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제공2월9일 모의 접종 대상자들이 ‘접종 후 관찰’을 위해 중앙예방접종센터 관찰실에 모여 있다. 오른쪽이 모의 접종에 참가한 김연희 기자.

‘질병관리청 백신 예방접종 안내. 김연희님께서는 COVID-19 백신 예방접종 대상자임을 알려드립니다. ①접종 일시:2021. 2.9.(화) 14:00~14:30 ②장소:중앙예방접종센터 FED F동(정문 우측 건물).’

2월8일 오후 7시쯤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국립중앙의료원(국중원)에서 진행하는 백신접종 모의훈련 안내 문자였다. 국중원의 중앙예방접종센터는 2월27일부터 코로나19 화이자 백신접종을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설치되는 250개 예방접종센터의 표준 모델을 개발하고, 접종 과정이 비교적 까다로운 화이자 백신에 대한 의료인 교육을 담당한다. 이런 까닭에 중앙예방접종센터는 2월1일 설치 이후 반복적으로 모의 접종 훈련을 해왔다.

중앙예방접종센터는 하루 최소 600명, 1시간 이내 100명 접종을 목표로 삼고 있다. 2월9일 훈련은 이런 상황을 가정해 오후 2시부터 2시30분 사이, 50여 명이 센터를 방문해 백신을 접종하는 시나리오로 진행되었다. 접종 대상자가 도착한 뒤 거치게 되는 ‘접수→예진표 작성→예진→접종→접종 후 관찰’ 단계 역시 최대한 실제 상황에 가깝게 이루어졌다. 기자는 모의 접종 대상자 51명 가운데 포함돼 이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국중원은 훈련에 앞서 “모의훈련은 실제 접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점검하는 과정으로, 문제점을 발견해내면 그게 더 효과적인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집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안내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에 적힌 대로 신분증을 챙겼고, 접종 부위 노출이 쉬운 상의도 골라 입었다(이는 이후 오판으로 밝혀졌다). 빠트린 것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는데 ‘COVID’라는 알파벳 다섯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여든이 넘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문자를 받았다면 저 글자를 읽지 못하실 텐데.’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앞뒤 문맥상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오라는 뜻인 줄 알긴 하겠지만, 기왕이면 ‘COVID-19’ 대신 ‘코로나19’라고 쓰는 게 낫지 싶었다.

ⓒ시사IN 김연희개인정보 처리 동의 여부를 묻는 3개 질문과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8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예진표.

하필이면 폴라 니트를 입고 있었다

13:50 중앙예방접종센터 앞에 도착했다. 이날 훈련에는 권역별 거점 예방접종센터로 지정된 순천향대 천안병원(중부권)과 조선대병원(호남권), 양산 부산대병원(영남권) 관계자와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이 참여했다. 실제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을 때 보건의료 현장에서 직접 접종과 관련 실무를 담당할 사람들이 미리 접종 과정을 체험해보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다.

14:00 정각에 맞춰 훈련이 시작됐다. 중앙예방접종센터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접수창구가 있는 F동, 초저온 냉동고에 백신을 보관하는 D동, 그리고 백신접종의 주 무대인 C동. 국중원 본원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앙예방접종센터는 옛 미군 공병단 터에 꾸려졌다. 지난해 12월 미군이 한국 정부에 반환한 곳이다. 2025년까지 이곳에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이 세워질 예정이다. 그중 3개 건물을 한시적으로 개조해 접종센터로 이용하는 것이다.

접수를 위해 F동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처럼 바닥에 그어진 동선 표시에 맞춰 줄을 서서 기다리다 건물로 들어갔다. 체온측정기 앞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번호표를 뽑았다. 12번. 곧이어 내가 뽑은 숫자가 접수창구에 떴다. 신분증으로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자 추가로 요구하는 인적사항 정보 없이 접수가 진행되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은 무료이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이 청구되지 않는다. 대기 구역에 앉아 창구에서 받은 예진표를 작성했다.

예진표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 3개와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문항 8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①(여성) 현재 임신 중입니까?’ 아니요. ‘②이전과 다르게 오늘 아픈 곳이 있습니까? 아픈 증상을 적어주십시오.’ (숙취 탓으로) 머리가 살짝 아프긴 한데 백신과 관련은 없을 테니, 아니요.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모두 ‘아니요’를 체크한 뒤 대기 구역 한쪽에 있는 간호사에게 가져갔다. 예진표를 훑어본 그는 접종 장소인 C동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F동을 나서기 전 출구 앞에서 한 번 더 발열 체크를 했다. 이번에는 체온계를 이마에 갖다 대고 온도를 쟀다. 36.4℃. 체온을 측정한 직원이 예진표의 두 번째 장에 이 숫자를 적었다.

