 주목은 많은 편이다. 언론은 대개 노후한 환경에 집중했다. 좁고 냄새나는 방, 물이 새는 화장실 등 그가 보기에 이는 삶의 배경이다. 낡고 오래된 환경 자체는 주민의 삶이 아니다. 사회과학 분야의 선행 연구는 양극단 결론에 그쳤다. ‘사회적 고립과 단절, 고독한 상태’이거나 ‘가난하지만 서로 돕는 공동체’ 같은 식이다. 정택진씨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구체성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비 연구 중이던 2017년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에서 활동하며 이들의 관계를 엿보았다. 동자동 주민이 현재 느끼는 고통(가난·자존감 박탈·인격 손상 등)이 어떤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것을 연구의 출발로 삼았다.

서울시 용산구의 동자동 쪽방촌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빈민 밀집 거주지역이다. 서울시 쪽방촌 거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자동에는 2019년 현재 1328개의 쪽방에 1158명이 거주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숙인의 일부가 흡수되면서 인구와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제도적 개입이 늘었다. ‘기초생활수급제도’ ‘무연고 장례’ ‘무료 물품 지원’은 동자동 주민의 삶을 바꿔놓았다. ‘개입’이 매개가 된 관계가 새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다. 결국 쪽방촌에 거주하는 것은 좁고 열악한 환경에 산다는 사실만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쪽방촌 주민이기에 받을 수 있는 지원과 혜택을 정당하게 획득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연합뉴스2019년 현재 동자동에는 1328개 쪽방에 1158명이 거주한다.

온전한 삶을 위한 시도와 실패의 반복

정택진씨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약 9개월간 동자동 쪽방촌에서 지냈다. 주민 자조조직 ‘동자동 사랑방’과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병원갈 때 동행하거나 마을을 청소하고 같이 식사를 준비했다. 주거지원사업 지원, 장례 참석, 추석 행사 준비 등을 통해 주민들과 관계를 맺었다.

동자동 주민 정영희씨(가명)는 대뜸 정씨에게 “돈 좀 달라”라고 전화했다. 둘은 안면이 있는 정도의 사이였다. 알고 보니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편이 영희씨의 기초생활수급비 51만원 가운데 30만~40만원을 매달 가져갔다. 대신 관리한다는 명목이었다. 남편의 부탁으로 영희씨는 브로커에게 휴대전화 명의를 ‘빌려주고’ 미납금 660만원이 쌓인 상태였다. 전남편의 가정폭력에 따른 트라우마에 지적장애·질병이 있는 영희씨는 남편에게 과하게 의존하고 있었다. 정택진씨는 명의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사이, 미납금은 100여만 원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영희씨는 남편을 비난하지도 떠나지도 못했다. 서울시 주거지원사업에 당첨돼 임대주택으로 이사하고도 그는 다시 동자동으로 왔다.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경제적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영희씨는 주거가 안정된 뒤에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남편에게 돌아왔다. 절반이 넘는 수급비를 강탈당하면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공하지 못하는 돌봄의 공백을 그를 통해 메웠다.

‘공짜 자장면’이나 ‘자활사업’ 같은 지원에도 주민들은 온전한 삶을 경험하지 못한다. 단체와 기업의 일방적인 지원은 동자동 주민에게 자존감 박탈과 인격 손상을 가져다준다. 동자동에 위치한 G 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자장면 나누기 행사를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동자동 전체에 자장면을 배달한다. 그러나 주민 박현욱씨(가명)는 자장면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혜택을 받는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태도였다.

박현욱씨는 ‘동자동 사랑방’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1000원을 내고 식사를 해결했다. 이따금 고생한 자원봉사자, 평소 신세를 진 주민에게 ‘한 턱’을 내고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박씨처럼 대다수 주민은 ‘물품 지원 단체’를 욕하거나 험담했다. 물품의 질이 나빠서는 아니었다. 연구자로서 정택진씨는 “위계적 관계를 거부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판단했다.

또 다른 동자동 주민 정민규씨(가명)는 “하루 한두 시간 일하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면 한 달에 거의 1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활사업을 거부했다. 대신 ‘동자동 사랑방’ 쓰레기를 줍고 공간을 정리하며 식사 준비와 잡일을 도왔다. 그는 “받은 게 많아서 돌려주려는 거다”라고 말했다.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실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씨는 “100만원을 포기하는 비합리적 주체”이다. 기존 자활·자립 개념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다.

정택진씨는 이번 연구에서 동자동 주민의 ‘사회적 삶’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개입’에 대한 비판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복지의 수혜자가 된다는 점은 그에 수반되는 윤리적 낙인과 부정적 시선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품 지원 ‘줄서기’는 주민들을 통제의 대상이자 순응적 주체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준다. 때때로 ‘줄서기’는 ‘그림’이 되고, 주민들은 자존감 손상을 느낀다. 그는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것은 자기 소모, 인격 손상과 무력함을 견뎌내는 일의 연속이다. 온전한 삶을 획득하기 위한 시도와 실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책 끝에 그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이유를 썼다. 섣불리 ‘이렇게 하면 나아질 것이다’라고 미래를 제시하는 방식이, 지금까지 쪽방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실패한 요인이라고 생각해서다. 정택진씨는 “‘지금 여기’를 그려낸 이 책을 통해 독자와 주민들 사이에 부분적인 연결이 생겨났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음과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학자로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답을 찾는 일이 남았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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