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2020년 6월9일 세종시 소담초등학교에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학교가 하루빨리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를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시 돌아갈 학교는 예전 모습 그대로이면 안 된다. 미래세대는 지난 1년간 교육 공백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시사IN〉 제700·701호 ‘1년의 공백 100년의 상환’ 기사 참조). 그 손실이 오늘 당장 멈춘다고 해도 미래세대는 이미 큰 빚을 떠안은 상태다. 빚은 취약하고 힘든 아이들에게 더욱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교육의 복구’는 ‘제로 베이스’가 아니라 ‘마이너스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시사IN〉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들은 학교가 재개되면 학생들이 따라잡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으로) 추정되는 손실은 개선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크다”라고 말했다.

개선을 위한 특별한 노력의 첫걸음이 바로 ‘복구 로드맵’이다. 어느 부문에서, 누가, 어떤 손실을 입었는지 파악하고 복구의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 이에 예산을 아낌없이, 오랫동안 투입해야 한다. 1년의 공백이 아이들에게 100년의 고통을 주지 않도록, 말 그대로 어른들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무너진 정서·체력을 복구하라

무엇부터 해야 할까? 영국 아동위원회는 지난 1월26일 ‘학교 재개를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전례 없는’ 지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구 로드맵에 필요한 첫 번째는 최대 출력의(turbo-charged) 따라잡기 프로그램. 특히 팬데믹 기간에 학습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아이들에 대한 개별지도 같은 부문에 추가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가난하고 취약한 학생이 또래 간 격차를 줄일 수 있게 해주는 장기 계획이다. 세 번째, 학생들의 학습 손실을 시험 등의 수단으로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네 번째로 필요한 지원은, 모든 학생이 필요하면 전문적인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추가예산을 편성하는 것이다. 영국 아동위원회는 “지금 계획을 세워야 복구 가능성이 높아지고 학교, 교사, 학부모와 자녀 간 신뢰도 향상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20년 12월14일 서울시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에서 원격 체육 수업을 하는 모습.

한국 교육부는 지난 1월28일 초중고 학사 및 교육과정 운영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초등 저학년을 중심으로 등교 수업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교육부가 내건 정책 목표는 ‘학교 일상의 회복’이다. 누적된 학습 결손, 정서 결핍, 체력 저하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 교육청별로 자율적인 새 학년 준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3월에 ‘국가기초학력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소규모 대면 보충지도를 활성화하며, 학생들을 위한 정신건강 상담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학생건강체력평가를 실시하여 맞춤형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 현장에서 느끼기에 가장 시급한 영역은 학생들의 심리 정서 지원이다. 서울 경희중학교에서 학생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안정선 교사는 “올해 전면 등교가 재개되든 부분적으로만 시행되든, 심리 정서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 전부 한 번씩은 자기점검을 받을 수 있게끔 해주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영상 하나 틀어주고, 유인물 한 장 나눠주고 끝내는 요식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문 상담기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초1부터 고3까지 다를 바 없이 획일적인 프로그램 말고, 연령별·지역별로 처한 어려움에 맞는 맞춤식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 중1이었던 아이들은 관계성 훈련이 제대로 안 되었을 테니, 올해 중2가 된 학생들에게는 적어도 한 명이 4회기 이상 참여하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거다. 지역별·학교별로도 요구가 다를 수 있으니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 10개 정도를 만들어놓고 선택이 가능하도록 한다. 학교마다 맞는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을 실행할 학교 인프라다. 예산이 주어진다 해도 기존 학교 체계 안에서는 학생 상담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운영할 인력, 시간, 공간을 빼내기가 너무나 빡빡하다.

