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2월3일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 앞에서 유럽티베트청년협회 등이 동계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였다.

내년 2월 중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벌써부터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보이콧 움직임이 본격화할 조짐이어서 가뜩이나 악화일로인 미·중 관계가 스포츠 분야까지 확산될지 관심이 뜨겁다. 더구나 지난 1월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대외정책의 핵심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필 올림픽 보이콧의 이유가 중국의 인권 및 민주화 탄압이라는 점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든다.

현재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다소 유동적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월25일 참가 여부와 관련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라고 말해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불과 3주 전인 2월3일 그가 “미국은 동계올림픽 참가 여부를 바꿀 계획이 없다”라고 단언한 것에 비하면 톤이 다소 바뀐 분위기다. 미국 정부는 자국 올림픽 선수단의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에 대해 간섭할 권한은 물론 없다. 참가 여부 결정은 전적으로 미국 올림픽위원회가 한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 정치권에선 여야 가릴 것 없이 보이콧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역 의원으로는 집권 민주당에서 톰 맬리노스키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맬리노스키 의원은 정계 입문 전 인권 활동가로 이름을 떨쳤고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 시절 국무부 민주주의 및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인종학살을 자행한 나라를 비난하면서 그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할 수는 없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나라’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또 ‘인종학살’이라는 표현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소수민족(위구르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정책을 일컫는다. 이 표현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이 퇴임 직전인 지난 1월19일 중국을 겨냥해 “신장웨이우얼 소수민족 정책은 ‘반인륜 범죄’이자 인종학살”이라며 강력히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의 언급과 관련, AP 통신은 중국 정부가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에 대해 강제적인 산아제한을 실시해 2015~2018년 출산율이 최대 60%까지 감소했고, 미국 정부가 일련의 대중국 제재조치를 취한 사실을 지적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강제 산아제한 조치 말고도 최소 100만명 이상의 위구르인들과 이슬람계 소수민족들이 신장의 수용소에 수감돼 있으리라 추정한다.

현재 미국 정치권의 보이콧 움직임은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릭 스콧 상원의원을 포함한 공화당 상원의원 6명은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려야 한다”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2월3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보냈다. 스콧 의원은 “중국은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종학살을 일삼고 홍콩인들의 인권을 제한하고 타이완을 위협하고 있다”라며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 마이크 월츠 공화당 하원의원도 〈폭스뉴스〉에 출연해 “미국 선수들이 최악 중 최악의 권위주의국 중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걸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존 카트코 공화당 하원의원은 2월22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의 올림픽 참가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 가치를 훼손한다”라며 보이콧을 촉구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절 유엔 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는 〈폭스뉴스〉에 나와 “중국은 1936년 나치 독일보다 더 위험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보이콧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영국 등 일부 나라들과 국제 인권단체들도 동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계위구르회의, 국제티베트네트워크를 비롯한 180개 국제 인권단체 연합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인권탄압을 들어 올림픽 보이콧을 전 세계에 촉구했다. 캐나다 의회는 ‘중국의 위구르 소수민족 인종학살이 계속되면 동계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캐나다 정부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요구하라’는 결의안을 2월22일 통과시켰다.

ⓒAP Photo톰 맬리노스키 민주당 하원의원은 중국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는 중국

국제사회의 보이콧 움직임과 관련해 중국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신장 위구르족과 홍콩 문제 거론은 내정간섭이라며 강경한 태도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을 겨냥한 듯 “일부 서방국이 신장 위구르족의 인권을 구실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국가 발전을 막으려 한다. 자국이 저지른 원주민 학살 역사나 마음속 깊이 새겨라” 하고 강하게 반격했다.

이처럼 미국과 국제사회 일부에서 중국 동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의 참가 여부에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다분히 정치권과 인권단체들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가 곧바로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지침(guidance)을 구할 것”이라고 덧붙인 것은 결국 미국 올림픽위원회 결정을 따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미국 올림픽위원회는 일찌감치 참가 방침을 정했고 그것은 변함이 없다. 존 메이슨 미국 올림픽위원회 대변인은 CNBC 방송에서 “운동선수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이콧에 반대한다. 중국의 인권과 정치적 문제는 관련 당사국들이 직접 나서 해결을 모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행동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국제올림픽위원회도 보이콧에 따른 엄청난 부작용 때문에 반대한다.

미국은 인권을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삼은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그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 60개국 이상의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다가 낭패를 본 쓰라린 기억이 있다. 4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자 이번엔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불참해 반쪽 올림픽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2014년에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6개월 앞두고 미국 내에서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지만 불발된 전례가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 ‘동성애 혐오법’을 제정하자 인권단체들이 보이콧을 제기했고, 미국 정보기관의 민간인 정보수집 비밀을 폭로한 전 중앙정보국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러시아 정부가 승인하자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이를 문제 삼아 보이콧 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며 “많은 미국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왔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례를 따를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1년이란 시간이 남은 만큼 향후 신장 위구르족과 홍콩 민주화 등과 관련한 중국 정부의 태도를 주시하며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1월 하순 국무부 중간 간부급 관리들이 일부 핵심 우방에 접근해 중국의 인권 상황을 거론하며 동계올림픽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바이든 행정부 차원의 조용한 탐색 움직임은 진행 중인 것 같다. 백악관은 관련 보도가 나오자 성명에서 “미국은 공통 관심사와 중국에 대한 공동 접근 차원에서 동맹과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의한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과거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하고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 설령 미국이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해도 중국 정부가 ‘내정’으로 간주한 신장 위구르족, 홍콩 문제와 관련해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보이콧으로 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금껏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한 나라는 없다. 그 때문에 오히려 미국을 포함해 각국에서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의 보이콧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를테면 각국 정부의 장관이나 외교단이 올림픽 경기장이나 개폐회식에 가지 않거나 소비자 단체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고, 심지어 올림픽 참가자들이 중국의 인권 및 민주화 탄압을 비난, 항의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실제 미국의 국제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동계올림픽이 열려도 각국 정부 관리들과 문화·스포츠계 인사들은 경기장 참석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 글로벌 이니셔티브 국장은 〈뉴욕타임스〉에 “보이콧은 여러모로 상징성이 큰 만큼 민간 차원의 보이콧도 개최국이나 올림픽 참관객들에게 압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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