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20년 10월27일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 부두와 야적장에 수출 대기 중인 완성 차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IONIQ5)가 완판됐다. 2020년 2만6500대로 계획된 물량은 2월25일부터 이틀 만에 모두 소진됐다. 아이오닉5는 현대차 역사상 처음으로 전용 생산라인을 울산 제1공장에 구축해서 만드는 전기차다. 현대차는 이미 코나 등 배터리 전기자동차와 수소 전기자동차를 생산해왔다. 그러나 이 모델들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라인에서 혼류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아이오닉5와 다르다.

아이오닉5의 완판은 전기차가 ‘미래 먹거리’에서 ‘주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도입 속도가 예상보다 현저하게 빠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2000년대 들어 연 생산량 기준 글로벌 톱 5에 오르며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 전략을 성공시켰던 현대차는 이제 미래 먹거리에서 새 입지를 확보하며 ‘탈추격’의 순간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차의 거점인 울산에서 1년여 동안 ‘산업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울산 인구의 감소다. 울산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공장(현대차)은 물론 조선소(현대중공업)까지 보유한 산업도시다. 그러나 울산 인구는 2015년을 분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5년 119만9700여 명으로 120만명을 바라보던 인구는 이듬해부터 감소해서 2020년에는 115만명으로 축소되었다. 1년에 인구 1만명이 줄어드는 셈인데 감소 폭이 갈수록 커진다. 인구 감소는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저출산의 영향이다. 2015년에 1.49를 기록했던 울산의 출산율은 2020년 3분기에는 1.01로 줄었다. 전국적인 저출산 트렌드를 울산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 다만 울산은 지금까지는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아이를 적게 낳는 도시가 아니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산업도시는 아이를 낳기보다 일자리를 통해 유입되는 인구로 규모를 키워왔다. 전국적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812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에 달하지만 울산의 고령인구는 11.7%에 불과하다. 또한 울산은 평균연령 40.9세로 전국에서 네 번째로 젊은 도시다. 정리하자면, 울산의 인구 감소가 저출산 고령화만으로 벌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두 번째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 인구 유출이다. 먼저 2015년 이후 계속 울산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조선업 구조조정이다.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당시 조선업계 빅 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해양플랜트 건조를 통해 예전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다만 그 일자리들은 이른바 ‘물량팀’으로 알려진 일용직, 단기계약직, 사내하청 상용공 등 비정규직 고용 형태였다.

이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서 30~ 40달러로 떨어져 채산 단가가 맞지 않는 상황이 오자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해양 원유 생산이 줄어들었다. 졸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조선업계의 해양플랜트 건조는 고객(글로벌 석유기업들)의 빡빡한 관리를 받으며 적자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마저도 건조 물량이 줄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한꺼번에 증발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한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울산을 떠나게 되자 인구가 유출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덩달아 미·중 분쟁이 심각해지고 중국 경제가 일련의 조정을 거침에 따라 자동차 수출도 줄어들었던 것이 201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자동차 관련 하청업체들이 경영상 어려움에 빠지면서 고용이 축소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른바 ‘경기론자’들은 앞으로 조선 경기나 자동차 경기가 살아나면 수출 신장에 따라 고용 등 많은 문제점이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유가상승 및 경기회복 국면이 오면 울산의 3대 산업(조선·자동차·석유화학)이 실적을 크게 개선하면서 울산이 잘 발전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구도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은연중에 들을 수 있다. 1970년대 무지막지한(?) 목표를 과감하게 설정하며 “해봤어?”라고 호통치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밑에서 밤을 새워 어려운 숙제들을 풀어온 산업역군들의 기상이 느껴진다. 이제 경기회복 국면만 오면 된다.

그러나 경기회복 국면이 도래하고 3대 산업의 업황이 최고조로 치솟는다 해도 울산의 인구 감소가 해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울산만이 아니다. 포항·창원·거제 등 내로라하는 산업도시가 모두 그렇다. 주력산업이 다시 잘나가게 된다 해도 이 도시들의 인구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왜 그런가? 역시 울산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2월23일 공개된 현대차 아이오닉5. 전기차는 ‘미래 먹거리’에서 주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산업도시의 ‘막대한 부’, 10년도 안 남았다

현대자동차는 생산직 신규 채용을 몇 년째 중단하고 있다. 법원 판결에 따른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제외하면, 현대자동차는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를 채용할 계획이 없어 보인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근면 성실하면 먹고살 수 있었던 ‘노동자 도시’의 신화는 입구부터 막혀 있다. 2013년 5월 ‘현대차 노동자 유족의 특별 채용이 불가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고용 세습이 불가능해졌다. 현대차의 상급 협력업체로 정규직 취업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고용이 이뤄지는 생산직 일자리의 경우 저임금에 해고까지 자유롭다. 울산대 조형제 교수가 정립한 개념인 ‘기민한 생산방식’의 영향이다.

