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월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되어 있다.

누군가 자기 뒤를 캐고 다니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것도 조용히나 할 것이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욕을 해대는 사람을 적대시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가능하면 끝까지 숨기고 가리고 싶은 게 자신의 약점이다. 그러나 크든 작든 약점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그걸 건드리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꼭 어떤 기업의 나쁜 점에 대해서만 캐고 다닌다면 그걸 좋아할 기업인은 없다. 그 회사의 주주들도 당연히 싫어할 것이다. 이들은 당신 회사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데 목숨을 건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동네방네 스피커를 대놓고 회사의 나쁜 점만 골라서 아예 방송을 하고 다닌다. 주가만 떨어뜨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그러나 크든 작든 약점 없는 회사는 없다. 그러니 그걸 건드리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드러내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 역시 없는 건 마찬가지다. 자신의 약점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그러니 나만 입 다물면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 광고하고 싶은 회사는 없다. 회사의 약점은 경영자가 가장 잘 안다. 경영자만 입 다물면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 약점에 대해 내가 입 다무는 거야 내 자유이지만 기업은 다르다. 좋건 나쁘건 회사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숨김없이 드러내도록(‘공시’하도록) 법으로 규제해놓았기 때문이다. 기업에 불리한 정보가 알려지면 주가는 떨어진다. 당연히 숨기고 싶겠지만 그랬다간 감옥에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드러내기는 하되 최대한 애매모호하게 할 일이다. 가능한 한 사람들이 잘 안 보는 곳에 살짝만 얘기를 올려놓는 식으로 말이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숨긴 적이 없고 다만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에두르면 된다.

잘했으면 100점 맞았다고 수치까지 들어서 분명히 얘기하지만 못했으면 ‘조금 망쳤어’라고 애매하게 얘기하는 게 사람이다. 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를 발표하면서 성과가 좋았으면 주당 영업이익이 100원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얘기하지만, 성과가 나빴으면 지난 분기보다는 ‘약간 내려갈 것’이라고 애매하게 얘기하는 게 회사다.

사실 기업들이 불리한 정보를 최대한 애매하게 공시한다는 건 새롭지도 않다. 그래서 기업이 애매하게 공시하면 시장은 이를 경영자가 무언가를 숨기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주가는 떨어진다. 애매한 공시에 물리는 페널티다. 얼마나 나쁜 정보가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정확히 얼마가 떨어져야 적당한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기업이 기를 쓰고 숨기려 하는 정보를 일반투자자들이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중에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때는 왜 몰랐을까 한탄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애당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 누군가가 나서서 기업이 숨기고자 하는 정보가 어떤 것이며 얼마나 되는지, 그 회사의 참 가치는 얼마인지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합뉴스1월19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위원회 업무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공매도자들이 주는 고급 정보

공매도자들이 그런 일을 한다. 주가가 떨어져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공매도자들은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기어코 찾아내 이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더구나 애써 찾은 정보를 공짜로 나눠준다. 아니, 오히려 자기 돈을 써가며 광고한다. 한편 기업의 좋은 점은 최대한 숨긴다.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도대체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겠지만 분노하기 전에 우리는 공매도에 대해 조금 알아봐야 한다.

공매도는 오늘 주식을 ‘빌려와서’ 팔고, 내일 주식을 사서 빌려준 사람에게 갚아 청산하는 투자를 말한다. 질문 하나가 떠오를 것이다.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굳이 빌려서라도 오늘 팔겠다는 이유가 뭘까?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굳이 팔고 싶은 건, 오늘 팔아야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일은 오늘보다 가격이 더 떨어질 거라는 얘기다. 이는 오늘 주가가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과대평가된 주식을 이용해 이익을 만들고 싶다면 주가가 떨어질 때 이득을 얻는 공매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과소평가된 주식을 이용해 이익을 만들고 싶은 경우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얻는 매수 거래를 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투자다.

그런데 공매도는 매수 거래보다 훨씬 더 위험한 투자다. 예를 들어 오늘 어떤 회사의 주가가 1만원이라고 치자. 당신은 그 가격에 오늘 한 주를 샀다. 이 거래로 인해 내일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 손실은 1만원이다. 주가가 0원으로 떨어질 때 감내해야 할 손실이다. 그렇지만 내일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 이익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무한대다. 주가는 0원 밑으로 내려갈 수 없지만 위로는 얼마든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격이 올라야 돈을 버는 포지션을 매수 또는 롱(long)포지션이라고 부른다.

