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영숙씨(사진 액자)는 긴 투병 끝에 지난해 8월10일 숨졌다. 남편인 김태종씨는 1심 판결 결과에 대해 “13년을 간병하며 기다린 시간이 무위로 돌아갔다”라며 무력감을 감추지 못했다.

1월12일 오후 3시30분, 김태종씨(66)는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한 기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무죄랍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말을 잃었다. 곧 피가 거꾸로 솟다가 울분을 터뜨렸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사람이 과실치사 혐의가 없으면, 내 아내는 누가 죽인 건가요? 내가 죽인 건가요?”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 아무개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등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 등에 사용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폐질환과 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2018년 법원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 홈플러스, 세퓨 등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폐질환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1심은 PHMG·PGH와 CMIT·MIT의 위해성이 다르다고 봤다. 1심 판결문에는 “전문가들이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실험 결과를 가지고 CMIT·MIT 성분과 이 사건 폐질환에 따른 사망 내지 상해, 혹은 천식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법정에서) 하지 못했다”라고 적혀 있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상응하는 법적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곧바로 항소했다. 1월19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전문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규홍 안정성평가연구소 유효성평가연구단 단장은 입장문을 내고 “(독성시험 결과에 대해) 재판에서 CMIT·MIT가 폐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증언했으나, 특정 시험에 답한 발언을 마치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판결문의 많은 부분이 증언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인용되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김태종씨의 아내 박영숙씨는 호흡기 질환을 앓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어린 시절, 박씨는 결핵을 앓았다. 지병으로 기관지확장증과 천식이 있었다. 결혼하고도 한여름을 제외하곤 늘 가습기를 켜놓고 살았다. 2007년 10월, 호흡기 질환이 심해진 어느 날 남편 김씨가 아내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다. 당시 영수증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이마트에 진열된 PB상품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1000ml  한 병(990원)이었다.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공급한 제품이다.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곰팡이, 물때, 세균 제거의 강력 3중 제거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은은한 솔잎 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쾌적한 실내 환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08년 3월, 아내가 숨쉬기가 어렵다며 호소하다가 쓰러졌다. 가습기 살균제 뚜껑에 용액을 절반가량 채워 거의 매일 넣었다. 권장 사용량의 절반 정도였다. 그즈음에는 50m 길조차 걷지 못하겠다고 말해왔다. 박씨는 의사에게 ‘폐가 49%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렇게 열흘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첫 번째 병원행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박씨는 교회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로 활동해왔다. 호흡기가 안 좋을수록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더 빈번해졌다. 그렇게 1년 동안 1000ml 한 통을 거의 다 비웠다. 그간 서너 번씩 중환자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병원마다 ‘호흡기 및 상세불명 결핵의 후유증’ ‘만성 호흡부전’ ‘기관지확장증’ 등 다른 진단을 내렸다. 콧줄을 달고 산소발생기에 의지해 숨을 쉬다가 그것만으론 부족해져 철제 의료용 산소통을 집에 들였다. 수년 동안 55㎏ 산소통 두 개를 두 아들과 함께 다세대주택 3층으로 들어 날랐다.

의문이 해소된 건 3년 뒤다. 2011년 11월, ‘옥시’ ‘홈플러스’ 등에서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피해를 호소하는 증상이 비슷하다면 특정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만 문제였을 리가 없다”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초저녁부터 가습기를 켜놓고 잠을 자던, 기저질환이 있던 아내 박씨에게 폐 손상이 집중됐다. 그는 여전히 “내 손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서 그걸 직접 가습기에 넣어주고 직접 분사되도록 했다”라며 자책한다.

2012년 2월 당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동물 흡입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현상인 폐섬유화가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주범은 PHMG·PGH였다. 해당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은 옥시 ‘뉴가습기 당번’,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등 6종이었다. 그러나 박씨가 사용한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CMIT·MIT 성분은 실험동물의 폐섬유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고, 독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가습기 살균제 시장은 옥시 ‘뉴가습기 당번’과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공급한 ‘가습기 메이트’로 양분되고 있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옥시 제품의 성분을 모방한 PB 제품을 기획했다. 이마트는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이마트에 공급한 제품을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박씨의 간호를 위해 남편 김씨는 회사를 정리했다. 초·중등 e러닝 교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납품해오던 박씨가 화물차 운전대를 잡았다. 두 아들과 함께 24시간 박씨를 간호했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갔다. 중환자실에 한번 입원하면 그달에는 병원비로만 500만원이 깨졌다. 이를 감당하지 못해 빚더미에 앉았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아내와 김씨는 개인회생 신용회복 절차를 밟았다.

ⓒ시사IN 신선영

2012년 9월, 환경부는 질병관리본부와 다른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부가 CMIT와 MIT를 유독물로 지정하면서 미국 환경청이 CMIT·MIT를 유독물로 등록한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1998년 미국 환경청(EPA)은 CMIT·MIT를 산업용 살충제로 등록하고 2등급 흡입 독성물질로 지정했다. 환경부는 CMIT·MIT 성분으로 인한 폐섬유화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독성이 확인되었고, 먹거나 마실 경우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폐 손상 피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앞선 결론까지 뒤바꾸지는 못했다.