현대자동차의 생산은 생산직 노동자들의 손끝 숙련이 아니라 대졸 이상 경력인 생산기술팀 엔지니어들의 공학적 역량에 의지한다. 노동자들의 작업은 점점 더 단조롭고 숙련을 형성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게다가 전국에서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기록해온 울산 청년들은 생산직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 3대 산업이 원하는 노동자는 공과대학을 나온 엔지니어이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을 보유한 30대 이상 생산직이다. 이로 인해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과부족, 생산직 일자리는 공급초과의 상황이 벌어진다.

더욱이 대졸 이상 엔지니어 채용은 점차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연구 기능은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에 집중되어 있다. 남양연구소는 시작차와 파일럿 카 제작을 맡아 양산 전의 공정 대부분을 수행한다. 전기차 부품의 핵심인 전장 제품 업체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자리를 잡았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한국조선해양 글로벌 R&D(연구개발) 센터를 2022년까지 경기도 판교로 이전할 계획이다. 선박 설계는 생산직 노동자들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아야 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 역시 수도권에서 수행할 수 있는 일로 분류되는 중이다. 산업도시 울산은 제조업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기능을 모두 수도권으로 이전시키고 있다. 대졸 이상 일자리가 울산에 생기기 어렵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울산의 상황은 거제·창원·포항 등에서 되풀이된다. 산업도시 청년들은 이처럼 구조적인 ‘노동시장 미스매치(기업이 수요하는 일자리와 노동자가 공급하는 기능이 어긋나는 현상)’ 상황에 놓여 있다. 젊은 여성들의 정규직 일자리도 없는 환경까지 고려하면, 동남권 산업도시의 인구 감소는 시간이 갈수록 수도권보다 가파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2030년 즈음에는 가장 많은 인원을 고용했던 1980년대 입사자인 1960년대생들이 모두 정년퇴직하게 된다. 도시 인구가 줄어드는 숫자만큼 공장에서는 정년퇴직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산업도시들이 누려왔던 ‘막대한 부’가 모두 신기루처럼 날아가버릴 순간이 채 10년이 남지 않았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산업의 경기회복 국면이 오고 기업들이 흥한다 해도 지금의 이런 모순들이 풀리지 않으면 산업도시의 재생산 문제를 풀 수 없다.

ⓒ시사IN 신선영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울산을 떠나며 인구가 유출되었다. 사진은 2016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지금의 상황은 두 차원의 문제 누적으로 발생했다. 첫 번째 차원은 국토계획 관점에서의 지리적 분업 문제다. 제조업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설계, 연구개발 등 ‘구상(構想)’ 기능은 모두 수도권에 있고, 울산과 동남권 산업도시들은 주로 생산을 담당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대기업 본사들은 가능하면 서울에 입지를 두려고 애써왔다. 이른바 ‘유능한 인재’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금융 및 정부 관련 문제 등을 풀려면 본사가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대에 도래한 새로운 상황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이래 수도권 규제를 다 풀어버리면서 생산이라는 ‘실행’ 기능 자체도 수도권으로 이전시키게 됐다. 쉽게 말해 대공장도 SK하이닉스처럼 수도권에 짓게 된 것이다. 더불어 대기업의 자본조달 능력이 현저히 상승했기 때문에 정부를 통해 차관을 받고 정부가 계획한 입지에 공장을 지을 필요가 사라졌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보란 듯이 막대한 자본을 퍼부어 대산 석유화학단지 건설 경쟁을 벌였던 것이 이미 1990년대의 일이다. 취업준비생과 노동자 관점에서는 괜찮은 일자리들이 사무직, 생산직 할 것 없이 수도권에 늘어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차원은 작업장 단위에서의 적대적 노사관계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1987년 이전의 ‘설움’과 1998년 정리해고 당시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20년째 고용보장에 대한 확약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사측을 불신한다. 재직 중에 더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을 받고자 한다. 그 결과 ‘연봉 1억원 중산층 노동자’가 탄생했다. 이와 함께 사측은 임금협상의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협력업체에 전가했다. 조선업에서는 작업에 수반되는 위험까지 하청노동자에게로 옮겼다.

