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방호복을 입은 성남시의료원 유미라 간호사(왼쪽)와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이현섭 간호사.

간호사들이 운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의 간호사들이 눈물을 흘린다. 임상 22년 차 유미라 간호사(성남시의료원 파트장)는 〈시사IN〉 편집국 회의실에 앉아 첫마디를 떼려고 할 때부터 눈물을 글썽였다. 8년 차 이현섭 간호사(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보건의료노조 이천병원 지부장)는 이 자리에선 간신히 참았지만 다음 날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선 참지 못했다. 방호복 고글 안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다른 많은 간호사들도 운다. 정부를 향해 처우 개선 요구안을 읽으면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자와 전화 통화하던 수화기 너머로, 병원 복도나 숙소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K방역’과 ‘코로나 전사’라는 찬사와 자부심의 벽 사이사이로 간호사들의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2020년 1월20일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날이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감염병 재난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사람은 현장 의료진, 그 가운데에서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의 간호사들이다. 이들을 빼놓고 코로나19 1년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지난해 〈시사IN〉이 진행한 대담 기획 ‘주간 코로나19’ 포맷을 한 차례 다시 소환했다. 1월11일 저녁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연구원과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이 오랜만에 서울 중림동 〈시사IN〉 편집국 회의실을 찾았다. 유미라·이현섭 두 간호사도 속속 도착했다. 다수가 벌써 장밋빛 앞날을 내다보고 들뜬 말들을 주고받는 코로나 1년 즈음이다. 희망찬 미래보다 불편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했다.

ⓒ시사IN 조남진성남시의료원 유미라 간호사(왼쪽)와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이현섭 간호사.

오랜만입니다. ‘주간 코로나’ 고정 멤버 두 분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임승관:〈시사IN〉에서도 보도했듯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냈습니다. 의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간 여러 가지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된 시기였어요.

김명희:저는 그사이 시민건강연구소에서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로 적을 옮겼어요. 최근 이런저런 자료들을 보다가 지난해 4월에 나온 미국 한 감염병 연구소의 리포트를 읽었어요. 당시 여러 시나리오를 언급했는데 그중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2020년 가을이 지나면서 더 큰 피크가 오는 거였어요. 이렇게 우리가 무엇을 예상하든 항상 가장 나쁜 시나리오대로 간 2020년이었어요.

특히 코로나19 전담병원의 간호사들에게 더 무서운 1년이었을 것 같아요. 자리에 나와주신 두 분 간호사는 지난 1년 어떻게 보내셨나요?

유미라:저는…(잠시 침묵) 눈물이 날 것 같네요. (감정을 추스르며) 성남시의료원에서 격리병동을 연 게 지난해 2월26일이었어요. 트레이닝도 안 끝난 간호사들과 격리병실 6개를 오픈했고 일주일도 안 돼서 24병상으로 확장해야 했어요. 저도 5년 전 현장을 떠나 행정 업무만 하던 간호사였는데, 감염병 병동 설계에 참여했고 시스템을 많이 알고 그러다 보니 병동에 자원하게 됐어요. 환자 수가 좀 줄어서 한숨 돌려도 되나 보다 싶으면 조금 있다 또다시 터지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어요.

지난해 8월 초 이제 그만 일반 병동으로 내려가라는 발령을 받았어요. 그해 처음으로 5일 휴가를 쓴 첫날 연락이 왔어요. 코로나19 병동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마 광화문 집회 확산이 터진 때였을 거예요. 3주 격리병동을 재운영하고 다시 환자가 줄어서 닫았어요. 이후 수술을 앞둔 환자가 코로나19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머무르는 선제 격리병동에서 근무하다가 12월1일 다시 일반 병동 발령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또다시 확산세가 커지면서 12월18일 39병상을 또 열었어요. 그리고 오늘 퇴근하는데 전화가 와서 다른 병동을 또 오픈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걸 진짜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병동 간호사들에게 제일 미안해요. 간호사들 근무표가 이번 달 들어 매일 바뀌었어요. 저희 간호사들이 하루살이 같다는 얘기를 해요. 병동 열고 닫고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당장 내일 가서 간호사들에게 병동을 또 옮겨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죠?

