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 제공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방탄소년단(BTS) 현상’은 낯설다. 한국 대중문화가 먼저 세계를 휩쓴 뒤 그 인기가 국내로 도리어 ‘역수입’된 것이다. 한국인에겐 쉽게 익숙해지기 힘든 사건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봐도 비영어권 국가 ‘출신’의 대중문화가 서구권 주류 유행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BTS 현상의 본질은 서구권, 특히 미국에서의 인기다.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길은 빌보드차트(빌보드 핫 100) 기록이다. 이 차트는 매주 음원 판매, 스트리밍, 라디오방송 기록 등을 종합해 발표한다. 지난해 8월 내놓은 ‘다이너마이트(Dynamite)’는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데뷔한 뒤 하나의 곡만 히트시키고 사라지는 가수)’가 아니다. 2018년 ‘페이크 러브(Fake love)’는 10위를, 이듬해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8위에 올랐다. 2020년 초 발표한 ‘온(On)’이 4위까지 간 데 이어 ‘다이너마이트’가 1위에 오른 것이다.

해외 수상 실적도 화려하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는 BTS에게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내리 네 차례 ‘톱 소셜아티스트상’을 줬다. 2019년 이들은 ‘톱 듀오·그룹상’까지 거머쥐었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도 듀오·그룹 팝/록(2019~2020년), 소셜 아티스트(2018~2020년), 올해의 투어(2019년) 등을 휩쓸었다. 오는 3월14일 발표할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도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BTS 이전에도 한국 음악이 서구에서 인기를 끈 적은 있다. 2012년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차트 2위까지 올랐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39억 회로, 세계 인구의 절반에 달한다. 지금과 달리 당시 빌보드는 유튜브 점수를 집계에 포함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집계했다면 싸이가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강남스타일’은 온라인에서 어마어마한 화제를 모았다. 각종 패러디 영상이 생산됐고, 해외발 리액션 비디오(음악이나 영상에 대한 반응을 찍어 올린 동영상)도 다수 올라왔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2019년 2월11일 제61회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에 오른 BTS.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싸이와 BTS의 사례를 구분한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인기는 분명 예외적 사건이었지만, 그 성격은 인터넷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우스운 말이나 영상, 이미지)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히트가 케이팝(K-pop)의 세계적 이미지를 고착화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BTS와 아미컬처〉를 펴낸 이지행 박사는 책에 이렇게 썼다.

“일반 서구 대중에게 케이팝의 인상을 가장 강력하게 심어준 것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중독성 있는 후크와 재미있는 몸짓, ‘음악성보다 공연성이 두드러지는 시각적 장르’라는 케이팝에 대한 평가는 뒤집어보면 ‘음악성과는 거리가 먼, 진지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얘기도 된다.” 말하자면 BTS는 서구에서 히트한 최초의 한국산 ‘진지한 음악’이다. 세계 팬들은 BTS의 무대를 보고 웃지 않는다. 오히려 공연장에 모인 팬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멤버들의 이름을 울부짖는다.

“케이팝이 아니라 BTS를 사랑한다”

사실 한국 대중음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지한 음악’을 들고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려왔다. ‘케이팝’이라는 용어도 그 산물이다. 케이팝을 연구해온 이규탁 교수(한국조지메이슨 대학 교양학부)는 “케이팝이라는 말을 발명한 건 해외 팬들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쓰이다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한국에는 역수입됐다”라고 말했다.

해외 팬들에게 수출하는 데 성공한 한국 음악만 케이팝이라고 불린다. 나훈아나 조용필, 인디나 록 가수들은 케이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한국 대중음악 중 아이돌 음악만큼 성공적으로 해외에 안착한 사례는 사실상 없다. 그래서 이 교수는 케이팝이 “사실상 ‘한국 아이돌 음악’과 동의어로 쓰인다”라고 말했다.

