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클럽하우스에 개설한 ‘길 위의 살롱’.

클럽하우스는 재미있다. ‘클생(클럽하우스 중심 생활)’에서 ‘현생(현실 중심 생활)’으로 돌아오는 데 대략 열흘 걸렸다. 클럽하우스를 시작하고 처음 열흘가량은 집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운전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심지어 클럽하우스를 켜둔 채로 잠들기도 했다. 클럽하우스는 ‘절대로 끌 수 없는 라디오’였다.

그렇게 ‘현생’을 담보 잡히고서도 클럽하우스를 끊을 수 없었던 것은 호기심 때문이다. 미디어를 전공하고 미디어에 종사하며 블로그·트위터 등 SNS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본 사람으로서 클럽하우스는 흥미로운 전장이었다. SNS 플랫폼은 관계망이 커질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속성이 있는데, 팔로어들이 들어간 클럽방을 소개하는 클럽하우스는 그런 성격이 더욱 커서 부지런히 팔로어를 늘려가며 열심히 관찰했다.

대체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재미있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라는 이들이 많았다. 중독성이 강했다. 24시간 잠도 못 자고 한다는 고해성사가 이어졌다. 코로나19 자발적 격리로 사람과의 소통에 굶주려 있던 국면이고 마침 설 연휴 기간까지 겹쳐서 헤비 유저가 급증했다.

‘더 이상 대형 SNS 플랫폼이 등장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 오디오 플랫폼에 IT 분야 인플루언서와 얼리어답터들이 몰려들었다. 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등으로 SNS 플랫폼이 정립되었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클럽하우스가 신규 시장을 만들어낸 비결에 대한 분석이 두루 나왔다. 초기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사람들이 몰렸던 방은 ‘클럽하우스의 영향력’에 대한 방이었다.

한국인 이용자가 몰려들면서 클럽하우스 활용 방식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진화했다. 열흘 정도 지나자 클럽하우스의 소통 문화에 비판을 제기하는 그룹도 있었다. ‘클럽하우스의 북한사투리방이 불편한 이유’ 등 차별과 혐오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는 클럽방도 나타났다. ‘예쁜 반말’을 쓰는 반말방도 등장하면서 수평적 소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날마다 판이 바뀌었다.

클럽하우스에 빠진 이용자들은 대체로 다른 SNS 플랫폼에 소홀해졌다. 클럽하우스를 이용하면서 유튜브와 넷플릭스 이용 시간이 줄었다고 말하는 이용자가 많았다. “클럽하우스를 이용하다가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더니 그곳의 인플루언서들이 마네킹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신규 가입자 중에서 SNS를 클럽하우스 중심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대체적 평가는 ‘가장 인간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SNS 플랫폼’이었다. 마셜 매클루언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우리는 시각의 시대를 벗어나 청각과 촉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클럽하우스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었다. 클럽하우스는 인간의 온도와 가장 가까운 SNS 플랫폼이었다.

멤버십과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

클럽하우스의 장점은 멤버십으로 운영되어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클럽하우스는 몇 단계의 안전장치를 두었다. 전화번호를 기반으로 하나의 계정만 만들도록 유도하고, 초대를 통해서 새로운 회원을 받아들이며(초대가 아닌 경우 기존 멤버들이 지인인지 확인하고 이용하게 해준다), 클럽방에서 그 사람이 활동할 때 트롤링(괴롭힘)을 하는지 보고하게 해서 신뢰도를 평가한다. 이런 안전장치가 나중에 봇(bot)의 출현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보인다.

클럽하우스는 다른 SNS 플랫폼의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연동해두어 말하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그곳에서 풀 수 있도록 유도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청각 정보를 수용하면서 연결된 계정을 통해 시각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광장으로 보는 쪽과 살롱으로 보는 쪽으로 나뉘었다. 광장으로 활용하려는 그룹은 클럽하우스를 미디어로, 살롱으로 이용하려는 그룹은 이곳을 소통의 공간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평등한 소통을 강조했다.

