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게임스톱은 미국 전역에서 5000여 곳이 영업 중인 오프라인 게임 소매 체인점이다.

‘사가(saga)’라는 단어가 있다. 중세 아이슬란드에서 구전되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뜻한다. 오늘날에는 종종 이 단어를 흥미롭고 연속적인 이야기에 붙인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전 세계를 들쑤신 ‘게임스톱(Gamestop) 사태’도 ‘사건(case)’ 대신 ‘사가(saga)’라는 표현이 뒤따른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대중 군집이 자본시장에서 대형 기관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한 주당 4달러에 불과하던 주식이 어느 날 갑자기 400달러를 넘나든다. 단 며칠 사이에 기세등등하던 헤지펀드가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세가 꺾이고, 온갖 추측과 불신이 잿더미처럼 남았다. 여기까지는 ‘사가’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영웅서사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게임스톱 사태’는 ‘다윗 대 골리앗’이라는 뻔한 얘기로 정리되지 않는다. 증시 뉴스인 동시에 사회 불평등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게임스톱 사태 이후 사람들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는 이 후폭풍을 우려와 냉소, 공포와 불안이 뒤섞인 시선으로 마주하고 있다.

게임스톱 사태의 전개 과정을 짤막하게 되짚어보자. ‘월스트리트베츠(WSB)’라는 포럼 게시판이 있다. 온라인 토론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의 소모임이다. 이곳 게시판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게임스톱이라는 기업이 화두가 되었다.

게임스톱은 미국 오프라인 게임 소매 체인점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같은 콘솔 게임기나 게임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주로 취급한다. 미국 전역에 5000여 개 매장이 있다. 그러나 2017년 92억2000만 달러(약 10조원)였던 게임스톱의 연간 매출은 2018년 82억8500만 달러(약 9조2000억원), 2020년에는 64억6600만 달러(약 7조2000억원)로 점차 감소했다.

산업의 변화 때문이다. 사람들은 점점 게임스톱 매장에 가서 CD나 DVD 패키지를 구입하는 대신 집에서 다운로드 서비스로 게임을 구매하고 즐긴다. 스팀(Steam)이나 에픽(Epic) 같은 PC 게임 온라인 다운로드 전문 플랫폼이 등장했고,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 게임기도 다운로드 서비스로 즐길 수 있게 바뀌어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프라인 매출 비중이 높은 게임스톱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넷플릭스’로 영화 DVD 대여점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것처럼, 게임스톱 역시 많은 사람들이 저물어가는 사업 모델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평가에 대해 WSB 이용자 일부가 의문을 표했다. ‘Deep F○○○ing Value’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키스 길이 대표적이다. 그를 비롯한 유명 유저들은 게임스톱에 여전히 잠재적인 가치가 있으며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들은 게임스톱 주식을 매수하며 기업의 내재가치에 대한 토론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2020년 8월 주당 4달러 수준이던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해 연말까지 주당 20달러 안팎으로 올랐다.

온라인 토론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의 소모임인 월스트리트베츠(WSB) 포럼 게시판에 올라온 밈(meme)들.

공매도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의 샅바 싸움

하지만 게임스톱의 미래가치에 부정적 견해를 보인 일부 기관들은 이런 가격 상승이 거품이라 여기고 공매도에 나섰다. 주가 하락에 베팅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공격적인 공매도로 유명한 시트론리서치(Citron Research)와 멜빈캐피털(Melvin Capital)이다.

WSB에 모인 개인투자자들은 기관의 공매도 사실에 분개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하자는 논의를 펼친다. 여기서 레딧에 모인 사람들의 성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레딧은 인터넷 문화의 최전선이다. 한국의 디시인사이드가 ‘짤(유머가 담긴 이미지)’ 문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트위터와 레딧은 인터넷 ‘밈(meme)’ 문화를 유행시켰다. 사람들은 유머와 정보, 그리고 아우성과 욕설이 혼재된 이 ‘온라인 저잣거리’에서 ‘놀이하듯’ 모인다. 다수가 MZ 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말)의 일원이다. 시국의 영향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세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WSB를 비롯한 레딧 게시판에서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을 해소했다. 그리고 이 ‘저잣거리’에는 금융기관의 전문가들만큼이나 데이터에 눈 밝은 이들도 섞여 있었다.

