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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엔 평화적 정권교체가 필수적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이 트위터에 썼다. 상당수의 ‘트럼프주의자’들이 1월6일 미국 연방의회의 대선 결과 확정을 저지하기 위해 의사당에 들어가 난동을 부린 직후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1970~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한국의 야당 정치인들이 사용하던 용어다. 선거로 여당을 이긴다 해도 군부가 정권교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접어들고서도 20년이나 흐른 시점인데 미국의 정권교체에서 폭력이 우려되다니 격세지감이다.

트럼프주의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대체로 20세기 후반 이후 정치, 경제, 기술, 문화적 변혁에서 소외된 계층이 세력 기반이라는 점에서는 의견들이 일치하는 듯하다. 기존 질서를 전면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의 제스처가 그들에겐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트럼프는 무역, 인종, 기후, ‘정치적 올바름’ 등의 문제에서 소외계층을 선동해 엄청난 정치적 이득을 챙겨왔다. 다만 이번엔 ‘허들’이 너무 높았다. 선거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 지도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경멸하는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선거의 권위가 사라진 뒤에 권력을 배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나라한 폭력으로, 사실상 국가·사회의 해체를 의미한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의 대선 직후 선언한 불복 입장을 주로 소송을 통해 추진해왔다. 그러나 1월6일의 ‘의회 공격’은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국가·사회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나름 점잖은 쪽으로 분류되는 유력 언론들까지 트럼프주의자들의 의회 난입에 대해 폭도(mob), 반란(insurrection) 같은 극언을 삼가지 않는 이유일 터이다. 소외된 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대표를 하필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 중에서 찾은 것은 얄궂다. 헤어나기 힘든 소외가 사회 자체에 대한 복수로 폭주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제696호의 커버스토리에서 남문희 한반도 전문기자는 국제사회의 소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한이다. 북한은 반란자라는 측면에서 트럼프주의자들과 닮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르다. 트럼프주의자들이 기존 질서의 파괴를 희망해온 반면 기실 북한은 글로벌 시스템으로의 편입을 간절히 원해왔다. 남 기자는 노동당 제8차 당대회를 통해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 정권의 끈질긴 편입 시도와 최근의 결정적 실패를 분석해낸다. 이에 따른 김정은 정권의 절망감이 미국의 신임 행정부가 취임 직후부터 챙겨야 할 리스크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소외는 눈먼 복수로 변신하기 전에 관리되어야 한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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