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코로나19 이후 두 번째 방학이다. 지난 1년, 개학이 연기되고 등교와 휴교가 갑작스레 결정되는 일이 반복됐다. 원격 수업을 앞두고 학교는 가정의 의견을 자주 물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보다는 학부모의 생각을 듣는 게 우선이었다. ‘마스크를 벗지 말고 친구와 대화하지 마라.’ 금지와 통제 위주의 규칙을 받아든 어린이·청소년은 가장 성실하게 방역 의무를 이행한 집단인 동시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은 그룹이었다.

어느 날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에게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물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묻는 어른은 왜 없느냐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대안학교 ‘프레네스쿨 별’의 교장이기도 한 그가 만난 10대들은 가정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도 그런 불안의 반영이라고 본다. “가정에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부모와 말이 안 통해 답답하고 외롭다거나 가정이 안전하지 않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이 있다.”

19세 미만의 코로나19 감염자는 대부분 경증이다. ‘조용한 전파자’가 될 가능성은 높다고 알려졌다. 사회가 노인과 아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정반대지만 결론이 비슷했다. 각각 ‘옮을 수 있으니 나오지 마라’ ‘옮길 수 있으니 나오지 마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 스스로 존재 가치를 느끼기 어려웠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잘 버텨왔지만 사회는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휴교와 외출 금지로 무기력과 우울감을 느끼거나 심한 경우 자해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김 센터장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을 출간한 배경이기도 하다.

아이와 엄마가 상담차 그를 찾았다. 그날 하루만 열 쌍이었다. 모두 남학생이었고 한결같이 스마트폰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집에 있는 동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면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다툼이 심해졌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싶을 정도다. 아이와 어른의 고민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등교가 생략되자 어른들은 스마트폰 사용량과 학습에 대해 걱정했고 아이들은 관계의 단절 때문에 두려워했다. 이 시기에도 학력이 뒤처지는 걸 우선에 두는 어른의 태도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년, 그가 상담하는 청소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들은 ‘종합 이벤트의 토털 상실’을 겪었다. 입학식·졸업식·발표회·수학여행 등 온갖 세리머니와 사회적 의례 절차가 생략됐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겪어야 할 일들이 왜곡되거나 변주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이벤트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포함한 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삶의 연속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는 아이들이 말하는 여러 결핍과 부재의 목록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시기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 질병이나 사고 등의 이유로 학교를 쉬다가 복귀한 사례를 보면 사회적 경험의 박탈이 발달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훨씬 많다. 그러니까 대비를 해야 한다. 그에 대한 논의는 없고 학력 격차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니까 아이들은 절망스럽다.” 학력 격차 역시 결과일 뿐이고 학습환경의 차이가 먼저다. 그리고 그 환경의 책임은 어른의 몫이다.

ⓒ연합뉴스2020년 4월20일 서울 용산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가 노트북 화면을 통해 온라인 입학식을 하고 있다.

아이들 축제는 랜선으로라도 해야 한다

지난해 8월 영국의 아동위원회는 지난 6개월 동안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가 후퇴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복구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 역시 발달의 결손을 최대한 메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다양한 담론 속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을 다각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학력이나 AI(인공지능) 기반의 원격 학습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교사의 관계나 정서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안 보였다. 코로나 이후의 교육 역시 산업과 기술에 대한 담론 위주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와 방학이 겹쳤다. 부모와 아이들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시기다. 김 센터장은 평시가 아니라 전시 상황이라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평소보다 훨씬 낮은 기대로부터 출발하는 게 자녀와 본인에게 좋다.” 학교와 학원을 주로 오가던 아이들은 집에서 스마트폰을 쥐고 시간을 보낸 경험밖에 없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현상 중 하나가 청소년기에 집안일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을 통제하려면 공부 이외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설거지, 반려동물 산책, 화분갈이 같은 집안일이 그 예다.

김현수 센터장은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1년여에 이르고 있다. 아동학대, 자살 등의 문제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지난해부터 누적된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감염병 창궐 초기에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신고율이 낮아진다. 같이 있으니까 신고를 못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높아진다. 자살 역시 초반엔 크게 늘지 않는다. 취약계층의 죽음이 느는 등 자살 분포의 변화는 생긴다. 지난해 2030 청년층의 자살이 늘었다. 실업, 카드 연체, 주거불안정 통계와도 일치했다. 팬데믹이 진행 중일 때와 종료 이후의 양상이 다르다. 스페인 독감, 사스의 종식 후에는 노인 자살이 두드러졌다. 올해는 중장년 가장에게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층의 부담이 커질 시기다. 재난지원금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는 지난 1년에 대한 리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 문 닫는 기관의 순서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 일단 굶는 아동이 생긴다. ‘라면 형제’ 사건은 빈곤 아동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조명되지 않았지만 중증 장애 아동의 환경도 심각하다. 그들을 위한 기관의 문을 닫는 게 옳은지 살펴봐야 한다.” 봉쇄에 취약한 층이 드러났다. 그의 생각에 공공도서관 역시 마지막까지 열려 있어야 할 곳 중 하나다. 상담하는 아이 중 한 명도 집안 사정이 어려운데 여건상 집에서는 공부가 어렵다. “쉽게 말을 들을 곳부터 문 닫을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어야 한다. 처음 겪느라 놓친 것을 잘 리뷰해야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다.”

그는 ‘코로나 회복 패키지’를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겪은 결핍과 과잉을 정돈하는 시간이다. 지금처럼 다수의 감염자가 나오는 시기에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졸업식·입학식·축제 등을 랜선으로라도 하는 거다. 유럽의 경우 축제 하나만 바라보는 도시도 있다. 문화의 계승과 발전, 도시의 생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하면 전수하지 못하게 된다.” 그의 책은 제이슨 드팔 〈타임스〉 기자의 말로 시작한다. ‘바이러스가 아이들 몸을 어른들 몸만큼 파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 미래를 파괴할 수는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