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경기도 시흥시에 설치된 특별생활치료센터에는 70여 개 병상이 설치됐다.

2020년 12월25일 성탄절 아침,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옛 시화병원 건물에 간호사들이 모였다. 시화병원이 더 넓은 건물로 이사를 간 뒤 오랫동안 빈 건물로 남아 있던 공간이다. 지난 이틀 동안 군 장병 70여 명이 청소와 공사를 끝마쳤다. 1층 현관에는 “두려움을 넘어서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고 큼직하게 쓰인 현수막이 새로 붙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간호사들은 동선을 익히고 의료물품을 배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곳에 코로나19 확진자 ‘특별’생활치료센터가 문을 열기 전까지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밤에 잠이 안 왔어요. 확진자가 한 명씩 들어오는 상황이 떠오르면 ‘이건 준비됐나’ ‘저건 준비했을까’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요.” 특별생활치료센터에서 간호팀을 총괄하는 안은미 안성병원 수간호사가 말했다. 27년 경력의 베테랑인 안 수간호사뿐 아니라 경기도 안성 생활치료센터와 이천 생활치료센터가 문을 열 때 두 차례 파견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다른 간호사들도 잠이 안 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의 일반 생활치료센터가 확진자와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는 ‘격리시설’이라면, 이곳 특별생활치료센터는 대면 진료를 위해 긴급히 차린 ‘야전병원’과 비슷하다.

특별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병상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비극을 조금이라도 막아내기 위해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무증상 또는 경증이지만 기존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입소가 거부되는 고위험군 환자를 받는다. 증상이 심하면 병원으로 옮겨지지만, 혹시라도 이송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해 기존 생활치료센터보다 더 많은 의료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는 병원과 생활치료센터의 중간지점이다.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처럼 각종 처방이나 다양한 시술을 받을 수는 없지만, 생활치료센터처럼 최소한의 상비약만 제공받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병원에 자리가 날 때까지 환자가 버틸 수 있도록 물(수액)과 공기(산소)를 제공해준다.

ⓒ시사IN 신선영확진자가 입소하기 전 의료진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특별생활치료센터를 일주일 만에, 그것도 성탄절 연휴에 문을 열게 된 건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말부터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사용 가능한 병상수, 특히 그중에서도 중환자실 병상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악화될수록 점점 더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흐름이 막혀버린 것이다.

경기도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2020년 12월24일 기준 133명 확진·63명 대기), 고양 미소아침요양병원(47명 확진·29명 대기), 안산 라이트요양병원(8명 확진·8명 대기) 등 요양시설에서 연달아 집단감염이 일어나자 상황은 더욱 빠르게 악화됐다. 쓸 수 있는 병상이 없기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빼낼 수가 없었다. 격리된 시설 안에서 바이러스는 빠르게 번져 서로가 서로를 감염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코로나19에 감염된 60대 간병인이 요양시설에 갇힌 채 마찬가지로 감염된 80대 환자를 돌보며 구조 요청을 보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요양시설 입소자는 고령의 고위험군이라 치명률도 높다. 2020년 12월30일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80대 이상 치명률은 16.43%, 즉 100명 중 약 16명이 사망한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 단장은 특별생활치료센터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의 생활치료센터와 기본 개념은 다르지 않아요. 다만 여기에 수액과 산소를 추가로 제공해 사망률을 낮추자는 간단한 아이디어입니다. 확진자가 병원에 입원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악화를 늦추는 것일 뿐이지만, 현재 병상 대기 중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자구책입니다.”

코로나19 환자에게 수액과 산소를 제공하는 긴급 시설은 해외에서도 효율적으로 활용된 적이 있다. 2020년 3월 말 일일 확진자 수가 4만명대까지 치솟았던 스페인은 수도 마드리드에 위치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 수액과 산소 공급이 가능한 병상 5500개(중환자 병상 500개 포함)를 설치해 유럽에서 가장 큰 임시병원을 운영했다.

ⓒ시사IN 신선영1층에 설치된 문진 구역.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실행은 쉽지 않아

생활치료센터라는 기본 틀에 수액과 산소를 더한 이 간단한 아이디어는 그러나 실제 실행하기가 간단치 않다. 의료소송의 위험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특별생활치료센터에서 사망하는 경우, 가정에서 병상 대기 중 사망하는 경우와 달리 유가족들이 의료진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치 않은 이 야전병원의 특성이 간과되는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는 시비가 붙을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임승관 단장은 “감염 위험에다 의료소송 위험까지 더해지면 누가 그걸 감수하고 의료 지원을 하러 오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확산세가 커진다면 이곳이 앞으로 많은 어르신들을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다들 와주신 거예요.” 임 단장은 “이런 비상 상황에서 정부 차원에서 의료인을 법적으로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별생활치료센터가 들어서는 곳에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구 시화병원에 들어선 1호 특별생활치료센터의 경우 병원 건물이 옆 상가 건물과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는 구조라 상인회 반발이 거셌다. 비록 공간이 완전히 분리돼 있지만 그 아래층은 요양시설과 산부인과가 운영 중이기 때문에 불안감이 한층 더 컸다. 임승관 단장과 도청 공무원들은 여러 차례 상인회를 만나 설득과 협상에 나섰다. 결국 구름다리를 완전히 막고 상가 건물에 남아 있는 절반 가까운 병상들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매듭지어졌다. 박명석 옥구상가 상인회장은 “반대도 있었지만 국가가 하는 일이고 코로나 환자분들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종합상황실에서 병실 CCTV를 확인하고 있다.