14:10 C동에 들어서자 다시 번호표를 뽑으라고 했다. 1028. 잠시 기다리자 ‘1번 예진, 2번 예진, 3번 예진, 4번 예진’이라고 나뉜 모니터 화면에서 ‘2번 예진’ 칸에 내 숫자가 떴다. 대기실을 지키는 직원이 내 번호(1028번)를 부른 뒤 예진 구역으로 가라고 했다. 총 4명의 의사가 테이블과 컴퓨터를 하나씩 두고 코너마다 따로 앉아서 예진을 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로 가서 예진표를 내밀었다. 의사가 말했다. “오늘 예방접종 가능한 상태네요. 평소에 알레르기 증상 있으세요?”

흠, 알레르기라. 병원에서 따로 검사를 받거나 한 적은 없었다.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햇볕을 쬐면 자주 피부가 가려워지곤 했다. 어디선가 햇볕 알레르기라는 것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새우를 먹으면 가끔 목구멍이 심하게 간지러울 때가 있는데, 이런 게 일종의 아나필락시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언뜻 기억이 났다. ‘알레르기가 있다고 답했어야 하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의사의 설명은 백신접종 후 생길 수 있는 이상반응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백신을 맞고 나면, 독감백신처럼 접종 부위가 붓거나 몸살 기운이 돌 수 있어요. 아주 드물게 아나필락시스 같은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백신을 맞고 관찰실에서 15분 동안 대기하실 때 어지럽거나 호흡이 가빠지면 말씀을 해주셔야 해요. 더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물론 있었다. 정말로 있었다. ‘새우를 먹고 목이 간질간질해지거나 햇볕에 피부가 가려워지는 사람이 백신을 맞아도 되는 건가요? 혹여나 저에게 그 아나필락시스인가 하는 증상이 찾아오는 건 아닐까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지만 ‘혹시나,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내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불안이 차올랐다. 떠오르는 질문을 목구멍 뒤로 밀어 넣으며 “더 궁금한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모의훈련에서 그런 걸 물어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백신을 맞으러 오는 거였다면 어땠을까. 나처럼 근심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날에는 예진 단계에서 병목현상이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진 구역을 통과하자 바로 접종 구역이었다. 간호사 4명이 이곳에서 각각의 접종자에게 주사를 놓는다. ‘드디어 백신을 맞는구나’ 감격할 새도 없이 곧장 접종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입은 옷은 예방접종 안내 문자에 쓰여 있던 ‘접종 부위 노출이 쉬운 상의’에 해당하지 않았다. 팔꿈치 위쪽에 맞을 테니 소매가 잘 걷히는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소매가 다소 헐렁한) 니트 스웨터는 명백한 오판이었다. 백신주사는 어깨 바로 밑 팔 부위에 맞아야 했다. 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 옷의 목 부위를 늘려 어깨를 드러내는 편이 더 쉽다. 그런데 나는 하필이면 스웨터 중에서도 목을 감싼 폴라 니트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주사를 놓는 부위까지 소매가 걷히지 않았다. 지켜보던 간호사는 목 부위를 늘려 어깨까지 내려보라고 했다. 목이 쫀쫀한 내 니트는 그마저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목 부위를 끌어당겨 어깨 위를 살짝 드러내고, 바늘이 없는 가짜 주사기를 재빠르게 콩 가져다 대는 것으로 모의 접종을 마쳤다. 실제 접종 때 이 복장이었다면 상의를 탈의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간호사는 예진표를 회수한 뒤 관찰실로 이동하라고 안내했다.