이제 공매도의 경우를 보자. 오늘 당신이 1만원에 한 주를 공매도했다면 내일 당신이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최대 이익은 1만원이다. 주가가 0원으로 떨어졌을 때 벌게 될 수익이다. 반면 최대 손실은 무한대다. 주가가 오르면 오른 만큼 당신은 더 비싼 돈을 주고 주식을 사서 빌려준 사람에게 갚아야 하니 손실이 커진다. 이처럼 가격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포지션을 공매도 또는 숏(short)포지션이라고 부른다. 정리하자면 ‘롱’은 가격이 올라야 돈을 벌고 최대 손실이 제한적이며 최대 이익이 무한대인 반면, ‘숏’은 가격이 떨어져야 돈을 벌고 최대 손실은 무한대이며 최대 이익은 제한적인 투자다. 이처럼 ‘숏’은 아주 위험한 투자다.

ⓒReuter2010년 뉴욕 나스닥 시세 전광판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그럼 그렇게 위험한 ‘숏’을 하고 싶다면 당신은 어떤 주식을 고르겠는가? 당신이 아무리 어떤 회사의 주가가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그 회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시장의 믿음이 굳건하다면 공매도했다가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다. 최근 사례도 있다. 2001년 미국 석유회사 엔론의 몰락을 예견하고 그 주식을 미리 공매도해 거대한 수익을 올렸던,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일 짐 채노스는 몇 년 전부터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에 대량의 공매도 포지션을 잡아놓고 있었다. 그러나 테슬라 주가가 작년에 얼마나 올랐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얼마 전 채노스는 테슬라 주가가 너무 올라서 무척 고통스러웠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러니 공매도를 하고 싶다면 과대평가되어 있을 게 확실한, 다시 말해 앞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주식을 잘 골라야 한다.

공매도 투자자들이 과대평가된 주식을 골라서 공매도한 것이라면 설령 공매도 이후에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공매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공매도 투자자들이 그저 앞으로 가격이 하락할 주식을 잘 골라낸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공매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자들의 격렬한 분노를 산다. 주가가 폭락해서 정신이 아득한데 그때마다 공매도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는 것이다. 공매도만 없었어도 주가가 안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공매도가 없었더라도 과대평가된 주식이었다면 주가는 떨어졌을 것이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을 펴는 것이지, 당신이 우산을 폈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우산을 없애버리면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는 없다.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 짐 채노스(위)는 테슬라 공매도 투자를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다만 공매도가 없었다면 주가는 ‘훨씬 느리게’ 떨어졌을 것이다. 더 고약하게는 ‘한참 더 오른 후에’ 한참 더 추락할 수도 있다. 어차피 떨어질 거라는 걸 안다면 어디쯤에서 떨어지는 것이 낫겠는가. 적정 높이가 20m라면 100m까지 올랐다가 그 높이에서 추락하는 것보다 차라리 30m 정도에서 떨어지는 게 덜 아프지 않겠는가. 물론 당신이 25m 정도에서 내려올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어떤 회사의 ‘펀더멘털’이 1만원이라고 치자. 여기서 펀더멘털은 적정 주가를 말한다. 그리고 주가는 지금 그 열 배인 10만원이라고 치자. 최근 공매도 공격을 받은 이후 상장 폐지된 미국의 루이싱 커피(Luckin Coffee)처럼 온갖 거짓으로 주가를 뻥튀겼다고 생각하자는 거다. 공매도가 시작됐다. 이곳저곳에서 저 주식의 가격은 과대평가된 거라며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발악을 해대는 소리가 들린다. 신문이나 방송에 뉴스거리로 제보하고, 인터뷰하고, SNS로 욕하고, 규제 당국에 고발하는 등 가능한 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그 주식 욕하기에 바쁘다. 오지랖도 넓다. 당연히 주주들은 공매도자들이 밉고 싫다.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의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저 난리를 치는데 어떻게 밉지 않을 수가 있겠나. 주가가 꺾이기 시작한다. 10만원에 산 주식이 결국 1만원이 된다.

공매도자들은 ‘원래’ 그렇게 한다. 그게 그 사람들 일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기업에 부정적인 정보는 기업가들이나 대주주들이 기를 쓰고 숨기려 하고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얻기 힘들다(왜 루이싱 커피 사태가 최근에서야 벌어졌을까). 위에서 말했지만 이런 정보를 어렵게 찾아내 세상에 알려주는 게 공매도다.

ⓒAP Photo2018년 8월15일 중국 베이징의 루이싱 커피 매장. 공매도 공격으로 주가 뻥튀기가 드러나 상장 폐지되었다.

