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스포티파이는 세계시장 점유율 34%로 3억4500만 회원에게 7000만 개의 음원을 제공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페이스북 계정과 연동해 회원가입을 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3명 이상 선택하라는 말에 신중을 기해 국내외 뮤지션 3명을 골랐다. 곧바로 7일간의 프리미엄 서비스가 무료로 시작되었다. 내가 고른 아티스트의 곡, 그와 비슷한 아티스트의 곡, 들은 음악 기반의 추천 리스트가 떴다. 틀어놓기만 하면 되었다. ‘취향을 저격’한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마음에 드는 곡이 끝나기 전에 하트 표시를 하고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었다.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뜻의 ‘spot’과 식별한다는 뜻의 ‘identify’의 조합으로 알려진 스포티파이(Spotify)가 2월2일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포티파이는 세계 1위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 34%로 3억4500만명 이상의 회원에게 음원 7000만 개를 제공하고 있다. 2006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스포티파이는 광고에 기반한 음원 스트리밍 방식을 도입했다. 전 세계가 불법 음원 다운로드로 몸살을 앓을 때였다. 사용자는 광고를 듣는 대신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광고 없이 월 정액제로 제한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불법 다운로드를 없애려면 합법적인 무료 서비스가 대안이라는 발상이었다.

곡당 다운로드 비용이 발생하던 음원시장에 변화가 일었다. 불법 다운로드가 유의미하게 줄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반화되는 등 음악산업의 생태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튠즈(애플)가 CD에서 각각의 곡들을 변환하는 동안 스포티파이는 스트리밍을 대중화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미리 예측하는 기술을 만들었다(〈스포티파이 플레이〉, 스벤 칼손 지음).’ 막대한 저작권료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밥 딜런, 콜드플레이,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아티스트에게 보이콧당했다가 회수하기를 반복했다.

한국은 스포티파이가 진출한 93번째 국가다. 음악시장의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점을 감안하면 늦은 편이다. 2월2일 공개된 한국 서비스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었다. 무료 옵션이 첫 번째다. 스포티파이는 ‘빠르고 간단하고 무료’라는 점을 내세워 해외시장을 공략했다. 한국은 예외였다. 개인 1만900원, 듀오(계정 2개) 1만6350원의 유료 옵션뿐이다.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저작권 단체와의 협상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음원 유통업체인 카카오M과도 계약을 맺지 못했다. 아이유, 임영웅의 곡을 들을 수 없다는 기사가 쏟아진 이유다. 오히려 해외 계정을 통해서 이들의 곡을 들을 수 있다.

애초 스포티파이의 한국 진출이 늦은 이유가 국내에서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에는 일찌감치 ‘멜론’을 중심으로 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자리를 잡았다. 가격도 스포티파이에 비해 싸다. 광고를 듣는 대신 무료로 음악을 듣는 모델도 유튜브와 차별성이 없다. 한국 특유의 시장구조도 있다. 멜론, 지니뮤직, 플로 등 국내 주요 음원 플랫폼은 네이버·카카오, 통신사가 운영하고 있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는 “스트리밍부터 매니지먼트까지 수직계열화되어 있는 시스템에서 카카오M은 멜론의 경쟁자를 패배시키기 위해 자사의 음원을 공급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애플뮤직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스포티파이가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력보다 ‘케이팝의 기지’로서 한국에 주목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A 아티스트를 좋아하면 B도 좋아할 거라는 스포티파이의 전략이 한국처럼 작은 시장에서는 먹히기 어렵다. 취향보다 다른 여러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을 공격적으로 높이겠다는 의미보다, 케이팝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보니 그 접점을 넓히려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 스포티파이는 한국 아티스트가 해외에 진출하는 데에도 중요한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지난해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에 오른 BTS는 당시 같은 곡으로 스포티파이 글로벌 50 차트 1위를 하기도 했다.

팟캐스트의 게임 체인저

최근 몇 년 스포티파이에서 케이팝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2월8일 국내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박상욱 스포티파이 한국 매니징 디렉터는 “‘케이팝 대박’ ‘레이더 코리아’ 등 케이팝 대표 플레이리스트가 전 세계에서 1800억 분 이상 소비됐고, 스포티파이를 통해 케이팝을 청취한 시간은 몇 년 새 20배 이상 성장했다”라고 밝혔다. 국내 음반사, 아티스트와 긴밀히 협의해 케이팝이 더 많이 소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음원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스포티파이가 한국 음원시장에 미칠 영향을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낙관론이든 회의론이든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막강한 무기는 큐레이션(추천) 서비스다. 스포티파이는 3억명 넘는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이 가장 좋아할 만한 ‘오디오 경험’을 찾아낸다. 노래 박자나 길이, 장르 같은 음악적 요소뿐 아니라 청취 습관 등을 다양하게 분석한다. 매주 개인의 취향에 맞은 음악을 추천하는 ‘디스커버 위클리’는 ‘전 애인보다 더 정확하게 음악 취향을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몇 년 전부터 미국 계정을 통해 스포티파이를 접해온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지금이 ‘플레이리스트’의 시대라고 정의되는데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는 다른 서비스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음악 듣는 방식이 (국내의) 차트 중심에서 추천곡 중심으로 옮아갔는데 이런 흐름은 더 가속화될 거다. 스포티파이의 경쟁력도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스포티파이는 인디 뮤지션들이 이름을 알리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추천 서비스 덕분에 이전에는 주목하기 어려웠던 국내외 뮤지션을 접하기가 수월해졌다. 스포티파이의 성장기를 다룬 책 〈스포티파이 플레이〉를 보면, 스웨덴의 한 라디오 채널이 스포티파이에서 스코틀랜드의 인디 록밴드 글래스베이거스의 음악을 찾아낸 뒤 밴드가 유명해지기도 했다. 다니엘 에크 스포티파이 대표는 “음반사들은 아티스트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인디 음악계에 미칠 영향에도 주목하는 이유다.

연내 도입될 팟캐스트 서비스에도 관심이 쏠린다. 팟캐스트는 큐레이션과 함께 스포티파이의 주요 서비스다. 2019년 다니엘 에크는 ‘스포티파이가 세계 최고의 오디오 플랫폼이 되는 걸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다. 미셸 오바마, 조 로건 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독점으로 확보했고 현재 콘텐츠 약 220만 개를 보유하고 있다. 고건혁 대표는 “스포티파이가 적극적으로 국내 팟캐스트에 투자하기 시작하면 오디오 분야 메이저 플랫폼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음원보다 팟캐스트 쪽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걸로 사용자를 유입해 음악을 듣게 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멜론 같은 지배적 사업자가 없다는 데서 경쟁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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