안 교사는 “알아서 프로그램 굴리라고 예산만 내려보낼 게 아니라 교육청과 교육부 차원에서 TF 같은 거라도 꾸려서 1~2년 정도 학생들의 정서 회복 로드맵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기사(〈시사IN〉 제700·701호 ‘힘든 아이가 더 떠안는 교육 공백의 빚’)에서 언급했듯 코로나 시대 학생들 간 가장 격차가 벌어진 곳은 국영수 과목보다 문화자본 축적을 도와주는 예체능 영역일 수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의 연구보고서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수업방식의 변화가 교사 수업, 학생 학습, 학부모의 자녀 돌봄에 미친 영향〉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원격-등교 수업 병행 시, 등교 수업 때 가장 받고 싶은 수업’을 물었을 때 압도적인 1위가 예체능 과목(51.6%)이었다. 교사들이 등교 수업 시 가장 적절한 과목으로 꼽은 ‘국영수(52.7%)’와 대비된다. 특히 체육 과목에 대한 욕구가 컸다. 학부모 65.9%도 ‘원격 수업으로는 자녀 학습에 효과가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과목’ 1순위로 체육을 꼽았다.

학생들에게 학교 체육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다양하고 재미있는 체육 수업을 꾸리기로 유명한 성기백 서울 동구로초 교사는 말했다. “애들한테 체육 수업이요? 학교생활의 기쁨 그 자체죠.” 몇 학년 담임을 맡든, 아침에 학생들이 선생님을 만나면 묻는 첫 번째 질문이 이거였다. “쌤, 오늘 체육 시간에 뭐 해요?” 비 오거나 미세먼지가 심해서 오늘 체육 못한다고 하면 단체로 어깨가 축 처졌다. 그 ‘기쁨의’ 시간이 지난해 뭉텅 사라졌는데, 이 문제에 신경 써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다. “학력 격차 이야기는 엄청 나오는데 아무도 체력 격차 이야기를 안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체육은 생존과도 같은 과목이다. 인간이 움직이지 않으면 뇌가 쪼그라든다. 대부분 아이들에게 학교 체육 말고는 별다른 신체활동이 없었는데 지난해 그마저 무너졌다.”

성 교사는 코로나로 인한 교육 손실을 복구하는 로드맵에 이 ‘체력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꼭 포함돼야 한다고 말한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스포츠클럽이니 축구클럽 같은 사교육으로 알아서 체육 활동을 다 하고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집 아이들의 경우, 학력 격차뿐 아니라 체육 격차 문제도 심각하다.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해 인건비나 프로그램비를 각 학교에 내려보내듯, 체력 격차 해소를 위한 ‘체육 꾸러미’ 예산이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1인당 1만원이든 2만원이든 지원해서 배드민턴 채든 탁구채든 체육 교구를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집에서 혼자 50개 치기 연습이라도 하고 학교에 와서 점검받고 이렇게 블렌디드 교육(온·오프라인 수업 병행)을 할 수 있다.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하려면 이런 걸 해야 한다.”

ⓒ시사IN 이명익학교 e알리미 앱에 뜬 학생 놀이 프로그램 안내.

교육의 ‘보편 복지’ 이번만은 ‘급한 곳부터’

