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조선중앙통신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월6일 노동당 제8차 대회 2일차 회의에서 사업총화 보고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노동당의 나라다. 북한 헌법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못 박아놓았다. 북한 헌법 제4조에 따르면, 주권이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 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으며,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라고 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최고인민회의는 노동당의 결정사항을 추인하고 입법화하는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노동당의 당적 지도에서 예외인 기관은 ‘수령’을 제외하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내각을 비롯한 국가기관, 심지어 군까지 당의 통제 아래 있다.

따라서 5년에 한 번 열게 되어 있는 노동당 대회(당대회)는 당의 나라인 북한에서 최대 행사이자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당대회를 통해 당 강령과 규약을 채택하고, 당 노선과 정책, 전략 전술의 기본 문제를 결정하며, 당 중앙위 선거 및 조직개편 사업을 진행한다.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36년 만에 열린 지난 2016년 5월의 7차 당대회는 과거의 영화엔 못 미쳤지만 축제처럼 성대하게 치러졌다. 당시 6년 차에 접어들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신감과 함께 자신이 앞으로 열어갈 시대에 대한 포부가 느껴졌다. 비록 당대회 참관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각국에서 120여 명의 국제 기자단을 초청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조차 1980년의 6차 당대회에 비해 축소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는 118개국에서 축하사절단이 참석했다.

이번 8차 당대회는 지난 5년의 당 사업을 총화하고 새로운 5년을 기약하는 자리다. 그러나 5년 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당대회가 언제 열리는지조차 개최되고 나서야 알려질 만큼 깜깜이로 진행된 점은 이번 당대회의 위축된 단면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29일의 당 정치국 회의에서 8차 당대회가 2021년 1월 상순 열린다는 점이 고지되었다. 그러나 4000명 이상의 참석자들에 대한 심사 및 주요 진행사항에 대한 실무 점검을 마쳤는데도, 정작 개최 일자가 나오지 않았다. 추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1월4일로 개최일을 잡았으나 코로나 확진자들이 다수 발생하는 바람에 그다음 날(1월5일) 열었다고 한다. 지난해 대북 제재, 코로나19, 홍수 피해라는 삼중고 속에서 이번 당대회를 준비했던 북한 당국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을 법하다.

1월6일자 북한 매체들을 통해 전해진 김정은 위원장의 개회사는 지난 5년 동안의 정책 실패를 인민들에게 사과하는 문장으로 점철됐다. 장문의 개회사 중 핵심 대목은 다음과 같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하였다.”

나머지 대목은, 지난 1년간 왜 이런 미달 사태가 났는지에 대해 7차 당대회 당시 발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수립 과정부터 현장 적용까지를 분석 검토하고 총화하였다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지난해 8월19일 노동당 제7기 16차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못했던 도전들이 겹쳐드는 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해 계획했던 국가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 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라고 처음으로 정책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한 데 이어, 10월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선 눈물까지 보이며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라고 사과한 이래 세 번째의 정책 실패 인정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20년 10월15일 북한이 ‘80일 전투 총매진’을 다짐하는 군민연합집회를 진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자아비판’은 하나의 신호탄이다. 위원장이 했는데 아랫사람들이 다른 얘기를 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뒤를 이어 각 부문의 당 일꾼들이 위원장에게 심려를 끼쳤고 인민에게 면목이 없다며 줄줄이 자아비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12월 중순 대북 소식통은 “8차 당대회는 엄혹한 정세에 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한 자아비판 대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는 “당이 먼저 국가를 잘못 이끌었다고 솔직하게 자아비판해야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다음 단계란 무엇인가. 당장에 1월 하순으로 잡힌 최고인민회의를 들 수 있다. 지난 12월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4차 회의를 8차 당대회 직후인 2021년 1월 하순에 소집하기로 했다. 북한 헌법상 최고 주권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는 보통 1년에 한 번, 4월에 개최한다. 2016년엔 5월의 7차 당대회 직후인 6월에 최고인민회의가 열려 당대회 결의 내용을 입법화했다. 이번에도 8차 당대회에서 결정되는 주요 내용의 입법화를 서두르기 위해 연속해서 개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당대회 대표자들의 자아비판은 일차적으로 전국에서 집결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측면이 있다. 당면한 엄혹한 상황에 대해 당이 먼저 국가를 잘못 이끌어서 빚어진 일이라고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대의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아비판에 담긴 ‘심모원려’

그러나 자아비판의 궁극적 대상은 북한 인민일 수밖에 없다. 인민들이 당의 잘못된 대처로 큰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아비판이 지난 정책의 실패에 국한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번 당대회에서 결의하고 최고인민회의 입법화 과정을 거칠 미래의 정책들로 인민들의 고통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사과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다.