‘케이팝 모델’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음악의 갈래가 아니다. 음악시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략에 가깝다. 2008년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윤선미 퍼스트원엔터테인먼트 본부장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무조건 해외에 진출해야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작은 내수시장 규모’가 이유였는데, 인구가 적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고 MP3 음원시장이 형성되면서 음반 구매량이 수직 하강했다. 윤 본부장에 따르면, “국내에서 앨범만 만들어 파는 것으로는 산업이 유지가 안 될 정도였다. 이런 고민에서 찾은 성공적 수익모델이 현재의 케이팝 아이돌 시스템이다.”

ⓒ연합뉴스2019년 5월30일 영국 런던의 BTS 팝업스토어 앞에서 현지인 팬이 개장을 기다리며 리플릿을 보고 있다.

케이팝식 아이돌 음악은 공통점이 있다. 해외 음악과 대비되는 케이팝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시각효과다. 알록달록한 의상과 현란한 몸동작, 다양한 무대 소품을 동원하는 케이팝은 ‘보는 음악’이라고 불린다. 보이그룹의 트레이드마크는 이른바 ‘칼군무’다. 다수 인원이 똑같은 춤을 박자에 맞춰 선보인다. 평론가들은 케이팝이 솔로가 아닌 그룹, 발라드보다 댄스를 지향하게 된 것도 시각효과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시각적 요소를 내세워 얻으려는 최종 목표는 수출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누구나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댄스음악이 아니거나 군무가 없다면 케이팝이 아닌가? 이규탁 교수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다른 음악과 차별적인 케이팝의 특성을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 ‘기획사가 중심이 되는 아이돌 육성·관리 시스템’이라고 본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분업과 통제다. 선발, 육성, 마케팅, 작곡, 작사 등을 기획사 안팎 전문가들이 담당한다. 분업은 각 부문 모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담보한다. 연애나 SNS, 음주 등을 금지하고, 그룹 합숙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교수는 이 시스템이 케이팝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한국의 경쟁적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통제의 내용이 바뀔 수는 있어도 경쟁 구조가 유지되는 한 ‘트레이닝시켜서 완성품을 내보내는’ 아이돌 시스템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이 중심이 된 케이팝 모델은 아시아권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2010년대 들어 케이팝은 사실상 아시아 대중음악의 맹주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아미(ARMY)’라고 불리는 BTS 팬 일부는 케이팝이라는 꼬리표를 못마땅하게 본다. BTS의 성공은 어떤 한국 가수도 이루지 못한 예외적이고 특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미들은 ‘BTS의 성공이 케이팝 세계화’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SNS에서는 “우리는 ‘BTS 팝’을 사랑할 뿐 케이팝 전체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해외 팬들의 발언을 찾아볼 수 있다. 케이팝의 특징으로 꼽히는 요소들에 담긴 부정적 이미지도 한몫한다. 시각효과는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분업과 통제는 ‘꼭두각시’라는 비하로 종종 이어진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케이팝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미국에는 적지 않았다. BTS 이전 케이팝은 ‘강남스타일’ 같은 단발성 콘텐츠나, 소수만 즐기는 하위문화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라디오방송의 보수성을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차량 이동거리가 긴 미국에서 라디오 채널의 선곡은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빌보드차트에서도 라디오 선곡 횟수는 순위의 주된 척도로 활용된다. 하지만 미국 대중 다수의 취향을 반영하는 라디오에서 한국 노래를 트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시도했던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프로듀서는 2009년 “미국 라디오방송국은 로비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 아무리 팬이 많아도 진입하기 힘든 곳이다”라고 말했다.

라디오를 활용할 수 없었던 한국 가수들은 다른 전략을 써 미국 내 인지도를 높이려 했다. 음반을 싸게 판매하고, 현지 유명 가수 공연에 게스트로 나갔다. 이 방식은 막대한 자본과 충분한 시간, 넓은 인맥이 필요한 데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반감만 사는 경우도 잦았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돼 충분한 자원을 갖춘 한국 최고 수준의 가수들만 미국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전 국민이 이들의 미국 진출을 알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실패 소식을 접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2020년 6월14일 진행된 BTS의 온라인 공연 〈방방콘 The Live〉.

