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무원 합격 인증글(왼쪽)과 이재명 지사의 강경 대응 예고글.

반사회적 게시물들로 악명을 떨쳐온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에서 패륜적인 성희롱과 약자 혐오를 일삼던 이용자가 공무원이 되었다면 임용을 취소해도 될까. 지난 12월30일 새벽 1시경 일베에 올라온 한 취업 인증글이 발단이었다. ‘의미심장’이란 닉네임으로 일베에서 활동하던 A씨는 2020년도 경기도 지방공무원 7급 공개경쟁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최종 합격’ 안내 화면을 캡처해 올렸다. “일베가 있어 오늘 이 자리가 있었습니다.” 경기도 7급 공무원 최종 합격자는 총 136명. 그는 빠르면 올해 초부터 현업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A씨의 ‘취업 인증글’이 물의를 빚으면서, 경기도는 이례적으로 그의 임용 자격 상실 여부를 따지기로 했다.

A씨는 닉네임 ‘의미심장’으로 일베에서 최소 5년 이상 활동했다. 그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취지의 글과 함께 여성의 속옷 사진을 게재하는가 하면 타인의 사진을 무단 배포하며 ‘귀여운 여고딩들 보고 가라’ ‘성관계를 하고 싶다’ 같은 성희롱과 여성혐오적 발언을 여러 차례 일삼았다. 또 길을 지나던 장애인과 노인을 무단 촬영한 사진을 올리고 조롱했다. 이런 게시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A씨의 행적이 세간에 알려진 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다. A씨가 합격 인증글을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약칭 ‘일베’ 사이트에서 성희롱 글과 장애인 비하글 등을 수없이 올린 사람의 7급 공무원 임용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은 빠르게 확산돼 1월6일 기준 9만1600여 명이 서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12월31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사실로 확인되면 임용 취소는 물론 법적조치까지도 엄정하게 시행하겠다”라고 밝혔다. 경기도 대변인실 관계자는 “사실이라면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이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일할 수 있겠나. 게시 내용이 국민 정서로나 상식으로나 용서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지사가 언급한 ‘법적조치’에 대해서는 “성관계 자랑글에 미성년자가 포함되어 있고 불법 촬영으로 추정되는 사진들도 다수 있어 형법상 처벌 가능성을 보겠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청은 A씨가 온라인에 올린 성적표로 대상자를 특정했다. 1월14일 열리는 인사위원회에서 임용 여부가 결정된다.

‘상식 차원’ 외에 경기도가 A씨에 대한 임용 취소를 고려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법적 근거는 공무원임용령 제14조다. ‘임용 후보자로서 품위를 크게 손상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이다. 임용 이전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 가능하냐는 질문에 경기도 인사기획팀 관계자는 “임용 전 행위라도 지방공무원법상 징계받은 판례는 있다”라고 말했다. 임용 이전에 사립학교 측에 기부금을 준 교원에 대해 ‘품위 손상’을 이유로 징계 가능하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다. 그러나 이 경우와는 결이 다르다. 공무원으로 품위가 손상된 이유가 일베 회원이라서 문제인지, 성범죄 가능성이 있어서인지, 만약 게시글이 실제 사실이 아닌 온라인상의 연출이라면 또 어떻게 되는지 따져볼 맥락이 여럿 있다.

ⓒ미디어오늘2015년 3월30일 KBS 본관에서 KBS 직능단체들이 ‘일베 기자’ 임용 반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징계나 해고의 근거가 있어야

온라인상의 반사회적 행위를 두고 임용 논란이 벌어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4월 일베 활동 전력이 있던 KBS 수습기자가 정식 임용되면서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해당 기자는 입사 전 일베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을 수차례 올렸다. 당시 KBS기술인협회와 기자협회, PD협회 등 11개 직능 단체와 KBS 언론노조는 정식 임용을 반대했으나 회사 측은 “평가 결과 사규를 벗어나지 않고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라며 그를 비취재부서로 파견했다. 이를 두고 ‘KBS가 일베를 껴안았다’는 비판과 ‘사상 검증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맞부딪쳤다.

KBS의 한 기자는 당시 ‘일베 기자’ 임용을 반대하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고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이 사람을 징계하거나 해고할 근거가 있는지 고민스러웠다. 반인륜적인 건 맞는데 단지 ‘나쁜 놈’이라서 기자가 되면 안 돼, 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안 된다고 하려면 결격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나 임용을 취소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해당 기자를 받아들인 회사 측의 결정에 대해선 소극적인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추후에 해고 무효소송을 해서 회사가 패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일베라는 비상식을 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란이 된 기자는 2017년 취재업무로 돌아온 후 2018년부터 지역 방송국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다.

경기도나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2월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전시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아동 성희롱범을 고발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임용 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걸그룹을 대상으로 악성댓글과 성희롱을 반복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해당 공무원은 부인하고 있다. 2015년에는 충청남도의 한 소방공무원 채용 후보자가 일베 회원임을 인증했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스스로 임용을 포기한 사건도 있었다. 일베에서는 2017년 공무원증, 변호사 신분증과 대학 합격증 등을 찍어올리는 인증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언급된 후 각종 커뮤니티에는 ‘인증을 삭제하라’는 말이 나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취업 과정에서 온라인 활동 이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되풀이해 문제가 될 수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과)는 “지금까지 공직사회 내에서 혐오 표현 문제에 별다른 제재가 없다가 신규 임용자에게만 임용 취소를 해버리는 방향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직 공무원의 혐오 발언을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가이드라인은 없는데, 신규 임용자만 잘라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채용 전 SNS 사용 내역을 무조건 다 공개하게 할 것인가? 보수 성향의 단체장이 당선되었을 경우 사상 검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위험은 없는가? 홍 교수는 일상적인 검열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방임할 수도 없다. 딜레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성수 교수는 ‘일베 공무원’의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A씨의 행위가 ‘비윤리적’이라서가 아니라, 공직자로서 용납하면 안 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립해야 한다는 취지다.

“가짜뉴스가 잘못된 건 단순히 가짜여서가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일베라서 잘못된 게 아니라 A씨가 올린 해당 게시물들이 성범죄를 선동하고 강간 신화를 조장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문제는 ‘일베’가 아니라 혐오 조장이고, 혐오 조장은 신입 공직자든 기존 공직자든 다 결격사유라는 원칙을 세워야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공공조직이 그런 원칙을 합의하고 세울 수 있는가? 신규 임용자를 넘어 기존 식구들에게도 원칙을 적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베 공무원 임용 논란은 모든 공직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