이현섭:공감이 가요. 저희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은 원래 100병상도 안 되는 작은 병원이었다가 지난해 300병상 규모로 신축 이전했어요. 훈련이 덜 된 신규 간호사가 절반 이상인 상태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대거 받기 시작하니까 업무 부하가 심해졌어요. 이천은 주변에 다른 큰 병원이 없어요. 코로나 환자는 코로나 환자대로, 일반 외래·응급·건강검진 환자는 그 환자대로 몰리는 상황이었죠. 코로나 병동 쪽으로 최소한 환자당 한 명씩은 맞춰서 올라가야 하니 일반 병동은 두 명이 30~40명씩 봐야 했어요. 모든 관심이 코로나에 쏠려 있긴 하지만, 거기가 메인이 되면서 또 죽어나는 다른 곳이 있었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어요.

유미라 파트장님 말씀처럼 간호사들의 잦은 이동은 저희도 마찬가지였어요. 코로나 환자가 늘 때마다 이쪽으로 가라고 했다가 환자가 줄면 너희 부서로 돌아가, 그런데 잠시 있다 또 늘었으니, 다시 와라…. 인력이 부족해지니 점점 한번 격리병동 들어가면 나올 수 있는 시간이 늦어지는 거예요. 8월 중순 이후로 한번 들어가면 2시간 넘어가다가 11월쯤에는 3시간 정도, 이제는 4시간 돼도 못 나오고, 나왔다가도 다시 들어가야 해요. 격리병동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로테이션할 수 있는 인력풀이 안 돼요.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1년 내내 못 움직여요. 솔직히 저같이 덩치 크고 건장한 사람이 해도 살 빠지는 곳이에요. 작은 체구의 선생님들이 1년 동안 거기 있다가 지쳐서 나가기도 했어요. 내가 나감으로 인해 근무표가 다 바뀔 거니 미안하니까 못 나가는 사람들은 더 많고요.

ⓒ시사IN 조남진유미라 간호사(맨 왼쪽)·이현섭 간호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코로나19 1년을 되돌아보는 대담을 진행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많은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사표를 내고 있어요.

유미라:지난해 2월부터 일한 간호사들은 그나마 그동안 함께해온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 때문인지 그만두지 못하고 있어요. 최근에 입사한 직원들은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번 달에 사직서 4장을 받았어요. 지난해 11월에 입사한 친구들인데 두 명은 파견직 지원을 한다며 나갔고요(코로나19 현장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부는 간호사들을 모집해 임시 파견 형식으로 병원에 배치하는데, 그 급여와 수당이 전담병원 정규 간호사들보다 훨씬 높아 파견 쪽으로 이탈하는 인력이 늘어나고 있다), 두 명은 1월 말까지만 이 일을 하겠다며 사표를 썼어요.

이현섭:저희 병원에서도 지난달에 세 명이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결국 한 명만 그만뒀는데 그게 마음을 바꿔서가 아니라, 한 명은 코로나19에 확진되었고 한 명은 같이 근무해서 자가격리에 들어가느라 상황상 일단 보류된 거예요. 이번 달 초에는 또 네 명이 추가로 그만두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역시 파견 간호사로 가겠다며 결정을 내린 비율이 높아요. 당장 석 달 정도만 일해도 공공병원에서의 1년 연봉이 나오니까요(쓴웃음).

전담병원 간호사와 파견 간호사 간 임금 등 처우 차이가 많이 부각됐습니다. 정규 간호사는 월 250만원인데 파견 간호사는 월 1000만원에 이른다고요. 위험업무 지원을 위해 파견으로 와주시는 분들께 좋은 처우를 해줘야 하는 게 맞긴 한데, 같은 일을 고정으로 하시는 분들도 최소한의 보상은 받는 게 합당할 것 같아요. 전담병원 간호사에겐 정말 어떠한 추가 보상도 없었나요?