ⓒ유튜브채널 Roaring Kitty 영상 갈무리WSB에서 ‘Deep F○○○ing Value’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키스 길.

공매도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의 샅바 싸움은 연초까지 이어졌다. 시장의 ‘룰’대로라면, 그리고 전통적인 금융시장의 원칙을 믿는 이들이라면 결국 게임스톱은 재무·성장성 등을 반영해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시트론리서치를 필두로 한 공매도 세력에 대한 WSB 군집의 반발은 컸다. 특히 시트론리서치는 1월19일 자사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지금 게임스톱 주식을 사는 사람들은 포커 게임에서 호구나 마찬가지다”라며 개인투자자들을 자극했다.

WSB에 모인 개인들을 전략적이고 일사불란한 군집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때때로 최적의 전략을 공유하게 만든다. 시장원리를 통해 공매도 세력이 손을 들게 하는 방법으로 ‘숏 스퀴즈(Short Squeeze)’가 떠올랐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세력이 손해를 보도록 모두가 게임스톱 주식을 사서 버티자는 주장이다.

공매도(숏)란 빌린 주식을 지금 파는 행동이다. 하지만 공매도는 이익이 제한적(최대 100%)인 반면 손해는 무한대에 가깝다. 만약 공매도한 주식의 가격이 폭등한다면 공매도한 이들은 결국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주식을 반강제적으로 매수해야 한다. 이를 ‘숏 스퀴즈’라고 부른다. 숏 스퀴즈에 돌입하는 순간 주식 매수 주문은 급격히 늘어난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팔지 않는다면 가격은 더 뛰고 공매도 기관의 손해는 늘어난다. 그래서 WSB 속 군집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외쳤다. “전열을 이탈하지 말라(Hold the line).”

‘감마 스퀴즈’의 영향도 주가를 끌어올렸다. 통상 우리는 실재하는 주식(현물)을 거래한다. 그런데 파생상품의 일종인 ‘옵션’ 거래도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옵션이란 ‘나중에 내가 파는(또는 사는) 권리’를 매매하는 행위다. 가령 어떤 투자자가 “지금 50달러인 게임스톱 주식이 나중에 100달러가 될 거야. 그럼 나중에 지금 가격(50달러)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옵션)’를 주당 5달러에 구입해두자”라고 생각할 경우 ‘콜옵션’을 구입할 수 있다. 만약 주식가격이 오를 경우 콜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한 주당 50달러에 매입할 수 있고, 반대로 가격이 더 떨어질 경우에는 옵션 행사를 포기하면 그만이다(대신 옵션 가격인 주당 5달러는 내야 한다).

옵션도 거래되는 상품이다. 사는 사람이 있으면 파는 사람이 있다. 개인이 사들인 콜옵션은 시장조성자(기관)가 파는데, 주식가격이 갑자기 폭등할 경우 옵션을 판매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게임스톱 주식을 ‘사두어야’ 하는 상태가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매수세가 ‘감마 스퀴즈’다. 숏 스퀴즈와 감마 스퀴즈 모두 거대 기관의 주식 매입을 강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주가는 더 뛰어오르고, 전 세계에서 차익을 노리는 이들까지 매수 랠리에 뛰어드는 바람에 급격한 버블이 만들어졌다. 단기차익을 노린 상당수 한국인 투자자들도 게임스톱 주식 매수에 뛰어들었다.

1월21일 종가 기준 주당 43달러였던 게임스톱 주식은 65달러(1월22일), 76.79달러(25일), 147달러(26일), 347달러(27일)까지 치솟았다. 공식적인 항복 선언이 들려왔다. 시트론리서치 앤드루 레프트 대표(CEO)는 1월29일 “앞으로 더 이상 공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또 다른 헤지펀드 멜빈캐피털도 공매도 물량을 철회하며 자산이 반토막 났다. 1월3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멜빈캐피털이 1월 한 달 사이에 운용자산의 57%를 잃었다고 보도했다.

