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2월1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한 교회에 주민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러 들어가고 있다.

집단면역은 우리나라만 달성한다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백신을 접종한다 하더라도 나라 밖 다수가 접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의 백시네이션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쟁점을 미리 알아두면 우리도 준비하고 대응하는 데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나라 백시네이션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해외의 코로나19 백신접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어떤 난관이 발생했고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시사IN〉은 해외 코로나19 백시네이션의 현황과 쟁점, 과제를 살펴보는 전문가 연속 기고를 게재합니다. 첫 순서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변함없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서 압도적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 시스템사이언스·엔지니어링센터(CSSE)가 제공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3월1일 기준 미국 코로나19 총 확진자 수는 2800만명, 사망자는 51만명을 넘어섰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1월 말부터 여러 주요 지표(검사량, 확진자 수, 사망자 수, 입원율)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2월23일 기준 미국은 인구 100명당 19.65명에게 접종을 완료해 이스라엘, UAE,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빠른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건의료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카이저패밀리재단(KFF)에 따르면, 요양원에서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된 지난해 12월21일 대비 2월7일 주간 사망자 수는 66%가 하락했다. 추후 연구에서 좀 더 엄밀한 인과관계를 밝혀야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백신접종이 이러한 변화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백신이 제조되어 실제 접종되기까지는 수많은 결절점이 존재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 작업 흐름을 크게 백신 제조(manufacturing), 할당(allocation), 주문(ordering), 배송 및 전달(shipping/delivering), 집행(administration)이라는 다섯 국면으로 구분한다. 각 국면은 다시 구체적인 단계들로 세분할 수 있다. 첫 번째 국면인 ‘백신 제조’를 미국의 상황을 통해 살펴보자. 화이자 백신에 필요한 DNA는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제조된다. 박테리아에 의해 대량 증식된 DNA는 정제와 냉동 처리를 거쳐 매사추세츠주 앤도버로 옮겨진다. 여기서는 이 DNA를 활용해 mRNA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생산된 mRNA는 동일한 처리를 거쳐 미시간주의 캘러머주에 도착한다. 이 시설에서는 mRNA를 지질나노입자와 결합해 최종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제조하고, 이를 바이알(약병)에 담아 밀봉한다. 최종적인 검사와 포장이 끝나면 백신 제품은 초저온 냉동고에 보관되어 출하를 기다린다.

일반적인 계절성 독감 백신이라면 공정 자체의 이러한 복잡성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한 나라 전체 인구, 나아가 전 세계 인구 상당수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형성해야 할 만큼 많은 물량을 극히 단기간에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단면역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숫자만큼 시민의 팔에 백신 주사를 놓는 일이 결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특히 미국처럼 땅이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예방접종’ 대신 ‘백시네이션’이라는 용어를 택한 것은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다. 백신 개발과 상용화가 팬데믹의 ‘게임 체인저’임은 분명하지만, 엔드게임을 종결하는 역할은 오롯이 백시네이션에 달려 있다.

■ 백신은 티셔츠가 아니다:공급과 할당에 관한 고차방정식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공급에 관해 희망적인 전망이 가능한 여러 조건이 있다. 2월에는 일일 생산량이 최대 약 160만 도스까지 늘어났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미국은 5월 말에 이미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만으로도 6억 도스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2월27일자로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존슨앤존슨 백신까지 포함하면 물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백신 제조는 티셔츠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충분한 양의 원재료 확보에서부터 생산 역량을 급속도로 확충하는 동시에 질 관리를 통제하는 작업까지, 백신 공급 체인의 단계마다 병목현상이 발생할 위험이 적지 않다. 실제 생산 역량이 크게 늘어난 지금도 뉴욕을 비롯한 상당수 지역에서 여전히 백신 공급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기업 간 제조기술의 이전이나 생산설비의 공동사용과 같은 민감한 쟁점들을 연방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통해 어떻게 조정해낼 수 있느냐가 낙관적 전망을 현실화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백신을 생산하게 되면, 이 한정된 물량을 어떻게 할당할지 결정해야 한다. 백신 상용화 이전부터 연구자들은 우선순위 문제를 고심해왔다. 미국 내 이에 관한 준거로는 두 가지 문건이 대표적이다. 하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CDC의 의뢰로 미국 과학·공학·의학한림원(NASEM)이 펴낸 보고서이다. 다른 하나는 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의 권고안이다. NASEM 보고서는 ACIP 권고안을 작성하는 준거가 되었고, ACIP 권고안은 주정부의 백시네이션 계획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두 문건 모두 고위험에 노출된 보건의료 인력을 제1순위에 놓았지만 이후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차이가 난다. NASEM 보고서는 응급요원, 경찰, 소방관과 같은 1차 대응요원을 ‘시동 국면(Jumpstart Phase)’인 1A에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ACIP 권고안은 보건의료 인력과 더불어 장기요양시설 거주자를 최우선 접종 대상으로 삼았다. NASEM 프레임워크의 경우 이들은 고위험 기저질환 보유자와 함께 1B에 속한다.