클럽하우스를 광장으로 이해하는 대표 그룹은 바로 연예인들이다. 입성하면서 ‘내가 왔다. 팬들아 모여라’는 식으로 방을 만들어 팬클럽 미팅 형식으로 운영하곤 했다. 연예인들은 ‘한 방’은 있었지만 지구력은 떨어졌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모더레이터(사회자) 구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아나운서들이 주목받았다. 인스타그램이 쇼호스트의 역할을 부각시켰다면 클럽하우스는 아나운서의 역할이 도드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도 클럽하우스를 광장으로 활용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회장,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가 방을 열었을 때 많은 유저들이 참가했다. 클럽하우스의 젊은 이용자들은 CEO가 펼치는 명징한 세계를 좋아했다. 기업가의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인데 마치 예배를 하는 것처럼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정치인 중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의 활용법이 눈에 띄었다. 조 의원은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방을 만들어서 ‘예의 있는 반말’로 토론을 진행했다. 김 의원은 조용한 경청자로 있다가 모더레이터가 소환하면 주제에 맞는 의견을 짧고 굵게 제시하고 다시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역사적으로 라디오는 효과적인 선전선동 매체였다. 매클루언은 “라디오라는 북이 내는 소리에 빠져 황홀하게 춤을 추었다”라며 히틀러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독재자로 거듭났던 사실을 환기했다.

하지만 히틀러와 같은 ‘라디오스타’ 정치인이 클럽하우스에서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일방향 소통보다는 쌍방향 소통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형 플레이어들이 클럽하우스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은 클럽하우스의 성장 잠재력을 보여준다. 미디어는 영향력이라는 면적을 넓히고 신뢰를 높이는 것이 관건인데, 클럽하우스는 이 두 축에서 의미 있게 확장되고 있었다. 클럽하우스가 쌓은 이 피라미드에 자본이 광고로 수를 놓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한국형 살롱 문화의 태동이다. 중장년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의 그룹방인 ‘클럽하우스 흡연실’의 단골 이용자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클럽하우스에 다양한 살롱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마 이 살롱이 클럽하우스의 진정한 힘이 되고 사회의 다양성을 키워줄 것이다”라고 평했다.

클럽하우스가 국내에서 자리를 잡자 자신들의 주제를 가지고 클럽방을 여는 전문가 그룹이 나타났다. 이들은 미리 주제를 정하고 역할을 나눈 다음 클럽방을 일반인에게 오픈했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화법으로 진행해서 잔잔한 호응이 일어났다. 소셜 지성(Social Intelligence)이 구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목할 그룹은 이런 클럽방을 발견하고 소문을 내주는 사람들이다. 트위터에서는 팔로어가 많은 이용자만큼 전달을 많이 하는 이용자의 영향력이 큰데, 클럽하우스에도 이런 전달자의 역할이 컸다. 자신과 팔로잉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간 클럽방이 뜨는 구조여서 팔로어가 많은 사람이 이런 클럽방에 들어가면 금방 입소문이 났다. ‘어제 클하에서 어떤 사람들 만나셨나요?’ 같은 클럽방도 각광받았다.

SNS 플랫폼에서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이 스스로 정립하는 문화다. 한국 이용자들은 클럽하우스를 본격적으로 이용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클럽하우스 대화법’을 만들어나갔다. 이 대화법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2030 세대다. 클럽하우스의 헤비 유저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클럽하우스의 문화를 정립했다.

클럽하우스 대화법의 특징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경청’을 훈련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모더레이터의 통제를 따르고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조용히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둘째, 대체로 장황한 말하기보다 요약적인 말하기가 선호된다. 오디언스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셋째, 말하기에 ‘차별적 표현을 하지 않는 것(Political Correctness)’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매클루언은 “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만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우리의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클럽하우스를 라디오처럼 쓰든 단톡방처럼 활용하든 혹은 광장처럼 이용하든 상용 SNS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인간의 온도에 가장 근접한 클럽하우스가 어떤 공론장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기자명 고재열 (여행감독·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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