만약 공매도를 금지한 덕분에 10만원도 과대평가된 거라고 떠드는 투자자들이 없어져서 예로 든 주식의 주가가 40만원까지 오른다 치자. 그 수준까지 주가가 오르는 동안 정보가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매수 욕구를 계속 참았다가 결국 꼭대기에서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 20만원이 되니, 15만원일 때라도 사둘걸 하는 후회가 든다. 30만원이 되니 아, 이건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나만 ‘벼락거지(주식으로 부자가 된 친구가 있으면 열심히 일해 월급을 받아 현상 유지 중이던 나는 갑자기 거지가 된 기분이 든다)’가 되는 건 싫어서다. 40만원 되니 만세를 부르고 싶다. 앞으로 영원히 오를 것 같아 전세를 월세로 바꾸어 더 많이 샀다. 펀더멘털은 1만원이라고 했다. 40만원이었던 주가가 이제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만원까지. 효율적 시장엔 자비가 없다.

공매도 때문에 10만원을 못 넘고 주가가 꺾이면 화를 낼 수밖에 없다. 나 같아도 그럴 거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30만원, 40만원일 때 주식을 사서 나중에 더 큰 피눈물 흘릴 사람들이 그 피눈물을 피할 수도 있다. 그렇게 구제되는 사람들 중에 40만원일 때 대량으로 매입할 뻔한 자신이 포함될 수도 있다. 10만원에서 가격이 꺾이는 건 ‘눈에 보이는’ 일이지만 공매도 덕분에 30만원에 주식을 사서 나중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구제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공매도는 저주의 대상으로 샘솟는다. 그러니 이제 다시 묻겠다. 어떤 것이 정말로 투자자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거라고 생각하는가?

외국인 공매도 때문이 아니다

포퓰리스트들은 여기에 어떻게든 숟가락을 올리려 한다. 그들은 거품이 주가를 아무리 천정부지로 밀어 올려도 선거 이전에만 추락하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다. ‘영끌’해 주식시장에 뒤늦게 합류한 투자자들이 거품을 타고 날아올라 까마득한 절벽의 꼭대기에서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든 말든 관심이 없다. 꼭대기로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인 방어벽을 치는(이 역할을 공매도가 한다) 대신 주가가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가도록 돕는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이라면, 사람들은 춤을 출 것이다. 그러니 포퓰리스트들은 계속해서 음악이 연주되도록 한다. 춤 추는 사람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그저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행위일 뿐이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가장 큰 이득을 챙기는 건 자신일 수 있지만, 음악이 멈추었을 때 가장 먼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개인투자자들이지 자신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정직하고 용감한 정치인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학자 맨서 올슨의 이론에 따르면, 포퓰리스트들이 판치는 정치판은 국민들이 자신이 잘못 행사한 한 표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사실 나쁜 국회의원을 뽑은 것은 내가 한 표를 잘못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 한 표가 누군가의 당락을 결정할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이나 사람됨에 대한 정보를 굳이 시간이나 노력 등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얻으려 하지 않는다. 넘치는 공짜 정보들이 얼마나 많은가. 확증편향까지 더해지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할 수 있어 내 선택은 확고해진다. 정치인들은 투표자들의 이런 성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정책 개발에 시간을 쏟는 것보다 그저 인기에 영합하는 게 유리할 터이다.

정책은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면 안 된다. 그래서 어지간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금융 정책이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독립성을 부여했다. 이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재개를 결정한 것이 총리를 무시한 거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21세기 대한민국 어느 국회의원의 분노는, 그가 기초적인 경제 상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임을 ‘공짜로’ 알려준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아니라 국민 여론을 수렴한 뒤에 총리가 결정하면 될 것이다. 하긴 지난가을, 공매도 금지 연장 여부는 여론을 수렴한 후 경기도지사가 결정했다. 그러니 이번에 금융위원회의 결정을 포퓰리스트들이 막아선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다. 포퓰리스트들은 여론을 방패 삼아 궁극적으로는 국민에게 해가 될 정책을 자신들을 위해 밀고 나간다. 포퓰리스트들은 ‘원래’ 그렇게 한다. 그게 그 사람들 일이다.

정의로운 생각만으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악덕’이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한데도 이를 기꺼이 감수하는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인뿐 아니라 지식인이라 불릴 만한 다른 이들도 대개 그렇다. 그러나 악덕과 대비해 자신의 정의로움을 부풀려 자랑하고 싶은 포퓰리스트들은 넘쳐난다. 그리고 포퓰리즘엔 대가가 따른다. 혜택은 그들이 가져가고 비용은 국민이 치르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게 ‘시장’인 줄 안다.