ⓒ트위터 갈무리1월29일 공매도로 유명한 시트론리서치의 CEO 앤드루 레프트가 “더 이상 공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1월27일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과열’을 우려하면서도 상황을 조심스럽게 관망했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전례 없는 개인의 승리’라는 서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뒤늦게 매수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정점을 찍었다. 이대로라면 ‘인터넷 서브컬처가 강고해 보였던 헤지펀드에 한 방 날린 해프닝’으로 멈췄을 것이다.

그런데 1월28일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로빈후드(Robinhood)’ 앱의 주식거래 화면에서 ‘매수(Buy)’ 버튼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게임스톱을 비롯해 당시 과열 분위기였던 일부 종목만 ‘매수’가 불가능했다. 가격을 떠받치던 개인의 매수세가 사라지자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특정 업체의 인위적 조처로 인한 가격 조정

로빈후드는 증권 앱(브로커 앱)의 일종이다. 수수료를 받지 않아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일종의 ‘무기’인 셈이다. 그런데 무기에서 방아쇠가 갑자기 사라졌다. 로빈후드뿐 아니라 ‘위불(Webull)’ 같은 경쟁업체에서도 이날 매수가 제한되었다. 주식가격은 매수세와 매도세의 긴장감 속에서 형성된다. “이거 너무 많이 치솟았는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거품은 급격한 조정을 받는다. 시장원리다. 그런데 게임스톱 사태는 시장원리나 정부 정책으로 거품이 꺼진 게 아니라, 특정 업체의 인위적인 조처로 인해 가격이 조정되었다. 곧바로 파장이 일었다.

1월28일 당시만 해도 로빈후드 측의 해명은 시원치 않았다. 이날 로빈후드 CEO인 블라디미르 테네브는 미국 경제뉴스 채널 CNBC와의 인터뷰에서 “회사와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로빈후드에 유동성 문제는 없다”라며 유동성 부족 의혹에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틀 뒤인 1월30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안내문에서 로빈후드는 “클리어링하우스(증권 거래에서 청산을 담당하는 회사) 의무예치금이 10배나 증가했다. 변동성이 큰 (일부) 주식이 수억 달러를 차지하는 등 클리어링하우스에 예치해야 할 금액이 너무 큰 탓에 (매수를) 제한했다”라고 밝혔다.

좀 더 자세한 속사정은 2월1일 한 소셜미디어 대화방에서 튀어나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NS인 ‘클럽하우스(Clubhouse)’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블라디미르 테네브 로빈후드 CEO가 대화한 내용이 유출되면서다. 이날 대화에서 테네브는 “1월28일 새벽에 NSCC(클리어링하우스)가 증거금을 30억 달러(약 3조3000억원)나 내놓으라고 통보했다. NSCC와 협상을 벌인 끝에 매수 버튼을 막는 방식을 취했다”라고 답했다.

미국 주식거래는 T+2 원칙이 일반적이다. 거래 후 2일 동안 청산·결제 등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이 기간에 증권 앱 사용자들의 매매 내역은 NSCC 같은 클리어링하우스에서 청산 과정을 거쳐 거래를 마무리한다. 이때 증거금이 필요한데, 이 증거금은 고객들로부터 받은 거래대금이 아닌 증권사(브로커)의 자기자본으로 충당해야 한다. 한마디로 로빈후드를 통해 돈이 아무리 많이 오간다 하더라도, 로빈후드라는 회사에 당장 현금 3조3000억원이 없다면 앱 전체가 틀어막혔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이 금융 스타트업이 그만한 돈을 당장 구하긴 어려웠다. CEO는 부인했지만, 사실상 유동성 부족 때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빈후드는 곧바로 추가 투자를 받아 매수 버튼을 복구했지만 게임스톱은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 힘을 잃었다. 1월29일 주당 414달러까지 잠시 올랐지만, 225달러(2월1일), 90달러(2월2일), 53.5달러(2월4일), 40.69달러(2월18일)로 점점 하락했다.