결국 회사 측은 금전적 비용과 갈등 비용 모두를 발생시키는 정규직 생산직의 신규고용을 하지 않는 쪽으로 인사정책을 정해버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공시생과 취준생 자녀의 학원비를 대기 위해 정규직 아버지는 더 많이 벌려고 투쟁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산업도시의 회사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평균적 국민정서는 대충 다음과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 호의호식했으니 앞으로도 알아서 살게 놔두자. 대신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공적자금 같은 지원은 기대하지 말라.’ 그 정서엔 산업도시의 노사가 함께 일종의 ‘지대추구’를 해왔다는 의심이 짙게 깔려 있다.

왜 울산(동남권)을 살려야 하나

최근 경남 산업도시들 일각에서 제기되는 ‘고진로(高進路) 전략’은 이런 ‘지대추구’ 상황을 깨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우선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다면 생산성도 높여서 고부가가치의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제조 역량’이라는 용어가 있다. 테슬라가 ‘파괴적 혁신’으로 전기차 시장을 이끌지만, 여전히 품질이나 마감의 문제를 온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기술과 노동자들의 숙련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해서다. 한때 ‘흉기차’ 소리를 듣던 현대차의 품질 향상 원인을 분석해보면, 엔지니어들의 고급 두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로봇과 공작기계로 대체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손끝 숙련’ 역시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아웃소싱이나 해외 공장 건설로 대체할 수 없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작업장 및 노동조직의 힘을 ‘제조 역량’으로 부를 수 있다. 이런 제조 역량이 사라진 작업장은 너무나 가볍고 대체 가능한 것이 되어, 전기차처럼 산업을 재편할 ‘게임 체인저’가 등장할 때마다 존폐를 걱정한다. 작업장에 제조 역량이 묵직하게 자리 잡으며 현장 기반 혁신의 핵심으로 기능해야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다.

ⓒ연합뉴스1988년 현대차 울산공장. 동남권은 ‘땀 흘려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곳이다.

결국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제조업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먼저 직무급 도입을 통해 인센티브 구조를 일정 부분 바꿀 수 있다. 당장 직무급 도입이 어렵더라도, 정신교육 일색인 노동자들의 교육 체제를 생산직 노동자들의 숙련과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지역 대학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숙련 노동자의 직무교육과 연계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들이 공채로 생산직을 뽑지 않는다면 적정한 숙련이 형성된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력 수시 채용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민들과 다양한 산업군의 회사들이, 지역의 생활수준과 임금수준을 함께 테이블에 놓고 ‘미래’를 교섭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 대신 생산성 향상 및 기업 경쟁력 높이기에도 기여하는 ‘고진로 전략’은 신규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합의 테이블을 만들어 이해당사자들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짜야 한다. 첫째, 직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경계선을 허무는 ‘분배 동맹’이 필요하다. 현재 각 지역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는 새로운 기업 유치나 특정 토건 프로젝트의 수주 등을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역 경사노위가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과제는 ‘교섭력 없고 임금을 적게 받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교섭력 강화’ ‘격차 축소’ 등을 위한 분배 동맹이다. 둘째, 이런 분배 동맹은 도시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성장 동맹’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셋째, 이런 바탕 위에서 제조 역량을 고도화하면 현장을 기반으로 혁신을 창출하는 엔지니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셋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왜 굳이 온갖 궁리를 해서 울산(동남권)의 산업과 도시를 살려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한민국 동남권이 전국 각지에서 살기 위해 몰려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땀 흘려 일하면 가족을 꾸리며 넉넉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했던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와 전문직, 서비스산업의 도시인 서울 수도권 역시 산업도시들이 창출한 부의 이전을 통해서 지금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정작 수도권에선 높은 주택 가격과 생활 비용으로 아우성이 나오는 현재 상황에서, 수도권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지역 중 하나가 동남권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지역의 생존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고진로 전략은 울산을 비롯한 산업도시들의 선택에 달렸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기자명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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