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1월1일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델솔(태양의 문) 앞에서 사람 없는 신년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0년 12월31일 밤 스위스 취리히에는 눈이 내렸다. 독일어로 질베스터(Silvester)라고 부르는 한 해의 마지막 날, 텅 빈 거리에 눈송이만 내려앉는 모습이 낯설었다. 여느 때라면 새해를 기념하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인파로 큰길이며 호숫가가 자정까지 붐볐을 터다. 올해는 공식 불꽃놀이가 취소됐다. 불꽃놀이는커녕 10인 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다. 대신 집집마다 마당이나 발코니에서 작은 가정용 불꽃놀이 폭죽을 터뜨렸다. 여기저기서 빵빵 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덜 쓸쓸해 일부러 창문을 열어뒀다.

갑자기 폭죽 소리 사이로 사이렌 소리가 끼어들었다. 처음엔 구급차려니 했다. 이곳에선 지금도 매일같이 확진자가 4000~5000명씩 나오고 사망자도 하루에 100명쯤 발생하고 있으니까. 창 밖을 내다보니 구급차가 아니라 경찰차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걸로 보아 단순한 순찰이 아니라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잠시 뒤 또 다른 경찰차가 지나갔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5분에 한 번씩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다음 날 뉴스를 보니 ‘불법 파티’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취리히 동쪽 폴케츠빌이라는 마을의 안 쓰는 건물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새해맞이 파티를 벌였단다. 경찰 조사 결과 파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획됐고, 취리히뿐 아니라 다른 먼 지방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고 한다. 굳이 이 시점에 100명이 넘게 모여 파티를 했어야 했나, 한숨이 푹푹 나왔다. 내가 본 경찰차들도, 아마 이 파티는 아니더라도 다른 소규모 불법 모임들을 해산시키러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다른 기사를 보니 스위스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프랑스에선 2500여 명이 모여 새해맞이 파티를 했다고 한다. 영국과 스페인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도 참가했다. 저녁 8시부터 아침 7시까지 통행금지에, 6명 이상 모임이 금지된 나라에서 말이다. 그들은 경찰을 보자 욕을 퍼붓고 저항하며 자동차도 불태웠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다 보면, 지난 한 해 내내 붙들고 있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문제는 바이러스인가, 사람인가. 이것이 전쟁이라면 우리의 무기는 과학인가, 정치인가. 불법 파티는 일회성 일탈이라고 치자. 더 끈질기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팬데믹 종식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막 시작된 유럽에서 백신 반대 음모론을 펼치는 이들이다.

ⓒ 엘 문도 웹페이지지난 12월29일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는 자사 보도로 알려진 ‘백신 접종자 24시간 뒤 사망’ 기사가 가짜라고 밝혔다.

백신 거부자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주장

지금 스페인에서 와츠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는 파일이 하나 있다. 스페인의 대표 일간지 〈엘문도(El Mundo)〉 기사를 캡처한 이미지로, ‘스페인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인 아라셀리, 접종 24시간 뒤 사망’이라는 내용이다. 이 이미지는 가짜다. 포토샵으로 〈엘문도〉 로고를 붙여 조작한 것이다. 지난 12월27일 스페인에서 첫 백신 접종을 받은 96세 여성 아라셀리는 멀쩡히 살아 있다. 〈엘문도〉는 ‘아라셀리는 사망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고 경고했다. “와츠앱으로 백신 첫 접종자가 사망했다는 〈엘문도〉 기사 이미지를 받았다면, 더 이상 퍼뜨리지 말고 지우기 바란다. 그건 우리 기사가 아니다. 가짜뉴스다.” 인터넷으로 퍼지는 가짜뉴스에 대한 해명을 진짜 신문이 기사로 쓰는 상황이다.

백신과 사망을 연관 지은 음모론은 스위스에서도 나왔다. 91세 남성이 요양원에서 지난 12월24일에 백신을 맞고 닷새 뒤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한 온라인 매거진이 이 남성의 사망과 백신 접종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도를 했다. 이 매거진 웹사이트에 가보니 스위스의 대표적인 백신 반대 단체가 광고를 하고 있었다. 스위스 의료 당국은 이 남성이 전부터 심각한 다발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조사 결과 접종과 죽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음모론은 한국의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미 퍼지고 있다.  

백신 반대론을 ‘일부 비합리적인 사람들의 예외적 언동’으로 보고 무시하기엔 그 영향이 작지 않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 있는 한 요양원은 거주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편지를 거주자 가족들에게 보냈다. 요양원 거주자를 최우선으로 접종한다는 스페인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결정이다. 편지에는 백신 거부 이유가 여럿 나열돼 있다. “(화이자) 백신이 여전히 3상 시험 중인 물질이라 믿을 수 없고, 최대 10년의 추적이 필요한데 몇 달 만에 나온 것이라 위험하며, 일부에서 심각한 단기 부작용이 발생했고 중장기 부작용은 알 수도 없다”는 내용이다. 백신이 승인된 과학적 과정은 무시한 채 그럴듯한 의심, 거짓 정보만 포함하고 있다. 결국 고위험군에 속하는 일부 거주자는 요양원 집단 접종 혜택을 받지 못하고 별도로 보건소에 신청해 백신을 맞아야 했다.   