‘무엇을 먼저 지원할 것인가’만큼 중요한 것이 ‘누구를 먼저 지원할 것인가’이다. 다수가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이 형성되지만 백신 수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접종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듯, 교육 공백을 채워줄 대상 역시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간 교육에서 보편복지 정책이 확대돼왔지만, 이번 위기에 대해서만은 어느 정도 선별 지원이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원이 한정돼 있는 상태에서 우선순위를 둔다고 한다면 좀 더 피해가 많았던 계층, 학습 결손이 심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 아동의 회복에 집중 투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보편적 지원은 또한 진짜 절박한 상태의 아이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시도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 지원기관들은 지금도 계속 다양한 학습 지원 프로그램, 상담 프로그램, 특기적성 놀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터넷 홈페이지나 학교 e알리미 등의 앱을 통해 공지하고 있다. 그러나 신청자는 대부분 이미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고 시간 여유가 충분한 학부모’라는 자원을 가진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비대면, 그것도 평일 낮에 진행되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생업에 바빠 이런저런 홍보 공지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는 학부모 가정의 아이가 활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수연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복지연구부장은 “부모의 지도나 지원 없이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직접 상담이나 교육 서비스에 참여하기는 매우 어렵다. 생업으로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부모들을 대신해 아동·청소년의 교육·복지 서비스 공백을 메워줄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말 장밋빛으로 꿈꿔보면, 이번의 이런 ‘집중투자’가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다. 안정선 경희중 교사는 지난해 원격 수업을 하면서 이전에 눈에 잘 뜨이지 않던 학생들이 교사 눈에 들어오는 현상을 경험했다. “전에는 공부를 잘 하거나 심하게 말썽을 부리는 양극단의 아이들에게 에너지가 많이 갔다면, 작년에는 평범하지만 제대로 수업을 못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개별로 불러 보충 지도를 하게 되더라.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냥저냥 눈에 안 띄고 관심도 못 받고 지나갈 아이들이 1~2년 동안 개인과외 같은 교사들의 집중 지도를 받는다면 초등 저학년 때부터 누적돼온 기초학력 부진을 보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교육 회복 로드맵의 가장 중요한 키는 학교에서 직접 학생들을 만나는 개별 교사가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코로나19로 무너진 교육을 복구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 인터뷰 기사 참조). 정해진 수업 시간에 학생 수십 명 앞에서 정해진 진도를 충실히 가르치고 나면 교사의 역할을 다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이정연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교사들이 이 시간,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아이들만 열심히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지난 한 해 원격 수업을 거치면서 학생이 내 눈앞에 없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학습하는가를 학생 개별적으로 살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비대면 수업 환경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기주도 학습 경험을 쌓아가면서 교사는 ‘학습 주도자’에서 ‘학습 촉진자’로 역할을 바꿔가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시사IN 조남진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지식 중심의 학력’을 ‘실제 삶에 필요한 자기정체성 형성 및 미래 역량’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의 여러 관성들도 도전을 받게 됐다. ‘학교에서 으레 하니까 하던 것’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관습상 유지되는 풍경들이 지난해 코로나 위기 속에서 종종 눈에 띄었다. 학생들 사이 거리두기를 하라면서도 등교 시 복장 단속 같은 교문 지도나 핸드폰 일시 수거·반납 등이 이뤄졌다. 오프라인 등교를 금지한 상태에서 꼭 특정일 특정 장소에 가서 교복을 주문하라고 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처럼 학생들끼리나 교사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규제들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곳들이 많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올해 신년사에서 ‘뺄셈 행정’이라는 정책 구호를 내세웠다. 성현석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은 “학교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축적된 낭비적인 행정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덜어내서 코로나 세대의 회복을 위한 추가 자원을 더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분야도 그렇듯 교육 부문에서도 코로나가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코로나가 들춰냈다고 봐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을 메울 복구 로드맵은 결국 한국 교육의 고질적 모순과 병폐를 해소하는 미래 로드맵과 다르지 않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지식 전수 중심’으로서의 학교는 코로나19 이전에도 2대 8로 나뉜 양극화된 공간이었다고 진단한다. 좋은 환경에서 충분한 ‘케어’를 받는 학생 10%, 수동적이지만 간당간당하게 따라가던 학생 10%에 비해 나머지 80%는 이미 학교에서 미래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역량을 제대로 얻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코로나19 이후 간당간당하게 쫓아가던 중간층 10%의 학생들이 비대면 학습 상황에서 급격히 무너지면서 2대 8이 1대 9의 구도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해법은 기존의 2대 8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패를 가르던 기준인 ‘지식 중심의 학력’을 ‘실제 삶에 필요한 자기정체성 형성 및 미래 역량’으로 바꾸어 아이들에게 길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영유아기에는 돌봄 문제를 공적으로 강화해주고, 초등·중학교 단계에서는 기본학습 역량을 보장해주며, 고등학교 이후에는 다양한 욕구와 적성에 따라 맞춤형 발전 경로를 보장해주고, 대학 이후에는 학습자 중심 체제, 평생학습 플랫폼 대학 등을 구축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교육에 미친 영향과 복구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모두의 의견이 같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과거의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교육 공백을 복구하는 일은 그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교육 공백’ 기획 순서
①1년의 공백 100년의 상환
②힘든 아이가 더 떠안는 교육 공백의 빚
③닫힌 교문 열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④교육 복구 시작은 ‘마이너스 베이스’에서

⑤학교 폐쇄는 우선순위를 파괴한 것"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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