과열과 광풍이 지나간 뒤에야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제로섬 게임인 주식시장에서 이제 ‘개인투자자와 헤지펀드 간 대결에서 누가 이겼는가’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분노한 대중은 “왜 특정 업체에 거래를 막을 권한이 있는가” “어째서 이 광풍은 시장원리가 아닌 인위적인 조처로 막을 내리는가” “견고해 보였던 미국 증권 거래 시스템은 이 정도 충격에도 휘청거릴 만큼 취약했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AFP PHOTO과거와 다른 투자 환경도 게임스톱 사태의 배경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헤지펀드 시타델, 증권 앱 로빈후드, 헤지펀드 멜빈캐피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

월스트리트-실리콘밸리-워싱턴 D.C.의 긴장감

게임스톱 사태의 후속 논쟁은 미국 내 주요한 ‘세 공간’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 월스트리트, 테크 기업이 밀집한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 그리고 정치적 파장을 다루는 워싱턴 D.C.다. 게임스톱 사태, 특히 로빈후드의 거래 제한 사태가 일어나자 워싱턴이 움직였다. 평소 월스트리트의 개혁을 주장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은 2월2일 로빈후드 측에 주식거래 제한 조치를 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도 2월18일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블라디미르 테네브 로빈후드 CEO, 개인투자자 키스 길, 거대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의 창업자이자 CEO인 케네스 그리핀이 청문회에 소환됐다. 시타델은 1월25일 게임스톱 사태로 파산 위기에 처한 멜빈캐피털에 긴급자금 20억 달러(약 2조2000억원)를 수혈한 곳이다. 시타델과 로빈후드 간 커넥션에 대한 의혹은 이번 청문회의 중요 쟁점이었다. 시타델의 자매회사 격인 ‘시타델 증권’이 로빈후드의 주요 파트너이자 고객이라서다. 로빈후드를 이용하는 개인투자자로서는 ‘이해 상충’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로빈후드는 ‘실리콘밸리 스타일’로 매출 구조를 만들었다. 거래수수료를 없애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대신, 이용자의 다양한 데이터를 거대 기관에 팔아 돈을 번다. 개인들이 언제, 어느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주식을 사고파는지 담긴 빅데이터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대중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대중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기업들로부터 돈을 버는 방식이다.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데이터의 가치도 커진다. 시타델 증권은 이런 로빈후드의 데이터를 구입해 자산 운용에 활용한다.

2월18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로빈후드와 시타델 사이의 유착 의혹과 사태의 진실을 물었다. 테네브 로빈후드 CEO는 “로빈후드는 늘어난 증거금 요건을 충족하려고 중단 조치를 시행했을 뿐이다. 헤지펀드를 돕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라며 헤지펀드와의 유착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사 유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그런 문제(유동성 위기)는 없었다. 추가 투자를 받은 것은 유동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라며 답을 회피했다.

한편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기술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촉발된 금융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게임스톱 사태는 미국 내에서 일종의 가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실리콘밸리의 관점에서는 미국 동부 뉴욕 월스트리트가 만든 ‘법칙’의 비효율성이 게임스톱 사태의 후폭풍을 키웠다고 본다. 버튼 하나면 돈이 송금되는 시대에 어째서 주식거래 결제는 3일이 필요하고, 증거금 때문에 거래를 못하는 일이 벌어지느냐는 질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페이스북 출신 벤처 투자자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소셜캐피털 CEO)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다.