백신 물량을 확보하고 접종 의지가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접종을 실행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접종 첫 주에 총 3090명이 백신을 맞았다. 이는 스페인 중앙정부가 마드리드에 보낸 일주일치 접종 분량 4만8750도스의 6%에 불과한 양이다. 백신만이 타개책이라며 그렇게 서두르더니 왜 물량이 있어도 접종을 못할까. 일간지 〈엘파이스(El Pais)〉 보도에 따르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간호사들이 요양원을 방문해 노인들에게 접종을 하는데, 간호사 한 명당 하루에 접종 가능한 인원이 25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장소 배치 및 접종 대상자 과거 병력 체크 등에 시간이 걸려서다. 게다가 접종용으로 분배된 주사기의 눈금이 0.5㎜ 단위로 표시돼 있어 화이자 백신 접종량인 0.3㎜에 적합하지 않아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저온 운송과 보관이 쉽지 않다는 건 또 다른 과제다. 스페인 정부는 올여름이 끝날 때까지 스페인 전체 인구의 70%에 접종을 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불가능하다.  

백신만 나오면 코로나 위기도 곧 끝날 줄 알았지, 백신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백신 접종을 강제할 것인지, 접종 거부자에게 불이익을 줄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접종 거부자 명단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행정상의 편의 때문이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생활 침해 및 명단을 바탕으로 한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젤 대학 우르스 뮐러 교수(재정학)는 ‘코로나 파스(Corona Pass·코로나 통행증,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안했다. 법으로 접종을 강제하긴 어려우니, 예컨대 ‘20인 이상 모임에는 코로나 파스를 가진 사람만 참석할 수 있다’ 같은 규정을 만들어 접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거다. 뮐러 교수는 “개인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다는 건 백신을 맞을 강력한 동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접종 거부자 명단이건 ‘코로나 파스’건, 개인의 접종 여부를 국가가 파악하고 그것을 방역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은 유럽의 전통적 예방접종 정책과 달라진 부분이다.

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독일의 인간유전학자 볼프람 헨은 지난 12월19일 독일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긴급 치료 우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명백히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집중치료실과 인공호흡기를 백신을 맞은 다른 이들에게 넘기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상태가 더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는 게 의학적 원칙이다. 그런데 그 원칙에 더해 백신 접종 여부를 고려하자는 거다. 그것이 공정한 방식일까?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다른 건강상의 이유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거라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다쳐도 일단 살리고 보는데, 백신 거부를 치료 거부의 구실로 삼아도 될까?  

백신을 둘러싼 갈등은 코로나19로 첨예화됐을 뿐, 새로운 건 아니다. 백신을 개발해 감염병을 하나씩 정복해나간 곳에 ‘안티 백신’을 외치는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딜레마다. 코로나19 전까지 그 딜레마를 가장 잘 보여준 게 홍역이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집단면역에 도달하려면 인구의 95%가 두 차례에 걸쳐 백신을 맞아야 한다. 그런데 음모론이 돌면서 접종률이 계속 떨어졌고, 2019년엔 전 세계 홍역 발생 건수가 23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만7500명. 대부분이 5세 이하 아동이었다. 현재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 2위가 홍역이다(1위는 결핵).

ⓒEPA지난해 10월2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코로나19 봉쇄 및 백신 반대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구시대 감염병도 문제다

팬데믹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홍역을 비롯한 필수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는 점도 큰 문제다. WHO에 따르면 2020년 11월 현재 전 세계 9400만명 이상이 백신 접종 시기를 놓치고 있다. 당장은 많은 사람들이 활동을 자제하고 있어서 구멍 뚫린 백신으로 인한 감염병 유행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통제되고 일상이 회복됐을 때 구시대의 감염병 중 어떤 것이 수면 위로 떠오를지 장담할 수 없다.   

두 세기 전인 1798년,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당시 만연했던 천연두에 대해 연구하던 중 소에 주목했다. 소에 일어나는 비슷한 병인 우두(牛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는 실험을 한다. 8세 소년에게 우두 고름을 접종하고 6주 뒤 천연두 고름을 접종한 결과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우두 바이러스에 대항하며 생긴 면역이 나중에 들어온 천연두 바이러스에 맞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예방접종인 종두법의 탄생이었다. 이 기법은 당시 제너가 우두를 불렀던 이름인 ‘바리올라이 바키나이(Variolae vaccinae)’로 널리 알려졌다. 라틴어 소(vacca, 바카)가 예방접종에 제 이름을 남기게 된 사연이다. 백신을 뜻하는 현대 스페인어(vacuna, 바쿠나)와 영어(vaccine)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소의 해가 밝았다. 더구나 흰 소다. 흰 가운 입은 의료진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것으로 함께 소의 해를 건강히 버텨내길 희망한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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