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한 유사투자자문업체의 인터넷 주식방송 화면.

‘무료 체험’이라고 쓰인 빨간 버튼이 반짝거렸다. 기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내자, 두 시간 뒤 전화가 걸려왔다. ○○스탁 투자전략본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아무개씨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회원님께서 (주식투자) 실력을 늘릴 필요는 없어요.” ○○스탁 투자전문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가르쳐주기 때문에 시키는 그대로 주식투자를 하면 된다고 했다. 주가가 올라갈 종목을 ‘전문가’가 리딩(추천)해주는, ‘주식 리딩방’에 가입하라는 권유였다.

내일부터는 맛보기로 주식 종목을 하나씩 추천해주는 문자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씨는 월 회비를 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월 수익이 30~40%인데 월 회비 66만원은 아무것도 아니죠. 만약 1000만원을 투자하신다고 하면 한 달에 최소 300만~400만원 수익을 보는 거잖아요. 솔직히 200만원을 내고도 가입할 만하지 않겠어요?”

유료 회원으로 가입하면 일대일 상담도 가능하냐고 묻자 이씨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스탁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메신저 앱을 통해 회원이 질문을 올리면, 전문가가 답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회원님이 가지고 있는 종목 중에 ‘이거는 더 가지고 계세요’ ‘저거는 지금 매수하세요’ 이렇게 타이밍까지 다 짚어드립니다. 그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

비싼 월 회비를 안내받고 가입을 주저하자 이씨는 일단 대기자 명단에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인기가 많은 전문가라서 예약이 필수라고 했다. “내일 다시 전화할게요. 한번 생각해보고 등록해보세요.” 서비스를 한 달 단위로 이용할 수는 없다고 했다. 12개월이 최소 기간이었다.

여기에 이씨는 한 가지 제한을 덧붙였다. ㄱ 카드사와 ㄴ 카드사는 사용할 수 없으니 미리 다른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기존 회원들이 해당 카드사를 너무 많이 써서 대기가 꽉 찼기 때문”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다.

주식 리딩방 피해자 최정문씨(가명·34)는 기자의 주식 리딩방 상담 후기를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특정 카드사 결제를 거부하는 업체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ㄱ 카드사와 ㄴ 카드사가 ○○스탁에서 결제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놨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결제한 고객들이 나중에 전액 환불이나 부분 환불을 요청하는 사례가 너무 많으니까 애초에 결제를 막아둔 거죠.”

2012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주식 리딩방을 경험하며 회비로만 수천만 원을 낸 최정문씨는 업체들의 수법을 훤히 꿰고 있었다. “아무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다 ‘전문가’라고 앉혀놓거든요. 그러면서 ‘무조건 수익 난다’고 큰소리쳐요. 주식시장에 100% 확률이 어디 있나요. 가짜 전문가를 내세우는 것보다 그릇된 기대를 심어주는 게 더 악질적인 것 같아요. 저도 그 유혹 때문에 계속 이곳저곳 가입했는데, 결국 제가 공부해서 투자하는 게 그나마 수익이 제일 낫더라고요. 이제는 혼자서 투자하려고 해요.”

최씨는 약 2년 전 주식 리딩방에서 일했던 직원의 내부고발을 담은 〈시사IN〉 기사(제600호 기사 ‘나는 주식방송 댓글부대원이었다’ 참조)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주식 리딩방 피해자 모임 오픈 카카오톡 대화방 상단에 공지사항으로 걸려 있는 기사이기도 하다.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피해자만 늘었을 뿐, 주식 리딩방은 여전히 사각지대라고 최씨는 말했다.

최근 주식시장에 투자 자금이 몰리면서 이러한 유사투자자문업체 피해자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추천 종목을 집어주는 ‘주식 리딩방’은 유사투자자문업의 대표적 형태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 피해 건수는 2016년 768건, 2017년 1855건, 2018년 7625건, 2019년 1만3181건으로 3년 사이 17배 이상 증가했다. 피해 금액도 2016년 4억7830만원에서 2019년 106억3865만원으로 약 22배 늘었다.

기자가 가입 상담을 받은 뒤 유사투자자문업체로부터 받은 광고 메시지.

금융위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 가능

금융 당국도 단속에 나섰다. 지난 2월23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암행·일제 점검을 통해 총 49개 유사투자자문업체의 불법 혐의를 수사기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영업을 신고한 전체 유사투자자문업체 1841개 중 민원이 다수 들어왔던 업체 351개(19.1%)를 점검한 결과였다. 소재지나 대표자를 변경한 뒤 금융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채 영업하거나, 일대일 투자자문 행위를 하는 식의 불법행위가 주된 위반 사항이었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과장·허위 광고도 적발됐다. 하지만 나머지 1490개(80.9%) 업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피해 규모는 더 클 수 있다.

이 같은 피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시장법을 연구하는 성희활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본적인 이유로 ‘신고제’를 꼽았다. ‘주식 리딩방’이라 불리는 유사투자자문업은 투자자문업과 다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투자자문업은 회원에게 일대일로 코치해줄 수 있지만, 유사투자자문업은 일대일 자문이 불가능하다. 기자가 가입 상담을 받았던 ○○스탁은 불법행위를 버젓이 광고한 것이다. 두 업종의 자격 요건도 다르다. 투자자문업은 등록제로 일정한 자격을 갖춘 뒤 금융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영업할 수 있다. 반면 유사투자자문업은 금융위원회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할 수 있는 신고제다.