접종 구역에서 관찰실로 가는 길목에 취재진이 잔뜩 모여 있었다. 바이알(약병)에 든 백신을 주사기에 소분하는 백신 준비 구역이었다. 무균 작업대(클린벤치)에 앉은 간호사 두 명이 일정한 속도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D동의 초저온 냉동고에 영하 70℃로 보관돼 있던 화이자 백신은 해동을 거친 뒤 이곳 F동의 백신 준비 구역으로 옮겨진다. 생리식염수를 넣어 희석한 화이자 백신은 바이알 한 개당 6회 접종분(주사기 6개)으로 소분할 수 있다. 주사기의 눈금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알맞은 용량을 채워야 하는 일이라 만만치 않아 보였다. 국중원 관계자는 “백신 소분 인력을 몇 시간마다 교체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모의 접종 훈련의 목적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관찰실은 매우 드물지만 급성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아나필락시스 같은 이상반응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을 마치면 이곳에서 15분 동안 대기해야 한다. 넓은 공간에 숫자가 매겨진 의자가 띄엄띄엄 배치돼 있었다. 입구에는 ‘접종센터 관찰실 시간 관리’라고 적힌 모니터가 있었는데 32번까지 대기석이 각각 사각형 칸으로 표시돼 있었다. 자리가 차면 해당 칸이 파란색으로 채워지고 ‘관찰 중’이라는 표시가 뜨면서 남은 시간이 카운트되었다. 나는 10번 자리를 배정받았다. 화면 속 10번 칸이 15분부터 카운트를 시작했다. 관찰실 자리에 앉아 저런 화면을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컴퓨터마다 숫자를 붙이고 이용 시간을 카운트하던 PC방이 떠올랐다.

ⓒ사진공동취재단모의 접종 훈련 중 의료진이 접종 대상자에게 백신을 맞히고 있다.

헤쳐가야 할 여러 가지 난관  

간호사 3명이 관찰실을 담당했다. 이상반응을 호소하는 접종자가 생기면 관찰실 옆에 있는 응급처치실로 옮긴다. 이곳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접종센터 내의 집중관찰실(일반관찰실과 달리 침대가 있다)에서 휴식을 취하게 할지, 국중원 본원의 응급실로 이송할지를 판단한다. 이날 훈련에서는 가상의 두 경우를 모두 점검했다.

14:35 4번 의자에 앉아 있던 여성이 어지럽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며 간호사를 불렀다(물론 미리 정해놓은 대역이었다). 간호사는 곧바로 그를 휠체어에 태워 응급처치실로 이동했다. 신속대응팀을 찾는 방송이 다급하게 울렸다. 의료진은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재고 에피네프린(알레르기 약)을 투여하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 뒤 이 여성은 대기 중이던 구급차에 태워져 응급실로 이송됐다.

두 번째 이상반응 호소자는 건장한 남성이었다. 관찰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온 그는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응급처치실 침대에 뉘어졌다. 진찰 결과, 이 환자는 산소포화도 등 수치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옆방인 집중관찰실 침상으로 옮겨졌다. 응급처치를 담당한 의사는 “접종 후 (긴장으로 인해) 현기증이 있거나 실신할 경우 몇 분 누워 있으면 안정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14:40 내 자리로 다가온 간호사가 15분이 지났다며 관찰실을 떠나도 된다고 말했다. 백신을 맞은 다음 바로 관찰실로 넘어오지 않고, 바이알을 주사기에 옮겨 담는 모습을 구경하며 10분 정도 정신을 팔았으니 그 시간을 빼면 접종 프로세스를 다 마칠 때까지 30분 남짓이 소요된 셈이다.

14:47 관찰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접종자의 15분 대기까지 끝났다. 51명이 참가한 모의 접종 훈련이 종료되었다.

중앙예방접종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정기현 국중원 원장, 김연재 국중원 감염내과 전문의 등 의료인과 국중원 직원들이 모여 이날 훈련에 대해 합평을 했다. 모의 접종을 지켜본 기자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접종센터가 붐빌 경우 교차감염의 위험이 있어 보이고, 관찰실에 자리가 모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지적 외에 별다른 코멘트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봐도, 나처럼 예진 단계에서 이것저것을 캐묻고 싶어 하거나, 폴라 니트를 입고 와서 접종을 지연시키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지만 않는다면 접종은 별 무리 없이 돌아갈 것 같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생리식염수를 넣어 희석한 화이자 백신은 바이알 한 개당 6회 접종분으로 소분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센터가 잘 돌아간다고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방접종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프로그램이다. 누군가의 팔에 주사를 놓기까지, 백신을 수급하고, 운송하고, 접종자를 선정하고, 같은 날 접종자가 몰리지 않도록 예약을 분산하고, 예약 시간에 늦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당일 오지 못한 사람을 관리할 시스템을 짜는 작업들이 촘촘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가운데 많은 역할이 접종센터뿐만 아니라 질병관리청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달려 있었다. 2월27일 시작되는 코로나19 백신(화이자 백신) 접종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백신 수급이 들쭉날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나머지 톱니바퀴들이 잘 맞물려 여러 가지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까? 섣불리 평가하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불확실성 속에 남아 있었다.

ⓒ사진공동취재단응급처치실 의료진이 이상반응 호소자(대역)에게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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