미국의 각 주는 이런 준거들을 조금씩 달리 적용했다. 주정부는 각자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 따라 예방접종 우선순위의 단계나 해당 집단을 다르게 배치할 수 있다. 일례로 오리건주는 통상적인 병원, 요양원 및 기타 장기요양시설에 근무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뿐 아니라, 원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의료 서비스 노동자 역시 1A에 할당했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비롯한 소수민족이 백인보다 평균적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이는 타당할 뿐 아니라 윤리적인 결정이다.

ⓒAFP PHOTO지난해 12월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 따로 또 같이, 백시네이션에 작동하는 미국 연방주의의 특수성

지역별 백신 할당 계획이 수립되면 그에 따라 제조사에 주문이 들어가고, 생산된 물량이 해당 지역으로 배송된다. 현지 사정에 따라 백신은 실제 접종을 집행하는 당사자인 주 보건부, 병원 또는 약국으로 전달된다. ‘최종 문제(last-mile)’라 불리는, 백신의 보관·운반·접종 과정의 다양한 이슈들 역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예컨대 냉동고 같은 관련 장비가 고장나거나 접종 인력이 부족해서 예상보다 훨씬 긴 대기시간이 발생한다면 환경변화에 민감한 백신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히스패닉 대상자가 접종 예약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백신의 전달과 집행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백신의 ‘전달’과 ‘집행’이 동일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은 관련 통계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CDC에 따르면 2월24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8866만9035도스가 미국 전역에 전달되었다. 그 가운데 실제 집행된 분량은 6646만4947도스이다. 알래스카(21.7%), 뉴멕시코(20.3%), 사우스다코다(18.9%), 코네티컷(17.6%), 노스다코다(17%), 웨스트버지니아(16.4%) 순으로 높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지만, 주 보건의료 정책에 특화된 싱크탱크 NASHP(National Academy for State Health Policy)의 데이터에 따르면 대다수 주의 백시네이션은 아직 1B 국면에 머물러 있다. ‘2’ 국면으로 넘어간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매사추세츠, 아이다호, 오클라호마, 캔자스 등 5개 주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백시네이션과 같은 공중보건 사업의 입안과 집행은 공공안전과 관련된 업무로, 군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주정부 소관이다. 미국 정치제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연방주의 원리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연방정부는 표준화된 백시네이션을 강제할 수 없으며, CDC와 같은 주무 연방기관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권고할 따름이다.

통합 혹은 분권 사이를 넘나드는 미국 연방주의 특성이 백시네이션 과정에서 잘 나타난 장소 중 하나가 장기요양시설이다. 현재 미국에는 1만5000곳 넘는 요양원과 약 2만9000개의 장애인 거주시설이 산재한다. 주 보건부의 만성적 재정난과 인력 부족을 감안하면 이곳 거주자들에 대한 대규모의 신속한 접종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연방정부가 직접 나섰다. 지난해 10월16일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연방 약국 파트너십(Federal Pharmacy Partnership)’이 대표적이다. 연방정부는 민간 약국 체인인 CVS헬스, 월그린스와 계약해 독점적으로 장기요양시설 거주자에 대한 백시네이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하지만 연방 파트너십에 속한 시설들은 소속 약사나 직원이 아닌 외부 인력이 백신접종을 집행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서 백시네이션의 속도를 올리기 어려웠다. 접종 전 동의서류 작업에 시간이 소요된 점 역시 접종이 지연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이런 상황에서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주목을 받았다. 이 주는 연방 약국 파트너십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주 전역에 위치한 250개 이상의 개별 약국과 협력해 백시네이션을 진행했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이런 전략은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1월 말까지 웨스트버지니아는 알래스카에 이어 가장 높은 접종률을 기록했다.