최근 한국에서 공매도에 관한 인식이 많이 나아져 적어도 이를 아예 폐지하자는 무지한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들이 죽도록 미워하는 게 공매도이니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알 정도로는 똑똑하다. 공매도가 순기능이 있지만 외국인들이 판을 치고 개인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이를 바로잡고 무차입공매도도 잡아내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먼저다. 더구나 개인들은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절대적인 정보 열위에 있다(기관이나 외국인이 아는 걸 개인들은 모른다). 그러니 이걸 고치지 않고 공매도를 재개하면 개인들만 피를 보게 된다.’ 요약하자면 제도를 고치는 것이 공매도 재개의 전제조건이라는 말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으로 들리지만 포퓰리스트들의 전형적인 기회주의 행태를 포착할 수 있다. 저런 제도적 정비는 당신들이 벌써부터 했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벌써 했어야 할 일을, 준비가 안 되었다면서 유체이탈을 해댄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차입공매도를 막기 위해 당신들은 무얼 했나?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처벌할 수 있어야 준비가 된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평평해져야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하필 지금에야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보인다면 당신들 눈에 낀 터럭을 살펴볼 일이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가 있어서라는 음모론을 듣기 싫다면 더더욱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음모론까지 믿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폴레옹도 ‘무능력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는 일을 굳이 어떤 음모라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은 예전에는 공매도 기회가 외국인들과 개인들에게 차이가 난다는 의미로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요즘엔 그 의미가 뭔지 분명치 않다. 개인들에게 공매도 기회를 확대해주자는 의견에 반대하면서도 기울어진 운동장 얘기를 계속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주주다. 우리는 너무 자주 이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외국인과 기관이 벌면 개인이 손해 나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주식시장은 제로섬 게임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인 주가와 개인들의 주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외국인 주가가 올랐다고 개인들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외국인들끼리 주식을 빌려주고 공매도 투자를 하면 그들 중에서도 이익을 얻는 투자자들과 손해를 보는 투자자들이 가려진다. 개인투자자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도 말이다.

삼성전자 주식이 총 100주 있다고 하자. 최근의 지분율을 대입하면 대략 개인투자자들이 7주, 국민연금이 11주, 국민연금을 제외한 기관이 7주,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55주를 갖고 있는 셈이다(나머지 20주는 이건희 전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다). 흔히 개미투자자들이 믿는 대로 외국인들이 공매도로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면 공매도로 인해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 아닐까? 대주주들은 또 어떤가? 외국인들이 외국인들 손해를 줄이려 외국인 지분율이 낮은 주식들만 골라서 공매도한다는 증거가 있었던가?

우리가 ‘외국인들’이라고 싸잡아 얘기하는 투자자들도 다양한 층위를 갖는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모두 합해 100억원을 벌었고 개인들이 모두 합해 100억원을 손해 보았다 치자. 사정이 이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항상 아직도 중상주의(mercantilism)에 물들어 사는 애국자들(?)이 입에 거품을 물 만한 일인 건 아니다. 외국인들 중 단 한 명이 1000억원을 벌고 나머지 100명이 각각 9억원씩 모두 합해 900억원을 잃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들의 손해의 경우도, 한 사람이 1000억원을 잃은 대신 다른 100명이 각각 9억원씩 모두 합쳐 900억원을 벌어들인 데서 나온 것일 수 있다. 통계에서 자주 얘기하는 소위 ‘평균의 함정’이다. 손해를 본 외국인이 100명이고 이득을 본 개미들이 100명이라면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이거 외국인들이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 맞나?

ⓒ연합뉴스1월19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 붙은 주식투자 관련 서적 홍보물들.

정치인을 공매도할 수는 없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개인들이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정보 열위에 있다는 말을 가리키면 아예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정보 열위의 불공정성을 극복해 개인들도 정보를 균등하게 가질 수 있게 만들어놓은 후에야 공매도를 허용할 수 있다는 ‘정의로운’ 얘기는, 그러나 불행히도 아예 술주정 쪽에 가깝다. 기업이 기를 쓰고 숨기고자 하는 정보를 도대체 무슨 수로 개인이 알아내는가. 개인의 정보 열위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공매도라고 위에서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공매도 없이 정보 열위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자는 건가.

공매도는 주가가 펀더멘털에 비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럼 포퓰리스트들을 공매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정치인들을 공매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의 펀더멘털 위에서 과대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공매도당할 수 있다는 걸 알면 저렇게 함부로 떠들지는 못할 것이다.

몰랐다면 무지한 거다. 모르는데 아는 척 떠드는 거라면 무책임한 거다. 알고도 저런 얘기를 하는 거라면 나쁜 거다. 무지하거나 무책임하거나 나쁜 게 일반인이 아니라 국회의원쯤 된다면 그건 심각한 거다. 이참에 우리도 값싼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진 무지한 이들에게 완장을 채워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정치인들이 얼마나 과대평가되어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믿고 맡기기엔 자본시장은 너무나 중요한 곳이니 말이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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