2014년 3월 질병관리본부 폐 손상 조사위원회의 피해 판정에서 박씨는 ‘3단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접수한 이들을 폐섬유화 질환에 따라 1~4단계로 나눴다. 1단계(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질환 가능성 확실)와 2단계(가능성 높음)는 피해자로 인정됐다. 3단계(가능성 낮음)와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자는 피해자로 분류되지 않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때 박씨의 호흡능력은 이미 15%로 떨어진 상태였다. 김씨는 “아내가 폐 관련 지병이 있기 때문에 ‘독성’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여 건강이 더 나빠졌다. 그런데 이런 건강 악화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연관성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질환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은 왜 하지 않느냐?”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김태종씨의 집 안은 아내 간호를 위한 설비로 가득 차게 되었다. 환자용 침대가 거실에 가로놓였고, 의료용 산소통과 공기를 전달하는 튜브, 의료기기를 연결하는 전깃줄이 가득했다. 매일 20여 번 가래를 뽑아내는 석션 기기가 항상 대기상태였다. 수시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야 했던 아내를 위해 김씨는 중고 승합차를 구입해 응급차로 개조했다. 휴대용 산소통에 의지해 옥상에서 한 시간씩 산책하던 박씨는 30분, 10분으로 점차 그 시간을 줄이다가 나중에는 집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시사IN 신선영박영숙씨가 사용했던 특수 휠체어(왼쪽), 석션 기기(오른쪽 위), 산소호흡기(오른쪽 아래)와 김태종씨가 이마트에서 구입한 가습기 살균제(오른쪽 아래).

환경부는 최종 판단 보류

그사이,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2016년 5월 검찰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수사에 열을 올렸다. 옥시를 비롯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등의 대표가 소환됐다. 그 결과, 2018년 1월 신현우 전 옥시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 김원회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도 각각 금고 3년, 징역 4년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CMIT·MIT를 사용한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1994년 출시한 ‘가습기 메이트’는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 중 하나였다. 논란이 지속되자 2016년 환경부는 CMIT·MIT 성분의 위해성 여부를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부는 1년간 CMIT·MIT 성분의 동물 흡입실험을 진행했지만 위해성을 입증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최종 판단을 보류했다. 그동안 CMIT·MIT 성분은 치약, 세제, 물티슈, 김서림 방지제, 차량용 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되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해당 업체들은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회수하면서 사과문을 발표하는 상황을 반복했다.

건강상태가 나빠진 박씨는 2017년 3월 목에 구멍을 내고 인공호흡기를 꽂았다. 간병비에만 매달 350만원을 감당해야 했다. 김씨는 화물운송도 관두고 아내를 간병했다. “억울했다. 너무 억울했다. 아내가 이렇게 죽고 나면 세상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알리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기력을 회복한 아내를 설득했다. 그렇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아내를 카메라플래시가 터지는 기자회견장에 데리고 나가야만 했다.

성과가 조금씩 보이는 듯했다. 2017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3단계(가능성 낮음)’  판정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던 박씨도 구제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옥시·SK케미칼·애경 등 16개 기업에게 징수한 피해구제 분담금 1250억원이 운용되었다. 박씨는 병원비, 요양생활수당, 간병비 일부를 지원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하면서 피해 대책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2018년 12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가 개시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과 진상규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사IN 신선영1월19일 참여연대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 회사에 대한 무죄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태종씨가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왼쪽)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9년 8월, 휠체어에 산소통을 매달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박씨는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 등장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와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허리를 숙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공식화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검찰은 8개월에 걸친 재수사 끝에 2019년 7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을 기소했다.

13년이 지나 ‘드디어’ 마주한 결과는 절망스러웠다. 지난 1월12일, 1심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포함된 피해자 98명 중 94명은 ‘옥시’ 제품 등과 ‘가습기 메이트’를 함께 쓴 복합 사용자이고, ‘가습기 메이트’만 쓴 단독 사용자는 4명뿐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단독 사용자 4명에 대해서도 다른 원인에 의한 폐질환 가능성 등이 있다고 보았다. 애초 박영숙씨는 기저질환이 있던 까닭에 이번 재판의 피해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박씨의 남편 김태종씨는 “아내가 아픈 이유를 증명하고, 우리 가정을 파탄 낸 기업을 처벌할 기회를 놓쳤다. 13년을 간병하며 기다린 시간이 무위로 돌아갔다”라며 무력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에서 판매된 다양한 브랜드의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판매가 금지된 2011년까지 980만여 통이 팔려 나갔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1월15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 7183명 중 4114명이 환경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의 피해자로 공식 인정됐다. 이 가운데 1600여 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집계된 SK케미칼과 애경이 만들어 판 ‘가습기 메이트’의 피해자와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다른 브랜드의 가습기 살균제도 함께 쓴 사용자 포함)는 1000명이 넘는다. 이 와중에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연장되었으나 가습기 살균제 진상조사 업무는 제외되었다.

“어쩌면 아내에게 참담한 판결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라고 김씨가 말했다. 아내 박씨는 긴 투병 끝에 21번째 입원을 마지막으로 지난해 8월10일 숨졌다. 사망하기 이틀 전, 박씨는 ‘사랑한다’ ‘고맙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코로나19 탓에 마지막 가는 길조차 함께하지 못했다. 여전히 박씨의 흔적은 집안 곳곳에 남겨져 있다. 의료기기를 비롯해 두 아들과 남편을 찾을 때마다 눌렀던 종, 청문회에 타고 간 휠체어…. 무엇보다 2015년 2월 둘째 아들의 바람으로 남겨진 가족사진이 거실이며 각 방, 식탁 유리 밑에도 놓여 있었다. 사진에서 박씨는 호흡기 없이 맑게 웃고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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