이들은 이전부터 실리콘밸리식 ‘파괴적 혁신’을 중시하며 기존 금융시장의 거물들과 대립하는 구도를 보였다. 머스크는 공개적으로 테슬라를 공매도한 세력을 조롱했고, 팔리하피티야는 게임스톱 사태가 정점에 달하던 1월2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애초에 발행주식의 140% 가까이 공매도할 수 있었던 ‘상황’이 문제였다. 불평등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개인투자자들은 (법적으로)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도 없다. 모멘텀 투자(추세 추종 투자), 숏 스퀴즈 등은 기관들이 원래 하던 방식 아니냐”라며 WSB를 비롯한 개인투자자 대중을 옹호했다. 금융시장의 지급·청산·결제 시스템 개혁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헤지펀드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도 힘을 싣는 태도를 취한다. 이로 인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이 늘었고, 팔리하피티야는 차기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과 신진의 갈등은 세대 차원에서도 비롯된다. MZ 세대를 필두로 한 새로운 대중 군집은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전통 금융권을 ‘월스트리트 부머(베이비부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라며 비난한다. WSB는 이런 경향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발견되는 현장이다. ‘밈’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이들 사이에서 일론 머스크, 팔리하피티야, 그리고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하원의원은 전통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콘으로 통용된다. 그래서 이 흐름은 2011년 월가 점거 시위(오큐파이 월스트리트)와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2011년처럼 대형 헤지펀드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분개하면서도 직접적인 분배보다 시장 내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표출한다. 분노 표출의 공간이 온라인이라는 점도 9년 전과 차이를 보인다.

반대로 전통 질서를 중시하는 금융권에서는 이런 흐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전통 자본시장에서 주가는 그 기업의 가치로 수렴한다는 합의가 존재한다. 게임스톱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과열과 버블의 현장 중 하나일 뿐이다. 숏 스퀴즈도 새로운 건 아니다. 결제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다. 그런데 한 무리 대중 군집의 행동이 호응을 얻고, 이 때문에 멋모르고 뒤늦게 거품에 올라타는 이들은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전통 금융권의 시각에서 게임스톱 사태는 일종의 포퓰리즘일 수 있다. 시장이 흔들리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투자 문화는 막아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게임스톱 사태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역할이 대두된다. 워싱턴 D.C.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실질적 제도개선 논의가 뒤따르고 있다. 당장 거래세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식을 거래할 때 증권사 수수료와 거래세를 이용자가 직접 지불한다. 주식을 팔 때 일괄 계산되는 식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로빈후드와 같은 무료 앱을 이용할 경우 거래 당사자는 추가금을 낼 필요가 없다. 소득분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된다.

거래세는 단기차익 거래를 억누르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대형 기관의 초단타 매매를 제약할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뉴욕타임스〉의 앤드루 로스 소킨은 2월2일 ‘시장 조작을 막기 위한 6가지 제안’이라는 칼럼을 통해 거래세와 버핏룰(부유세) 도입을 주장했다. 알고리즘 기반 초단타 매매가 시타델과 같은 대형 헤지펀드에 부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들 거래의 수익성을 낮추려면 거래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페이스북 출신 벤처 투자자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게임스톱 사태에서 개인투자자를 옹호해 차기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2월18일 하원 청문회에서도 거래세를 두고 논박이 펼쳐졌다. 러시다 털리브 의원이 케네스 그리핀 시타델 CEO에게 “금융거래세를 막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했느냐”라고 묻자, 그리핀 CEO는 “거래세는 은퇴를 위해 저축하려는 미국인들을 해칠 것이다”라며 거래세 도입 반대 의견을 내보였다. 연방의회뿐 아니라 뉴욕주 의회에서도 거래세 논의가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한다. 스테이시 커닝햄 NYSE CEO는 2월14일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거래세가 도입된다면 (우리 거래소는) 뉴욕을 떠날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로빈후드와 같은 무료 앱(노 커미션)에 대한 고민도 정치권에서 제기된다. 로빈후드의 수익모델(PFOF:Payment For Order Flow)은 결국 대형 기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해 상충 문제는 곧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무료 앱이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 접근성을 향상시켰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주식시장을 ‘게임판’처럼 만든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PFOF는 2월18일 하원 청문회에서도 논쟁거리였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PFOF가 투명성이 부족하고 이해 상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지만 공화당과 금융권에서는 규제 움직임에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역설적인 문제다. 무료 앱 활용은 개인투자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이지만, 동시에 기관의 예측력과 분석력을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역설적이게도 게임스톱 사태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 바로 로빈후드다. 사용자들의 신뢰 문제를 떠나 로빈후드라는 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었고, 앱스토어에서도 다운로드 상위 랭킹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소수의 매수 선동, 기소로 이어질까