■ 미국 백시네이션에서 ‘공정’이 화두인 까닭

미국 백시네이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이슈의 교차로에는 인종별 건강형평성이라는 쟁점이 자리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국가전략의 두 번째 목표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공정한 백시네이션’이다. ‘공정한(equitable)’이라는 목표가 눈에 띈다. 전략의 여섯 번째 목표 역시 ‘인종 간 형평성을 제고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인종별 접종률 현황을 보면 그간 코로나19와 관련된 주요 지표에서 관찰된 인종 간 격차 패턴이 여전히 보인다. 2월25일 기준 CDC 통계를 보면 적어도 한 차례 백신을 맞은 인구 중 64.3%가 백인이다. 흑인은 6.5%, 히스패닉은 8.7%에 그친다.

미국에는 백인에 비해 유색인종의 예방접종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와 환경의 장벽이 존재한다. 사회학자 라샨 레이는 불균등한 백신 배분과 집행을 ‘백신 강탈(vaccine hijacking)’ 또는 ‘백신 레드라이닝(vaccine redlining, 유색인종 거주지역에 백신이 전달되지 않는 현상)’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른바 ‘필수 노동자’의 다수가 유색인종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 병가가 없는 조건에서는 이들이 예방접종 예약 시간을 생계와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많은 수의 흑인과 히스패닉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동네에 거주한다. 이런 지역은 의료기관 역시 불충분한 경우가 많으며, 접종 장소(vaccination sites)로 사용할 공간 역시 마땅치 않다.

앞서 소개한 NASEM 프레임워크에서는 공정한 백신 배분을 위해 ‘사회적 취약성 지수(SVI)’와 같은 지리정보의 활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SVI는 유색인종과 취약계층의 코로나19 피해와 직결되어 있는 15가지 센서스 변수에 기반해 취약성 점수를 산출하고, 이 점수에 따라 가장 먼저 백신접종이 필요한 지역을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팬데믹 피해를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을 우편번호(zip codes)를 활용해 선별해내는 방법 역시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다. 바이든 행정부는 연방재난관리청을 통해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접종 장소를 확보하고 백신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뉴욕 주정부처럼 주 수준에서 자체적으로 임시(pop-up) 접종소를 여는 노력 역시 진행되고 있다.

인종별 접종률의 차이가 발생하는 또 다른 요인은 의료계를 향한 유색인종의 뿌리 깊은 불신이다. 상당수 유색인종은 기성 의료계를 불신하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 내 많은 유색인이 1932년부터 무려 40년간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의 흑인 400명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 ‘터스키기 매독 연구’와 같은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다. 흑인들은 매독의 자연적 진행 경과와 그 치료에 대한 임상 연구의 피실험자가 되어 죽어갔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누적된 불신으로 인해 흑인이 임상실험이나 장기기증은 물론이고 의료 이용 일반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경향은 그간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의료계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백신접종에 관한 유색인종의 ‘백신 헤지턴시(백신 주저 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카이저패밀리재단이 실시한 일련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에 관해 중요한 단서들을 제시한다. 지난해 12월 조사에서 미국인의 약 27%가 백신접종을 주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은 35%로 그 비율이 더 높았다(〈그림 1〉). 백인은 71%가 “백신이 공정하게 배분될 것”이라고 답했지만 흑인(62%)과 히스패닉(61%)은 60% 초반에 그쳤다(〈그림 2〉). 1월 조사에서 다른 사람이 먼저 접종하는 것을 “기다려 지켜보고(wait and see)” 맞겠다는 사람들의 비율도 인종별로 차이가 났다. 백인(26%)에 비해 흑인(43%)과 히스패닉(37%)이 크게 높았다(〈그림 3〉). 조사 결과는 또한 흑인과 히스패닉이 백인에 비해 코로나19 감염을 더 걱정하면서도 백신 부작용이나 효과에 대해 더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줬다(〈그림 4〉).

이상의 여론조사 결과는 백시네이션 전략 수립에 관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효과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다. 백신과 그 부작용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흑인과 히스패닉 인구에 충분히 전달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기반한 백시네이션이 필요하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커뮤니티 지도자를 비롯해 목사나 사제 같은 종교 지도자,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자영업자 등이 가장 적합한 메신저일 수 있다. 이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백신을 맞는 일이 안전할 뿐 아니라 왜 공동체에 필요한 일인지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백신을 접종할 장소 역시 결정적이다. 지역에 따라 대규모 접종 시설을 마련할 필요도 있지만, 병원보다는 주민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친숙한 장소에서 백신을 맞도록 하는 게 좀 더 효과적이다. 동네 주민센터, 교회, 미용실이나 이발소, 학교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에모리 대학의 킴벌리 매닝이 지적하듯이, 이들의 주저는 무조건적 거부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천천히 변화 가능한 ‘느린 예스(slow yes)’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정웅기 (존스홉킨스 대학 정치학과 박사 수료·보건정책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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