당대회에서는 당의 권력구조나 조직개편 등 많은 일들이 결정된다. 이 중 인민 생활과 직결되는 것은 바로 국가경제개발 계획이다. 1956년 4월의 제3차 당대회는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1961년 9월의 제4차 당대회는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 1980년 6차 당대회는 ‘사회주의 건설의 10대 전망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동유럽 붕괴와 고난의 행군 등으로 체제 위기를 겪던 김정일 시대엔 “언제까지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경제 구상이 발표되지 않는다면 당대회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당대회 없이 지나갔다. 당 보다는 군부의 힘에 의지해 비상시국을 건너고자 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도 크게 작용했다.

ⓒ연합뉴스유엔안보리에서 초강력 대북 제재가 결의된 2016년 3월3일 압록강 단교에 안개가 끼어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왜 당보다 군을 선택했을까. 김 위원장의 ‘선군 노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군의 물리력을 전 사회적 통제에 활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을 군이 지배하는 군수공업과 무역회사 등에 우선적으로 배분해 경제회생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권영경 전 통일연구원 교수는 주로 후자의 측면에 주목해 이를 ‘선군경제건설 노선’이라 개념화하고 많은 논문을 발표해왔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 붕괴 이후부터 30여 년 동안 북한 경제는 국제관계의 향방에 따라 ‘확장과 축소’의 움직임을 반복해왔다. ‘확장’ 국면에서는 기존 중공업(군수산업) 위주의 자력갱생 노선과 더불어 국제관계 개선으로 대외무역을 활성화하고(개방), 시장 요소 도입 및 경제관리 개선(개혁)을 모색한다. ‘축소’ 국면은, 국제관계 개선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대외무역, 시장 요소, 경제관리 개선 등이 떨어져 나가 자력갱생만 남게 되는 경우다.

김일성 주석 집권 말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 초 ‘무역·경공업·농업 제일주의’ 정책은 당시의 국제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배경으로 했다. 김일성 시대를 관통해온 중화학공업 및 군사·경제 병진노선의 틈새에 민생이 끼어들 공간이 열린 것이다. 이를 ‘혁명적 경제전략’이라 명명한 데에서 당시 북한 사회의 기대감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중반의 1차 북핵 위기와 고난의 행군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확장 국면의 요소들이 떨어져 나가고 다시 축소되기에 이른다.

