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2019년 10월23일 경기 고양에서 열린 ‘한·OECD 국제 교육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슐라이허 국장.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세계 각국에서 최고의 교육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프랑스에 사는 독일인인 그는 안 던컨 전 미국 교육장관으로부터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세계적 문제와 도전을 이해하고 있으며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 마이클 고브 전 영국 국무장관에겐 “영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은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창설했고 지금껏 발전시켜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20년 이상 세계 교육의 질과 형평성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그가 지난해부터 가장 주목하는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의 장기적 손실이다. 2019년 10월 슐라이허는 ‘한·OECD 국제 교육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기조연설로 “2030년을 향한 한국 교육-‘학생 성공’을 다시 정의하다”를 발표하면서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학생 그룹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1. 방과 후 친구들과 얘기하거나 만나는 학생 2. 교사·부모의 충분한 지지가 있는 학생 3. 친구들과 교제하는 학생 4. 더 많은 신체 활동을 하는 학생.”

그의 분류에 따르면 지금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는 그 어느 때보다 최악일 수밖에 없다. 그가 코로나19로 인한 학생들의 삶의 질 하락과 그것에 따른 미래의 장기적 영향에 대해 글을 쓰고,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보고서를 기획하는 이유이다. 지난해 9월 발행된, 교육 공백의 손해를 경제적 비용으로 계산한 OECD 보고서 〈학습 손실의 경제적 영향〉도 그의 손을 거쳤다. “기본적으로 학습은 거래(transaction)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관계적 경험”이라고 주장해온 그에게, 한국이 겪고 있는 교육 공백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물어봤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다.

OECD 보고서 〈학습 손실의 경제적 영향〉은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됐나?

학교 폐쇄의 장기적인 결과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많은 국가들이 학교 폐쇄를 너무 쉽게 단행했다. 쇼핑센터는 열어두지만 학교는 폐쇄한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 사이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법에 관한 파괴적인 신호이다.

학교 폐쇄의 피해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다. 배우는 방법을 알고, 배움을 즐기며, 디지털 자원을 잘 활용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번 원격 학습의 시간이 자유롭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숟가락으로 떠먹이며 가르쳐야 하는 학생, 부모를 포함한 주변의 학습 지원 생태계가 전무한 학생, 애초부터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던 학생들은 정말 심하게 뒤처졌다.

일반적으로 교육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아주 많이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위기는 우리를 예전과 매우 다른 세계에 남겨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 의지를 갖고 있다. 미래세대가 향후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는 우리가 이 위기에 얼마나 체계적으로 잘 대응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격 학습으로 교육 손실을 막을 수 있지 않나?

나는 원격 학습의 가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점점 더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세상을 탐색할 수 있는 나침반과 도구를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핵심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 능숙한, ‘2류 로봇’과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교육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가속화된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제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일류 인간’으로 만드는지 더 열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원격 학습으로는 어렵다.

교육에서의 성공은 더 이상 콘텐츠 지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지식을 기반으로 추론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지식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깊은 이해가 구체적인 사실이나 수치를 기억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수학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학생들이 지수함수를 계산할 수 있게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수학자처럼 생각하며 지수함수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는 너무 적은 시간을 소비한다. 수학의 규율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우리가 지수함수의 본질을 더 잘 이해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100명이 아닌 1000명의 의사를 보내 유행병에 맞서 싸우게 했을 것이다.

ⓒAP Photo1월11일 미국 시카고 도스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교육 공백 문제는 실업이나 폐업과 같은 경제적 손실보다 각국 정부나 정치인들의 관심을 덜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기적 손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그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당장 비난을 받고 (여론의) 처벌을 받는다. 장기적인 손실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린다. 정치인들이 그것을 느끼기에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교육 손실을 줄이려면 코로나19 상황을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봉쇄 수준을 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필연적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찾기 어려운 균형이지만, 건강 및 교육과 관련된 양쪽의 위험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학교를 닫지 않는다. 또한 학교의 공간, 사람, 시간, 기술을 재구성하여 바이러스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 많은 학교들이 이에 관한 창의적인 방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입시를 앞둔 고학년을 더 많이 등교시켰다. 어린 저학년 학생들은 더 많이 집에 머물게 했다. 이 선택을 어떻게 평가하나?

과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어린 초등학교 학생일수록 코로나19 감염 및 전염 위험이 훨씬 낮다. 동시에 저학년은 학교가 주는 사회적 기능이 가장 중요한 연령층이다. 고학년 학생들의 경우 건강 관련 위험이 더 높은 반면 원격 학습은 훨씬 쉽다. 어떤 면에서 어린이들은 바이러스에 가장 덜 취약하지만,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공공 정책 대응에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그룹이다.

학교가 코로나19 확산의 핫스팟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다. 정말 다른 곳들보다 학교가 덜 위험할까?

그렇다. 학교 문을 닫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들은 학교보다 훨씬 방역관리 측면에서 위험하고 정부의 통제력이 닿지 않는 다른 장소에 더 모이게 될 것이다.

교육 손실을 복구하기 위한 로드맵에 어떤 원칙과 철학이 필요할까?

학생 복지(student well-being)를 중심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더 많은 것이 요구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교사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해당 분야와 커리큘럼, 학습법에 대한 전문 지식 같은 것들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을 교사에게 기대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욕구를 가진 학생들에게 서로 다르게 대응하고, 관용과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며,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인 평가를 제공하고, 자신의 가치와 소속감을 느끼도록 보장하고, 협업 학습을 장려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끔 도와야 한다. 그들의 열정을 발견하고, 배움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 공백’ 기획 순서
①1년의 공백 100년의 상환
②힘든 아이가 더 떠안는 교육 공백의 빚
③닫힌 교문 열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④교육 복구 시작은 ‘마이너스 베이스’에서

⑤학교 폐쇄는 우선순위를 파괴한 것"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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