보통 회사 설립부터 영업행위,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까다롭게 규제하는 금융산업에서 유사투자자문업은 예외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업종이다. 정식 투자자문사를 차릴 여건은 안 되지만 ‘부띠크’ 따위 이름으로 개인에게 알음알음 투자자문을 제공하던 업체들을 양성화하기 위해 1997년 신설됐다.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서 금융 당국이 최소한의 감시라도 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금융위원회 신고업체’라고 적어놓으면 마치 금융법의 규제를 받는 엄격한 금융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신고서 한 장만 내면 누구나 영업할 수 있는 비금융회사다.

현재 금감원이 유사투자자문업체를 감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금감원 직원이 직접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 일대일 자문 등의 불법행위가 일어나는지 내부에서 지켜보는 ‘암행점검’이다. 다른 하나는 업체 홈페이지나 SNS 등에 올라온 게시물을 외부에서 모니터링하며 과장·허위 광고 등을 단속하는 ‘일제점검’이다.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에서 ‘보장’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만약 일반 금융투자업자라면 투자자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것 자체가 자본시장법 제55조(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보장할 것을 사전에 약속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를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유사투자자문업체는 일반 금융투자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 조항을 직접 적용받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보장’ 자체를 과장·허위 광고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암행·일제 점검과 함께 금융 당국은 진입·퇴출 기준을 강화해왔다. 우선 2019년 7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유사투자자문업체 신고서 양식을 더 촘촘하게 바꿨다. 이전에는 ‘프리패스’였던 신고서에 결격 사유(①금융관련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경우 ②폐업 1년·직권말소 5년 이상 기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 ③신설된 의무교육을 듣지 않은 경우)를 추가했다. 또 폐업 신고를 한 뒤에도 여전히 유령업체로 영업하던 업체를 금감원이 직권말소할 수 있도록 했다.

주가조작 범죄에 동원될 수도 있어

그러나 여전히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호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무엇보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2월 현재 2200여 개 유사투자자문업체가 공격적으로 영업 중이다. ‘수익을 얼마 이상 보장하겠다’ ‘수익이 안 나면 환불해주겠다’ 식으로 회원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호언장담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말하는 수익률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익률이 아니라는 점이다. 손절은 계산에 넣지 않고 수익만 계속 누적해서 더하는 식으로 업체에 유리한 셈법을 쓴다”라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 스스로 한국소비자원에 상담을 통해 피해구제를 신청하고 분쟁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분쟁조정에 실패할 경우 혹은 업체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올 경우 민사소송까지 거쳐야만 회비라도 일부 돌려받을 수 있다. 손실을 본 투자금에 대해서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

심지어 유사투자자문업체에 가입한 수많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주가조작에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식 리딩방의 ‘전문가’가 주문하는 대로 수많은 회원이 일시에 한 종목을 매수·매도할 경우 주가가 들썩인다는 의미다. 주식 리딩방의 또 다른 피해자 박지희씨(가명·25)는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주식 리딩방에 가입하기 전에 미끼 같은 광고 문자가 날마다 왔어요. ‘7월16일에 A 종목 사세요. 몇 % 오를 예정입니다’라는 식의 예측이었는데, 나중에 보면 정말 그 말이 맞더라고요. 다섯 번을 연달아 맞히니까 너무 신기해서 회비를 내고 가입했어요. 알고 보니 잠재 고객한테는 7월16일에 미리 사두게 한 다음, 유료 고객한테는 7월18일에 사라고 지시하는 식으로 주가를 올리더라고요.”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해 이익을 취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명백한 불법행위다.

‘전문가들’이 벌이는 ‘백발백중’의 실상을 알게 된 박지희씨는 회비 환불을 요구했다. 유사투자자문업체 담당자는 박씨를 회유하는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인정했다. “A 종목이든 B 종목이든 우리와 함께 진행하는 세력들이 있어요. 7월 초에 자금이 들어왔을 때 주가를 쭉 올려보겠다 했는데 이 기간이 늦어진 거예요. 시기가 길어진 것뿐이지 종목에 대한 문제는 없는 건데.” 이러한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업체에 알리자 박씨는 그제야 겨우 회비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성희활 교수는 더 이상 유사투자자문업체를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개미투자자들의 쌈짓돈을 뜯어먹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은 시장 질서까지 흔드는 지경이 됐다. 최소한 투자자문업처럼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도록 등록제로 전환해야 한다.” 성 교수는 다만 현재 유사투자자문업체가 일반 투자자문업체에 비해 영세한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등록제로 전환하되, 등록 조건을 일반 투자자문업에 비해 완화해주자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의 심리적 약점을 노리고 더 자극적인 문구로 유혹하는 업체들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당국의 규제와 더불어 개인투자자들의 주의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30년 동안 자본시장을 연구해온 성희활 교수는 유사투자자문업체 가입을 고려하는 투자자들에게 당부했다. “투자의 제1원칙은 얻는 게 아니라 잃지 않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통해서 큰돈을 번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경제가 나아지고 성장하는 만큼만 꾸준히 나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수십 퍼센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수십 퍼센트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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