뉴미디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미국 음악시장 상황은 바뀌었다. 케이팝 같은 ‘새로운 음악’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이 대폭 강화됐다. 덤핑판매 음반을 사는 데에도 1달러는 들지만 유튜브 영상 시청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해외 음악, 비주류 장르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 라디오 DJ 같은 게이트키퍼(gatekeeper)를 대신해 특정 ‘알고리즘’에 따라 다음에 볼 영상을 추천하는 시스템이 있다. 한번 케이팝 영상을 본 사람은 높은 확률로 유사한 영상을 추천받게 된다. 유튜브라는 영상매체는 마침 케이팝의 시각적 요소를 부각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한국 출신 음악이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얻는, ‘역수입’을 위한 판이 깔린 셈이었다.

서양인에게 ‘연애 감정’ 어필하다

대중매체의 장애물은 우회할 수 있게 됐지만 케이팝 앞에는 더 근본적 장벽이 남아 있었다. 국내와 같은 충성심 있는 팬덤이 서구권에서는 조성되지 않았다. 아이돌 산업은 우연히 추천받은 뮤직비디오만 가끔 시청하는, 느슨한 청중의 힘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열성적이고 조직된 팬덤이 생겨나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아이돌 스타에게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다. 팬덤에 속한 사람들도 음악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듣고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본다. 실물 CD로 된 음반을 1인당 수십 장씩 산다. 아이돌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려는 의도만은 아니다. CD 판매 기록을 높여서 음악 차트 순위를 올리려는 목적도 있고, 포토북 등 음반 구성품을 사 모으려는 이도 있다. 세계적으로 음반시장은 불황이지만 2010년대 초반의 한국에서는 아이돌 팬덤 덕분에 십수 년 만에 밀리언셀러 앨범이 등장하는 예외적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팬덤을 통한 성공이 어렵다. 인종 문제가 있다. 팬덤의 중요 기반은 아이돌에 대한 ‘유사 연애 감정’인데, 서구에는 동양인 아이돌을 연애 상대로 생각하는 팬이 한국만큼 많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BTS 길 위에서〉를 펴낸 홍석경 교수(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는 성애에 대한 인종적 고정관념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할리우드 영화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두고 홍 교수는 “(할리우드 영화 속) 청룽(성룡)과 같은 계열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인기는 있지만 섹스어필하지 않는 동아시아 남자 캐릭터라는 것이다. 자국에서는 로맨스 장르도 소화하는 동양인 배우들이 서양 관객에게 전시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유독 액션에 치중한다. “저우룬파(주윤발)나 비의 할리우드 출연작을 보라. 근육을 과시하고 혼자서 여러 명과 싸우는데도 섹스어필하지는 않는다. 관객의 시선에 자신의 몸을 노출할 뿐(에로틱한 눈의 대상이 아니다)이다. 동시에 (그들은) 에로틱한 눈으로 이성을 보는 주체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남자 주인공은 여성의 관심과 사랑을 차지하지만, 동양인 배우들에게는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UPI2018년 9월24일 유엔에서 열린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BTS.

홍석경 교수는 BTS가 “인종에 대한 전 세계인의 집단적 상상력”에 균열을 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BTS 현상은, 동아시아 남성이 서양인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몹시 예외적인 사건이다.

BTS는 남성미를 뽐내는 대신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했다. 전작 〈다크 앤드 와일드(Dark & Wild)〉에서 어둡고 거친 힙합을 내세운 BTS는 2015년 〈화양연화 pt.1〉 앨범부터 부드러운 아이돌 팝 음악으로 색깔을 바꿨다. 이때를 기점으로 국내외 팬덤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아미’가 된 윤소진씨(33·가명)는 음악방송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BTS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게 됐다. 우선 영상의 양에 놀랐다. 뮤직비디오 외에도 무대 비하인드 영상이나 녹음 영상, 밥 먹는 영상 등 다른 아이돌은 올리지 않던 모습을 찍어 올렸다. “데뷔한 지 2년쯤 됐을 때인데, 영상 수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그룹 같았다.” 그는 이 영상들이 전 세계 10대에게 어필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10대는 돈은 없지만 시간이 더 많다. 무료 콘텐츠를 계속 보면서 금방 친밀감을 느꼈을 것 같다.”

