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갈무리

〈미생〉은 그저 한 편의 흥행한 드라마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청년과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담론들이 ‘장그래’를 호명했고 심지어 그 이름을 딴 법까지 나올 정도였다.

2021년, ‘실감나는 직장 생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또 등장했다. 이번엔 텔레비전이 아니라 유튜브 ‘이과장’ 채널에서 나왔다. 〈좋좋소〉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유튜브에서 나름의 히트를 이어나가고 있다. 가장 최근 에피소드인 5화는 1월24일에 공개되자마자 실시간 인기 급상승 탭 1위에 올랐다. 그 전 에피소드들도 조회수 100만 회를 넘기거나 그에 육박한다.

〈미생〉에서 아무런 ‘스펙’ 없이 낙하산으로 대기업 인턴이 된 장그래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그런데 이와 달리 〈좋좋소〉에는 마주해야 할 ‘질서’ 자체가 없다. 주인공 조충범이 마주하는 부조리들은 경력, 공채, 정규직·비정규직처럼 기존 체제들에 내장되어 있는 질서가 아니다. 그가 부딪히는 부조리는 무질서다.

면접에선 사장이 늘어놓는 기나긴 자기 자랑을 억지로 들어야 한다. 보여준 것이라고는 사장의 강요로 마지못해 부른 노래 몇 소절밖에 없는데 그날 바로 채용된다. 채용되었는데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이 기본이고, 연봉 결정과 승진은 사장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경력, 공채, 정규직·비정규직, 성별, 학벌 등이 무의미한 회사. 유명 유튜버 ‘곽튜브’의 실제 사연을 각색했다고 하는 드라마 〈좋좋소〉에 나오는 회사의 모습 중 일부이다.

판타지일 것 같은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미생〉은 드라마이고 〈좋좋소〉는 다큐멘터리다’라는 평들이 즐비하다. 각 에피소드의 댓글창에 ‘중소기업 출신들이 보면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올 만큼 현실 고증이 잘 되었다’고 하며 각자의 사연을 덧붙이고 있다. 〈좋좋소〉는 수많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지만 유튜브 안에서만 이슈다. 〈좋좋소〉의 흥행은 그저 댓글창에 달리는 ‘이 드라마는 현실이니까 취준생들은 절대 중소기업 오지 마라’는 식의 반응으로 수렴될 뿐이다.

대기업만 다루는 TV 드라마

TV 드라마들은 주로 대기업만 소재로 다룬다. 담론이나 사회적 의제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 하면 ‘우리나라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등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노동 이슈만 등장할 뿐이다. 노동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현장의 구체적 상황이나 개선 방안들은 거의 의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과장’ 채널은 당초 본인이 다니던 어지러운 사무실에서 핸드폰 카메라로 대충 찍은 영상을 올리곤 했다. 그가 이젠 TV 드라마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웹 드라마를 만들어 올린다. 여기서 뉴미디어 시대의 가능성을 본다. 거대 자본이나 대형 언론이 주목하지 않아도 자기 콘텐츠를 갖고 성장하면 자기 목소리로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어서 공개할 수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따라붙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좋좋소〉가 더 크게 성공하길 바란다. ‘〈미생〉 신드롬’ 때 그랬듯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도 스크린 밖으로 뻗어나가 논의되길 기대한다.

기자명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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