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열 살이다. 또래 아이들처럼 소년단에 들어갔다. 무리에 속하고 싶고 친구도 사귀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몸이 약한데 마음마저 약하기 때문이다. 작은 동물 따위 쉽게 죽이는 친구들이 조조를 ‘겁쟁이 토끼’라고 놀린다. ‘조조 베츨러’는 그렇게 ‘조조 래빗’이 되었다.

언뜻 보면 보이스카우트 같지만 다시 보면 보이스카우트와 전혀 다르다. 조조가 가입한 소년단 말이다. “제군들은 기동훈련, 매복술, 폭파 등의 훈련을 하게 된다.” 첫 수업에서 이렇게 말하는 보이스카우트 교관은 없다. 폭파?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런 걸 가르치려고 만든 조직이다. 여기는 독일.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이름하여 ‘히틀러 유겐트’, 독일 나치 소년단원 조조 래빗.

녀석에겐 남들이 모르는 비밀 친구가 둘 있다. 먼저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 총통이 내 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친구. 외로울 땐 짜잔, 히틀러가 다가와서 위로해주고, 겁이 날 땐 짜잔, 히틀러가 나타나서 용기를 북돋운다. 가끔 허공에 대고 대화를 나누는 조조가 다른 아이들 눈엔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그때마다 아이는 총통님과 얘기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비밀 친구가 생긴다. 조조네 집 벽장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짜잔, 눈앞에 나타났다. 유대인 소녀 엘사(토머신 매켄지)다. 소년단에서 배운 대로 일단 칼을 쥐어보지만, 알다시피 조조는 몸이 약하고 마음마저 약한 아이. 차마 죽이지 못한다. 먹을 걸 나누고 얘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다. 네 편 내 편, 둘로 나누는 법만 배운 아이가 세상엔 다른 나눔의 길도 있다는 걸 배워간다. 들키는 날엔 모든 게 끝이므로 상상 속 친구와 벽장 속 친구 사이에서 조조는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거리 좁히는 일의 아름다움

얼마 전 한 방송에서 나는 2020년 최고의 영화로 〈조조 래빗〉을 꼽았다. ‘보고 나서 가장 기분이 좋아진 영화’라서 그랬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눈물을 참을 수 없지만 그 눈물을 쥐어짜진 않는 영화라서 좋았다. 볼 때마다 가슴 벅찬 마지막 장면에서, 누구든 눈으로는 울면서 입으로는 웃게 되어 있다. 엉덩이 사이에 새털이 돋는 걸 피할 수 없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의 끝이 보인다.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던 집 밖으로 사람들이 나온다. 함께 웃으며 춤을 추는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영화에서처럼 우리에게도 부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당신께 권한다.

가혹한 거리두기의 시대, 거리를 좁히는 일의 아름다움을 새삼 기억하게 만드는 이야기, 영화 〈조조 래빗〉은 2020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기생충〉만 아니었으면, 난 이 영화의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응원했을 것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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