5~6년 전만 해도 유튜브 홍보에 적극적인 케이팝 아이돌은 많지 않았다. 뮤직비디오와 음악방송, 예능 정도 외에는 거의 영상을 올리지 않았다. 트위터 등 여타 SNS도 한정적으로만 사용했다. 공식 일정을 올리는 창구일 뿐 아이돌이 직접 소통하는 장으로 쓰지는 않았다. 뉴미디어에 적응이 늦은 측면도 있었지만 ‘자세’의 차이이기도 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위험부담이 더 크다고 봤다. 자칫 SNS에서 실언을 하면 긁어 부스럼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신비주의’가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사적인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고 직접 SNS를 하는 게 주류가 된 건 BTS의 성공 이후의 일이다.

ⓒ시사IN 이명익홍석경 교수에 따르면 BTS 현상은 동아시아 남성이 서양인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외적인 사건이다.

카리스마 뒤에 숨지 않고 인간적으로 소통

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위험부담을 무릅썼다. 기존의 케이팝 시스템은 이상적 모습을 선택해서 보여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아이돌의 말, 표정, 옷차림, 메이크업을 정하는 전문가들이 최적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휴대전화 사용과 SNS를 통제하는 관리자들은 최악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그런데 기획사가 업로드하는 BTS의 영상에는, 이런 과정을 거쳤는지 의구심이 가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있다. 공연이 잘 안 풀려서 낙담하고, 다른 멤버의 외모를 놀리거나,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 국내외 팬들은 이런 불완전한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미를 느꼈다. 〈BTS:The Review〉를 쓴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케이팝은 늘 ‘카리스마’를 앞세웠다. 이상화된 모습만 보여 어필하고자 했다. BTS는 여기서 벗어나, 전부 열어놓고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이상하게 BTS의 성공 요인으로 잘 이야기되지 않는 건데, 멤버들이 서로 정말 친한 것 같다. 보통 그 정도 성공하면 어떤 지점에서든 구멍이 생겨야 하는데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멤버들 간의 관계는 팬덤을 붙잡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한 BTS 팬은 “원래 팬질하던 다른 그룹이 있었는데 ‘사실은 멤버들 간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을 듣고부터 정이 떨어졌다. 환상이 깨졌다”라고 말했다. 기획사도 팬들의 환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안다. 케이팝 그룹이 ‘사적인 모습을 최대한 공개한다’는 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내부 갈등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뜻이 된다.

BTS에서는, 케이팝의 성공 요소로 꼽혔던 분업과 통제도 일부 약화되었다. 전문 작곡·작사가에게 제작을 일임하는 일반적 케이팝 그룹과 달리 BTS는 멤버들이 곡을 제작하는 데 참여한다. SNS를 통해 직접 소통하며, 생활도 여타 아이돌보다 자유롭다고 알려져 있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2018년 KBS1 〈명견만리〉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빛나는 스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팬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긴밀히 소통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배경지식을 알게 된 팬들은 BTS의 음악에서 ‘진정성’을 느낀다고 말한다.

ⓒAP Photo2018년 5월20일 빌보드 뮤직 어워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는 BTS를 보기 위해 모인 해외 팬덤.

팬들과 긴밀히 소통하려는 스타는 미국에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BTS를 필두로 한 케이팝 스타들처럼 늘 팬들을 친절히 대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장르인 힙합과 록 뮤지션들은 팬들을 오만하게 대하거나, 온라인상에서 팬과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BTS는 팝스타로서의 자아를 분명 갖고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언제나 나이스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존재이다. 해외시장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라고 말했다.

BTS가 언제까지 예외적 존재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케이팝은 BTS 모델을 따르느라 여념이 없고, 음반시장의 불황을 생각하면 서구 국가의 팝스타들도 BTS의 노하우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 기본은 거리 좁히기다. ‘취향과 알고리즘’에 호소하려는 음악인들은 이전 시대의 거장들과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모른다. 1966년 존 레넌은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1일 온라인 콘서트에서 BTS 진은 새해 소원으로 “멤버들이 언제까지고 귀여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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