게임스톱 사태가 만들어낸 마지막 논쟁은 ‘개인투자자의 변화’다. 게임스톱 사태는 개인들의 느슨한 점조직이 거대 기관을 빈사상태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 사건이다. 이들 개인투자자는 변동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보접근성, 금융시장 접근성이 과거보다 용이해지면서 시그널에 따라 대중이 모멘텀(추세)을 만드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런 ‘군집’이 집단적으로 특정 주식을 사 모으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수사기관이 겪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증권법은 주식 매수·매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허위 또는 부정확한 정보를 배포하는 것을 금지한다. 2월1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법무부와 연방검찰 등 주요 수사기관이 게임스톱 사태에 주가조작이 존재했는지를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대규모 군집이 주가를 끌어올린 상황에서는 누구에게 죄가 있느냐고 묻기가 어렵다. 만약 WSB 내에서 특정 조직이 대중을 선동하는 형태로 움직인 정황이 있다면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EPA1월31일 미국 뉴욕에서 민간단체 ‘가디언 에인절스’가 게임스톱 사태 관련 헤지펀드의 행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동안 주가조작은 특정 기관이나 세력에 의해 자행되던 범죄였다.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소수의 핵심 인물이 ‘영향력 있게’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선동했다면 특정 인물들에게는 범죄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인물이 실제 기소로 이어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 하원 청문회까지 참석한 키스 길이 어떤 처분을 받는지도 주목된다. 길은 이날 청문회에서 “게임스톱에 대해 SNS에서 글을 쓰고, 다른 개인투자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술집이나 골프장에서 주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스톱 주식이 수십억 달러나 거래된 것은 내가 쓴 글 때문이 아니다”라며 시세조종 의혹을 부인했다. 키스 길의 답변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문해보게 된다. “과연 게시판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이유로 유저를 처벌할 수 있는가.” 미묘한 법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게임스톱 사태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을 ‘운이 좋은 경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전례 없이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인기 주도주의 변화에 따라 시장이 출렁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게임스톱 사태 이후로도 WSB 게시판에는 ‘다음 주도주’가 계속 언급되어왔다. 은과 대마초 관련 주, 비트코인이 급등했다. 은 관련 ETF(주식처럼 거래 가능한 펀드)의 괴리율(ETF 거래 가격과 실제 자산가치의 격차)이 커졌고, 캐나다 의료용 대마초 제조업체인 틸레이(Tilray)의 주가가 잠시 급등하기도 했다. 2월1일 3만2000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2월22일 5만8000달러 수준까지 폭등했다. 이런 연쇄적인 과열을 단지 ‘개인투자자들이 알아서 분석을 잘한 덕분’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정책도 이런 폭등의 배경이다. 하지만 연준은 “돈을 푸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그래야 기업이 망하지 않고 일자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시사IN〉 제698호 ‘돈이 넘쳐나는 시대, 불안한 파티는 계속될까’ 참조). 연준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미 WSB 내에서 일종의 밈이 되었다. 양적완화가 계속되는 한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게임스톱 사태는 그동안 당하기만 했던 개인투자자의 복수로 봐야 할까. 아니면 군중심리에 휘둘리는 개인들이 어쩌다 기관을 이긴 사건으로 평가해야 할까. 누가 옳고 그르냐 하는 가치판단은 어렵다. 모든 개인투자자를 동일하게 바라볼 수도 없다. 다만 ‘시장의 룰대로 싸워서 이기고 있었는데, 반시장적인 조처(로빈후드)로 인해 흐름이 꺾였다’는 인식은 그대로 남아 있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분노는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고. ‘하나 된 미국’을 바라며 기존 질서 회복을 바라는 바이든 행정부에게 게임스톱 사태는 불안한 변수가 된다. 게임스톱 사태는 금융을 바라보는 미국 대중의 시선에 신선한 충격과 해소되지 않는 의혹을 남겼다. 승자와 패자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람들은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헤지펀드의 움직임에 주목할 것이고, 월스트리트의 견고한 규칙에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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