유미라:저희 병원은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한다고 해서 위험수당이 100원이라도 더 나오거나, 유급휴일이 하루라도 더 나오지 않았어요. 정기적으로 쉴 수 있는 장치도 없고 정기적 검사도 하지 않아요. 사실 일하는 사람도 불안한데, 증상이 있을 때만 해줘요. 전담병원 간호사들은 코로나 병동에 발령 나면 집에서 나와 따로 방을 구해요. 불안하니까요. 이 비용도 다 본인 부담이에요. 아, 얼마 전에 정부가 교육비라고 해서 코로나 병동 간호사 한 사람당 3만9600원인가를 줬어요. 그거 받고도 간호사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이현섭:계속 한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분명히 있어요. 일이나 책임감은 더 많이 부여되는데 돈은 (파견 간호사보다) 더 적게 받고, 1년 내내 힘들어 죽겠는데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많이들 지치니까 누군가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더라고요. 제가 기자회견도 하고 나섰으니까 제가 올렸을 거라는 소문도 돌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정부와 사회의 초점은 ‘병상’이었어요. 병상 확보가 최대 관건이었고, 정부 발표를 보면 한때 아슬아슬했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마련해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병상수에 집착하는 동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었네요.

유미라:저희 중환자실에서 현재 인력으로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최대 5명이었어요. 그런데 9병상을 요구하는 거죠. 도저히 운영할 능력이 안 되는데, 결국 다 받게 됐어요. 9병상 중 7병상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고, 이 중에서도 치료를 위해 환자가 엎드려 있는 포지션(자세)을 취하는 경우가 있어요. 포지션 체인지(자세 변경)를 2시간마다 해줘야 하는데, 여기 5명이 한꺼번에 붙어야 해요. 간호사들이 방호복 입고 들어가면 8시간 동안 못 나가요.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정말 화장실도 못 가는 거예요. 자꾸 병상 배정하라지만, 정작 우리에겐 인력이 없고, 기존 인력도 다 나갈 것 같은…. 병상이 있고 인력이 있어야 치료할 수 있는데. 병상수에만 너무 급급해하는 거 같아서 안타깝고 속상했어요.

이현섭:인력 충원을 한다며 파견 간호사를 배치해주지만, 파견 인력을 받으면 이 숫자만큼 환자를 더 받아야 하는 거죠. 결국 1인당 업무량은 조금도 줄지 않아요. 파견 인력은 한 달 일하면 가버리고요. 이분들 가르쳐드리고 다시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 오고 또 나가고…. 그러니 업무는 오히려 더 과중하게 되죠.

ⓒ시사IN 윤무영1월12일 청와대 앞에서 보건의료 노조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 보건의료 노동자 이탈 실태 발표 및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임승관 단장님은 경기도 내 코로나19 병상 배정에 깊이 관여하셨는데, 왜 인력도 부족한 곳에 이렇게 환자가 배정되나요?

임승관:왜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9병상을 열게 하고 9명을 꽉꽉 채우느냐? 원리는 간단해요. 그 환자들이 거기 가지 않았다면, 가정이나 요양병원에 있었을 거니까요. 왜 이 영역에 걸쳐 있는 모두가 부담과 부하를 지느냐? 자원이 모자라서 그래요. 자원이 모자라면 둘 중 하나예요. 요양병원이든 구치소든 코호트해놓고 거기 그대로 있으라 하거나 허덕이는 의료기관으로 옮겨서 의료진들을 더 힘들게 만들거나. 자원들이 확보되는 시점이 실제 감염 발생보다 늦어서 생긴, 아주 단순하지만 비극적인 원리입니다.

유미라:이런 병상 확보는 온전한 확보가 아니에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진이 심하고 오래 유지될 수 없어요. 동료들이 8시간 동안 물도 못 먹고, 집에 가면 신발도 못 벗고 현관에서 그대로 쓰러져 누워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당함을 느껴요. 그리고 누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로 비교하며 상처를 받고 있어요. 병원들끼리는 물론이고, 같은 병원 내에서도. 파견 간호사와 정규 간호사도 비교하고…. 진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에요.