그 축소 국면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김정일 시대의 자력갱생 전략인 선군경제 노선이다. 왜 선군경제인가? 1980년대 이후 북한 GDP의 50% 이상은 군수산업의 몫이었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소나 공장에는 반드시 군수 관련 공장이 설치돼야 했다. 다른 민수공장(인민경제 부문)이나 당경제 부문이 가동 중단돼도,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받는 군수공장만은 살아남았다. 따라서 군수공장을 동력으로 산업 전반의 회생을 추진하는 전략으로 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정일 시대에는 오히려 군수산업이 일정 단계까지 발전하면 첨단기술이 민수산업으로 확산되는 ‘스핀오프(spin off·파생)’ 현상으로 북한 경제의 ‘단번 도약’이 이뤄질 것으로 봤다. 단번 도약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 2012년을 ‘사회주의 강성국가의 문을 여는 해’로 예측하며 권력 승계의 시기로 잡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의 파생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1년 뒤인 2013년 3월의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이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선대의 노선을 계승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핵무장으로 절약한 국방비를 민수 생산으로 돌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군을 앞세운 ‘사회주의 강성국가론’의 내용을 과학기술을 앞세운 ‘지식경제강국론’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2016년 5월의 7차 당대회는 핵·경제 병진 노선과 지식경제강국 노선 사이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 5월의 7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핵·경제 병진은 변경이 불가능한 항구적 노선’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 발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년)에서는 확장기 경제전략 요소가 주류를 이뤘다. 즉, 국제관계 개선을 전제로 한 대외무역, 경제관리 개선, 시장화 등 개혁·개방의 심화를 전제로 한 정책들이다. 5개년 전략의 목표부터 ‘인민경제 전반의 활성화와 나라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 구축’이라고 못 박았다. 세부 계획에서는 에너지 문제 해결, 농업·경공업 생산 증대를 통한 인민생활의 결정적 향상, 대외무역 구조 개선, 선진 기술 수용,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환경 보장 등을 들었다. 경제 운용에서는 내각책임제와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라는 두 방식을 제시했다. 경제전략만 놓고 보면 1990년대 초의 ‘3대(농업·무역·경공업) 제일주의’와 김정일 시대 7·1 경제조치 및 4대 특구(나진·선봉, 신의주, 개성, 금강산) 개방 전략의 흐름을 확대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핵·경제 병진 노선이 발목을 잡았다. 병진 노선에서 핵무력을 떼어내고 경제집중으로 가기 위해선 핵무력이 완성돼 더 이상 안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특히 개혁·개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노동당과 군부의 강경세력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요했다. 2017년의 핵·미사일 도발 끝에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 선언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인 경제집중 노선으로 가기도 전에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로 인해 경제집중 노선의 골간인 대외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이 차단되어버렸다. 2016년 한 해 북한이 석탄, 철광석 등을 중국에 판매해 벌어들인 외화는 28.2억 달러였던 데 비해 2017년에는 17.7억 달러, 2018년 2.4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2018년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이하 경제집중 노선)’엔 지식경제 강국을 지향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이 집대성돼 있다. 권영경 교수는 ‘경제집중 노선’을 구성하는 세 개의 정책 수단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년) △우리식 경제관리 개선 방법 △경제개발구 정책으로 구분해 상세히 분석했다. 국제관계 개선이 기대될 때마다 등장한 대외무역·시장화·경제관리 개선이라는 3종 세트가 망라된 확장형 경제전략의 종합판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관심 있다”라는 발언에서부터 5월16일 박태성 당중앙위 부위원장이 시진핑 주석 면담 때 꺼냈던 발언(“중국의 경제건설 및 개혁·개방 경험을 배우고 싶다”)까지 베트남과 중국을 모델로 한 북한의 경제개발 구상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심지어 22개에 이르는 경제개방구역에 대한 외자유치 및 이를 관리할 ‘조선개방감독국’ 설치 구상까지 나왔다.

ⓒ조선중앙TV202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80일 전투의 깊은 뜻은?

그러나 두 번째의 뼈아픈 실수가 모든 기회를 날려버렸다. 2019년 2월의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및 영변 바깥의 핵시설 동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확장형 경제정책의 대전제인 북·미 관계 진전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정권 초기 존 볼턴의 리비아식 단번 비핵화에 비하면 상당히 현실적으로 바뀐 것이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무기 보유로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핵물질 생산을 동결하는 대신 김 위원장이 추진하고 싶어 했던 경제집중 노선의 국제적 기반을 구축할 기회였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면 추가 회담으로 타결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아닌 코로나19가 북·미 양측으로부터 기회를 빼앗았다.

지난해 10월5일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전당 전국 전민이 나서서 80일 전투를 벌이라”고 지시했다. ‘전투’는 북한 특유의 속도전 사업 방식이다. 경제계획 목표를 속도감 있게 달성하기 위해 사상사업을 앞세운 대중 동원 방식을 활용한다. 지난해 80일 전투는 10월10일 당 창건 기념축제 직후인 10월12일 시작돼 12월30일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기존의 성과 위주 전투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80일 전투의 실제 목적은 바로 북한 전체의 내적 역량에 대한 일종의 재고조사 같은 것이었다. 자체 역량으로 버틸 수 있는 가용자원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게 주목적이었다고 한다. ‘전당 전국 전민’이 열심히 자기 소속 분야의 재고 상태를 전수조사한 것이다.