2020년 12월27일, 마침내 1호 특별생활치료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료진, 군인, 공무원, 소방관, 경찰, 청소업체 등이 협업해 일주일 만에 이루어낸 개소였다. 당장 오후부터 확진자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개소식도 10분 만에 끝났다. 특별생활치료센터장을 겸임한 임승관 단장은 “지난 일주일 동안 모든 일 하나하나에서 창의성이 발휘되었다. 오늘 이후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프로그램의 개발자라고 생각하시고 참여해달라”고 모든 의료진에게 당부했다. “인근 9개 병원에 의사와 간호사를 보내주십사 하는 협조 공문을 보냈으니 조금만 더 힘내주시라”고도 덧붙였다.

특별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동선이다. 방호복을 벗어도 되는 ‘청결구역’과 반드시 방호복을 입어야 하는 ‘오염구역’ 동선이 섞이지 않아야 감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급차를 타고 도착하는 환자는 1층에서 투명 가림벽을 사이에 두고 의료진으로부터 문진을 받는다. 이때 센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숙소 내 CCTV 촬영 동의를 얻는다. 평소라면 인권침해 우려가 있지만, 의료 인력이 현저히 줄어든 코로나19 병동이나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의료진이 계속 회진을 돌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CCTV를 활용하고 있다. 3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에서 각 병실마다 달린 CCTV를 통해 입소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입소 동의서를 작성한 확진자는 입소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정받은 병실로 이동한다. 병상에는 상황이 악화될 경우 수액을 걸 수 있는 설비와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단자가 갖춰져 있다. 혈압을 재거나 체온을 재는 등의 간단한 신체 검진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개인마다 물품이 지급된다. 매끼 도시락은 방호복을 입은 군 장병들이 병실 앞에 놓아주고 또 회수해간다.

1호 특별생활치료센터에는 총 70여 개 병상이 있다. 지금은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병상을 배정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수도권 공동대응 상황실을 통해 다른 시·도 대기자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개소 첫날 확진자 10명이 특별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 오후 2시에 들어온 첫 입소자는 60대 여성이었다. 구급차가 들어오자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 2명이 환자를 데리러 나왔다. 입소자는 문진을 마친 뒤 간호사와 함께 소지품을 나눠 들고 입소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병동으로 올라갔다.

ⓒ시사IN 신선영개소 첫날 확진자 아기를 안고 온 여성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특별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고 있다.

입소자 최대치에 비해 의료진은 모자라

구급차는 줄줄이 들어왔다.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와서 병원 주위를 몇 바퀴 뱅뱅 도는 보건소 구급차가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 입소자는 갓난아이와 30대 어머니였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2020년 7월생이었다. 기저귀 등 아기용품 짐 꾸러미가 많았다. 구급차 교통정리를 하던 직원도 아기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빨리 회복해서 엄마랑 같이 건강하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2020년 3월생인 다른 아기도 같은 날 어머니와 함께 센터에 입소했다.   

일반 생활치료센터는 만 1세 미만 환자는 받지 않는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각지대에 놓인 영아나 임산부, 독거노인, 또는 기저질환이 있는 코로나19 확진자들도 특별생활치료센터에서는 제한적이나마 대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센터가 문을 연 이튿날에도 확진자 15명이 차례차례 입소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입소 당일 곧바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옮겨졌다. 안은미 수간호사는 “그분에게 산소 공급을 하는데도 계속 호흡곤란을 호소하시고 산소포화도가 오르질 않았어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가정에서 대기하셨을까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하루에 10여 명씩 입소하는 추세로 미루어볼 때, 불과 일주일 뒤엔 70병상 규모인 1호 특별생활치료센터의 가동률이 최대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입소자 최대치에 비해 현재 의료진 규모는 절반도 채 안 되는 수준이다. 공공병원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들은 “병상이 다 찬 뒤에도 간호사가 충원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우리가 차지(charge, 감독)하면서 직접 액팅(acting, 처치)까지 동시에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안은미 수간호사는 센터가 개소한 뒤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근처 대학교 기숙사에 마련된 임시 숙소로 퇴근한 안 수간호사는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말했다. “저희는 정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인 것 같아 많이 아쉬워요. 왜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 건지, 어디서부터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임승관 단장은 설령 증가세가 잡힌다고 해도 안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증가세가 꺾이더라도 정부가 의료자원 확충을 멈추면 안 됩니다. 사망자 증가는 확진자가 늘어난 뒤부터 일정 시점 이후에 발생하기 시작하거든요. 또 확진자 증가세는 꺾였더라도 언젠간 또다시 오르막길을 탈 테니까요.”

기자명 글 나경희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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