임승관:간호사 개개인 차원의 손상이기도 하지만 조직적 손상이기도 해요. 예상하기로는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나서 전담병원으로 복무했던 기관들의 조직이 많이 망가질 거 같아요. 감염병 상황에서 공공병원의 존재가치가 증명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동원되고 소모된 끝에 다시 회복하고 상승할 힘이 떨어질 확률이 얼마든지 있어요. 코로나19 대응의 끝이 한국 공공의료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위기가 될 가능성도 있어요.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청사진들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의 공공의료 종사자와 조직의 항상성을 유지시키지 않으면 허무맹랑한 계획이겠네요.

김명희:사람이 일로 겪는 직무 스트레스를 크게 두 가지 모델로 얘기해요. 하나는 직무긴장 모형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요구되는 직무 요구도와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재량권 두 개가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봐요. 간호사들에게 이 상황은, 직무 요구도는 엄청 높은데 재량권은 하나도 없는, 전형적으로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예요. 또 다른 모델은 노력보상 모형이에요. 내가 한 노력에 비해 얼마나 보상을 얻느냐. 고생을 정말 많이 해도 충분한 보상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높지 않거든요. 지금 상황은 고생은 죽어라 했는데 보상은 받지 못하는 또 하나의 전형이죠.

이럴 때 조직공정성이라는 용어를 써요. 조직공정성이 무너지면 팀워크가 깨져요. 보건의료만큼 팀워크가 중요한 부문이 없는데 말이죠.

위기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응이 시작되는데요. 우리 정부나 사회가 충분히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미라:정말 미안해하지 않고 너무 당당해요. 언론에 나오는 내용은 늘 ‘우린 병상 충분히 준비했어’라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정말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불신이 생겼어요. 위기를 인정하고, 현재는 이렇지만 당신들이 정말 이렇게 희생해주고 최선을 다해주면 우리가 앞으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책을 세워서 바꿔보겠다고 하면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승관:공론화하기가 쉽지 않은 많은 재난적 상황, 조금 넓은 범위의 의료윤리적 결정들이 지난해 12월 각각의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졌어요. 애초 기관의 능력을 넘어선 부적절한 과업을 안고 있으니까 생기는 일이죠. 슬픔, 우울, 분노, 이런 현장의 감정들이 사회에 잘 전달되지 않고 또 적나라하게 전해지는 게 꼭 좋지만도 않아요. 제 마음이 가장 힘든 대목은, 우리 사회와 정부가 단 한 번도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의료자원이 부족했다, 대비가 충분치 못했다, 최선이 아니었다’고 언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현섭:저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괴감이 들어요. 어떤 현장에서는 회복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에게 치료 기계를 옮겨야 했어요.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노인 것을 떼다가 좀 더 젊고 가능성 큰 분에게 옮겨야 했던 경험에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어요.

김명희:주로 노숙인을 지원하는 활동가가 있었는데 최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합니다. 유행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노숙인 쉼터들이 더 이상 신규를 받지 않고 문을 닫다시피 했는데, 그분이 담당하던 노숙인이 너무 많이 돌아가셨대요. 청소년 활동가 한 분도 지금 너무 힘들어하고 계세요. 거리의 청소년들을 어떻게 따뜻한 곳에서 잠이라도 재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마스크라도 나눠주려고 거리에 나가려니 그런 외부 활동도 막혀 있대요. 구청, 시청, 동사무소, 보건소 종사자들도 다 비슷해요.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국가의 역할을 오른손(통치, 군대, 치안 등)과 왼손(복지, 보건, 교육 등)으로 이야기했어요. 일선에서 국가의 왼손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엄청난 상처와 시련의 시간을 겪고 있어요. 이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사람을 살리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이 현장 의료진이나 활동가 개개인에게 내려와 지워지면서 그 개인들이 엄청난 도덕적·윤리적 부담과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상황이네요.

