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 제공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절판된 책을 찾아달라며 나를 찾아온 일이 있다. 이 손님이 아직까지는 최연소 의뢰인이다.

쑥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그 소년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 뒤에도 한참 동안 내게 말을 붙이지 못하고 고양이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만 했다. 우습게도 그 행동은 생리현상이 몹시 급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혹시 화장실을 찾으시는 거라면 책방 구석에 있다고 말했다. 소년은 내 말에 더욱 당황하며, 그게 아니라 찾는 책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찾고 있는 책이 좀 이상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제목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세로로 쓰였고 ‘소중한 것’ 혹은 ‘소중하다’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본문 역시 세로쓰기 편집이다. 책 표지에 출판사와 작가 이름이 있는데 모두 한자라 읽을 수 없었다. 목차에도 한자가 많아서 기억나는 게 없고 다만 글 한 꼭지가 한글로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만 펼쳐서 잠깐 읽어봤을 뿐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출판연도도 모르고, 기억하는 거라곤 소제목 한 단어뿐인 이 책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심령술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이 책이 2000년대에 태어난 고등학생이 흔히 갖고 있을 법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사실 이건 제가 아니라 아빠 책이거든요. 저희는 가난한데, 그게 다 아빠가 무능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는 쉬는 날도 없이 매일 일하러 나갔어요. 가끔 쉬는 날이면 팔자 좋게 책만 보는 게 너무 미웠어요.”

아버지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인데 아들의 중학교 졸업식 날에도 새벽에 일을 나갔다고 한다. 단단히 화가 난 소년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가 자주 보시던 책을 가지고 나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는 거다.

“그래도 무슨 책이길래 아빠가 자주 봤는지 궁금해서 조금 읽었거든요. 어떤 시인이 한국전쟁 때 부산에 피란 왔다가 지하 다방인가에서 이상한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서 죽고 싶은 날이라 다음 이야기는 보지도 않고 책을 버렸어요. 그 일 때문에 아빠가 화를 많이 냈는데 지금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서 할 수 있으면 똑같은 책을 다시 구해 드리고 싶어요.”

소년이 들려준 이야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이 있다. 전봉래 시인이다. 그는 전후 모더니즘 계열 작가 중 한 명인 전봉건 시인의 형이다. 젊은 무명 시인은 유럽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종군기자로 활동하다가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짧은 유서를 써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실린 책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다만 정확하고 청백리하게 살기 위해”

무슨 책을 찾아야 하는지 감을 잡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그 책은 1970년대에 출판된 것으로, 시인 여럿이 쓴 산문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었다. 편집자는 시인들에게 ‘아직도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어냐’는 화두를 주었고 전봉건 시인은 형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찾은 책을 건네주기 위해 소년을 다시 책방에 초대했다. 나는 그에게 자살한 시인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사실 그 부분 뒤에 또 다른 시인 두 명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걸 소년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육체적 죽음, 정신적 죽음, 그리고 살아가면서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라는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눴다. 나는 소년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였지만 오랜만에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같이 들뜬 기분이었다. 소년의 얼굴에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같은 어색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명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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