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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검은 백조(black swan)’는 원래 ‘불가능한 사건이나 존재’를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근대 초엽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고니’가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요즘엔 ‘인간의 합리적 사고 틀로 거의 예측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가끔 발생하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2007년 터진 세계 금융위기입니다. 당시 위기의 원인인 ‘부동산 모기지 파생금융상품’은 통계적으로는 대규모 부도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지요.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저는 ‘한반도 변란’이라는 ‘검은 백조’의 출현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들 합니다만, 한반도 거주자인 저로서는 한국 정부가 화해 무드 조성에 평창올림픽을 잘 활용하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겁쟁이와 태생적으로 다른 용감한 분들이 정말 많더군요. 그들은 한국 정부의 시도가 실패하고 북·미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아 큰 변란이 터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분들은 미국의 북한 폭격을 학수고대했습니다. 한반도 변란이 현실화하면 그들의 개인적 피해도 만만찮을 텐데 무슨 용기로 그랬던 것일까요? 결국 어설픈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북한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적 실체’로 보지 않습니다. 혹은 그렇게 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래야 북한 문제를 ‘한반도 정세 관리’라는 관점이 아니라 오로지 ‘한국 내부의 정적을 공격할 만한 소재’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쓴 남문희 기자는 평창올림픽 직전과 비슷한 북측의 도발이 조만간 재개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괌 주변 해역을 겨냥한 북측의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까지 조심스럽게 예측합니다. 이런 사태의 주역은 북한과 중국입니다. 두 나라가 제각기 자국의 국익에 ‘합리적’인 정책을 추구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다시 불안정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북한과 중국의 목적과 그 수단은 글로벌 차원에서 윤리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이 ‘그들은 나쁘고, 악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라는 윤리적 비난에 그치면 안 됩니다. 북한이 ‘나쁘고 선하고’와 관계없이 ‘한국에게 실질적 피해와 이익을 줄 수 있는 물질적 실체’라는 점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한국의 국익에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민주적으로 도출해내야 합니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이를 위한 〈시사IN〉과 남문희 기자의 작은 노력입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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