유미라:인근 장애인 시설이나 노인요양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터졌다는 뉴스를 보면 복잡한 감정이 들어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는 얼른 저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겨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감당할 준비가 안 된 병동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받게 되려나’ 걱정이 돼요.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요. 제가 이제껏 간호사 일을 하면서 환자가 밉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폭력적인 환자 분들이 간호사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그러다 한 후배 간호사가 공황장애에 빠져서 결국은 일을 포기하는 상황이 됐을 때도 그 환자가 밉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12월 극한에 몰리니 코로나19에 걸리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생기더라고요. 특정인이 아니라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그런데 그 사람들도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니잖아요. 아, 내가 비정상의 상태로 들어갔구나 싶더라고요.

임승관:자원과 전략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두 개 현장, 집단시설과 전담병원이 서로 죄책감과 절망 같은 걸 맞받아치게 만들었어요. 전자를 좀 더 보호하는 전략을 만들었어야 하고, 후자를 좀 더 양적·질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가 그걸 제대로 못했고 그 곤란과 고통을 고스란히 두 현장에 나눠주게 된 거죠.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그 고통을 나눠 부담할 수 있을까요?

유미라:저는 코로나19가 잦아들어도 정말로 다른 팬데믹이 또 올 거 같아요. 우리가 메르스를 겪으며 대비하자고 만들어놓은 것들이 있어서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코로나19를 겪었으면 이걸 기회로 또 다음 위기를 준비해야 해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면 그래도 희망이라는 게 보여요. 지금은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일하는 어린 간호사들이 해요. 지금 당장 바꿔나갈 수 있는 것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저희 코로나19 병동에서 투석 환자들을 받아요. 치료가 끝나면 내보내야 다시 다른 투석 환자를 받는데, 이분들이 원래 다니던 투석 병원에서 오지 말라고 거부를 해요. 환자를 배정했으면 이 환자를 빼가는 것도 나라에서 시스템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병동 간호사들의 안전 문제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해요. 며칠 전 정신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생겼고 우리 병원에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배정됐어요. 굉장히 많이 걱정돼요. 사실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요. 직원 교육도 안전장치도. 일단 입원할 때 위험한 도구를 갖고 들어가지 않도록 소지품 검사하고, 두 명이 같이 들어가라, 약 먹은 거 확인해라 등 급하게 막 카톡으로 공유는 했지만 체계적인 대책과 매뉴얼이 있어야 해요.

이현섭:급여나 수당의 문제보다, 보건의료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계속 강조한 건 환자당 간호인력 비율을 높여달라는 거예요. 환자 한 명당 두 명씩은 어렵더라도 1.5명이라도 해달라고요. 간호사 간 임금 비교만 잔뜩 하고 그런 내용은 기사들에 안 나오더라고요.

2021년은 2020년보다 분명 나아야 할 텐데요. 올해는 어떤 해가 되어야 할까요?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요?

김명희:오늘 두 간호사가 말씀하시는 내용이, 지난해 2~3월 위기를 겪고 난 대구 지역 간호사들에게 같은 해 6월쯤 들은 이야기와 거의 정확하게 똑같아요. 우리는 왜 과거부터 학습하지 못하고 같은 문제를 반복할까요. 2021년은 미래를 내다보고 희망을 찾는 해가 아니라 과거를 복기하는 해였으면 좋겠어요.

임승관:지난 1년간의 오류를 복기해보자면 저는 두 가지로 봐요. 하나는 한국 사회가 팬데믹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우리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몰이해가 있었어요. 두 번째는 방역이 너무 정치화되었어요. 정부·여당이든 야당이든. 2021년엔 이 두 가지 오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현섭:2020년은 항상 미안했던 한 해였어요. 노조 지부장으로서 조합원들이 좀 더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일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는데 결국엔 이뤄진 게 하나도 없어서 미안했어요. 올해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요구는 이제 좀 식상한 것 같고, 안 되면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나 대책단장님 같은 분 말씀이라도 정부에서 귀담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유미라:우리 간호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금씩 좋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라는 약속이요. 그리고 그 속에서 미래를, 희망이라는 걸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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