왜 이런 조사가 필요했을까. 김 위원장이 80일 전투를 지시한 지난해 10월 초순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에게 열세인 점이 분명해진 시기다. 김 위원장이 미련을 가지고 있는 내각 주도의 확장형 경제전략은 트럼프의 재선과  북·미 관계 개선을 전제로 한다. 바이든이 승리할 경우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즉 하노이 회담 이후 한시적으로 추진해온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이 앞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외부 조건은 북한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내부의 자원과 노동력, 기술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버틸 만한가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가을께 8차 당대회에서 발표할 2021~2025년의 새로운 ‘국가경제 5개년 발전 전략’ 초안은 이미 만들어졌다. 그 방향은 전형적 수축기의 자력갱생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만들어진 초안이 기반했던 중앙통계국 통계를 신뢰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에 당 경제와 군 경제가 국가경제로부터 분리되면서 중앙통계국이 전체 국가경제 총량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통계에 기반할 경우 2009년 화폐개혁 실패의 오류를 반복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당시에도 직전의 100일 전투에서 수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진행해도 좋다’는 결론에 따라 화폐개혁을 했다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김정은 정권은 내각을 명실상부한 경제사령탑으로 위치 지우고, 당과 군은 경제 부문을 내각으로 이관한 뒤 각자 본연의 업무에 충실토록 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 그 방침이 허울뿐이었음이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당은 당 산하 대성총국으로 여전히 평양 대성백화점을 경영하고, 자강도 군수공장에서는 민수용 생필품 생산을 계속한다. 국제관계 악화로 대외무역 수입이 형편없이 줄어든 상황인지라 내각이 확장형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당과 군의 경제 개입에 대해 더 이상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도 없다. 김정은 정권 초기 경제 부문을 내각으로 이관하라던 호기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통계만이라도 중앙통계국에 넘기라는 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바이든 신행정부의 집권으로 북·미 관계 개선이 당분간 어렵게 되면 당과 군이 다시 경제 전면에 등장하고 내각은 힘을 못 쓰는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이 추진하고 싶었던 지식경제 강국론에 따른 개혁·개방 정책은 사라지고 자력갱생형 정면돌파전(내용적으로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경제 노선)으로의 후퇴가 불가피해진다. 그 후퇴가 이번 8차 당대회에서 발표되어 앞으로 입법화될 새로운 ‘5개년 경제개발 전략(2021~ 2025)’의 주된 내용으로 표현될 수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16년 4월24일 북한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수중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당과 군이 경제 운용의 전면에 나설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미리 인민들에게 자아비판 예방주사를 놓게 됐을까. 지금의 상황은 2002년 시작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가 3년 차에 접어들어 물가가 크게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재정이 부족해 손을 쓸 수 없었던 시기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당시엔 노동당과 군부의 강경파가 전면에 등장해 박봉주 총리를 좌천시키고 2005년부터 시장 폐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는 2009년의 화폐개혁으로 북한 내 ‘시장 세력’의 돈을 빼앗아 국가로 귀속시키려 했다.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은 과거 중국의 공청단처럼 사회주의 통제경제 체제를 교조적으로 내면화한 측면이 강하다. 더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4년째에 접어들면서 국가재정은 바닥나고 코로나19와 홍수해까지 겹친 삼중고의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과 마찬가지로 당과 군의 강경파들이 국가엔 돈이 없는데 시장의 돈이 ‘돈주’들에게만 모이는 현실을 좌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 시도했듯이 시장을 폐쇄하고 시장 세력의 부를 국가 수중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1월27일 국정원이 국회정보위 브리핑에서 밝힌 평양의 거물 환전상 처형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달러에 대한 북한 원화의 교환가치가 급락하자 본보기로 처형한 것인데, 돈주들의 영향력 차단을 위한 경고 조치로 해석된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단행한 국경통제와 국내 이동통제도 사실상 시장 폐쇄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2009년 화폐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당시처럼 막 나갈 수는 없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앞장서고 당이 미리 자아비판을 함으로써 주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이번 8차 당대회의 숨은 의도라는 것이다.

SLBM 발사에 대한 북·중의 이해관계

북한의 처지에서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국가 간 경협에 대한 기대를 당분간 접는다면 남은 것은 중국과의 비공식 무역을 통한 식량 및 원유 공급 정도다. 당과 군의 무역회사들은 원래부터 이 같은 비공식 무역을 담당해왔다. 중국은 대가 없는 지원은 하지 않는다. 지난해 6월16일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중국 전인대의 홍콩보안법 통과 직후의 시선 돌리기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그 대가로 평양종합병원 시설의 일부를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요구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는 트럼프 재선에 대한 기대로 북한이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중국이 평양종합병원의 핵심 설비를 넘겨주지 않아 아직도 개원을 못하고 있는 처지다.

이제 바이든 정부가 등장하면 SLBM 발사에 대한 북·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에 6개월의 정책 검토 기간을 주지 않고 늘 그랬듯이 선수를 칠 수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중재하겠다며 북한을 바이든의 대중 강경정책 예봉을 꺾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 수에 걸려들면,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코가 꿰이게 된다. 북한이 SLBM을 쏘더라도 중국의 중재로 쉽게 가려 하지 말고 북·미 직접 접촉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1994년 클린턴 정부와 북한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시 한국 외교부가 중재 역할을 했던 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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